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주역이 말하는 지혜와 철학(3)

◆ 간괘(艮卦)

 

간(艮)은 정지 뜻이다. 행동하여야 할 때에는 행동하여야 하고 행동하지 않아야 할 때는 잘 멈춰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해야 할 말은 하여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말아야 한다. 손도 무겁고 입도 무겁고 행동도 무거워야 한다.

 

적당한 정도, 범위를 지키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중국의 가장 오래된 중용의 도에서 강구하는 것은 ‘합적(合適)’이다. ‘꼭 알맞다’ 의미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 말은 참 좋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불편불의(不偏不倚)1)하여야 한다. 행동하여야 할 때는 행동하여야 하고 행동하지 않아야 할 때는 정지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간(艮)은 그침이다. 때가 그칠만하면 그치고 때가 다닐만하면 다녀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그 때를 잃지 않음이, 그 도리가 빛남이니, 그 그쳐야 함에 그침은 그 자리에 그치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가 적으로 대응하여 서로 함께하지 않기에 이러므로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을 다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다.”

 

간(艮)은 정지, 그치다 뜻이다. 멈춰야 할 때 멈춰야 한다. 행동하여야 할 때 행동하여야 한다. 행동과 정지 모두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가야할 길은 넓고도 밝다. 간(艮)이 말하는 정지는 멈춰야 할 장소에서 멈추는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그의 전신(前身)을 볼 수 없으면 정원에서 걷는 것과 같다. 둘씩 등을 지고 있어 타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경지에 다다르면 해를 입지 않는다.”

 

1951년 6월, 중국은 외교부 부부장 이극농(李克農), 교관화(喬冠華) 일행을 한국으로 보내 정전 담판을 벌이게 했다. 떠나기 전에 주은래(周恩來)가 담판을 짓는 일에 대하여 전면적인 지시를 내렸다. 그러면서 소식(蘇軾)의 말을 인용하며 총결하였다.

 

“가야할 곳으로 가고 멈추지 않으면 안 될 곳에 가서는 멈춰야 한다.”2)

 

소식은 「답사민사서(答謝民師書)」에서 사민사의 문장을 평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내게 보여준 서신, 시부와 잡문을 숙독했습니다. 대체적으로 구름이 떠가고 물이 흘러가는 듯이 처음부터 정해진 바탕이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고 가야할 곳으로 가고 멈추지 않으면 안 될 곳에 가서는 멈춥니다.”

 

사민사의 문장을 칭찬하고 있다. 벌여놓아야 할 곳에서는 강렬하게 묘사하고 일필휘지했으며 간략하게 묘사해야할 곳에서는 먹을 아끼기를 금같이 하고 적당한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는 말이다. 하늘에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다른 힘에 거스르지 않고 자연 그대로 유유히 움직이며 아주 통쾌하다는 뜻이다.

 

“움직여야 하면 움직이라.”

 

“멈춰야 하면 멈춰라.”

 

종합적인 목표, 형세의 변화, 허락된 조건에 근거해서 시세를 잘 살피어 거동과 진퇴를 확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움직여야만 할 때 움직이면”, 목적 없이 맹목적으로 행동하지 않게 되고 ; “멈춰야 할 때 멈추면”, 무원칙적으로 끌려가거나 양보하지 않게 된다. 종합적인 목표를 실현하는 데에 이익이 되느냐에 따라 진퇴를 판단하는 표준에 의거해 모든 결정을 하게 된다.

 

마치 이와 같다 : 품격은 3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류와 마지막 부류는 모두 극단과 부도덕이다. 가운데에 있는 것이 도덕 혹은 우월성이다.

 

비겁함과 무모함 사이에 있는 것이 용기다;

인색과 사치 사이에 있는 것이 관대함이다;

비굴과 교만 사이에 있는 것이 겸허, 신중이다;

괴팍함과 익살 사이에 있는 것이 유머다;

우유부단과 충동, 고집 사이에 있는 것이 극기, 자제다…….

 

그렇기에 윤리 혹은 행위에 있어 ‘합당’은 수학이나 공학 중의 ‘합당’과 다름이 없다. 그 뜻은 정확, 적합이다.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용(中庸)은 결코 수학의 등비중항이 아니다. 정확한 계산을 도출해내는 양단의 평균값도 아니다. 중용은 환경에 따라, 좌우의 여러 가지 상황이 변화에 따라 변한다. 성숙되면서도 유연성 있는 이성이 있어야만 자기에게 발현된다.

 

물욕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지나치게 검소한 사람도 있다. 무절제 하게 금전을 낭비하는 사람도 있고 털 한 가닥도 안 뽑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사람도 있다. 이 모두 정상적인 삶의 길이 아니다. 손과 같다고나 할까. 시종일관 주먹을 꽉 쥐고 있거나 손바닥을 펼쳐만 있는 것 모두 옳지 않다. 주먹을 쥐기도 하고 손바닥을 펴기도 하는 것이 정상이다. 마찬가지로 적당할 때 멈춰야 한다. 불편불의(不偏不倚)하여야 한다. 이것이 중용의 길이다.

 

어떻게 하면 일상생활에서 ‘중용의 길’을 실천할 수 있을까? “멈출 때 멈추고 행할 때 행할” 수 있을까?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말자.

 

살면서 일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함에 있어서는 당연히 부지런하여야 하지만 너무 자신에게 가혹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를 처리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늘을 남기게 되어서 오래할 수 없고 오랫동안 견지하며 견뎌낼 수 없다.

 

둘째, 즐기더라도 과하지 말자.

 

사람에게 물질생활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고 과하게 오욕(五欲)의 즐거움에 흥청거려서는 안 된다. 끝도 없이 낭비하면 큰 해를 입는다. “물질의 노예가 된다.” 물질이 너무 풍부하여도 어떤 때에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복덕인연(福德因緣)3)은 천천히 향유하여야 한다. 과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사람을 대하는 데에 너무 박하게 하지 말자.

 

사람을 대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관대, 너그러움이다. 상대를 고려하여야 한다. 더욱이 주관자가 되어 “자신처럼 대하라.” “관용으로 남을 대하고 자기에게는 엄격하라.” 사람을 가혹하게 대하거나 지나치게 방임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평상시에 우리는 일하는 데에 적당한 정도, 범위 내에서 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중(中)’이다. 이른바 “멈출 때 멈추고 행할 때 행하는” 것이다.

 

중용의 길은 사실 불교의 ‘중도(中道)’와 닮았다. 같은 뜻이란 말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너무 왼쪽으로 치우치지도 말고 오른쪽으로 경도되지 말라는 의미에서 상통한다는 말이다.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이완되지도 말아야 한다. 시시각각 적당한 정도와 범위를 생각해야 한다. 일을 할 때마다 적당과 합당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일을 순조롭게 이룰 수 있고 대나무를 그리기 전에 마음속에는 이미 대나무의 형상이 있는 것처럼 일하기 전에 전반적으로 고려할 수 있게 된다.

 

*****

艮卦 ䷳ : 간위산(艮爲山) 간(艮: ☶)상 간(艮: ☶)하

 

「단전」에서 말하였다:간(艮)은 그침이다. 때가 그칠만하면 그치고 때가 다닐만하면 다녀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그 때를 잃지 않음이, 그 도리가 빛남이니 그 그쳐야 함에 그침은 그 자리에 그치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가 적으로 대응하여 서로 함께하지 않기에 이러므로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을 다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다.(彖曰,艮止也.時止則止,時行則行,動靜不失其時,其道光明,艮其止,止其所也.上下敵應,不相與也,是以,不獲其身,行其庭,不見其人,无咎也.)

 

[傳]

 

간괘(艮卦)는 「서괘전」에 “진(震)은 움직임이다. 모든 것이 끝까지 움직일 수 없어 그치게 되므로 간(艮)으로 받는 것이니, 간은 그침[지(止)]이다”라고 하였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맞물리니 움직이면 고요하고 고요하면 움직이게 되지만, 어느 것도 늘 움직이기만 하는 이치는 없으므로 간괘가 진괘 다음인 것이다. 간(艮)이 그침[지(止)]임에도 지(止)라고 하지 않는 것은, 간(艮)이 산(山)의 상(象)으로서 안정되고 무거우며 단단하고 차있다[안중견실(安重堅實)]는 뜻이 있어서 지(止)의 의미만으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괘와 곤괘가 세 번째 사귀어 간괘를 이루니, 양효 하나가 음효 둘 위에 있다. 양(陽)은 움직여 위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위에 다 이르면 그치게 되고, 음(陰)은 고요함이어서, 위는 그치고 아래는 고요하므로 간(艮)이 된다. 그렇다면 축(畜)의 그침[지(止)]과는 어떻게 다른가? 축의 그침은 억눌러 저지하는 뜻으로 힘으로 그치게 하는 것이고, 간(艮)의 그침은 편안하게 그친다는 의미이니 그 그쳐야 할 자리에 그치는 것이다.

 

1) 불편불의(不偏不倚), 한편에 치우치지도 아니하고 기대지 않는다. 중용(中庸)의 중(中)에 대한 뜻을 풀이한 말이다. 주자(朱子)는 말했다. “치우치지 않고 기대지 않아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을 ‘중(中)’이라 이르고 용(庸)은 평상(平常)한 것이다.”(不偏不倚,無過不及之謂中,庸平常也.)(『中庸章句』)

2) 행운유수(行雲流水), ‘하늘에 떠가는 구름과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① ‘일정한 본질이 없이 각양각색으로 변화함’을 이르는 말. ② 나아가서는 ‘조금도 집착함이 없이 사물에 호응하여 행동하는 것’을 비유. ③ 또한 ‘속세에서 떠나 초연한 심경(心境)에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 ④ ‘일의 처리에 막힘이 없거나 마음씨가 시원시원함’을 비유하기도 한다. (「답사민사서(答謝民師書)」. “行雲流水,初無定質”에서 비롯된 말이며 행각승(行脚僧)을 운수(雲水)라고 일컫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송대(宋代) 시인 소식은 사민사(謝民師)라는 친구의 작품을 칭찬하였다. “그대의 글은 마치 구름이 떠가고 물이 흘러가는 듯 처음부터 정해진 바탕이 없다. 그러나 언제고 가야할 곳으로 가고 멈추지 않아서는 안 될 곳에 가서는 멈춘다.”(大略如行雲流水,初無定質,但常行於所當行,常止於所不可不止.)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작풍(作風)을 가리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학을 평했다. “내 글은 마치 만 톤이나 저장되어 있는 샘물의 원천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솟아나와 평지에서도 도도하고 세차게 흘러 하루에 천리를 흘러가기에 어렵지 않다. 산이나 바위를 만나면 물건에 따라 형체를 이루나 알 수 없다.”(吾文如萬斛泉源,不擇地皆可出,在平地滔滔汩汩,雖一日千里無難.及其與山石曲折,隨物賦形,而不可知也.所可知者,常行於所當行,常止於不可不止,如是而已矣.甚他雖吾亦不能知也.(『蘇軾文集』卷66「自評文一」))

3)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목련존자가 제석천에게 말했다. “먼저 선법(善法)을 닦아 그 복덕의 인연으로 이 수승한 과보를 얻는다.”(先修善法,福德因緣,成此妙果]) 『현우경(賢愚經)』에는 부처님께서 말하셨다. “이전에 내가 닦은 선근 복덕에 의하여 수승한 과보를 얻는다.”(吾今如是,由先修福,今獲妙果)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 반대
추천
1명
100%
반대
0명
0%

총 1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