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표선면 한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로 20대 소방관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일 제주도 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이날 새벽 1시 9분께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한 주택 옆 창고에서 불이 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은 창고 옆 주택에 있던 80대 노부부를 대피시키고 화재 진압에 나섰다. 당시 창고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거센 불길로 창고 외벽 콘크리트 처마가 무너져 내리면서 불을 끄던 표선119센터 소속 임성철 소방교(29)가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당시 임 소방교는 화재가 발생한 창고 입구 쪽에서 불을 끄고 있었으며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콘크리트 더미가 한꺼번에 덮치면서 화를 면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임 소방교는 5년 차 소방대원으로 이날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주민 대피와 화재 진압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불이 난 창고는 전소됐다. 소방 관계자는 "공무원 재해 보상법에 따라 임 소방교에 대한 순직 소방공무원 보상과 예우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한국은 가히 ‘부채공화국’으로 불릴 만하다. 가계빚과 기업부채 규모가 각각 국내총생산(GDP)을 웃돌며 세계 1~3위권이다. 부채 증가 속도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다. 가계, 기업 가릴 것 없이 부채 총량과 증가 속도 모두 위험하다.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하며 경제성장률은 1%대를 맴도는데 물가가 잡히지도 않고 고금리가 지속되니 가계도, 개인사업자인 자영업도, 기업들도 불어나는 부채와 이자 부담에 짓눌려 신음한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러 금융통계로 입증된다. 대출을 3건 이상 끌어 쓴 자영업 다중채무자가 177만8000명으로 역대 최대다. 이들의 대출 잔액 743조9000억원도 최대인 데다 연체가 급증하고 있다. 2분기 연체액은 13조2000억원, 1년 전의 2.5배다. 연체율도 1년 새 0.75%에서 1.78%로 2.4배 뛰었다. 가계도 빚과 연체의 늪에 빠졌다. 꺾이지 않는 대출 수요로 빚은 계속 불어난다. 3분기 주택담보대출이 17조3000억원 증가했다. 정부의 대출 규제 관련 엇박자 정책과 집값 떠받치기가 빚내 집을 사자는 ‘영끌’ 심리를 자극했다. 가계대출에 카드사용액을 합친 9월말 가계신용 1875조6000억원도 사상 최대다. 게다가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0.35%로 1년 전 대비 0.16%포인트 뛰었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0.12%포인트 올랐다. 카드빚 돌려막기도 급증했다. 10월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1조4903억원, 1년 전보다 47.5% 불어났다. 카드사 연체율도 2%를 넘어섰다.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음은 국제 비교에서 드러난다. 국제금융협회(IIF) 세계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2%. 한국은 선진국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 유일한 나라다. 한국 기업의 GDP 대비 부채비율도 126.1 %로 조사대상 34개국 중 세번째로 높다. 2분기 대비 5.2%포인트 높아졌다. 증가 속도는 두번째로 빠르다. 기업부도 증가율도 1년 전 대비 약 40%로 주요 17개국 중 2위다. 대다수 국가가 고금리 상황에서 부채감축에 나선 반면 한국은 역주행했다. 적잖은 기업들이 빚 수렁에 빠져 벼랑 끝에 몰렸다. 4대 은행에서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받는 ‘깡통대출’이 올 들어 29% 급증하며 3조원에 육박했다. 10월까지 법인의 파산 신청이 1363건으로 관련 통계를 낸 2013년 이후 최대다. 기업들이 빚더미 속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급등, 소비 위축을 견디지 못한 채 무너졌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의 42.3%가 1년간 번 돈으로 이자도 감당할 수 없는 ‘좀비기업’이었다. 2009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많다. 가계부채에 이어 기업부채 폭탄이 경제의 뇌관으로 등장한 것이다. 과도한 부채는 금융 안정을 위협하고, 가계의 소비 여력을 고갈시켜 불황과 저성장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부채의 상당 부분이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 집값 상승을 부채질한다. 집값 상승 기대는 2030세대를 ‘영끌’로 이끌며 ‘가계부채 증가, 집값 상승’의 악순환을 초래한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상반기 우리나라 가계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은 26배로 OECD 평균(11.9배)의 두배를 넘어섰다. 한계기업과 자영업자·소상공인과 저소득·저신용 계층 등 빚내 빚을 막는 취약한 고리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부실은 연쇄적으로 확산돼 경제와 금융 제도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 외환위기 때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한 국제통화기금(IMF)이 부채 문제를 한국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지목한 배경이다. 쌓이는 빚더미를 이겨낼 장사는 없다. 각 경제주체와 정부, 금융권은 지혜롭게 ‘부채 깔딱고개’를 넘어야 한다. 가계는 무리한 대출을 삼가야 한다. 특히 본인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 빚내 집 사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기업들로선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접고, 잘할 수 있는 데 집중하며 부채를 줄여나가야 한다. 정부는 민간부채 부실 뇌관이 터지지 않도록 촘촘히 점검하고 선제적인 위험 관리에 나서야 한다. 은행들도 손쉬운 이자장사 이전에 취약층의 이자 감면 등 어려운 금융소비자를 실질적으로 도우면서 건전성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위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 등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교한 대응도 긴요하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의 직종 전환, 재취업 등의 대책 설계도 절실하다. 한계기업 중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기업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을 가려내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근거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지난 10월 일몰로 수명을 다한 지 한달이 넘었다. 여야 정당은 입으로만 민생을 외치지 말고 국회 재입법을 통해 이를 부활시켜야 할 것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
제주산지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가운데 전날부터 눈이 계속 내려 쌓이면서 한라산 정상부 탐방이 통제됐다. 1일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한라산 삼각봉 7.3㎝, 사제비 4.9㎝, 어리목 4.6㎝의 눈이 내려 쌓였다. 현재 제주도 산지에는 대설주의보가 발효 중으로, 눈이 계속 내려 쌓이면서 일부 산간 도로는 차량 운행이 통제되고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산간도로인 1100도로 어리목∼영실입구 구간은 대형차량의 경우 월동장비를 착용해야만 하며 소형차량은 통제됐다. 516도로 마방목장∼서성로 입구 구간은 소형차량의 경우 월동장구를 갖춰야만 운행할 수 있다. 한라산국립공원은 7개 탐방로 중 어승생악과 석굴암 2개 코스만 정상 운영 중이다. 돈내코 코스는 전면 통제됐다. 어리목과 영실코스는 각각 윗세오름까지만 탐방 가능하다. 성판악 코스로는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관음사 코스로는 삼각봉 대피소까지 올라갈 수 있다. 기상청은 이날 한라산 북쪽 지역을 중심으로 가끔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으며 중산간에는 진눈깨비, 산지에는 눈이 내리겠다고 예보했다. 예상 적설량은 제주도 산지 2∼7㎝로, 제주도는 5㎜ 내외다. 낮 최고기온은 9∼11도로 예상된다. 육·해상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겠다. 기상청은 이날 제주에 바람이 순간풍속 초속 15m 이상, 산지에는 초속 25m 이상 강하게 불겠다고 밝혔다. 또 바다에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 물결이 2∼4m로 높게 일겠으니 각별히 유의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화살을 맞은 상태로 발견돼 전국적 공분을 샀던 떠돌이 개가 건강을 회복하고 1년 여 만에 새 가족을 만났다. 29일 동물보호단체 '혼디도랑'에 따르면 몸통에 화살이 관통된 채 발견됐던 유기견 '천지'가 이날 오후 8시 35분께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 KE081편을 타고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천지는 뉴욕에 살고 있는 30대 미국인 여성에 입양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여성은 과거에도 유기견을 키웠던 이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은주 혼디도랑 대표는 "입양 희망자가 2명 있었는데, 한 달간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입양 보낼 곳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천지는 그동안 경기지역 한 동물훈련소에서 학대 트라우마 극복 훈련 등을 받으며 새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지난 22일 입양이 결정된 후 23일 제주로 와 한 동물병원 측 후원으로 치과 치료도 마쳤다. 천지는 8세로 추정된다. 오랜 떠돌이 생활로 이빨이 모두 썩어 현재는 송곳니 한 개만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대표는 "천지는 참 운이 좋다. 천지를 처음 발견한 주민은 모른척 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대한 피의자를 붙잡았다"며 "또 동물보호센터와 천지 소식을 접한 제주지역 모 동물병원은 천지를 적극적으로 치료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도 천지 소식을 접한 많은 분이 함께 마음 아파하고 관심을 가져주며 천지가 입양까지 가게 됐다"며 "이번 천지 사례를 계기로 동물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커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천지는 지난해 8월 26일 오전 8시 29분께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마을회관 인근에서 몸통 부분에 화살이 박힌 채 발견됐다. 이로 인해 '화살 맞은 개'라고 불려왔다. 경찰은 7개월간 추적 끝에 지난 3월 주거지에 있던 화살을 쏜 40대 남성 A씨를 붙잡고 화살 일부 등 증거물을 압수했다. A씨는 천지가 발견되기 전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자신의 비닐하우스 옆 창고 주변을 배회하던 천지를 향해 카본 재질의 70㎝ 길이 화살을 쏴 맞힌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예전에 주변 개들이 자신이 운영하는 닭 사육장을 덮쳐 피해를 줬다는 이유로 개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천지는 닭에게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 7월께 재판에 넘겨졌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의사면허 없이 불법으로 수년간 노인 수백명을 상대로 치과 진료를 한 60대가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제주지방검찰청은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 조치법(부정의료업자) 위반 등 혐의로 60대 A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의사면허 없이 2016년 12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약 6년간 어르신 300여명을 상대로 임플란트, 교정, 각종 보철치료 등을 해주고 약 7억원을 불법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단독주택 1층에 치과 진료에 필요한 엑스레이 장비 등 의료기기와 의료용품을 갖추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진료해주겠다'며 무면허 진료행위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동종 전과가 있음에도 중단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무면허 치과 의료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지난해 8월 27일경 압수수색 집행 직후 도외로 도주해 1년 3개월간 은신처에서 생활해 오다 지난 17일 자치경찰에 붙잡혀 제주로 압송됐다. 검찰은 "A씨 범죄수익 약 7억원을 환수하기 위해 피고인 소유 토지와 오피스텔, 차량에 대한 보전 조치를 완료했다"며 "앞으로도 국민 보건을 위협하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중학생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담배를 대리 구매(일명 '댈구')해 주고 수수료를 챙긴 남성 3명이 자치경찰에 적발됐다. 제주도 자치경찰단은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20대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고 30일 밝혔다. 또 같은 혐의로 30대 B씨와 C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A씨 등은 트위터(X)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주댈구', '대리구매', '담배', '술' 등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린 뒤 이를 보고 접근한 청소년에게 메시지(DM)를 보내 수량 및 종류, 전달 장소·방법 등을 정하고 수수료를 받아 담배를 대신 사준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담배 한 갑당 3000~5000원의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들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직접 청소년을 만나거나 일명 '던지기 수법'(판매자가 물건이 숨겨진 장소를 알려주고 구매자가 물건을 찾아가는 비대면 전달 방식)으로 담배 등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치경찰단은 지난 16일 수학능력시험 이후부터 연말까지 청소년 탈선 예방 특별지도·단속 기간으로 정하고, 온라인을 통한 청소년 대상 유해약물 거래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범행을 포착하고 수사를 진행해 A씨 등 3명을 붙잡았다. 박상현 자치경찰단 수사과장은 “온라인을 통한 청소년들의 유해약물 접근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파악했다”며 “대리구매는 성범죄 등 추가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며,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기관·시민·SNS 사업자 등 사회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의 과거와 오늘을 조명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 곳곳의 발자취입니다. 21세기인 지금과 1970.80년대의 풍경이 대조됩니다. 그동안 제주는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제주도청의 기록자료를 매주 1~2회에 걸쳐 여러분들에게 선보입니다./ 편집자 주
제주개발공사가 30일 오전 호텔시리우스에서 제주형 주거·사회 서비스 통합 플랫폼 'ᄀᆞ치 행복한 뜨락’ 사업 출범식을 가졌다. ‘ᄀᆞ치 행복한 뜨락’이란 공공임대주택 입주민과 지역주민이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공주택 내 공간을 말한다. 공공주택 입주민들과 지역주민이 주거, 돌봄 등 사회서비스를 손쉽게 받을 수 있도록 제주개발공사와 여러 단체들이 힘을 합쳐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 공사는 공공주택 등에서 보건의료, 돌봄, 일자리교육, 문화서비스 등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또 관련 기관 및 단체에서는 제공된 공간을 바탕으로 공공주택 입주민과 지역주민에게 다향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백경훈 제주개발공사 사장은 “주거 및 사회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이번 사업이 활성화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도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사회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과 지원을 다할 것”이라 전했다. 제주개발공사는 지난 3월 도민들이 공공임대주택 정보를 손쉽게 얻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포털’을 오픈해 운영 중이다. 양질의 주택을 제공하기 위해 민간 건설사와 함께 협업하는 ‘신축매입약정’ 사업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도내 주거환경을 지속 개선하고 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도민 10명 중 8명이 시범 실시중인 '일회용컵 보증금제' 필요성에 공감하고 제도 유지를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0일 제주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한 제주도민 인식 조사 결과, 제도 취지에 대해 '공감한다' 82%, '공감하지 않는다' 11%, '보통' 7% 등으로 다수가 공감한다고 답했다. 환경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를 늦추고 지자체 자율에 맡기도록 방침을 정하면서 정책 추진에 힘이 빠진 것과 달리 시범 실시중인 제주도에서 도민 10명 중 8명이 취지에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커피나 음료를 일회용컵에 담아 판매할 때 소비자로부터 300원의 보증금을 받고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다. 일회용컵 재활용을 높이고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제주도와 세종시에서 시범 시행 중이다. 이번 조사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입 1년을 앞두고 제주환경운동연합과 한국환경회의,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기후위기대응위원회, 녹색연합 등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구글 서식을 활용한 온라인 조사를 통해 도민 553명, 이 외 14명 등 567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85%가 찬성 입장을 보였고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5%에 불과했다. 일회용품 규제 철회의 핵심 품목인 종이컵의 매장 내 사용 금지 여부에 대해 '금지해야 한다'는 답변이 75%, '소비자가 원할 때만 보증금을 적용해 제공' 18%, '매장 내 사용 가능' 7%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3%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도의 시범 실시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 일회용컵 보증금제 참여 카페를 방문해 보증금 컵을 제공받았다는 질문에 83%가 그렇다고 답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등은 "제주도 일회용컵 반환율이 70%에 이르렀던 결과와 이번 설문 조사 결과 80% 이상의 도민이 제도 취지에 공감하고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제주도에서 시범 진행된 이 정책의 효과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부는 제주의 일회용컵 보증금제 성과를 토대로 조속히 전국으로 확대해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도교육청은 다음달 4, 5일 이틀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이벤트홀에서 '2023 제주 고교학점제 박람회'를 연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박람회는 도내 학생,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미래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라는 주제로 열린다.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에 앞서 고교교육 변화에 대한 현장의 정책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소통의 창구로 마련됐다. 특히 중학교-고등학교 연계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추진하면서 도내 중학생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전세버스를 지원해 이틀간 30개교 3000여명이 방문할 예정이다. 박람회에서는 ▲고교학점제 홍보관 ▲진로·적성 탐색 및 직업체험 부스 ▲고등학교 선택과목 탐색 부스 ▲고등학교 소개 부스 ▲대학교 학과 소개 부스 ▲고교학점제 특강 등이 운영된다. 현직 교사가 고등학교별 교육과정 운영 사례와 함께 진로 적성에 따른 과목 선택 과정을 안내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의 이해를 돕는다. 학생들은 부스 체험 및 행사 참여를 통해 자신의 진로·적성에 따라 고등학교 진학 시 어떠한 과목을 선택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다. 도교육청은 박람회에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것을 고려해 안전관리 담당자 배치, 입퇴장 관리, 의무실 설치, 경찰 협조 등 상황별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고, 응급대처 체계를 마련하는 등 안전을 최우선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박람회를 통해 도내 학생·학부모·교원들의 고교학점제에 대한 관심 및 이해도를 높이고, 2025년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를 대비해 도내 고등학교의 준비 사항을 살피면서 고교학점제의 안착과정을 점검하고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올들어 제주에서 일과 휴식을 병행하며 원격으로 일하는 ‘워케이션(Workation)’ 참여자가 1만여 명에 달했다. 제주도는 민간 워케이션 바우처 지원사업 운영업체인 도내 민간오피스 시설 16곳를 통해 참여인원을 파악한 결과 도외 기업 임직원 등 9760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28일 밝혔다. 민간 워케이션 바우처사업은 도외 기업 직원이 도내 민간 오피스 시설을 이용할 경우 오피스(숙박료 포함)와 여가 프로그램 이용료를 1인당 최대 52만원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 결과 HD현대중공업, 대상웰라이프, 네이버클라우드주식회사 등 기업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등 국책기관 등 다양한 직업군이 제주에서 워케이션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도는 올해 처음 적용한 민간 워케이션 바우처사업이 도외 기업들에게 호응을 얻어 내년에는 이용자 2만명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업 네트워크 확대를 통한 기업유치 연계는 물론, 민간 워케이션 산업 활성화와 주변 지역상권 소비 촉진을 위한 경제활력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대·발전시킬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서울경제진흥원(SBA)등과의 협력도 강화해 수도권에 위치한 중소기업들의 제주 워케이션 참여도 확대할 예정이다. 최명동 제주도 경제활력국장은 “워케이션 최적지로 제주가 주목받고 있는 만큼 기반시설 등 환경 개선, 지역과 연계한 차별화된 여가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워케이션 성지로 입지를 굳건히 다져 나가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전국 직장인 1112명을 대상으로 '워케이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워케이션 지역 선호도는 제주(31.8%)가 가장 높았고, 이어 강원(19.5%), 서울(18.8%), 부산(14.2%), 경기(6.2%) 등 순으로 조사됐다. 워케이션은 일(work)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휴가지나 관광지에서 휴식과 업무를 병행하는 근무 형태를 뜻한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 확산 등과 맞물려 새로운 근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전체 응답자 중 90%가 워케이션을 희망한다고 답변했다. 선호 이유는 업무 능률 향상(47.4%), 휴식(47.3%), 관광(3.4%) 순이었다. 워케이션 형태는 산이나 바다 등 휴양지에서 업무를 본 뒤 퇴근 후 휴식하는 휴양형(지역체류형)이 74.9%로 가장 선호도가 높았다. 도심 호텔에서 부대서비스를 즐기며 휴식하는 도심형은 21.2%, 다양한 농촌 체험활동을 병행하는 농촌·전통체험형은 3.5%였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올해로 272살을 맞은 제주 최고령 '봉개동 왕벚나무'가 국가 산림문화자산의 지위를 얻을 전망이다. 28일 제주도에 따르면 산림청 국가 산림문화자산 심사위원회는 제주 봉개 최고령 왕벚나무 등 전국 유형 산림 자산 15건에 대해 산림문화자산 지정 심사를 진행했다. 산림청은 지난 9월 국가 산림문화자산 지정 예고 공고를 통해 "제주 봉개 최고령 왕벚나무가 생태·경관·학술적 가치가 있고 보존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산림청은 "그대로 방치했을 경우 고사 우려가 있으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보존하고 자원화하기 위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종 지정 여부는 다음 달 8일 결정된다. 제주도는 이 최고령 왕벚나무 주위에 보호 시설을 설치하고 주변에 탐방로를 만드는 등 명소로 조성할 계획이다. 2016년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연구소는 해발 607m 높이의 제주시 봉개동 개오름 남동쪽 사면에서 이 왕벚나무를 처음 발견했다. 당시 왕벚나무 수령은 265살이었다. 올해로 이 왕벚나무는 수령 272살을 맞았다. 이 나무의 나이는 목편을 추출·분석해 추정했다. 이 나무는 연평균 2.85±0.96㎜씩 생장한 것으로 분석됐다. 나무 높이는 15.5m, 밑동 둘레는 4.49m다. 현재까지 알려진 왕벚나무 중 최대 크기다. 제주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923년부터 현재까지 평균온도, 강수량, 풍속, 평균습도, 연 일조량 등 기상인자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해보니 이 왕벚나무는 온도가 높은 해일수록 생장 속도가 느리고, 습도가 높은 해일수록 잘 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부분의 폭(수관폭)은 23m다. 아래에서는 아그배나무, 때죽나무, 상산 등 모두 15종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껍질에는 일엽초, 마삭줄, 송악 등 9종의 착생식물이 붙어 있다. 이전까지 알려진 가장 크고 오래된 왕벚나무는 천연기념물 159호인 봉개동 왕벚나무 자생지의 3그루 중 한 그루(수령 207살)였다. 난대·아열대연구소 관계자는 "제주도가 유일한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 발견"이라며 "생물학적으로는 이 종의 자연 수명을 규명하는 재료로 가치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도청소년자립지원관과 탑동365일의원은 지난 29일 청소년자립지원관을 이용하는 자립준비청소년의 질병 예방과 건강 관리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30일 밝혔다. 협약식에는 김형준 탑동365일의원 원장과 제주도청소년자립지원관 시설장, 관련 종사자들이 함께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제주도청소년자립지원관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은 탑동365일의원에서 의료비 및 접종비 감면, 응급 진료 등 의료 행정 편의와 그 밖에 여러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이를 통해 청소년의 응급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낮추고, 응급실보다 적은 비용 부담으로 기관 운영과 청소년들의 건강한 생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형준 탑동365일의원 원장은 “자립준비청소년들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자립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탑동365일의원은 2008년도에 개원해 16년 동안 휴무없이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의 신속한 진료와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또 보건복지부가 도입한 달빛어린이병원 55곳 중 하나로 2018년부터 시행돼 만 18세 이하 아동 청소년의 신속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은영 제주도청소년자립지원관 관장은 “이번 협약을 통해 탑동365일의원의 지원으로 자립준비청소년들의 건강 관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자립준비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약국에서 판매하는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에서 필로폰 원료 물질을 추출해 직접 필로폰을 제조해 투약·판매한 50대 3명이 검찰에 넘겨졌다. 제주경찰청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56)씨와 B(51)씨를 구속해 송치했다고 29일 밝혔다. 또 같은 혐의로 C(52)씨를 불구속 입건, 검찰에 넘겼다. A씨와 B씨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경기지역 한 3층 건물 옥탑방에서 마약류를 만들기 위한 시설을 차려놓고 10여 차례에 걸쳐 필로폰 약 20g을 제조해 판매 또는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에서 필로폰 원료 성분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직접 필로폰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A씨로부터 90만원을 주고 구매한 필로폰 3g을 C씨와 함께 투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에 거주하는 C씨는 지난 5월 12일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경찰에 자수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 5월 제주공항에서 B씨를 붙잡은 데 이어 8월께 경기지역 한 옥탑방에서 A씨도 검거했다. 경찰은 A씨를 검거하면서 냉동실에 보관 중인 필로폰 2.1g과 주사기 20개,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 2460정, 전자저울, 마스크 방독면 등을 압수했다. 경찰 조사 결과 해외 사이트를 통해 필로폰 제조 과정을 알게 된 A씨는 수시로 약국에서 필로폰 제조에 필요한 의약품을 구입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필로폰 제조 시 심한 암모니아 냄새가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부러 외곽지 옥탑방을 구해 야간에만 필로폰을 제조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필로폰 판매처나 공범 여부 등을 추가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문대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이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내년 4·10 총선을 향한 본격 행보에 돌입했다. 문 전 이사장은 다음달 23일 오후 3시 제주한라대 한라컨벤션센터에서 '문대림의 뒤집기 한 판' 출판기념회를 갖는다고 29일 밝혔다. 문 전 이사장은 "살아온 삶의 궤적과 앞으로 제주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 '문대림의 뒤집기 한 판'을 출간했다"면서 "다양한 분들을 모셔 생각을 나누고 고견을 듣고자 한다"고 밝혔다. 문 전 이사장은 내년 총선에서 제주시갑 선거구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문 전 이사장은 출판기념회에 앞서 29일 오전 8시 제주시 노형오거리 교차로 인근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비판하고,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을 규탄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문 전 이사장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기사 검색을 '뉴스 제휴 언론사(Content Partner, CP)'만 검색되도록 기본값을 변경한 것을 두고 '검색기능 통제방침’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언론탄압을 통한 윤석열 정부의 검찰독재 시도는 분명히 국민의 매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탄핵을 받아들이고, 언론장악의 야욕을 포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몇개의 카테고리(category)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세상의 모든 것을 그 속에 우격다짐으로 집어넣는 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대단히 난폭해질 수 있어 썩 바람직하지 않다. ‘여자와 남자’라든지 ‘흑인ㆍ백인ㆍ황인’이라는 분류도 그렇고, ‘상류층ㆍ중산층ㆍ서민층’이라는 분류도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모든 현상이나 인간은 하나의 카테고리 속에 집어넣어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이다. 사람들은 예술작품이나 영화를 대개 ‘장르(genre)’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어떤 영화든 복합적인 요소들로 채워져 있어 특정한 장르로 규정하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에 굳이 장르의 딱지를 붙인다면 아마도 코미디와 블랙코미디 경계에 걸친 듯도 하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기도 하다. 아동문학계의 윌리엄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영국의 아동문학가 로알드 달(Roald Dahl)은 블랙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여서인지 동화에도 ‘블랙코미디적’ 요소들을 솜씨 좋게 버무려낸다. 그래서 그의 동화들은 가끔은 잔혹동화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로알드 달이 설명하는 블랙코미디의 본질은 그럴듯하다. “어떤 사람이 서 있는데 머리 위로 페인트가 가득 담
한국은 가히 ‘부채공화국’으로 불릴 만하다. 가계빚과 기업부채 규모가 각각 국내총생산(GDP)을 웃돌며 세계 1~3위권이다. 부채 증가 속도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다. 가계, 기업 가릴 것 없이 부채 총량과 증가 속도 모두 위험하다.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하며 경제성장률은 1%대를 맴도는데 물가가 잡히지도 않고 고금리가 지속되니 가계도, 개인사업자인 자영업도, 기업들도 불어나는 부채와 이자 부담에 짓눌려 신음한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러 금융통계로 입증된다. 대출을 3건 이상 끌어 쓴 자영업 다중채무자가 177만8000명으로 역대 최대다. 이들의 대출 잔액 743조9000억원도 최대인 데다 연체가 급증하고 있다. 2분기 연체액은 13조2000억원, 1년 전의 2.5배다. 연체율도 1년 새 0.75%에서 1.78%로 2.4배 뛰었다. 가계도 빚과 연체의 늪에 빠졌다. 꺾이지 않는 대출 수요로 빚은 계속 불어난다. 3분기 주택담보대출이 17조3000억원 증가했다. 정부의 대출 규제 관련 엇박자 정책과 집값 떠받치기가 빚내 집을 사자는 ‘영끌’ 심리를 자극했다. 가계대출에 카드사용액을 합친 9월말 가계신용 1875조6000억원도 사상 최대다. 게다가 은행
어머니가 내 얼굴을 고즈넉이 바라보신다. 얼마나 부드럽고 다정스런 표정인지, 어머니가 ‘참 곱게 늙으셨구나’ 싶다. 내 가슴으로 싸〜아 하니 밀려드는 물결에, 지난 20년의 세월이 순간처럼 파도친다. 아버지를 미국의 공원묘지에 장례하고서, 어머니 손을 붙잡고 돌아온 게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고, 어머니도 두 세 차례 죽음의 강가를 헤매셨다. 하지만 내 어머니만 예외인 듯, ‘어머니는 영원히 내 곁에서 어머니가 되시겠거니...’ 하고, 연약해지는 늙음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그 어머니가, 새삼스레 내 손을 가만히 붙잡아서 당신의 가슴에 대신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어 하시는 말씀. “정옥아, 고맙다, 고맙다, 촘말로 고맙다 이!” “아니 미신 말이우꽈게! 나가 고맙주, 어떵 어머니가 나한티 고마울 수 이시우꽈?”라면서, 어머니를 부둥켜 안는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커다랗게 밀려온 파도가 가슴을 친다. 가슴이 아프게, 심장이 저리게.... 아 이토록 고맙고 귀한 어머니를 제대로 돌봐드리지 못하였구나. 그런데, 어머니가 전에 없이 왜 이러실까? 불길한 예감에 정색을 하고, 다짐을 받는다. “어머니,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이니셰린 섬에서 ‘동네 바보형’ 파우릭과 잡담으로 시간을 죽이고 살던 콜름은 뜻밖에도 한때는 음악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랬던 콜름이 어쩌다가 외진 이니셰린 섬까지 흘러들어와 ‘청산별곡’ 같은 삶을 살게 됐는지 영화는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콜름은 어느날 문득 음악가로의 삶을 그리워한다. ‘노스탤지어(향수)’에 사로잡힌 거다. 그는 아마도 음악가로서의 삶에 실패했든지, 음악 자체가 무의미해져서 음악을 버렸을 듯하다. 영화는 콜름이 왜 오래전에 음악을 버렸고 또 갑자기 음악가의 삶에 ‘향수’를 느끼게 됐는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자신이 떠나온 과거에 느끼는 향수란 대개 이성적이라기보단 대단히 감성적이다. 설명 가능한 특별한 계기가 있을 리도 없다. 콜름은 ‘청산별곡’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음악가의 삶으로 돌아가 ‘이니셰린의 밴시’라는 불후의 명곡을 남기겠다는 결심한다. 그런데 음악가의 삶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그의 첫 조치는 바이올린과 악보를 다시 꺼내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그동안 잡담으로 자신의 시간을 죽였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파우릭을 자신의 삶에서 몰아내는 일이었다. 콜름의 입장에서는 다시 음악에 매진하겠다는 상징적 조치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파우릭
“서북청년단이 온 이후 섬주민들과 육지에서 온 사람들간의 감정은 격화되었다. ··· 주민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고무되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총칼에 개의치 않고 떨쳐 일어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원인 없이는 행동도 있을 수 없다.”(동아일보 1948년 11월11일자) 세상이 미친 듯이 돌아갈지라도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신문은 그래서 기록으로 전하는 역사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더욱 그 역사를 다시 짚어야 한다.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모를 일이 지금 횡행하기에 그렇다. 느닷없이 제주4·3 75주기를 맞아 제주란 무대에 등장하겠다는 ‘서북청년단’의 소식을 접하고 나오는 소리다. 무수한 양민들이 하루 아침에 제주란 공간에서 사라져버린 그 참혹한 비극을 추념하겠다는 시기에 나오는 황당무계다. 추념공간 어귀에서 그들이 집회를 열겠다고 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지금 현존하는 서북청년단(西北靑年團)은 2014년 9월 결성된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의 성과다. 그해 11월 28일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서북청년단을 재건했다. "김구는 김일성의 꼭두각시였고 건국을 방해했다.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원 안두희가 김구를
『사기(史記)』는 중국 고대 왕국으로부터 전한(前漢) 시기까지 중국 1000년 역사를 다룬 책이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기술했다. 총 130권 52만6500자에 이른다. 방대한 분량도 그렇지만 『사기』가 빛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천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역사서의 귀감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 마지막 편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정치 지도자의 통치 형태를 5개 등급으로 나눈다. “고선자인지(故善者因之), 기차이도지(其次利道之), 기차교회지(其次敎誨之), 기차정제지(其次整齊之), 최하자여지쟁(最下者與之爭)!” 풀이하면 이렇다. “가장 좋은 것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순리(順理)의 정치며, 그 다음은 백성을 이익으로 이끄는 정치다. 그 다음은 백성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정치며, 그 다음은 백성들을 단속하여 가지런히 하는 정치다.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들과 더불어 다투는 것이다." 백성을 이해시키고, 스스로 따르게 할 일을 놓아두고, 오히려 백성과 갈등을 일으켜 고통스럽게 하는 통치 행태가 최악이라는 것이다. 그렇게도 자신이 없나? 무에 두려울 게 있다고 이리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가? 이게 우리 존립의 근거인지 도무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
‘위대한 제주시대를 연다.’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승리, 민선 1기 제주도지사에 오른 신구범 도정의 출발은 이 슬로건 하나로 함축됐다. ‘경쟁과 자존, 그리고 번영’이란 ‘서브 타이틀’이 붙은 그 슬로건이 던진 화두는 사실 위력적이었다. ‘변방사고’에 머물렀던 제주인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고취했다. 게다가 그 시절 등장한 다른 민선 지방정부가 내세우는 ‘늘푸른~’·‘맑고 아름다운~’·‘행복한 ○○ 건설’ 등의 천편일률적인 구호와는 아예 수준을 달리했다. 관선 지사를 거쳐 53세의 나이에 민선 1기 제주도백으로 오른 신 전 지사의 발상과 구상은 사실 그 시절엔 획기적이었다. 삼다수란 브랜드로 먹는샘물 국내시장에 진출해 현재까지 부동의 1위 상품으로 키워냈고, 지금으로선 금자탑으로 불리는 제주국제컨벤선센터를 만들어냈다. 제주만의 대표축제이자 세계인의 축제로 기획된 ‘세계섬문화축제’ 역시 신구범 지사시절 작품이다. 제주도가 매해 1천억원에 가까운 로또복권 배당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 역시 그가 지자체로선 처음으로 관광복권을 발행하는 기관의 지위를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8년 민선 2기 제주지사로 우근민 도정이 출범하자 슬로건은 바뀌었다. ‘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제주교육계 현장이다. 도무지 민주제 작동원리와는 거리가 먼 일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6월1일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선출될 교육감 후보를 정하는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다. 한마디로 절차적으로도 문제지만 주민자치 직선이란 대의명분을 몰각하고 있다. 교육계 현장에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적 잣대가 등장하는 것도 마뜩치 않지만 현 이석문 교육감의 3선 도전에 맞서는 보수성향 그룹의 단일화 방식은 우선 중대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임받지 않은 권력’이 후보를 정하겠다는 논리가 문제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대의원으로 정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선거인단’을 꾸려 후보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주도한 건 제주바른교육연대다. 진보진영 이석문 현 교육감에 대항할 보수성향 후보로 고창근(71)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과 김창식(65) 전 제주도의회 교육의원 2명이 참여,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자동응답조사(ARS) 조사 방식으로 한다. 조사대상은 제주도민 50%와 선거인단 50%다. 선거인단은 교육단체
검색과 해안 - 살바도르 엘리잘데(Salvador Elizalde) 나는 느리고 둔한 빛의 긴장 속에 남아 있고 세상의 목소리는… 나는 상상한다: 조용한 남자, 움직임의 환상. 모호한 즐거움을 구별하라. 부서진 길을 돌아다니는 활동하지 않는 방랑자. 인간의 변덕을 열망하는 스케치를. 그리고 하나된 웃음, 생명의 결정체 우물과 말에 빠져들고, 그들은 나를 그린다: 앉아서 생각하는 사람, 마음속에 거칠게, 순진한 유머, 피로가 풀렸다. 압도된 조각가 지루한 외관, 사려 깊은 환상 고통의 마법에. 그리하여 빛에 맞서는 유리잔과 일상의 지루함… 광범위한 쪽으로 나를 잠깐 본다: 밝은 지평선 행복한 휴식 중… 하지만 빛이 있고… 목소리가 있다. 문장에서: 녹초가 될 때까지 추구하는 검색, 계속 검색하게 된다. Search and shore (By Salvador Elizalde) I remain in suspense slow and dull of light, while the voice of a world… I imagine: The quiet man, illusion of movement. Be distinguished for ambiguous pleasures. Inert wanderer of broken roads. Eager sketcher of human whim. And the united laughter, crystals of life slipping into wells and sayings, they draw me: Sedentary thinker, wild in the mind, naive in humor, placid in fatigue. Overwhelmed sculptor of dull facades, of thoughtful fantasies in the magic of pain. Thus, the daily tedium of a glass against the light... towards the extensive glimpses me: bright horizon in happy rest... But there is a light... and a voice in sentence: until the breakdown searching pursued, you will continue searching. ◆ 살바도르 엘리잘데(Salvador Elizalde) = 아르헨티나 엔트레리오스주(Entre Rios) 헤네랄 갈라자(General Galarza)에서 1950년에 태어났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문학 전공 교수이다. 다수의 출판물에 기고하고 있으며 문학회의 및 작가 회의에 참여했다. 그의 저서로는 Textuality and Literature – 1997 – Clé Editions, Literary Paths – 2000 – Clé Editions, The land and the future – Entre Ríos Editorial – 2013, The earth and the future – Sofía Editions – 2014 등이 있으며 다수의 사화집에 참여하였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지방노동위원회의 권리구제 대리인(법원의 국선변호인과 유사한 제도)으로 활동하다 보면 상상하지 못했던 분쟁에 휘말리는 사용자와 노동자를 종종 만나게 된다. 근로기준법 등 관련 규정을 모두 준수하려고 노력하는 사용자가 나름대로 꼼꼼하게 공부하긴 하지만, 관련 규정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없다. 노동자 역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지, 당장 본인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현재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에게 꽤 유리한 것처럼 느껴진다. 얼핏 봤을 때 상시 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인 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을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으나, 근로기준법 시행령 [별표 1]에 따라 적용되는 규정이 적지 않고, 적용되는 규정이 현실과 거리가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급하게 필요해서 알음알음 겨우 구하는 과정에 계약서, 임금명세서, 주휴수당 등을 고려할 수 있는 사장님이 과연 얼마나 될까. 특히나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서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였다는 책임은 모두 사용자가 부담한다. 노동자를 위한 구제책과 지원은 찾아보기 쉽지만, 초보 사장님을 위한 법률적인 지원은 쉽게 받기 어렵다. 사실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가 선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상황이 대부분일 것이다. 사장님은 직원을 정말 가족처럼 대하고, 일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직원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여 회사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노력하는 상황이 일반적이라 믿는다. 언제나 그렇듯 극소수의 나쁜 사람들이 문제다.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사회 경험 없는 순진한 사람을 사실상 가스라이팅하며 노동을 착취하는 사용자, 정당하게 노동의 대가로 급여를 받으려는 생각 없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사장님을 압박하고 괴롭히는 노동자. 근로기준법 등 관련 규정이 있어, 나쁜 사장님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는 잘 이루어진다. 피해를 본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상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 처리 기간도 고용노동부나 노동위원회를 통하여 법원의 소송절차보다 신속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무단으로 결근하고, 돌발행동으로 사업장에 손해를 입히는 무책임한 노동자에 대하여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명백하게 우월한 지위에 있어 일부 노동자의 행동이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용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소규모 사업주다. 많지 않은 직원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악의적인 특정 직원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업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식의 조치는 사용자에게 악몽이 시작될 뿐이다. 실제 현실과 규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장님을 보고 있으면 참 속상하고 답답하다. 그렇지만 드릴 수 있는 말은 매우 한정적이다. 당연히 법은 지켜야 하고, 다음에는 문제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부터 조력을 구하시라고. 당장 현실에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법을 위반하지 않는 가장 적절한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겠다고. ☞이용혁은? =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변호사. 변호사시험 합격 후 제주도청 특별자치법무담당관실에서 3년간 근무하며 경험을 쌓은 뒤 제주지방법원 사거리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협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제주지방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제주도 지방노동위원회, 제주도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의 국선변호인/국선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며 공익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지검 청원심의회 등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도민로스쿨 특별강연과 제주도 공무원을 위한 특강에도 힘쓰며 지역발전에도 이바지하고자 노력 중이다.
◆ 태쾌(兌卦) 태(兌)는 기뻐하다, 즐겁다 뜻이다. 사람이 평생 기쁘고 즐겁게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만금을 가진 부자도 고통 받을 때에는 괴로워한다. 빈한하지만 늘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마음을 열고 통이 큰 사람만이 오랫동안 즐거울 수 있다. 모두가 함께 있고 공동으로 나아갈 때에야 행복의 맛을 체득할 수 있다. 자질구레한 일, 지나치게 따지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의 일생 중 티격태격, 울퉁불퉁한 삶은 피할 수 없다.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려거든 반드시 마음을 열고 통이 커야 한다. 공동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태(兌)는 형통하니, 곧게 함이 이롭다.” 무슨 말인가? 마음이 열려 있고 통이 크면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막힘이 없고 형통하면 정도를 굳게 지키는 데에 유리하다. 사람은 자신이 매일 유쾌하고 순조롭기를 바란다. 그러나 삶은 파란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지나치게 따지면 자신의 나날을 어두침침하고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활달한 마음을 가져야만 하루하루 생활에 빛이 충만하게 된다. 활달하게 되려면 먼저 개의치 않는, 염두에 두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개의치 않는다는 것은 무엇이건 심각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연구할 가치가 없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애써 끝까지 매달리지 말자. 너무 체면을 중시하지 말자. 일마다 ‘착실하게’ 하지 말자. ‘좁은 마음’을 갖지 말자. 하찮아서 말할 가치도 없는 것, 닭털과 마늘 껍질처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을 마음에 두지 말자. 명예와 이익의 득실에 중점을 두지 말자. 걸핏하면 화를 내면서 소리 지르지 말자. 작은 이익으로 인하여 큰 손실을 보게 되면 후회막급이다. 민감하고 공연히 의심하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곡해하게 된다. 사실을 과대포장하게 되어 가상의 적으로 삼게 된다. 임대옥(林黛玉)처럼 그렇게 꽃만 보면 눈물을 흘리지 말자. 음악만 들으면 마음 아파하거나 늘 애수에 잠기고 감상적이지 말자.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스스로 자신을 한탄하지 말자. 인생은 어떤 때에는 정말 그렇게 어리석을 필요가 있다. 개의치 않는 것은 도량이 큰 것이요 너그러움이다. 넓은 마음이나 도량이 없으면 자질구레하게 되고 용속하게 된다. 활달과 너그러움을 실현하면 자연적으로 홀가분하게 되고 유머러스하게 된다. 거기에서 일반을 뛰어넘는 매력 넘치는 성적이 용솟음친다. 개의치 않는 것을 체현하는 것은 수양이다. 고위한 인격이다. 인생의 큰 지혜다. 모든 일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이것저것 갑론을박하며 자잘한 일까지 시시콜콜하게 따지는 사람은, 따지고 보면 작은 이득을 탐하다가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개의치 않는다는 것은 무위지위(無爲之爲), 즉 하지 않은 함이요 대지약우(大智若愚), 즉 큰 지혜는 어리석은 것과 같아, 즐거움이 끝이 없다! 개의치 않는 사람은 모두 자아를 초월하는 사람이다. 소탈하게 사는 사람이다. 자질구레한 일에 속박되지 않기에 몸과 마음이 해방된다. 자유자재로 천지간에 마음대로 질주할 수 있다. 개의치 않는 것은, 자신에게 심리 보호선을 설치해 주는 것이다. 주동적으로 번뇌를 만들어 자아를 어지럽히지 않게 된다. 부정적인 정보에 태연자약할 수 있다. “몸은 산악처럼 평온하고 마음은 흐르지 않은 물처럼 고요하다. 바람과 파도는 치게 두고, 낚시 배에 조용히 앉아 고기를 잡는다.” 이것이 자아를 보호하는 묘방이다. 목표를 굳게 지키고 간섭을 배제하는 좋은 책략이다. 우리의 정력은 결국은 한계가 있다. 곳곳이 뒤엉키고 작은 일에 얽매이면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개의치 않는 것은 현실도피와 다르다. 무관심하고도 다르다. 번잡한 세상사를 뚫어보고 소극적으로 속세를 피하여 은둔하는 것과도 다르다. 인생의 큰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도중에 취하는 소탈, 활달, 표일한 생활 책략이다. 모든 일 전체를 다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 달관하여야 한다.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틀림없이 멋스러우며 가뿐한 인생이 될 것이다. 인생은 산 넘고 물 건너는 여정과 같다. 평탄한 길도 있고 울퉁불퉁한 길도 있다. 순조로운 경우도 있고 역경도 있다. 활달하면 평안하고 담백하게 인생을 직시할 수 있다. 정원에 피어 있는 꽃을 웃으며 볼 수……. 활달은 인생 태도다. 호쾌함, 정직, 열정, 거리낌 없음, 명랑, 낙관, 태연 등을 포괄한다. 사람의 좋은 소질을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요소 여러 가지를 포괄한다. 활달하면 마음을 열 수 있다.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 인생의 발걸음이 침착하고 힘 있게 된다. 『주역』은 말한다. “붙어 있는 못[택(澤)]이 태(兌)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벗들과 강습한다.” 무슨 말인가? 못물 두 개는 서로 유통하고 촉촉하게 적신다. 피차 이익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기쁨, 즐거움을 상징한다. 군자는 마땅히 그런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의기가 투합하고 지향하는 바가 같은 친구를 좋아한다.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며 도의를 강습한다. 이것이 인생 최대의 즐거움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죽은 자는 빨리 잊혀진다. 자기가 실존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현실 세계와 현재 교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래 살고자 하기 때문에 “남(他者)은 먼저 죽어도 내가 먼저 죽는다”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다. 사실상 죽음은 당위(當爲)이지만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관심을 쓰기 조차 싫어한다. 일종의 회피다. 요즈음 죽음의 모습은 어떤가. 모든 망자에게 죄송스럽게도 장례는 놀라우리만치 상품 사회가 작동하는대로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다루듯 시간 타임에 따라 빨리 빨리 죽음이 처리된다. 이걸로 봐서는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만은 결코 안 죽으리라 생각하여 타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한 사람의 죽음은 큰 일 중에 제일 큰 일이다. 그러나 죽음이 이상하게도 큰 일이면서 큰 일이지 않게 넘어가는 것을 보면 시대적인 간편 코스가 따라주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돈에 미친 세상이지만, 시간이 돈이 되면서 시간을 되도록 적게 잡아야만 서로(의뢰자와 의뢰 받은 자)가 이익인 사회가 되다보니 미래에 자신이 죽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남의 일처럼 가볍게 여기게 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가 뭘까?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길어야 3일 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사라진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곁에 있었던 사람을 잃은,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아침 이슬처럼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것은 공포에 다름아니다. 2. 산담, 사라지는 헤테로토피아 기념물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는 일종의 비밀스러운 장소의 바깥에 있는 유토피아다. 무덤 또한 장소 바깥의 공간이다. 주변 환경으로부터 고립되지만 열림과 닫힘이 있다. 무덤은 죽은 자만 기거하고 산담은 그들의 울타리 공간이었다. 거기에서는 금기가 적용되기 때문에 일종의 산 자들의 반(反)공간이 된다. 무덤은 비장소이기도 하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열려 있지만 의례가 끝나면 다시 닫힌다. 즉, 의례만 치러지고 일상으로 복귀되는 소멸되는 공간이며, 이후 다시 반공간이 되기도 한다. 망자들에게는 유토피아이지만 산 자들에겐 지워지는 공간이었다. 육지의 민묘는 곡장 없이 한 구역의 산등성이를 타서 사성(莎城:흙두둑)을 하고 위계질서에 따라 묻힌다. 가족 공동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는 오름 등성이나 밭머리에 산담을 하고 묻힌다. 산담은 제주 사람들의 개인이나 부부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혼백의 집으로, 제주 문화의 이녘만썩(개인만의) 문화와 ᄀᆞᆸ가름(분배)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3. 산담, 죽음의 돌문화 제주의 문화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돌문화이다. 제주의 돌문화는 제주인의 오랜 역사적 조형물로서 제주사람들의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잘 담아내고 있다. 제주섬 자체가 거대한 돌로 된 타원형의 배처럼 남태평양으로 나아갈 듯한 형세다. 화산 섬의 풍토를 그대로 간직한 제주 섬은 현무암 석상의 보물섬이었다. 또한 제주섬은 사방의 돌로 막혀 있어 과거에는 천연 요새의 역할도 했다. 제주의 문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제주의 돌문화는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생산성, 생활성, 공공성, 종교성의 돌문화가 그것이다. 1) 기념비적인 산담이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불교, 무속, 도교(민간신앙) 등과 관련된 돌문화로서 동자복 미륵, 서자복 미륵, 포제단, 공덕비, 마애명, 갯당, 본향당, 미륵, 돌코냉이, 조천석 등이 있다. 이것들은 신앙행위나 의례행위와 관련이 깊었다. 유교의 돌문화는 단연 산담이 최고였다. 산담은 석물을 세트로 거느리고 있었는데 봉분을 중심으로 문석인(간혹 돌하르방 무석인), 동자석, 망주석, 상석, 비석, 돌잔, 토신단 등 산담 속의 돌문화 무리가 있었다. 지금은 그 세트가 비었고 케이스마져 위태롭다. 가장 먼저 동자석이 사라졌으며, 문석인, 망주석 다음으로 산담 차례가 왔다. 산담은 기념비성이 있어 집안의 자랑으로써 위세로 삼았다. 벌써 아득한 소리가 돼버렸지만, 한때 조상을 숭배하고, 추앙하는 이념이 담겨 있어서 기념적인 가치를 뽐내기도 했었다. 조상을 잘 모시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은덕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손이 조상을 잘 모시면, 조상도 자손에게 잘 되게 해준다는 것이 동기감응이라는 풍수이론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효성어린 기념비도 수명을 다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산업이 바뀌면서 일찍부터 혐오시설이 되더니 장묘제도가 달라지면서 화장을 한 후 평장이나 수목장을 거행하고 있다. 산담은 이제 갈 길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처분을 기다리는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있다. 600년 전통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있고, 산담의 가치를 아는 이 또한 없다. 가장 제주다웠던 제주의 뼈대가 잘려나가고 있다. 2) 죽음의 의례도 변해버린 장묘제도와 함께 사라지고 상·장례는 통과의례로서 매우 중요하다. 제주인들은 그것을 ‘큰일’이라고 한다. 장례문화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으나 제주에는 조선후기에 유교직 관혼상제가 집중적으로 장려되었고, 무속적 여성문화와 유교적 남성문화가 타협을 하게 되면서 영혼관, 의례에 깊이 습합되었다. 제주 상장제례의 독특한 의례나 형식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❶토롱, 헛묘, 망사비 ❷까마귀 모른 식게, 식게밥 돌리기 ❸문전코시, 조왕코시, 칠성상 ❹귀양풀이 ❺팥죽쒀가기, 물부조 ❻철리와 철리터 방법 ❼토신제 지내기 ❽산테우리(상여매기, 봉분, 산담쌓기 하는 마을의 청년들), 암창개, 죽은 ᄒᆞᆫ서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제는 이런 의례를 하지도 않고,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산업의 변화는 무서운 속도로 지난 시간의 역사와 문화들을 파괴해 버린다. 이제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고, 그 안에서는 자본주의 상품이 나날이 우리들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하겠노라고 드라마 광고가 메아리친다. 4. 무덤과 산담 무덤, ‘주검을 묻은 공간’이다. 산 사람을 그대로 묻는 것을 생장(生葬)이라고 한다. 인류의 출현에서부터 이 무덤의 역사는 시작된다. 무덤의 형태는 지역이나 풍토, 생사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 제주에서 무덤은 산이라고 부른다. 이 산은 산처럼 봉긋한데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육지에서는 이 산을 산소, 봉분, 묘소, 분묘 등으로 부른다. 제주에서 부르는 ‘산(山)’은 중국 진제국 때 이미 ‘산’이라고 부른 사례가 있다. 이후 후대의 제왕들이 분묘는 모두 ‘산릉(山陵)’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산릉의 다른 말이 산이다. 제주에 이 용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다면 ‘산’이라고 부르는 봉분은 어떤 이유에서 만들었을까? 봉분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가 무덤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둘째가 장식하기 위함이고, 셋째가 기념물로 삼기 위함이다. 제주의 ‘산’인 경우, 육지처럼 흙더미(莎城)로 무덤 뒤쪽을 병풍처럼 두르지 않고 무덤에 돌담을 두른 것이 다르다. 이 돌담을 ‘산담’이라고 하는데, 산담은 과거 제주 지역의 산업이 목축이 주류였다는데서 무덤보호를 위해서 비롯된 것이다. 들에 마소들이 ‘산’을 파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또한, 야화(野火)가 번지거나, 경작지가 침입되는 것을 막는 것 또한 무덤의 보호라는 측면이 강했다. 무덤의 장식은 산담의 형태나 조형적인 요소, 망주석, 동자석, 문석인, 돌잔 등 석물을 설치한데서 알 수 있다. 산담의 규모, 석물의 설치에서 알 수 있듯이 가문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덤의 기념비성은 비석에 묘주(墓主)의 행적, 벼슬이나 품성, 가족의 계보 등의 기록에서 가문의 자랑과 위엄을 나타내거나 그의 위세를 알리고자하는 무덤 치장이라는 장식적인 측면, 즉 사회적으로 과시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가 있다. 물론 옛 이야기지만. 무덤은 인류의 역사를 밝히는 중요한 고리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많은 수의 유물은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이다. 이런 유물들은 ‘명기(明器)’라고 하는데 죽은 자를 위해 사후 세계에서 그 물건을 쓰도록 한데서 비롯되었다. 고대에는 이 명기 말고도 산사람까지 함께 묻었다. 이런 순장(殉葬)에는 왕의 후궁들이나 그의 종들이 많았다. 후궁들에게 생존 시에 많은 부귀와 특혜를 주는 것은 왕이 죽으면 산사람들이 같이 무덤에 가는 조건에서였다. 5. 산담, 사자(死者)를 위한 산자(生者)들의 상징 온 섬에 뒹구는 제주의 돌은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농부의 일손을 더디게 할 때는 잠시 재앙이 되지만, 돌이 이처럼 흔치 않았다면 사람과 짐승의 집은 물론 죽은 자의 영혼이 쉴 무덤 또한 제대로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돌로 울타리를 세운 집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다가 죽으면 다시 돌담이 둘러쳐진 무덤에 누웠다. 그렇게 돌은 제주사람들의 삶과 죽음 모두에 깊숙히 관여해 왔다. 제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돌담 가운데 무덤을 둘러싼 돌담을 ‘산담’이라 부른다. 산담은 여러 용도의 돌담 중 유독 신성시되는 것으로, 무덤 속 혼백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이자 영혼의 집임을 표시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산담은 한 줄로 쌓은 외담과 겹줄로 쌓은 겹담으로 나뉘는데, 외담은 다시 모양에 따라 원형 산담과 도토리 모양의 산담, 사각형 산담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무덤 뒷부분을 좁게 조성한 사다리꼴의 겹담도 있다. 산담에는 영혼이 다니는 신문(神門)인 ‘올레’를 둔다. 올레는 제주에 5개가 있다. 산자들의 골목에 해당하는 집올레, 잠녀들이 바다로 가는 바당올레, 신당으로 가는 당올레, 전설 속에 나오는 해저의 길목 용궁 올레, 그리고 혼백이 사는 집인 산담 올레가 그것이다. 올레는 산담 좌측 혹은 우측에 약 40~50cm 정도의 너비로 사이를 터놓은 영혼의 출입 통로를 말한다. 그리고 그 터진 공간 위에 긴 돌 1~4개를 올려놓아 마소나 사람의 출입을 통제한다. 필자는 20년 전에 올레 사이를 가로질러 놓은 긴돌을 ‘정돌’이라고 명명했다. 정돌의 의미는 집올레의 정낭을 빗대어 부른 것이다. 예를 들어 집올레의 정낭이 말의 키 크기에 따라 1~5개를 걸쳐 놓은 것이라면 산담의 올레 또한 너비에 따라 1~4개까지 긴 돌을 걸쳐 놓은 것에서 유추한 것이다. 산담의 너비에 따라 정돌의 숫자가 다르게 된다. 올레의 방향이 좌우로 나뉘는 기준은 무덤 주인의 성별이다. 남자의 무덤은 망자의 시점에서 볼 때 좌측에 만들고 여자는 우측에 만들며, 합묘인 경우 남자를 중심으로 좌측에 만든다. 간혹 산담 앞쪽에 올레를 만든 사례도 있으며, 쌍묘에서는 특별히 좌우 양쪽에 올레를 내는 경우도 있다. 산담은 원래 밭머리가 아닌 들판에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들불놓기로 인한 소실, 또는 마소 등 짐승의 침입으로부터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했다. 하지만 들판이었던 땅이 점차 경작지로 변하면서 밭머리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물론 친인척에 의한 관리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밭 한쪽에 무덤을 만들고 산담을 조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가(人家) 근처에 있더라도 산담의 돌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터부의 대상이다. 타당한 이유나 정해진 날 외에는 허락 없이 산담을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예외는 있었다.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길을 잃었을 때에 한해서는 산담 안에 들어가 잠을 자면 무덤 속 영혼이 보호해 준다고 믿었다. 산담에는 일반 돌담과는 달리 돌을 다루는 제주 사람들의 기술을 가늠할 수 있는 품격이 다른 조형적 미학이 배어 있다. 그 조형성을 간단히 정의하면 ‘한국적인 선의 미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한국의 기와집은 처마의 선이 좌우로 갈수록 부드럽게 하늘을 향해 들려 있어 마치 가볍게 날아오를 것 같은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산담의 선도 이와 유사한 아름다운 리듬감을 보인다. 이는 사람들의 본능처럼 물에 뜨도록 직선보다는 양쪽을 살짝 들어 올려서 부드럽게 파도를 타는 듯한 형태가 되는 것이다. 산담 측면에서 보면 높이가 낮은 산담 뒤쪽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올수록 위를 향해 들리듯 올라가면서 앞쪽 좌측 끝에 오면 담장의 각은 하늘을 향해 살아나 유연한 선을 그리며 올라가서 멈춘다. 이 선이 산담 좌측에서부터 중앙으로 이동할수록 서서히 잠기듯 낮아지다가 반대편 우측 끝으로 갈수록 다시 같은 방식으로 살아나서 좌측 끝과 대칭을 이룬 듯 멈춰 선다. 더 나아갈 수 없이 살짝 멈춰 버린 산담의 선은 바라볼수록 유연하여 자연스럽다. 혼백의 심부름꾼 동자석 산담 안에 세우는 동자석은 이름 그대로 어린 남자 또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자석은 여러 기능으로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예를 갖춘다. 그중에는 숭배적 기능, 봉양적 기능, 수호적 기능, 장식적 기능, 교훈적 기능, 주술적 기능, 유희적 기능이 있다. 제주의 동자석은 내륙으로부터 온 여러 성씨의 입도 시조나 부임하는 목사(牧使), 제주 출신의 양반 토호나 유배객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하지만 제주 동자석은 불교적 색채가 미처 가시지 않은 채 약간의 지역적 특징만 더해진 내륙의 대다수 동자석들과는 사뭇 다르다. 유교 문화의 중심권인 한양 지역에서 잉태된 무덤 조각인 동자석이 멀리 남쪽 끝 변방인 제주까지 흘러오는 동안 각 지역의 독특한 풍습과 여러 신앙이 결합되고, 여기에 제주의 풍토와 사상이 더해지면서 매우 독특한 동자석으로 재탄생했다. 다시 말해 제주의 동자석은 불교, 무교, 도교 및 토속 민간신앙의 다양한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반영된 점이 특징이다. 제주의 동자석은 매우 친근한 정감을 준다. 특히 18세기 조선 영·정조대에 만들어진 동자석들은 눈이 크고 선이 부드러우며 보다 정교한 특징을 지녔다. 이는 육지 왕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국상(國喪) 때마다 능역(陵役)을 지원하여 육지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인조 재위 때인 1629년에 내려진 출륙금지령으로 인해 육지 출입이 쉽지 않았던 탓에 능역 자원 봉사는 제주 사람들이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때 그들이 왕릉 조성 과정에서 보고 기억한 석상을 재현한 것이 지금의 제주 동자석이다. 문석인을 모방해 만든 것인데, 기술이 부족한 아마츄어 제주 장인들의 손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석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 결과 제주 동자석은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현무암을 사용해서 매우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에는 고유의 단순미에서 우러나는 건강한 생명력으로 인해 제주의 매력적인 얼굴로 널리 사랑받고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도굴되었고 600년 산담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회복할 수 없는 제주 토착성은 역사속으로 잠기고 있는데 석상의 보물섬이 사라져 버리면서 전국 평균적인 획일적인 땅이 되버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