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욕장을 갔는데 제 파라솔 하나 못 펴는 거예요." 제주 함덕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 이모씨는 아이들과 함께 그늘을 만들기 위해 접이식 파라솔을 꺼내려다 뜻밖의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해변 한쪽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개인피서용품 이용방해 10만원 과태료'라는 문구와 함께 큼지막한 금지 표시가 줄줄이 붙어 있었습니다. 혹시 몰라 관리요원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명확했습니다. "개인 파라솔은 설치하실 수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해변은 파란색 대여용 파라솔로 가득 차 있었고,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자리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공공의 공간에서 '내 자리 하나' 펴기 어려운 해변의 현실입니다. 제주는 '해수욕장의 섬'으로 불릴 만큼 여름이면 관광객과 도민 모두가 해변을 찾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공간이지만 막상 모래사장에 들어서면 자리를 펴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도내 주요 해수욕장의 파라솔 구역은 대부분 유료 대여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파란 천막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장관처럼 보이지만 그 그늘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개인 파라솔을 설치하려면 관리요원이 다가와 "여기는 안 됩니다"라며 제지합니다. 일
어쩌다가 밤낮이 바뀌어버린 아기처럼 요즘 들어 어머니는 낮에는 달처럼 주무시고 밤에는 해처럼 배회하신다. 엊그제는 거의 하룻밤 하룻낮, 24시간을 주무시기만 하셨다. ‘혹시나….’ 하는 걱정이 불안스레 꿈틀거려서 가만히 어머니 얼굴에 귀를 대보았다. 아무래도 숨결이 너무 약하신 듯하다. 갑자기 덜컥 두려움이 솟구친다. “아고게! 어머니, 얼른 일어 나십서! 저녁때가 다 되어수게!”하고 큰 소리로 깨워본다. 반응이 없으시다. 그 순간 ‘아직은 안 돼!'하는 조급함이 급하게 심장을 두드린다. 얼른 몸을 기울여서 어머니의 눈꺼풀을 뒤집어 본다. 그 순간 “야이, 무사?(얘, 왜 그래)”하면서 거칠게 밀치신다. ‘아고, 더 주무십서, 예! 미안허우다. 어머니가 나만 나둬동(놔두고) 솔째기(살짝이) 아버지한티 가불카부댄(가버릴까 봐)....’이라고 멋쩍게 물러선다. ‘역시, 우리 어머니시네….’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직은 어머니에게 호령할 기운이 남아 있으시다. 오늘은 정오쯤에 일어나셨다. 거실로 나와 당신의 자리에 앉자마자 마당을 쳐다보시더니 한숨을 쉬신다. 더위에 시달리다 못해 머리를 숙인 상추들이 숨을 죽이며 온몸을 늘어뜨리고 있다. 예년보다 급하
금융당국이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교란 행위를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한국거래소를 찾아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한 데 대한 후속 조치다. 관건은 계획이나 방침이 아닌 엄중한 실천이다. 금융위원회는 9일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근절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7월 안에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의 협업 체계인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을 구성한다. 세 기관에 분산돼 있는 심리와 조사 기능을 모아 적극 대응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금융당국은 초단기 알고리즘 매매 등 지능적·조직적 불법행위가 증가하는 데 맞춰 인공지능(AI) 감시 체계를 구축해 불공정거래 위험 종목군을 탐지하기로 했다. 거래소의 시장감시 체계도 계좌 기반에서 개인 기반으로 전환한다. 적극적인 행정제재로 불공정거래 행위자를 단 한번으로도 자본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거래소는 현재 개인정보를 활용하지 않고 계좌를 기반으로 감시 업무를 하고 있다. 이는 감시 대상이 많은 데다 동일인 연계성 파악도 어렵다. 이에 주민등록번호를 가명 처리한 정보를 계좌와 연계하는 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 온 걸스카우트 대원 한명을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로 유인해 ‘성추행’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신줄을 잠깐 내려놓은 연예인이 그랬어도 세상이 시끄러울 사건을 대통령이 저질렀으니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힐 일이다. 대통령이 말 그대로 대형 사고를 치자 모두들 ‘이제 정권은 끝장났다’고 망연자실하고 자포자기한다. 재선(再選)은 언감생심이고 탄핵과 파면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교도소로 직행할 판이다. 그러나 영악한 백악관 여성 보좌관 윈프리드 에임스(Winfred Amesㆍ앤 헤이츠 분)가 전의를 상실한 백악관 참모들을 질타하고 나선다. ‘불가능이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Impossible is not a fact. It’s an opinion)’이라는 무하마드 알리의 불굴의 정신을 일깨운다. 아디다스가 광고 카피로 적절하게 써먹어 유명해진 말이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이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It ain’t over til it’s over)는 불세출의 야구감독 요기 베라(Yogi Berra)의 ‘속단 금물’ 정신을 불어넣는다. 지난해 12월 3일 밤에 어처구니없이 선포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난달 3일 새벽 5시.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 속 제주시 삼도2동 제2투표소(제주남초)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의 풍경이었다. 정당 참관인과 투표 사무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전 5시 30분, 개시 준비가 본격화되자 사무원은 참관인을 상대로 투표지와 도장, 봉인 스티커를 하나하나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봉인작업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고, 투표소는 긴장감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했다. 하지만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전 6시 35분. 한 50대 남성이 조용히 투표소에 들어섰다. 신분증을 내민 그에게 여성 사무원이 선거인명부를 대조하던 순간, 전산 시스템에는 이미 '사전투표 완료'로 명시돼 있었다. "혹시 사전투표 하지 않으셨어요?" 사무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안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무원은 옆 동료와 눈짓을 주고받고는 다시 물었다. 그리고 재차 "29일에 혹시 사전투표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었다. 남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신분증을 챙겨 빠르게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현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참관인과 사무원들
제주특별자치도는 법정계획을 수립하거나 혹은 당면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하여 많은 용역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현안과 문제점을 잘 파악하여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올바른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에 대하여는 많은 논란이 제기되는 것이 사실이다. 환경보전기여금은 오랜기간 논의와 여러차례의 용역이 있었음에도 실행이 무산되어 왔다. 그러한 점에서, 이 논설은 2023년 12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가 시행한 ‘(가칭)제주환경보전기여금 제도 도입 실행방안 마련 용역(이하 ‘용역’이라 한다)’의 중요한 쟁점을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여 보다 더 충실한 정책이 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찬성 혹은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용역’ 그 자체를 입법정책적 측면에서 검토하고, 다른 ‘용역’을 수행하는 경우에도 보다 더 실행이 가능한 ‘용역’을 수행하여 주도록 촉구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독자들의 많은 의견을 제시하여 주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용역' 161∽171쪽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등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운용하는 관광세, 호텔세, 숙박세, 환경세 등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 관광세(Tourist Tax)인가
이재명 대통령의 3일 첫 기자회견은 시점과 형식, 내용 모두 직전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됐다. 우선 취임 30일 만에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이른 시간에 회견을 했다. 질문자를 지명하기도 했지만, 기자 명함을 넣은 상자 안에서 무작위로 뽑아 선정했다. 풀뿌리 지역 언론에도 영상으로 질문하도록 했다. 대통령실의 ‘가깝게, 새롭게, 폭넓게’ 콘셉트에 맞게 대통령과 기자단과의 물리적 거리도 가깝게 배치했다. 좌석도 둥그런 타운홀미팅 방식으로 배열했다. 이 대통령은 사전 조율 없는 민감한 질문에도 참모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답변했다. 정권 초기 허니문 기간이어서인지 날선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치솟는 서울 아파트값, 라면에 계란 넣어 먹기 부담스러운 생활물가, 시한이 임박한 미국 트럼프 정부와의 관세협상,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 검찰을 비롯한 사법제도 개혁 등 현안과 과제가 산적해 있다. 초대 내각 및 검찰 인사 등에 대해 이 대통령은 “시멘트와 자갈, 모래, 물을 섞어야 콘크리트가 된다. 시멘트만 모으면 시멘트 덩어리가 되고, 모래만 모으면 모래더미가 된다”며 진영에 따른 갈라치기가 아닌 ‘통합’ 인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의 집값 안정 대책과 관련해선
영화 ‘왝 더 독(Wag the Dog)’은 배리 레빈슨(Barry Levinson) 감독의 1997년 작품이다. 레빈슨 감독은 1988년 ‘레인맨(Rain Man)’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고, ‘내추럴(The Naturalㆍ1984년)’ ‘굿모닝 베트남(Good Morning Vietnamㆍ1987년)’ 등의 영화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더스틴 호프먼, 로버트 드 니로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불러 모아 만든 작품이다. 영화의 장르 자체가 ‘블랙 코미디’이자 ‘정치 풍자극’이고 영화의 줄거리도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날, 재선을 위해 젖 먹던 기운까지 짜내던 대통령(마이클 벨슨 분)이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엉뚱한 사고를 치고 만다. 사고도 사고 나름이지 백악관 견학을 온 걸스카우트 소녀 한명을 데리고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다. 이 황당한 추문이 새어나가고 당연히 재선은 물 건너간 꼴이 된다.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하는 참모진들은 머리를 쥐어짠 끝에 당대 최고의 ‘정치 선전, 홍보 기술자’ 브린(Breanㆍ로버트 드 니로 분)을 ‘해결사’로 초빙한
요즘 들어 어머니의 하루는 오후가 되어서야 시작되는 날들이 많아졌다. 오늘은 애간장과 인내심을 거의 다 태우고 나서, 저녁 7시쯤에 눈을 뜨셨다. 그 사이에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어머니가 눈을 뜨지 않으신다. 어떡하면 좋을까. 아무래도 이번에는 어려우실 듯 하다’는 등의 하소연을 해댔다. 하나마나 한 걱정이라서일까, 아니면 노인들의 잠은 보약과 같아서 그럴까? 한결같이 보내오는 응답이 ‘그냥 주무시게 놔둬라. 잘 만큼 자고 나면 일어나실 게다’라는 소리다. 어머니의 시간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줄을 알면서도, 마치 혼자서 걱정하다가 무슨 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다. 어쩌면 책임질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서 미리 공유하려는 듯 꼭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아, 나의 이 한없이 나약하고 비겁한 마음을 어찌할거나. 정말로 노인에게는 잠이 보약이다. 기운이 충전되셨나 보다. 어머니는 필요한 만큼 주무셨는지, 슬며시 눈을 뜨셨다. 백설공주가 따로 없지 싶다. 누구나 깊은 잠에 빠져서 눈을 뜨지 않을 때는, 저러다가 깨어나지 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의심과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나올 것이다. ‘스멀스멀’이란 말이 나왔으니, 평생에 잊히지 않는 일이 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곳곳에서 과거 정부와 다른 행태와 메시지가 보이고 읽힌다. 새 정부 첫 내각 인선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눈이 띄는 부분은 현장을 잘 아는 기업인 출신 전문가들이 대거 기용됐다는 점이다. 경력과 나이를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지명된 배경훈(49) LG 인공지능(AI)연구원장은 한국형 추론 AI 모델 ‘엑사원’ 개발을 이끌었다. 앞서 대통령실에 합류한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 출신 하정우(48) AI 미래기획수석과 함께 이재명 정부의 ‘AI 드라이브’ 정책을 주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에 지명된 한성숙(58) 전 네이버 대표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네이버를 빅테크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과학기술 분야 수장으로 전문가를 발탁한 적이 있었지만 교수 출신이 많았다. 이번처럼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실전형 전문가들로 관련 부처 라인업을 형성하진 않았다. 요컨대 ‘AI 3대 강국’ 달성, ‘소버린(주권) AI 개발’ 등 새 정부의 핵심 도전 과제를 기업인 출신들의 혁신 역량에 바탕해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실용주의에 부합한다. 윤석열 정부에
"학생을 지키려다 제가 무너졌습니다." 제주시 한 고등학교 교사 A씨가 남긴 말이다. 그가 마주한 상황은 한마디로 무방비였다. 신체 접촉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가해 학생과 수학여행을 떠나야 했고,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건 "화해하라"는 말과 "수행평가 때문에 복귀해달라"는 요구뿐이었다. 결국 A씨는 병가와 특별휴가를 연달아 사용한 끝에 교단을 떠났다. 학교는 침묵했고, 교사는 끝내 혼자였다. 사건은 지난 5월 수업 중 발생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학생을 제지하자 학생은 갑자기 A씨를 껴안으려 했고, 뿌리쳐도 다시 강하게 팔을 붙잡았다. 이후에도 새벽 시간에 문자가 왔고, 복도에서 위협적인 접근이 반복됐다. A씨는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분리 조치는 없었다. "교권보호위원회에 신고되기 전까진 어렵다"는 설명이 전부였고, 보호 매뉴얼도 없었다.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조차 A씨가 직접 확보해야 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닷새 뒤 그 학생과 함께 수학여행에 인솔 교사로 떠나야 했다는 사실이다.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는 A씨의 호소에도 학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뒤로 이뤄진 분리 조치는 고작 5일. 병가에 들어간 A씨에게는 "수행평가 문제
영화 ‘다운폴’이 보여주는 1945년 나치독일 붕괴의 피날레를 장식한 지하벙커 속 마지막 14일간의 모습은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의 신호탄이었던 1939년 폴란드 침공과 점령(1939년 9월 1일~10월 6일) 때 이미 예정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한 나치독일은 1939년 9월 온갖 트집을 잡아 전격적으로 폴란드로 진격하고, 나름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폴란드를 한달 만에 무너뜨렸다. 히틀러는 폴란드 함락에 도취해 자신감이 충만하고, 곧이어 체코와 슬로바키아 침공에 이어 소련까지 진격해 들어간다. 그러나 사실상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국력이 뒤졌고, 소련 하나도 압도할 만한 전력이 아니었던 독일이 전 유럽을 석권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구상이었다. 폴란드 점령까지는 미온적으로 대처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가 체코까지 침공하자 마침내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전면전에 나서고, 소련도 독일과의 전쟁에 모든 국력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한두 차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그 승리가 결국에는 궁극적인 패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고 한다. 겉보기에는 남는 장사 같지만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