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어머니의 식사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입에 잔뜩 밥을 물고도 숟갈을 들어서 다시 집어넣으려 하신다. 허겁지겁 서두르는 모양새가 몹시도 배고픈 아이를 연상케 한다. 식탐이 느신 게다. “어머니 밥을 이추룩 잘 드시민, 앞으로도 오래오래 살아지쿠다, 예?”라고 추켜세워드리면, “게메게(그러게 말이다). 돌아오멍 살아짐직 허다 이!”라며 빙그레 웃으신다. 만족스러운 표정이 천상 어린애를 닮았다. 그러고는 정색하고서 뱉으시는 말씀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조반 잘 먹어사 호루 종일 일해여!”. 아, 어머니는 103세의 아침에도 밭에 가서 할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인가 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라는 조선시대 남구만의 시조가 상기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치매증세가 그전보다 나아진 건 아니다. “정옥아 이리 와보라. 괴기가 딱 붙언 아니 떨어졈저게!” 무슨 일인가 해서 달려가 보면, 스웨터의 단추를 붙잡고 쩔쩔매고 계신다. 아, 어머니 눈에 드디어 헛것이 보이기 시작한 게다. 어쩌면 바다에서 물질을 할 때 소살로 생선을 쏘아 망실이에 집어넣었는데, 그
2005년 1월27일 제주는 '세계평화의 섬'이란 간판을 달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일이다. 참혹했던 1948년 4·3의 비극의 뒤안길에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노무현 정부는 줄기차게 논란이었던 제주해군기지 문제도 매듭지었다. 2007년 제주 강정항에 '민·군 복합항'이란 이름의 해군기지 조성을 결정했다. '한반도 병참기지화'란 반발과 '한반도 남방 대양해군의 거점'이란 청사진이 맞붙는 시련의 세월이 또 찾아왔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올해 2월 3일 강풍이 몰아치던 서귀포 강정동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기동함대사령부 창설 반대', '제주를 화약고로 만드는 행동을 멈춰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해군기지 앞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는 '평화의 섬' 제주가 다시 한번 군사적 긴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날 제주해군기지에서는 해군의 오랜 숙원이었던 기동함대사령부 창설식이 열렸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고, 해상 교통로를 보호하며, 대한민국의 해양 권익을 수호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명분이 따랐다. 제주는 2005년 1월 27일 노무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계엄 쇼크’는 훨씬 심각했다. 비상계엄 여파와 건설경기 부진 영향으로 지난해 4분기 경제가 직전 분기 대비 0.1% 성장에 그쳤다. 한국은행의 지난해 11월 전망치(0.5%)보다 0.4%포인트 내려갔다. 지난해 연간 성장률도 2.0%에 그쳤다. 이 또한 한은 전망치(2.2%)보다 0.2%포인트 낮다.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 등 정치 리스크가 경제성장을 갉아먹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지난해 4분기 저성장이 끝이 아니란 점이다. 체감경기와 경제심리가 갈수록 악화하고 대외환경도 사면초가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1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61로 지난해 4분기(85) 대비 24포인트 급락했다.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0년 3분기(55) 이후 4년여 만에 가장 낮았다. 한은이 조사한 1월 전全산업 기업심리지수(CBSI)도 85.9였다. 계엄 사태가 터진 지난해 12월 87.3으로 뚝 떨어진 뒤 하락세가 멈추지 않았다. BSI와 CBSI 모두 기준선 100을 밑돌수록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1.9%로 전망했던 올해 경제성장률도 1.6~1.7%로 낮출 태세다. 이
아마도 미국을 혐오하는 어느 집단의 강력한 ‘전자기 펄스 폭탄(Electromagnetic Pulse Bomb)’ 공격쯤으로 짐작되는 테러를 당한 미국의 모든 인터넷 시스템이 붕괴된다. 전자기 폭탄의 충격은 인간들의 전자기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내재된 방향감각기능까지 교란한다. 미국 남부 마이애미에나 있어야 할 플라밍고들이 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의 수영장에 날아와 옹색하게 헤엄치고, 북부산림 속에 있어야 할 사슴 가족이 아만다의 펜션을 기웃거린다. 아만다의 펜션에 처음 등장한 3마리의 사슴 가족은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아만다의 가족도 정원에 나타난 사슴 가족을 사랑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숨죽이고 바라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수가 수백 마리로 늘어난다. 진영을 갖춘 ‘사슴 집단’의 모습은 결코 사랑스럽지도 흐뭇하지도 않다.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묘한 것은 사슴들의 ‘표정’도 처음 3마리였을 때와는 판이하단 점이다. 더 이상 조심스러워하지도 않고 인간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 표정들이 뻔뻔하고 흉흉하고 공격적으로 바뀌어있다. 사슴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순하고 겁먹은 듯한 커다란 눈망울은 ‘집단광기(collective
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의 가족은 인터넷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연결고리’와 단절된다. 비행기가 해변에 추락하고, 수백대의 ‘자율주행’ 테슬라들이 공장에서 뛰쳐나와 한 방향으로 질주하다 꼬리를 물고 추돌한다. ‘연결’의 단절과 거기에서 비롯된 혼란은 인간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결이 끊기자 모든 게 혼란스럽다. 숲속에 있어야 할 사슴들마저 방향을 잃은 채 아만다의 펜션에 몰려든다. 플로리다에나 있어야 할 플라밍고 떼도 아만다의 수영장에서 어리둥절하게 헤엄친다. 급기야 하늘에서 아랍어로 ‘미국에게 죽음을’이라고 쓰인 ‘삐라’가 눈처럼 쏟아진다. 아만다 가족의 불안과 공포는 극에 달한다. 그들은 이 모든 사태가 9‧11 테러처럼 미국을 증오하는 세력이 감행한 공격이고, 미국 정부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공포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유리에 금이 갈 정도의 강하고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덮친다. 모두들 귀를 막고 쩔쩔맨다. 몇 초 만에 소리는 사라졌는데, 13세 아들 아치에게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한다. 두통과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키는 발작증세를 보이다 멀쩡했던 이까지 빠지기 시작한다. 어금니를 너무 꽉 물었던 모양이다. 에스마일 감독은 소위
요즘 보목마을에는 봄 같은 겨울이 이어지고 있다. 마당에 나가보면 상추며 배추들이 상큼한 얼굴로 초록을 뽐내는데, 눈을 들어 한라산을 쳐다보면 설문대 할망이 눈을 허옇게 뒤집어쓰고 있다. “아직은 겨울이여. 독감 조심허라 이!”라고 하시며, 금방이라도 일어서실 듯, 기침이라도 하실 듯이 가까워 보인다. “아고, 저 노물(배추나물)꽃 보라게! 노랑허게 곱닥허게(고웁게), 말이라도 험직이(할 것처럼) 잘도 여망지게(똘똘하게) 피었져 이!”라며 거실에서 몸을 일으키시는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 보실 요량이다. “어머니, 아직은 보름이 막 독허난, 나가지 맙서 예! 독감 걸리민 큰 일 납니다. 103설 된 할망이 이겨지카(이겨질까), 예? 언니 말이, 요새 독감은 하도 독해연, 요양원 할망들이 하영(많이) 병원에 간댄 햄수게. 경 허곡(그렇고), 이제 홑썰(조금) 이시민(있으면) 명절인디, 아이들한테라도 독감을 옮기민 어떵 허쿠광?” “아고, 곧 멩질(명절)이로구나게. 게무로사(아무려면) 돈은 못 줘도 감기는 주지 말아살 건디...”라며 주저앉는 어머니의 눈가에, 금방 안개처럼 희미한 염려가 스며든다. 다시 당신의 자리로 돌아오신 어머니가 정색을 하고서 입을
12·3 내란 사태가 사회 전반에 충격을 주고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켰다. 비상계엄 선포는 고용시장에 직격탄을 가했다. 지난해 12월 취업자가 전년 동기 대비 5만2000명 감소했다. 월별 취업자 감소는 코로나19 사태가 극심했던 2021년 2월(-47만3000명) 이후 3년 10개월 만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2월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침체기에는 고용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지난해 12월에도 상용직은 증가한 반면 일용직은 15만명 감소했다. 실업자가 111만5000명으로 17만1000명 늘었다. 실업률도 3.8%로 0.5%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5.9%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연간 고용 실적도 저조했다. 취업자 증가폭이 15만9000명으로 2023년(32만명)의 절반에 그쳤다. 정부 목표(23만명)에 한참 모자랐다. 장기화하는 내수 부진을 방치하고 이렇다 할 일자리 창출 정책을 펴지 못한 결과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1394.7원에서 1472.5원까지 치솟았다. 한달 새 원화가치가 5.3% 급락했다. 주요 30개국(G30) 중 전쟁 와중인 러시아(-6.4%) 루블화
롱아일랜드 휴양지에 도착한 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의 가족은 주말 2일간 임대한 고급 펜션에서 외부세계와 모든 ‘연결’이 차단되는 예상치 못했던 재난사태를 맞이한다. 가뜩이나 불안한 아만다 부부 앞에 야심한 시각에 방문객이 찾아온다. 불안한 마음에 몽둥이까지 챙겨들고 문을 열어보니 웬 파티복 차림의 흑인 부녀였다. 그는 자신을 조지(George·마허샬라 알리 분)라고 소개한다. 아만다 부부는 처음 보는 얼굴과 처음 듣는 이름이다. 조지는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며, 온라인에서 임대계약을 한 ‘G.H’가 바로 자신이며 G.H.는 George Henry의 이니셜이었다고 설명한다. 자신은 맨해튼에 살고 있는데, 맨해튼 전체에 정전 사태가 벌어져 부득이 이곳으로 왔으니 부디 하룻밤 재워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est)’라는 라틴 경구에 깊이 공감하는 ‘인간혐오자’ 아만다는 갑자기 나타난 ‘하얀 늑대’도 아닌 ‘검은 늑대’를 도저히 집으로 들일 수 없다. 인간을 혐오하는 아만다가 흑인을 혐오하지 않을 리 없다. 조지는 아만다의 의심을 풀어줄 요량으로 상황을 열심히 설명한다. 지금 입고 있는 이 파티복은 마침
새해 들어 103세가 되신 어머니가 새삼 외로워 보인다. ‘누구라도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기도가 되었을까? 일요일 오후에 동생이 찾아왔다. 뜻밖의 방문에 ‘왠 일이냐?’고 놀라는 내게 동생은 햇살 같은 웃음으로 치킨을 들이민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다. ‘요즘은 병원에서 어머니 약을 타려면 주민등록증이 꼭 필요하다’는 동생이 오늘따라 더욱 착하고 예쁘게 보인다. 2남 7녀 중 8번째인 동생에게 아버지는 왜 정례(貞禮)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을까? 정열(悅: 기쁨)·정복(福: 축복)·정희(喜: 기쁨)라고 셋째딸을 첫번째를 맞을 때와 같이 기쁨으로 맞으신 후, 정숙(淑: 맑음)·정심(心: 마음)·정옥(玉: 구슬)이라 이름지으시고서, 마지막에 예(禮: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고 하심은 무슨 깊은 뜻이실까. 어쨌든 정례는 부모님의 사랑을 한껏 받으면서 착하고 예쁘게 자랐다. 밭·바다·시장 등에서 하는 어머니의 온갖 궂은일에 7번째 정옥이까지 포함시켜 노동력을 확보하면서도 언제나 막내는 예외였다. 그래서인지 정례는 어디서나 귀하고 예쁘게 대접받으며 자랐다. 육십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는 위치에 있다. 사랑을 많이 받는 이가 사랑도
기술 발전과 산업 변화를 체감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세계적 박람회와 토론회는 새해를 맞는 기대가 큰 1월에 집중된다. 올해도 둘째주부터 이어졌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 CES(7~10일)를 필두로 117년 전통의 자동차 박람회인 디트로이트 오토쇼(10~20일), 주요국 정계·관계·재계 인사들이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20~24일·다보스포럼)이 그것이다. 하지만 올해 이들 이벤트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기업인의 기세가 예전만 못하거나 경쟁국에 밀리는 모습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소용돌이 속 정치인과 정부인사 참석도 예년보다 적어 경제외교에서도 소외될 판이다. 166개국 4800여 기업이 참여한 CES 2025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고도화해 산업과 일상생활에 파고들고 있음을 보여줬다. 가전과 IT, 모빌리티, 로봇, 헬스케어 등 여러 분야에서 AI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졌다. 특히 AI, 모빌리티 등 첨단기술로 무장한 중국의 공세가 매서웠다. 가전업체 하이센스와 TCL은 삼성전자 주변에 대규모 부스를 차리고 스마트 키친, 가정용 로봇 등 AI를 적용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중국 기업들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 웨어러블 로봇,
뉴욕시 브루클린 지역에서 광고 마케터로 일하는 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는 어느 토요일 새벽 충동적으로 가족들과의 주말 도시탈출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남편 클레이(에단 호크 분)는 초행길임에도 내비게이션을 켜고 출근길처럼 익숙하게 운전한다. 내비게이션이 없었다면 조수석에 앉은 아만다는 지도를 펼쳐들고 길라잡이하느라 클레이보다 더 신경이 곤두섰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 없다. 그런 번잡한 일은 내비게이션에 맡기고 느긋하게 창밖의 신록을 만끽할 수 있다. 인터넷 ‘초연결 세상’의 은총이다.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남매 16살 아치와 13살 로즈는 각자 무릎에 태블릿 PC를 올려놓고 집에서와 똑같이 인터넷 세상에 빠져든다. 아마 롱아일랜드까지 가는 1시간가량에 인터넷이 끊긴다면 아치와 로즈 모두 아만다의 여행계획에 난색을 표했을 듯하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시속 100㎞ 속도로 달리면서도 인터넷이 연결되는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다. 로즈는 당시(1994~2004년) 미국의 전설적인 인기 드라마 ‘프렌즈(Friends)’에 몰입하고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치가 인상을 쓰고 창문을 내리면서 아만다에게 ‘로즈가 방귀 뀌었다’고 고발한다. 로즈는 방귀 뀌지 않았다고
지난 2024년은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삼중고와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속에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한 해 였지만 제주도정 그리고 제주상공인, 도민 여러분이 함께 제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셨습니다. 2025년 현재, 우리 지역 경제가 위기임이 분명하지만 지금까지 모두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잘 이겨내 온 것과 같이 지금 마주한 위기를 잘 극복한다면 새해에는 제주와 제주경제 발전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업이 살아야 제주경제도 살아나는 만큼,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이 경영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본 회의소에서는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개선을 적극 추진하며 기업이 창의와 혁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올해 제주도정에서는 신성장 산업 육성뿐만 아니라 지역기업의 성장을 도모하고자 지역업체 수주 확대, 사회간접자본(SOC)분야 대규모 재정 투입, 중소기업 육성자금 이차보전금 확대, 데이터 기반 상권분석을 통한 효과적인 경영전략 수립, 제주-칭다오 물류항로 개척 등 다양한 기업 지원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본 회의소에서는 제주도정의 기업성장 정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