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정치권이 또다시 4·3 앞으로 몰려가고 있다. 4·3은 제주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함께 아파해야 할 역사다. 그런데 선거만 다가오면 이 역사는 어김없이 정치의 한복판으로 소환된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제78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은 다음달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다. 추념식 자체가 대규모 공적 공간이 되면서 정치권의 시선이 더욱 집중되는 구조다.
더 민감한 대목은 올해 4·3이 단순한 추모의 영역을 넘어 다시 선거 프레임의 중심에 놓이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주요 주자들은 하나같이 4·3의 의미를 말하고, 해결 의지를 강조하고, 자신이야말로 4·3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말만 놓고 보면 모두가 옳다. 문제는 그 말들이 쏟아지는 시점과 방식이다. 추념의 언어가 선거의 언어와 겹치는 순간, 4·3은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수단으로 변하기 쉽다.
오영훈 지사는 현직 프리미엄 위에 4·3 관련 입법과 도정 성과를 함께 얹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만들고 있다. 2022년 도지사 선거 때도 그는 자신이 4·3특별법 개정에 역할을 했고, 추가 진상규명과 정명(正名), 보완 입법, 배·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오 후보는 “4·3의 정의로운 해결”과 “한 명의 소외도 없도록 배·보상 추진”을 전면에 걸었다. 지금의 행보 역시 그 연장선으로 읽힌다. 문제는 도정의 성과 홍보와 재선용 정치 메시지의 경계가 점점 흐려진다는 데 있다.
문대림 의원 쪽도 다르지 않다. 문 의원은 예전부터 4·3을 제주 공동체 회복, 화해, 통합의 언어로 풀어왔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제주에 내려와 문대림 후보를 두고 “4·3 완결의 적임자”라고 강조했고, 원희룡 후보를 향해서는 4·3특별법 개정에 비협조적이었다고 공격했다. 4·3이 추모의 역사인 동시에 선거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프레임으로도 적극 사용됐던 셈이다.
위성곤 의원 역시 4·3을 정책과 미래 비전의 언어로 접속시키려는 흐름 속에 있다. 다만 이번 선거 국면 전체를 보면, 세부 정책의 우열보다 누가 더 4·3의 상징성을 안정적으로 점유하느냐가 더 부각되는 양상도 분명하다. 후보들이 모두 “완전한 해결”을 말하지만, 유권자들에게 더 강하게 남는 것은 보상 체계나 추가 진상조사 로드맵보다 상징 공간 방문, 추념식 참석, 메시지 수위 같은 장면들이다.
국민의힘 문성유 후보가 4·3평화공원을 출마 선언 무대로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수 진영 후보가 4·3 상징 공간을 택하는 것은 제주 정치 지형상 매우 계산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과거 보수 진영 정치인들도 선거 국면에서 4·3을 외면하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제주4·3은 현대사의 비극”이라며 희생자와 가족들의 상처 치유에 앞장서겠다고 했고, 4.3이 '국가추념일'이 된 것도 그의 재임기간중이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측도 4·3의 완전한 해결을 공약 기조로 내세웠다. 즉, 보수든 진보든 제주 선거에서 4·3을 비켜간 적은 거의 없었다.
결국 지금 제주 정치가 보여주는 것은 ‘4·3의 정치화’라기보다 더 정확히는 ‘4·3의 선거자원화’에 가깝다. 4·3은 너무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에 정치가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중요성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누구는 정명 문제를, 누구는 보상금 상향을, 누구는 유족 지원 확대를, 누구는 공동체 회복을 내세운다. 다 필요하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은 대체로 비슷했다. 추념식이 다가오면 정치인들은 4·3을 말하고, 선거가 끝나면 4·3은 다시 정책의 뒷순위로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올해도 벌써 그 조짐은 뚜렷하다. 추념식 참석 여부, 첫 메시지의 톤, 누가 먼저 평화공원을 찾는지, 어떤 문장을 쓰는지까지 모두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구나 올해 추념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처음 치러지는 추념식이고, 이재명 대통령 방문에 겹쳐 4·3을 둘러싼 상징 경쟁은 더 거세지고 있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누가 4·3을 더 많이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4·3을 덜 소모하느냐’다. 4·3은 선거판의 장식물이 아니라, 정치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역사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4·3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복되는 선거 국면에서 4·3이 소모되는 방식은 분명 문제로 지적된다. 누가 4·3을 더 많이 말하느냐보다, 누가 선거 이후에도 4·3을 책임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 돼야 한다.
4·3은 정치가 활용할 상징이 아니라, 정치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역사다. 하지만 지금 제주 정치권의 모습은 ‘기억의 정치’가 아니다. 그래서 올해도 다시 묻게 된다. 정치권이 4·3을 말하는 이유가 진정한 해결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선거를 위한 것인지.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