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부채도사’ ‘시커먼스’ 등으로 활약했던 제주출신 코미디언 장두석(67)씨가 별세했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협회는 고인이 지난 22일 오전 8시쯤 지병인 신장 질환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다. 1957년 제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성고를 졸업, 경희대 문리과대학 지리학 학사를 이수했다. 고인은 1980년 제2회 TBC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방송계에 데뷔했다. 이후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KBS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특히 인기 콩트 코너 ‘아르바이트 백과’ 등으로 유명했고, ‘쇼 비디오 자키’에서 후배 이봉원과 선보인 코너 ‘시커먼스’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 ‘유머 1번지’에서 탄생시킨 ‘부채도사’ 코너에선 “실례 실례 합니다, 실례 실례 하세요”라는 유행어로 사랑받았다. 고인은 1992년 마지막 코너를 마무리하고는 한동안 개그계를 떠났었다. 이후 음반을 내고 가수로 활동하며 ‘사랑한다 해도’ 등의 곡을 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SBS 주말 라디오 방송 ‘유쾌한 주말 장두석입니다’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3년 한 방송에서는 독신으로 인도 유학 후 명상 전도사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온 가수 김민기가 위암 투병 끝에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김민기의 조카이자 학전 총무팀장인 김성민 씨는 22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댁에서 요양 중이던 선생님(김민기)의 건강이 지난 19일부터 조금 안 좋아졌고 20일 오전 응급실을 찾았다"며 "병원에 갔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아 다음 날 오후 8시 26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김씨는 고인이 눈을 감기 직전 유언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선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선생님은 배우 설경구, 장현성 씨가 와도 '밥은 먹었냐'고 하실 분"이라며 "(평소 성격을 미뤄)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미술에 몰두했던 학생이었으나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뒤 붓을 놓고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획일적인 수업 방
'제주의 오름'을 구현한 구상화로 이름이 높던 화가 백광익 제주국제예술센터 이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 한국미술협회 제주도지회 1989∼1990년 제17대 지부장과 1993∼1996년 제20대 지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온 고인은 1970년대 후반 도내 첫 현대미술 동인인 '관점'을 창립했다. 1982년부터 오현고 미술교사로 재직했고, 오현고 교장(2007∼2010년)과 오현중 교장(2011∼2014년)을 역임했다. 고인은 국내는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43회 개인전을 가졌다. 단체전 및 초대전에도 360여회나 참가했다. 그는 1978년 창작미협공모전 문예진흥원장상(대상), 제주도 미술대전 최우수상, 제1회 현산 미술상(광주), 녹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그는 제주도립미술관 운영위원장, 제주프레비엔날레 운영위원장, 제주국제아트페어 운영위원장, 한국미술협회 이사, 대한민국 남부현대미술협회 부이사장 등을 지내며 제주 화단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을 비롯해 경기, 부산, 대구 등지의 미술대전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제주도의 오름을 테마로
김병찬 제주한라병원·제주한라대 이사장이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서귀포시 하효동에서 태어나 오현고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73년부터 3년 동안 제주도립병원장을 역임했다. 1982년엔 의료법인 한라의료재단과 학교법인 한라학원을 만들고 제주한라병원과 제주한라대를 개원·설립했다. 1971년 개교한 공립 제주간호전문학교가 제주한라대의 모태다. 김 이사장은 제주 의료와 교육의 역사를 함께한 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명아명(爾命我命)'을 제주한라병원의 원훈으로 삼아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나의 목숨처럼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제주 지역 의료 발전에 헌신해 왔다. '훈회보국 인술광시(訓誨報國 人術廣施)'를 제주한라대 건학이념으로 삼아 제주 지역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국가와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헌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 석류장과 제주도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추자 씨와 아들 성수, 성훈, 딸 양실, 효실, 우실 씨가 있다.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2분향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8일 오전 8시다. [제이누리=문도연 기자]
아시아 첫 관광잠수함 사업을 벌였던 김용이 대국해저관광 회장이 지난 25일 타계했다. 향년 74세. 김 회장은 1988년 아시아 최초로 관광잠수함 사업을 시작해 해양관광시장을 선도했다. 세계시장에선 3번째다. 서귀포 앞바다에서 해저잠수함 관광을 이끌며 세계 최초로 잠수함관광 서비스분야 ISO-9001인증 받았다. 2만 시간 무사고 안전운항으로 잠수함 최장 무사고 운항기록 및 세계 기네스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 브랜드스타 2년 연속 해양관광지 부문 1위, 제주도 우수관광사업체로 5회 연속 지정됐다. 이러한 공로로 2010년 국무총리 표창 및 2015년 관광산업부문 제주도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도관광협회 이사, 제주도관광학회 부회장, 제주경영자총연합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잠수함 운항으로 서귀포 문섬 일대 천연기념물 연산호 군락 훼손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문화재청이 지난해 연말 잠수함 운항 35년 만에 운항 중지 결정을 내렸다. 유족은 아내 오은진씨와 자녀 강현, 지아씨가 있다. 빈소는 서귀포의료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30일 오전 6시 30분이다. 서귀포시 상효동 선덕사에 봉안된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1983년 제1회 MBC 창작동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동요 '새싹들이다'를 만든 좌승원 전 제주국제교육정보원장이 18일 오전 3시54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태생인 고인은 제주교육대학 재학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성산초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KBS제주 어린이합창단 지휘를 맡고 있던 1983년 이수지(당시 제주 북초교 5년, KBS제주 어린이합창단)양과 함께 MBC 창작동요제에 참가해 최고상인 최우수상을 받았다. '새싹들이다'는 한 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고인의 고향인 제주시 한경면 싱게물공원에도 노래비가 세워졌다. 봉개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뒤 2006년 초대 제주국제교육정보원장을 맡아 2년 후 정년퇴임했다. 유족은 1남2녀로 좌보람·좌으뜸·좌푸름씨 등이 있다. 빈소는 제주중앙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은 20일 오전 8시30분이다. 장지는 제주시 해안동 선영. ☎ 064-786-7440 [제이누리=오신정 기자]
강택상 전 제주시장이 12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강 전 시장은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출신으로 애월중, 제주제일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육군 장교로 복무하다 대위로 전역하고 1979년 유신 사무관제도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제주도 동원계장과 기획계장, 산업경제과장, 재정경제국장, 관광문화국장 등을 지내다 행정자치부로 전출돼 민간협력과장, 제주4.3처리지원단장 등을 역임한 뒤 제주도에 기획관리실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정무부지사 권한대행, 도의회사무처장, 제주도 경영기획실장, 행정부지사 권한대항 등 을 지내고 2008년 7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김태환 지사가 발탁, 제24대 제주시장을 지냈다. 시장 퇴임 직후엔 제주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나섰지만 현명관 후보에 밀려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다. 고인의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제3분향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5일, 장지는 애월읍 봉성리 가족묘지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남연숙씨 등이 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문태수 전 제주도 정무부지사가 급환으로 21일 밤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출신으로 생전 제주시 총무국장, 남제주군 부군수, 서귀포시 부시장, 제주시 부시장, 제주도 정무부지사 등을 역임하고 1997년 제2대 정무부지사를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쳤다. 2008년부터 21C제주유교문화발전연구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예절입도구현운동’ 추진과 한글축문을 발행하는 등 유교문화 중흥에 노력했다. 2010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향교재단 제23대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재임기간 중 쌓은 공적을 인정받아 새마을훈장 노력장,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4분향실이다. 일포는 23일, 발인은 24일 오전 10시 30분. 장지는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가족묘지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축정 여사와 아들 문용석 제주테크노파크 원장, 문용혁 제주도 에너지산업과 팀장, 문준걸 충남 신양중 교장 등이 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문태수씨(전 제주도 정무부지사, 전 성균관 부반장ㆍ향년 88세) 별세, 이축정씨 남편상, 문용석(제주테크노파크 원장)ㆍ故 용철(전 서울경제신문 기자)ㆍ용혁(제주도청 에너지산업과 팀장)ㆍ준걸(충남 신양중학교
㈜한림공원 창업주이자 재단법인 재암문화재단 설립자인 송봉규 한림공원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제주시 한림읍 출신인 고인은 1956년 제2대 제주도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 70’ 만국박람회를 찾은 고인은 자신의 고향인 한림도 이에 못지않은 관광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정원과 동경 일대 유명 관광지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귀국한 후 고인은 이듬해 협재굴 일대 10만여평의 모래밭을 사들였다. 그간 수차례 경매에도 팔리지 않던 땅이었다. 한림 관광단지 조성을 구상한 고인은 같은해 5개년 개획으로 한림지구 종합관광개발계획을 수립했다. 이어 10만여평의 황무지에 돌을 걷어내고 비옥한 흙을 옮겨와 워싱턴야자 씨앗을 뿌리고,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아름답고 희귀한 식물종자 5만여개를 파종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물을 길어다 뿌리니 싹이 나고 묘목이 활착했다. 현재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 대표관광지인 한림공원의 시초다. 인근의 협재굴과 쌍용굴도 같은해 9월30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236호로 지정됐다. 이어 1982년 사업 허가를 받고 본격적으로 한림공원 조성
송승천 제주도체육회장이 지난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 고인은 제주도체육회 상임부회장, 제주도씨름협회장, 대한전문건설협회 제주도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12월 민선 2기 제38대 제주도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돼 지난 2월부터 제주도체육회 회장 임기를 수행중이었다. 고인은 지병으로 치료를 받아왔으나 최근 병세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 장지는 제주시 천주교 황사평 성지다. 장례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제주도체육회는 도 체육회관 2층 세미나실에 분향소를 마련해 10일부터 12일까지 조문을 받는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제주도가 내게는 행운이자 기회였다. 당선과 더불어 낙선도 있었기에 나는 독선의 해악을 알게 되고 비전과 가치공유의 미덕을 학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차라리 첫 선거에서 낙선한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하는 반성과 회한을 내 삶의 성숙을 위한 자양분으로 비축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신조대로 살았다. 그의 신조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였다.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제29대 관선 제주도지사를 거쳐 초대 민선 제주지사를 역임한 신구범. 1942년생인 그는 모진 풍파와 시련의 삶을 뒤로하고 향년 81세의 나이로 2일 아침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는 풍운아이자 좌절한 혁명가, 최고의 기획가였다. 그의 유년시절 기억 하나. 누구나 그렇듯 '제주현대사'였다. 조천읍 신촌리 태생인 그는 초등생 시절 '4.3폭도의 수괴'로 불린 이덕구의 아들과 단짝이었다. 그 단짝은 그 참상의 시기에 홀연 사라졌다. 그 기억을 더듬어 좌.우파로 나뉘어 치러지던 4.3위령제는 그의 지사재임 시절 처음으로 '합동위령제'로 치러졌다. 장년기 기억. 그는 농림부 축산국장 시절 한국마사회의 체육부 이관을 반대하다 당시 6공의 황태자인 박철언 장관에 '찍혀'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2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그는 오현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 4년을 중퇴, 1967년 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자로 입문했다. 제주도 기획관,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농무관, FAO(국제식량농업기구) 한국교체수석대표, 농림수산부 축산국장, 농업구조조정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YS정부 시절인 1993년 12월 제29대 제주도지사로 취임했다. 이어 첫 민선 지방선거인 1995년 6·27선거에선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돼 31대 지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98년, 2002년 두 번의 제주지사 선거에선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후 축협중앙회장을 거쳐 친환경 농업회사법인인 (주)삼무와 전시판매장인 삼무힐랜드를 운영했지만 지사 재직시절 뇌물수수사건에 휘말려 2년여 옥고를 치렀다. 삼무힐랜드는 그의 수감기간 중 문을 닫았다. 축협중앙회장 시절엔 정부의 강제적인 농.축협 통합에 반발, 국회에서 할복사건을 벌여 파란이 일기도 했다. 인생의 굴곡과 고비마다 정면도전을 하며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는 그의 신조를 지켰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제주삼다수와 관광복권,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교역, 제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