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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주역이 말하는 지혜와 철학(3)

◆소축괘(小畜卦)

 

소축은 일시적인 멈춤, 정지다. 장사하면 손해 볼 때도 있고 남을 때도 있다. 기계는 움직일 때도 있고 멈출 때도 있다. 사업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사람이 배고프면 밥을 먹으려 하고 졸리면 자려고 하는 것과 같이 정상이다.

 

정상 중에 위기가 존재한다. 냉정한 시각으로 그런 상황을 직시하여야 한다. 장사해서 손해 봤다고 하여도 두려울 건 없다. 중요한 것은 손해 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기계가 돌아가다 멈춤들 뭐가 대단한가. 문제는 기계가 돌지 않고 멈춰선 숨은 오류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업이 실패했다손 낙담할 필요 없다. 실패는 결국 우리에게 귀중한 경험을 남겨주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잠시 멈추면 된다. 마음을 조절하고 체력을 보충하면 된다. 그런데 멈춤과 동시에 자신을 충실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다음 단계에 열의를 북돋아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다 장애가 생기면 어떻게 하여야할까?

 

바람이 하늘 위를 운행하다 하늘에게 제지받으면, 그때에는 마땅히 “굴욕을 참아야”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나 한신(韓信)의 과하지욕(跨下之辱)도 있잖은가. 오나라 육손(陸遜)의 인욕부중(忍辱負重)은 또 어떤가.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선인이 남긴 전고와 명구는 이 도리를 말하고 있다.

 

『우포잡기(寓圃雜記)』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

 

양저(楊翥)의 이웃이 닭 한 마리를 잃어버리자 양 씨가 훔쳐갔다며 욕했다. 가족이 양저에게 그 말을 전하자 양저는 말했다.

 

“우리 집안만 양 씨가 아닌데, 그대로 욕하게 내버려둬라.”

 

다른 이웃이 비가 올 때마다 자기 뜰에 고인 물을 양저 집의 뜰로 물을 내보냈다. 가족이 양저에게 알리자 그는 오히려 가족을 설득하였다.

 

“결국 맑은 날이 많을 터, 비 오는 날은 그리 많지 않잖은가.”

 

오랜 시간이 흐르자 이웃은 양저의 ‘굴욕을 감내하는 인내심’에 감동받았다. 어느 해, 도적떼가 양저의 집을 강탈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이웃은 주동적으로 양저의 집을 밤낮 없이 지키면서 재난을 당하지 않게 도왔다.

 

육척항(六尺巷)이라는 지방이 있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청나라 강희(康熙) 연간에 조정 중신 장영(張英)이 집에서 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이웃인 섭(葉) 씨 집에서 담을 쌓으면서 본인의 집 부지를 점유해 버렸으니 장영에게 섭 씨 집안을 제대로 처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장영은 회신하였다.

 

“천리를 멀다 않고 보낸 집 편지가 담벼락이라니, 그에게 3척을 양보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만리장성도 지금껏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때의 진시황은 보이지 않음인데.”

 

결국 장 씨 집은 3척 뒤로 담벼락을 둘렀다. 섭 씨 집에서 보고는 미안하여서 자기 집 담벼락도 3척 뒤로 물렸다. 그렇게 싸움이 벌어질 일이 화목으로 바뀌게 됐다. ‘육척항’ 이야기도 민간에 미담으로 전해져 온다.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우리 곁에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사람도 있고 싫게 만드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 마음도 좋고 나쁨이 있다. 어찌 하루하루를 찬란한 햇빛 아래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렇더라도 우리 스스로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 되는 데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모든 생활의 자질구레한 구체적인 일이 바라는 바대로 기쁨과 즐거움이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 마음의 느낌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 생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부딪치지 않을 방법이 없다. 많은 일이 자신의 뜻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찌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겠는가. 외곬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끝까지 매달리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그때에 자신에게,

 

“한 발 뒤로 물러서자, 저쪽 풍경이 더 빼어날 수도 있잖은가.”

 

라고 말해도 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 존재이지 동떨어진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관용의 마음을 가진다면 더 많은 생활 속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기필코 양보하지 않거나 한쪽만을 고집한다면, 원래 풀릴 수 있는 엉킨 마음도 갈수록 더 엉키게 된다. 본래 아무 문제도 아닌 일도 갈수록 벽에 부딪치게 된다. 그렇게 계속해서 서로 돌아가며 보복하면 언제 원한이 없어지겠는가. 오히려 각자가 한 발씩 물러남만 못하지 않겠는가. 양보하면 모두가 기쁠 것이고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그제야 두 걸음 더 나아가는 즐거움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지장이 있다한들 스스로는 그 길(道)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위험하기는 하지만 허물이 없다. 『주역』은 말한다.

 

“바른 길로 되돌아와 후회를 남기지 않으리니 크게 길하리라.”1)

 

삼국시대에 제갈량은 마속(馬謖)을 잘못 기용해 전략적 요충지인 가정(街定)을 잃었다. 위(魏)나라 장수 사마의(司馬懿)는 그 기세를 몰아 15만 대군을 이끌고 제갈량이 주둔하고 있던 서성(西城)으로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당시 제갈량 곁에는 대장이 없었다. 문관만 몇 있었고 통솔하는 군대도 5000명이었다. 그중 절반은 군량과 마초를 운송하러 떠나 2500명의 병사만 성을 지키고 이었다. 사마의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말을 들은 군중은 대경실색하였다. 제갈량이 성루에 올라 살펴본 후 군중에게 말했다.

 

“당황하지 마시오. 계책이 있소. 사마의를 철군토록 하리다.”

 

제갈량은 전령을 내려 깃발을 모두 내리도록 하고 병사들을 원지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했다. 사사로이 밖으로 나가거나 큰소리로 떠들어대면 즉시 참수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병사들에게 4개의 성문을 열도록 했다. 매 성문 밖으로 20명의 병사를 내보내서는 백성의 모습으로 분장해 물을 뿌리고 길을 청소하게 했다.

 

제갈량 자신은 새의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높다란 제갈건을 쓰고 거문고를 들었다. 시동 2명을 데리고 성 위 망루에 올랐다. 난간에 기대어 앉아 향을 사르고 천천히 거문고를 타기 시작하였다.

 

사마의의 선봉대가 성 아래에 도착했어도 그런 형세를 보고서 어느 누구도 감히 가벼이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급히 돌아가 사마의에게 보고하였다. 사마의가 듣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어찌 가능하다는 말이냐?”

 

사마의는 3군에게 멈추라 명했다. 자신이 직접 말을 타고 상황을 확인하러 날 듯 앞으로 나갔다.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바라보았다. 제갈량이 망루에 단정하게 앉아 만면에 웃음을 띠고 향을 살라 거문고를 치고 있는 게 아닌가. 왼쪽의 시종은 손에 보검을 들고 있고 오른쪽 시동은 손에 불진(拂塵)을 들고 서있었다. 성문 밖에는 백성인 듯한 사람 20여 명이 길을 쓸고 있었다.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마의가 가만히 보니 미심쩍었다. 중군으로 돌아간 후 후군으로 전군을 충당하고 전군은 후군으로 삼아 철수하였다. 아들 사마소(司馬昭)가 말했다.

 

“아마 제갈량이 병사가 많지 않아 고의로 그렇게 하는 것일 겁니다. 부친께서는 어찌하여 철군하십니까?”

 

사마의가 말했다.

 

 

 

“제갈량은 평생 신중하였다. 일찍이 모험한 적이 없다. 지금 성문을 열어젖힌 걸 보니 분명 성안에 매복이 있을 것이다. 돌진해 들어간다면 그의 계략에 말려드는 것이다. 서둘러 철군하여야 한다.”

 

각 지역의 군대를 모두 철수하도록 했다.

 

천 년 이래로 감탄을 불러일으킨 ‘공성계’이다. 사실 그 어느 누가 당시에 제갈량 마음에 근심되는 일이 전혀 없다고,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다고 파악해 낼 수 있겠는가? 자신감 넘치는 낙천적인 기백을 파악해 낼 수 있었겠는가?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不遠復,无袛悔,元吉.(『역경(易經)·복괘(復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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