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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아포칼립토 (5)

주인공 ‘표범 발’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개기 일식’이다. 쿠쿨칸 피라미드 꼭대기에 인신공양 제물로 끌려간 ‘표범 발’은 같이 잡혀 온 ‘제물’들과 온몸에 파란 물감을 칠하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린다. 쿠쿨칸 신에게 바쳐질 인간 제물들에게는 모두 파란색이 칠해진다. 눈부시게 빛나는 ‘인디고 블루(indigo blue)’다.

 

 

‘인디고 블루’는 하늘과 통하는 신성한 색이다. 그래서 바빌론의 거대한 문이나 이슬람 사원들도 인디고 블루를 애용했던 모양인데, 이는 마야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온몸에 눈부시게 ‘예쁜’ 파란 칠을 하고 줄지어 선 인간 제물들이 하나씩 제단에 묶여 산 채로 심장이 꺼내어지고, 여전히 숨 쉬는 심장은 신에게 바쳐진다.

 

심장을 빼앗긴 인간의 잘린 목은 쿠쿨칸의 91개 계단을 굴러 내려가고, 행사 진행요원들은 목 없는 몸통을 피라미드 아래로 집어 던진다. 그들이 믿는 신은 인간을 지독히도 증오하고 인간의 피에 굶주린 모양이다.

 

마침내 ‘표범 발’ 차례다. 제단에 묶여 막 가슴을 가르려는 순간, 개기 일식이 시작된다. 갑자기 태양에 그림자가 지고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이 술렁인다. ‘개기 일식’이라는 천체 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태양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세상의 종말과 같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야간 야구경기에서 이유 없이 조명이 꺼지면 관중은 술렁이고 경기는 중단된다. 태양이 사라진 짧은 시간 동안 사육제도 술렁임 속에 중단된다. ‘표범 발’의 심장을 겨눴던 제사장의 칼도 멈춘다.

 

그렇게 ‘표범 발’이 제단에 묶여 있는 동안 태양이 조금씩 사라졌다 조금씩 돌아오는 우주 쇼가 벌어진다. 쿠쿨칸 피라미드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사람은 태양이 사라지면 두려움에 떨고, 태양이 돌아오자 그제야 살았다는 듯이 환호한다. 그 순간 사육제를 주관하던 제사장이 사육제의 성공을 선언한다.

 

“신께서 너희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도다!” 신께서 분노해 마야에 내렸던 전염병과 가뭄이 오늘의 사육제로 모두 해결되리라는 것이다. 신이 태양을 거뒀다가 다시 돌려주는 건 내 덕분에 너희에게 났던 화가 풀렸다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일식이 진행되는 동안 쿠쿨칸에 모인 모든 사람이 놀라고 겁에 질리지만 제사장만은 의연하다. 회심의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천문학에 대단히 탁월했던 마야의 지배자들이 일식 정도의 천체 현상을 모를 리 없었을 게다. 아마도 개기 일식의 정확한 시간대를 예측하고 사육제 행사를 열었을 듯하다.

 

고대 마야인들은 지구의 공전 및 자전 주기는 물론 지구에서 1억8000만㎞ 떨어진 금성(샛별)의 공전주기, 584일마다 지구와 금성,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인다는 사실까지 정확히 계산해냈던 사람들인데, 일식 현상 정도야 초보에 해당한다.

 

마야의 제사장은 우주가 펼치는 장엄한 쇼를 배경으로 사육제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대단히 뛰어난 공연기획자이자 엔터테이너의 면모를 보여준다. 백성들의 불만을 일거에 잠재우고 당분간 그의 권력은 안전할 것이다. 환호하는 군중들을 굽어보는 제사장은 득의만면하고 두 눈은 교활하게 빛난다. 권력자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주역이다.

 

권력자들이 수집한 지식정보는 당연히 백성들을 위해 공개되고 사용돼야 함이 마땅하지만, 현실은 대개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권력자들은 그들이 독점한 지식과 정보를 오직 자신들의 부나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대 재생산하는 데 동원한다. 혹세무민의 무기로 활용한다는 거다. ‘아포칼립토’에 등장하는 마야의 이 교활한 제사장에 비하면 우리네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통치이념이나 세종대왕의 ‘위민·애민’ 사상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서문에 밝힌 한글 창제의 위민·애민 정신은 볼 때마다 감동적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할배 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 내 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스물 여덟자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수비 니겨 날로 쓰매 편안케 하고저 할 따라미니라.”

 

백성은 무지하고 정보에 어두울수록 지배하기 쉬운 법인데, 세종대왕은 오히려 백성들이 많은 정보를 습득하기를 소망했으니 존경스럽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덕분일까. 우리나라는 ‘공공기관 정보공개법’을 세계에서 12번째로, 아시아에서는 단연 첫번째로 채택한 자랑스러운 나라다.

 

인터넷의 발달로 가짜뉴스, 사이비 종교, 사이비 과학 등등이 자행하는 혹세무민도 더욱 기승을 부린다. 여기에 권력기관들까지 혹세무민에 뛰어드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모습들도 보인다. ‘아포칼립토’ 제사장이 벌이는 혹세무민의 질펀한 저주의 푸닥거리 굿판을 보면서, 적어도 국가기관이 축적한 지식과 정보만이라도 투명하게 모두에게 공개되는 나라를 소망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수처’ 설치 논란도 그리만 된다면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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