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Devils All The Time·2020년)’는 도널드 레이 폴록(Donald Ray Follock)의 동명 소설을 안토니오 캄포스(Antonio Campos) 감독이 영상으로 옮긴 미국의 ‘버려지고, 격리된’ 지역에 관한 보고서에 가깝다. 원작자인 폴록은 ‘버려진 채 잊힌’ 오하이오주州 남부 ‘노컴스티프(Knockemstiff)’라는 시골 출신으로 30년 넘게 그곳 제지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독특한 작가다. 그렇게 이 작품은 외부인의 시선이 아닌, 내부자의 뼈저린 경험에서 나온 작품으로, 여기엔 화려한 미국에서 소외되고 쇠락한 채 버려져 ‘유령의 땅’이 돼버린 지역의 절망과 무기력, 그리고 분노가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이 ‘늦깎이’ 작가의 첫 작품이 미국 내에서 대단한 반향을 이끌어냈고, 곧바로 캄포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원작자 폴록은 영화에도 직접 참여해 마치 ‘르포’처럼 내레이션이 유독 많은 이 영화에서 본인이 경험한 ‘유령들의 땅’의 절망감을 담담하게 육성으로 전달해 영화의 ‘리얼리티’를 더해준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1945년)부터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7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연내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연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인하 지시를 따를 인물로 선택한 케빈 워시 신임 의장 체제의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유지했다. 하지만 연준 위원들의 올해 말 금리 수준 전망치(점도표) 중간값은 3.8%로 지난 3월 직전 전망치(3.4%)보다 올라갔다. 연내 금리인상을 아무도 예상하지 않은 3월과 달리 이번에는 18명 위원 중 절반이 최소 1회 인상에 손들었다. 앞서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은 금리를 각각 0.25%포인트씩 올렸다. 바야흐로 세계 경제가 그동안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에서 긴축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신호다. 자산 거품을 잉태시킨 ‘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고금리 시대’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도 조만간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주요국의 통화정책 기조 전환은 중동전쟁발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올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져 통화정책 기조를 물가안정에 둬야 할 상황에 처했다. 미국과 이란간 종전 합의로 단기적인 원유 공급은 원활해지더라도 원유 생산이 전쟁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를 영화화한 ‘장미의 이름’은 마지막에 이르러야 기호記號의 반전을 보여준다. ‘기호’는 우리가 매일 접하면서 해석해야 하는 정보이고 사인(sign)이며 시그널(Signal)이다. 하지만 이런 기호를 잘못 수용하면 ‘망상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윌리엄 수도사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기인 안경까지 휴대하고 다니며 수도원 연쇄살인을 수사한다. 요즘으로 치면 ‘CSI급’ 과학수사다. 윌리엄 수도사는 동시대 실증주의 철학자인 윌리엄 오캄을 상징한다. 윌리엄 오캄은 당시 유럽에서 최초로 안경을 쓰고 모든 것을 철저하게 관찰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윌리엄이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죽어 있었던 사람은 벼랑에서 떨어져 시체로 발견된 삽화가 아델모 한명뿐이었다. 그때 광신적인 수도사 ‘알리나르도’가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로 윌리엄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속삭인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예언대로 흘러가는 것이오!” 근대적 합리주의와 기호학의 대가라 소개되는 윌리엄은 당연히 이 황당한 ‘요한계시록 프레임’을 비웃는다. 그런데 또다른 수도사 베난티오가 돼지 피 항아리에 처박혀 죽은 시체로 발견되자 윌리엄도 ‘요한계시록 프레임’에 걸려든다. 그러고 생각
‘-8%, 8%, -4%’. 장중 8900을 넘어서며 9천피에 근접했던 코스피지수의 지난 8~10일 등락률이다. 코스피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현기증 나는 장세를 이어가며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빚투(빚내서 투자)’가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어 우려를 더한다. KB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개인 마이너스통장 잔액이 약 43조원으로 2022년 11월 이후 3년 7개월 만의 최대치다. 특히 코스피가 급락하며 ‘검은 금요일’ ‘검은 월요일’을 초래한 5일과 8일 이틀에만 6000억원 넘게 불어났다. 은행 신용대출은 6개월간의 감소세를 깨고 증가로 돌아섰다. 코스피 조정 국면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신용대출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저가 매수에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개인들이 주식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올해 들어 10조원 넘게 불어나 38조원에 육박했다. 증시 급락 후 반등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증권사를 통해 빚으로 주식을 매수한 것으로 관측된다. ‘빚투’가 급증하는 와중에 증권사가 고객이 맡긴 주식을 강제로 매각하는 반대매매 규모도 커졌다. 특히 코스피가 큰 폭으로 급등락한 8~10일 반대매매 주식은 3일 연속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영상으로 옮긴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 유희극’이자 ‘지적 미로’와 같은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도서관장 호르헤 수도사가 설치해 놓은 미로 같은 기묘한 길을 어지럽게 돌아 마침내 ‘출구’에 도착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출구는 아니었다. 주인공인 윌리엄 수도사는 그것이 출구라고 생각했지만 최후의 파수꾼인 호르헤 수도사가 그 출구를 막아선다. 최후의 파수꾼 호르헤는 출구를 열어주느니 차라리 도서관을 불태워버리는 쪽을 택한다. 결국 윌리엄 수도사가 그 미로를 빠져나온 것은 출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불에 타 무너진 잔해를 헤치고 빠져나온 셈이다. 그제야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장미의 이름’인지 납득할 수 있게 된다. 호르헤 수도사가 미로의 끝자락에서 도서관을 모두 불태워버리면서까지 윌리엄 수도사와 ‘최후의 드잡이’를 벌인 이유는 바로 ‘이름’의 문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편’을 호르헤 수도사는 그토록 목숨 걸고 감추려고 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라면 수도원의 동료 수도사들을 거리낌 없이 독살할 수 있었던 것도 신앙이라는 이름을 수호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호르헤 수도사는 신앙인으로서 지켜야 할 ‘질서와 엄숙성’
제이누리 이정아 기자 기자 |6ㆍ3 지방선거에서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16개 광역단체장 중 12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은 4곳을 지켰다. 민주당 대 국민의힘의 종전 5 대 12 구도가 4년 만에 12 대 4로 뒤집혔다. 수치만 보면 지방권력의 중심축이 민주당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구ㆍ예산 규모와 정치적 상징성이 큰 서울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픽(pick)한 정원오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막판 역전패했다. 민주당의 압승 가늠자로 꼽혔던 대구와 경남에서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 14곳에선 민주당이 9곳, 국민의힘 4곳, 무소속 1곳을 차지했다. 당초 13석이었던 민주당 의석이 4석 줄었다. 특히 청와대 인공지능(AI) 미래기획 수석에서 차출된 하정우 후보가 부산북구갑에서 한동훈 무소속 후보에게 패했다. 이로써 민심은 출범 2년을 맞은 이재명 정부를 지원하면서도 여당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한편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거부한 국민의힘 지도부도 심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표율 61.0%로 역대 지방선거 중 2위를 기록한 이번 선거에 임한 유권자들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방송3사 출구조사에 기반을 둔
윌리엄 수도사와 그의 제자 아드소는 마치 피라미드 깊숙이 봉인해 놓은 파라오의 미라 도굴범 일당처럼 램프를 치켜들고 수도원 장서각의 ‘비밀의 방’을 찾아내려간다. 그 ‘비밀의 방’을 ‘아프리카의 끝(Finis Africae)’이라 명명한 것이 흥미롭다. 아마 14세기 유럽인에게 아프리카의 끝이란 아무도 도달할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던 모양이다. 장서관 ‘아프리카 방’에 봉인돼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편’이다. 수도원장 호르헤에게는 파라오의 미라처럼 절대로 세상에 나가서는 안 될 책이며, ‘도굴범’ 윌리엄 수도사에게는 반드시 끌고나가 백일하에 드러내놓고 세상에 공개해야 할 책이다. 윌리엄 수도사 개인의 공명심일 수도 있고, 칙칙한 중세유럽에 ‘웃음’을 전파해 사람들 얼굴에 웃음을 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일 수도 있겠지만,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는 윌리엄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아마도 공명심과 사명감이 혼합돼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의 욕망이란 대개 그러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희극편)을 아프리카의 끝 방에 농축우라늄처럼 은폐하고 있는 도서관장 수도사 이름이 ‘호르헤 부르고스(Jorge Burg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5월 26일 8000을 넘어섰던 코스피가 이틀 만인 28일 장중 8000 아래로 급락하며 한때 7840선까지 밀렸다. 미국이 이란 남부지역을 전격 공습하고 이란이 보복 공격에 나서며 중동전쟁 종식 기대감이 약화한 데다 외국인이 대거 주식을 매도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은 이날 2조8895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외국인은 코스피가 7000을 넘은 직후인 7일부터 역대 최장인 15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가며 차익을 실현했다. 이 기간 외국인의 누적 순매도 규모는 49조8506억원이다. 하루 평균 3조3233억원 꼴이다. 올해 들어 한국 증시 상승률은 압도적인 1위다. 하지만 그만큼 변동성도 크다. 소수 종목 중심으로 단기간에 급등한 데다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코스피의 절반을 넘는 등 쏠림이 과도해 차익 실현과 투매를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가 최근 계속 70선 위를 맴도는 것으로 입증된다. 28일 VKOSPI는 전장보다 1.16% 오른 71.60으로 장을 마쳤다. 장중
베네딕토 교단의 모든 정보가 저장돼 있던 수도원의 장서각은 윌리엄 수도사와 호르헤 수도사가 ‘알 권리’ ‘알지 않을 권리’를 둘러싸고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잿더미로 변한다. 호르헤 수도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편’을 ‘몰라도 되는 정보’ 정도가 아니라 ‘알아서는 안 될 정보’로 분류해 철저히 숨긴다. 반면 윌리엄 수도사는 이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해야 할 정보라고 판단한다 호르헤는 일반인(이하 신자)들은 인식이 미성숙해 ‘희극’을 접하면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반면, 윌리엄은 일반인들이 희극을 본다고 신을 경건하게 여기는 마음을 잃을 정도로 무지몽매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호르헤와 윌리엄의 격돌을 따라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 시민단체들과 정부가 벌이곤 하는 ‘정보공개’ 논란이 오버랩된다. 정보공개법 제정의 근본 논리는 “알지 못하는 국민은 지배받을 뿐이지만, 정보를 가진 국민은 주권을 행사한다”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명제를 제도화한 것이다. 국가권력의 원천인 국민에게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해 줌으로써 실질적인 민주사회를 완성하겠다는 철학이 그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윌리엄 수도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희극편을
성과급 배분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온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예정일을 1시간 30분 앞둔 20일 밤 극적으로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로써 최대 100조원대 손실과 반도체 생태계 및 공급망 훼손 등 국가적 경제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컸던 파업 사태의 봉합을 눈앞에 두게 됐다. 반도체 사업성과 10.5%를 상한 없이 전액 자사주로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반도체(DS) 부문 경영성과급 재원은 40%를 DS 부문 전체에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 60%를 사업부별로 나누기로 했다.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온 뒤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선 교섭에서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합의했다. 잠정 합의안이 노조 찬반투표를 통과하면 파업을 피할 수 있게 됐지만, 성과급 논쟁 후폭풍과 함께 우리 사회에 적잖은 숙제를 남겼다. 노사 교섭이 교착에 빠진 것은 반도체 부문 내 사업부별 성과급 배분 문제 때문이었다. 삼성전자 첫 공식 과반 노조의 요구는 영업이익 연동 방식의 성과급 ‘제도화’와 상한제 폐지였다. 적자를 낸 비메모리 사업부도 똑같은 성과급을 줘야 한다는 조건도 붙였다. 사측은 반도체 업황의 변동성 우려와 경영 부담을 이유로 반
영화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중세유럽 수도원에서 호르헤와 윌리엄이라는 당대 최고의 수도사들이 웃음에 관한 서로 다른 정보(information)와 지식(knowledge)을 놓고 벌이는 비극적인 소동극이다. 영화 속 도서관장인 호르헤 수도사는 ‘웃음’은 사악한 것이라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간직하고 있다. 호르헤에게 웃음이란 인간들에게 권장할 만한 것이라고 설파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론’은 끔찍한 불온문서일 수밖에 없다. 호르헤는 당연히 「시학」을 ‘이단의 문서’로 분류해 도서관 가장 깊은 방에 봉인해 버린다. 이는 우리가 다름과 낯섦을 대하는 일반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웃음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은 사악하지 않다’는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한 프란치스코 교단의 윌리엄 수도사가 마침내 그 「시학」을 봉인해제하기 위해 들이닥친다. 웃음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습득한 정보와 지식이 너무 낯설고 다르다. 호르헤와 윌리엄은 서로가 간직하고 있는 웃음의 정보와 지식을 모두 동원하면서 ‘최후의 담판’을 벌인다. 불행하게도 각자 간직하고 있는 정보와 지식에서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신학계의 거물들은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 결국 옥신각신하는
영화 ‘장미의 이름’은 이탈리아 북부의 어느 베네딕토 교단 수도원에서 교황청이 벌이는 아수라장을 보여준다. 이단 재판이 열리고, 엉뚱한 민초들이 ‘악마’로 몰려 화형당하고 그사이에 중세 지식의 요람인 수도원 장서각은 불탄다. 하지만 아수라장을 설계하고 총감독한 ‘최종 빌런’은 영화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사건을 쥐락펴락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196대 교황 요한 22세(Joannes XXIIㆍ1225~1334년ㆍ재위 1316~1334년)다. 영화 속에 험악한 모습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호르헤(Jorge) 수도사나 이단심판관 베르나르도 귀도(Bernardo Guido) 모두 요한 22세가 흔드는 실에 매달려 있는 꼭두각시들일 뿐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372년, 프란치스코 수도회 내 급진파(Spiritualsㆍ영성파)들은 ‘예수와 사도使徒들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앞세워 당시 교황청의 사치와 부패를 공격한다. 이들은 교회의 부와 권력을 비판하며 극단적인 무소유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과 요구대로라면 교황청은 당장 문 닫아야 할 궁지에 몰린다. 이 위기 상황에서 교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