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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신세계 (1)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2012년)’는 우선 영화제목이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세계’라는 이름은 어쩔 수 없이 백화점 상호 ‘신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설마 백화점 홍보가 아닌 이상 감독은 ‘신세계’라는 제목에 무슨 의미를 담고 싶어 했을지 궁금해진다.

 

 

백화점이 아니라면 ‘신세계’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또 다른 이미지는 미국 신대륙의 장엄함과 희망을 담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쯤이다. 또 다른 것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경고를 담은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도 있다. 그다음으론 서구사회에서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여전히 실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전세계 엘리트들의 비밀조직 ‘프리메이슨(Freemason)’이 표방하는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가 떠오른다.

 

물론 한동안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종교집단 ‘신천지’도 잠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영화 제목 ‘신세계’는 경찰 최고위 간부들이 비밀리에 벌이는 모험적인 범죄조직 소탕작전명이다. 아마도 거대범죄 조직을 일거에 소탕해 버림으로써 범죄조직 없는 ‘신세계’를 만들자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았는지도 모르겠다.

 

국내 최대 폭력조직인 ‘골드문’ 패거리들이 지하세계에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지상’으로 나와 재벌급 거대기업으로 발돋움하려 한다. 경찰 최고위층 몇몇 엘리트들은 그들을 그대로 놓아두면 미국의 마피아 조직처럼 국가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세력으로 뿌리내릴 것을 우려한다. 그런데 그 비밀스러운 소탕작전 계획이 다소 기발하다. ‘적진’에 경찰의 끄나풀을 꽂아 넣어 적들의 모든 기밀을 알아내고, 더 나아가 적진을 교란하고자 한다.

 

작전의 현장 지휘를 강과장(최민식)이 맡고, 강과장은 적진에 침투할 요원으로 경찰청 운전병 이자성(이정재)을 발탁한다. 요원 선발과정이 다소 의아하긴 하다. 고도의 정보원 훈련을 받은 최정예 경찰이 아닌 의경쯤으로 보이는 운전병을 발탁한다. 마치 지나가는 의경 불러세워 담배 심부름이라도 시키는 듯 한가롭다.

 

 

발탁 경위야 어찌 됐든 이자성은 철저히 신분을 숨기고 ‘골드문’ 조직에서 조직의 2인자 정청(황정민)의 옆에서 승승장구한다. 거의 조직 실세의 반열에까지 오르며, 조직의 기밀을 빼내어 강과장에게 충실히 전달하는 소위 ‘빨대’의 역할도 완벽히 수행한다. 이자성의 맹활약 덕이었는지, ‘골드문’ 조직에 내부균열과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그 와중에 골드문의 석동출 회장이 후계구도 3인자쯤으로 여겨지는 이중구(박성웅)에 의해 비명횡사한다. 당연히 골드문 조직은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소용돌이에 빠진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신세계’ 작전을 기획한 경찰청 지휘부는 아예 후계구도 투쟁에 전면개입해 ‘골드문’의 운명을 틀어쥘 궁리를 한다. 2인자인 정청과 3인자 이중구를 이간질하고, 둘이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고 머리 터지게 싸우게 만든다. 상황이 진행되면서 강과장은 자신이 심어놓은 ‘빨대’ 이자성도 차츰 믿지 못하게 된다.

 

8년간 ‘골드문’ 조직에 몸담으면서 이자성도 어쩔 수 없이 점점 경찰로서의 정체성보다는 ‘골드문’ 조직원이 돼간다. 조직이 제공하는 부와 권력에 익숙해지고 떨칠 수 없다. ‘골드문’의 격동기에 ‘경찰’ 이자성도 ‘골드문’ 회장직을 갈구한다. 자신의 ‘빨대’ 이자성을 믿지 못하게 된 강과장은 또 다른 머리를 굴린다. 후계자를 꿈도 꾸지 못하는 제3의 인물에게 접근해 그에게 경찰에 부역하는 대신 후계자 자리를 보장하기도 한다. 차츰 경찰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선 안 될 일의 경계가 무너지고 어지러워진다.

 

 

결국 강과장이 꿈꾼 조직범죄 없는 ‘신세계’는 열리지 않는다. 3인자 이중구는 2인자 정청을 죽이고, 이자성은 이중구를 죽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살아남은 이자성은 강과장이 걱정했던 대로 강과장이 옹립하고자 했던 제3의 인물도 제거하고, 강과장도 죽이고 ‘대망’의 ‘골드문’ 회장직에 오른다. 또한 골드문은 더욱 강력하고 일사불란한 범죄조직으로 거듭난다.

 

강과장이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같은 유토피아를 꿈꿨다면, 이자성은 강과장의 ‘신세계’ 꿈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디스토피아의 재앙으로 변질되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어쩌면 강과장은 프리메이슨처럼 엘리트 몇명이 작당해서 ‘신세계’를 창조하고 싶은 꿈을 꾸었기 때문에 그의 ‘신세계’의 꿈이 대재앙으로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꿈꾸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엘리트 몇명이 꿈꾸는 ‘신세계’도 오지 않는다. ‘신세계’는 모두가 함께 꿔야 가능한 꿈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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