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17’은 관객을 두번 배신한다. 첫번째 배신은 출연진에 이름을 올린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크 스트롱 같은 스타 배우들이 단역으로 지나가고, ‘무명 병사’처럼 생긴 무명 배우 2명이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두번째 배신은 명색이 ‘전쟁영화’인 ‘1917’의 전투장면이 제한적이고 조촐하다는 거다.
화끈한 대규모 전투 장면을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분명 ‘1917’은 어이없는 전쟁영화임에 분명하다. 그나마 전투장면이라면 영화의 마지막에 영국군 병사들이 일제히 참호를 기어나와 적진을 향해 포탄이 빗발치는 허허벌판을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달리는 장면뿐이다. 영국군 1개 사단의 전투력이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 한명에도 못 미친다.
한마디로 전쟁영화치고는 무척이나 따분하다. 그렇다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이 씨줄날줄로 정교하게 짜인 것도 아니다. 스토리라인 역시 지극히 단순하다. 1600명의 영국군 전방부대는 독일군이 퇴각한 것으로 판단하고 총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사진을 판독한 후방 지휘부 엘린모어 장군(콜린 퍼스)은 독일군의 퇴각이 영국군을 유인하기 위한 기만전술임을 파악하고 전방부대 맥켄지 대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급히 공격취소 명령을 하달해야 하는데 통신수단이 모두 끊겼다. 부득이 ‘인편’으로 명령을 전달해야 한다.
스코필드 상병과 블레이크 일병 두명의 병사가 ‘전령’으로 차출돼 독일군 점령지역을 돌파해 전방부대에 명령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떠난다. 비둘기 발목에 명령서 쪽지를 매달아 날려보내듯 품속에 명령서를 간직한 두명의 병사를 보낸다. 영화의 스토리라인이 지극히 단순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스토리의 중심에 ‘임무(duty)’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임무’가 되는 순간 그 외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단순하게 만들어 버린다. 인간적인 고뇌도 사라지고, 온갖 ‘경우의 수’도 삭제되고 갈등도 없다. 임무는 마치 ‘신의 의지’와 같은 절대명제가 돼버린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 하나하나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프레데릭 니체는 ‘임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거의 치를 떨 정도로 적대적이다. “자발적인 필요, 개인적 욕망과 기쁨이 없이 단지 그것이 ‘임무’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고 그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또 있을까?”
니체는 한발 더 나아가 고등교육이나 훈련이라는 것은 “인간을 기계로 바꾸기 위한 작업”이라고 평가한다. “인간을 기계로 만든다는 것은 결국 ‘지루함’을 견디게 하는 것이며, 인간의 기계화는 ‘임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기계가 아닌 인간이 자발적인 욕구가 아닌, 주어진 ‘임무’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 삶이 행복할 리 없다. 혹시 고도의 교육이나 훈련으로 ‘기계화’가 완성된 인간이라면 ‘임무’에 충실한 삶도 고통스럽거나 혹은 지루해서 몸부림치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며 ‘행복추구권’을 보장한다. 헌법 속에 들어간 ‘행복추구권’이라는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라 헌법 전체를 추상적으로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행복추구권’이란 한마디로 자신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다. 누군가에 의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임무’와는 상반된 개념이다.
천신만고 끝에 엘린모어 장군의 공격중지 명령을 맥켄지 대령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마친 스코필드 상병의 모습에서 기쁨을 찾아볼 수는 없다. 탈진한 모습으로 나무 밑에 앉아 품속에서 가족사진을 꺼내어 망연히 들여다본다. 스코필드 상병에게 ‘임무’란 마지못해 하는 것일 뿐, 자신의 행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임무’를 완수했다고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코필드 상병에게 ‘행복추구권’이 보장된다면 당장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뛰어가는 것뿐이다.
늦게 아들을 낳은 맥아더 장군은 아들에 대한 각별한 정을 ‘아들을 위한 기도문’에 담는다. 기도문에서 맥아더 장군은 아들이 “모든 위대함의 근본은 단순함(simplicity)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평생을 전장을 누빈 노장군의 지혜일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단순함’이 곧 ‘위대함’일까?
수많은 우리의 학생, 직장인들 모두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단순한 임무’에 충실하고 죽기살기로 완수해 나간다. 그런데 대부분 스코필드 상병처럼 행복하지는 않은 듯하다. ‘임무’와 ‘행복’이 따로 논다.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의 완성이 곧 ‘행복’으로 연결되는 사회라면 참 좋은 사회일 듯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