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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아포칼립토 (1)

‘아포칼립토(Apokalypto·2006)’는 영화배우로 익숙한 멜 깁슨이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대작 영화다. 배우가 순간적인 객기로 감독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멜 깁슨은 감독으로도 출중한 기량을 보여준다. 2004년 감독 데뷔작인 ‘예수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도 만만치 않은 기량을 뽐낸 바 있다.

 

 

아포칼립토는 미국에서 만든 ‘외국어 영화’ 같다. 모든 대사를 사라진 고대언어 ‘아람어’로 채웠던 2004년 작 ‘예수의 수난’처럼 ‘아포칼립토’에서도 사라진 마야 언어를 최대한 복원해 사용하고 영어 자막을 서비스했다. ‘자막 영화’ 보기를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는 미국 관객들에게 고집스럽게 영어 자막 영화를 들이대는 멜 깁슨의 오기와 원칙이 감탄스럽다.

 

메가폰을 잡은 멜 깁슨은 ‘아포칼립토’ 제작 의도를 역사학자이자 철학자 윌 듀런트(Will Durant)가 쓴 「묵시록」의 한 경구를 빌려 밝힌다. “하나의 위대한 문명은 내부로부터 먼저 붕괴되고, 그다음에 외부 세력에 정복당한다(A Great civilization is not conquered from without until it has destroyed itself from within).”

 

영화의 배경은 1510년께 지금의 과테말라나 멕시코 남부쯤이 될 어느 지역이다. 마야족 주민들이 곤한 잠에 빠진 새벽. 같은 마야족의 ‘노예상인 부대’가 들이닥쳐 쓸모없는 늙은이들을 대강 죽여버리고, 젊은 남녀들을 대나무에 굴비 엮듯 꿰어서 끌고 간다. 마을의 아이들은 모두 고아가 돼버린다. 부패한 마야 권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야 부족들끼리 생존 투쟁을 벌이게 만들고, 마야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마야족 노예상인들이 마을의 양민들을 포획해 끌고 간 곳은 인신공양의 사육제가 벌어지는 악명 높은 쿠쿨칸(Kukulkan) 피라미드 사원이다. 마야의 지배층은 나라에 안 좋은 일만 생기면 이곳에서 한바탕 생사람의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고 목을 잘라 피라미드 아래로 굴려버리는 인신공양의 잔혹극을 벌이곤 한다. 지배계층에 불만이 쌓여있던 ‘백성’들은 이 잔혹극을 축제처럼 즐기고 분노 게이지를 내리는 도구로 활용한다.

 

 

쿠쿨칸은 지금도 남아있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지만 혹시 갈 기회가 생겨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곳이다. 죄 없이 끌려와 속절없이 심장이 꺼내어지고 목이 잘려간 무수한 마야인의 원한이 서린 곳을 ‘관광’할 만한 염치도 배짱도 없다. 사육제의 장에는 마야의 귀족부터 비렁뱅이들까지 모두 모여든다. 기괴하고 화려한 복장과 화장을 한 귀족들은 풍요가 넘쳐난다.

 

귀한 과일도 한 입만 먹고 땅에 버린다. 그들이 먹다 버린 과일을 비렁뱅이(거지를 낮잡아 이르는 말)가 앞다퉈 주워 먹는다. ‘빌어먹을’ 기운도 ‘훔쳐먹을’ 기운도 없는 늙은이들은 시끄러운 길바닥에서 죽어간다. 부패한 지배계층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거대한 신전을 만들기 위해 인간들의 삶의 터전인 울창한 산림을 황폐화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신전 건축을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시멘트가 필요하다. 시멘트가 없던 시절 마야족들은 막대한 양의 회반죽을 생산하기 위해 나무 잿가루가 필요했다. 1톤(t)의 회반죽을 얻기 위해서는 5t의 나무를 태워야만 했다고 한다. 쿠쿨칸과 같은 거대한 신전을 짓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만한 크기의 산림이 사라졌을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신전 건축을 위한 산림의 훼손은 마야족의 종말을 재촉한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귀신처럼 하얀 횟가루를 뒤집어쓰고 횟가루를 만들고 반죽하고 나르던 노예들은 하나둘씩 피를 토하고 죽어간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혼돈의 유카탄 반도 어디쯤의 해안에 스페인의 거대한 전함이 나타난다. 노예상인에게 잡혀 쿠쿨칸으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주인공 ‘표범 발(Jaguar Paw)’이 전함의 모습을 바라보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더 깊은 숲속으로 숨어들어 가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흔히 찬란했던 마야 문명이 스페인의 무자비한 용병부대에 의해 멸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야사회의 내부가 먼저 붕괴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하나의 문명이 사라지진 않았을 듯하다.

 

북한이 우리의 주적主敵이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고, 요즘에는 중국이나 일본이야말로 우리의 주적이라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러나 누가 우리의 주적이냐를 고민하기 이전에 ‘우리 내부는 안녕한지’ 먼저 살피는 게 중요할 듯하다. 우리 내부만 안녕하다면 어떤 외부의 적이라도 함부로 우리를 넘보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영화 속에서 스페인 침공 이전에 이미 무너져내리던 마야사회의 몇몇 장면들이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들과 문득문득 오버랩돼 못내 찝찝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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