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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포레스트 검프 (5)

미국의 고질병은 흑백 인종문제다. 우리의 고질병은 남북분단과 좌우 이념대립이다. 시대를 이끄는 리더들이 가끔 “인종이나 이념은 하찮은 것”이라고 역설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인종과 이념을 두고 양쪽으로 갈라선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이 천동설을 버리고 지동설을 받아들인 것보다 이 문제가 더 어려워 보인다. 

 

 

포레스트 검프는 미국의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선물해준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상한 ‘개다리춤’을 추면서 혜성처럼 등장하고, 앨라배마에서는 흑인민권운동이 불붙는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한다. 핑퐁외교로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고, 애플이 컴퓨터로 ‘대박’을 치고 돈을 쓸어 담는다. 

 

그러고 보면 해방 이후 우리나라만 참으로 격동의 시대를 보낸 것 같지만 미국도 만만치 않다.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마다 포레스트 검프가 역사를 증언하는 증인으로 출연한다. 그 전개 방식이 꽤 신선하고 흥미로워서 우리나라 영화 ‘국제시장’에도 적용돼 재미를 선사한다.
미국 현대사의 큰 사건들 중에선 ‘총격 사건’이 빠질 수 없다.

 

1963년 검프가 미식축구부 장학생으로 재학하고 있는 앨라배마주의 조지 월레스 주지사가 총에 맞는다. 전원 백인인 앨라배마 주립대학에 ‘감히’ 흑인 학생 2명이 원서를 제출한다. 당연히 학교 측은 입학을 거부하지만 연방대법원은 흑인 학생의 손을 들어준다. 그래도 대학은 입학을 거부하고, 흑인 학생들은 등교를 강행한다. 조지 월레스 주지사가 주방위군을 이끌고 직접 대학에 나가 흑인 학생들을 막아선다. 케네디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의 판결마저 무시하는 앨라배마 대학에 연방 군대를 투입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인다. 

 

무장한 연방군의 호위 속에 흑인 여학생이 앨라배마 대학 교문을 들어선다. 포레스트 검프가 무심한 얼굴로 흑인 여학생이 떨어뜨린 책을 집어주는 장면이 뉴스에 나오고 잠시 후 백인들만의 ‘순결한 남부’를 지키려던 월레스 주지사가 총에 맞아 쓰러진다. 이 사건으로 남부 백인들의 돌아선 마음을 달래기 위해 텍사스 댈러스를 방문해 무개차(지붕 없는 차·gondola)를 타고 환한 얼굴로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던 케네디 대통령은 해병대 출신 오스왈드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5년 후인 1968년에는 대통령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던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도 총격을 받고 사망한다.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1968년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당한 해이기도 하다. 포드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도 있었고, 레이건 대통령도 총을 맞는다. 미국에만 대통령, 정치인, 사회지도자를 암살하는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여운형 선생, 김구 선생이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미국에 흑백 인종문제가 고질병이라면, 우리에게는 남북분단과 좌우의 이념대립이 고질병인 셈이다. 

 

마치 지구를 중심으로 온 우주가 돌아간다는 천동설처럼, 인종과 좌우 이념을 중심으로 온 세상이 돌아간다. 가끔 갈릴레오 같은 사람들이 인종이나 이념은 하찮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내지만 ‘종교재판’에 끌려가기 일쑤이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은 인종과 이념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천동설이 폐기되고 지동설이 받아들여지기보다도 더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과학혁명의 구조」란 저서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토머스 쿤(Thomas Khun)은 이렇게 주장했다. “하나의 고착화된 믿음은 변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착화된 믿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현상’이 점점 많이 발생하고, 그 믿음의 오류를 권위 있는 ‘과학집단(scientific community)’이 확인해주면 강고하던 패러다임도 비로소 교체될 수 있다.” 

 

 

흑백 인종이나 이념의 ‘미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이상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아울러 수많은 권위 있는 ‘과학집단’이 인종과 이념의 오류를 지적하고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종과 이념의 영역에서 패러다임의 대전환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토머스 쿤은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너무 많이 발생하면 그 패러다임은 설명 능력을 잃어버리고 폐기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 원리는 제아무리 탄력 좋은 고무줄이라도 무한정 늘어날 수 없는 이치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흑백인종과 좌우이념이라는 고무줄은 한없이 늘어나도 끊어지는 않는 마법의 고무줄인 모양이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도무지 끊어지지 않고 수많은 ‘이상현상’을 늠름하게 버텨낸다. 10㎝ 고무줄이 100m까지 늘어나는 마법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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