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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미나리 (4)

영화 ‘미나리’에서 5살짜리 꼬마 데이비드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데이비드가 등장하는 분량이나 영화를 이끌어가는 역할 모두 할머니 순자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을 능가하는 듯하다. 나이 어리다고 조연상 자격이 안 된다면 조금은 억울한 일이다.

 

 

데이비드의 존재감은 영화 포스터에서도 나타난다. 남녀 주연배우들을 모두 제치고 포스터에 단독으로 등장한다. 포스터에서 데이비드는 대형 성조기가 벽면을 덮은 농장 건물 배경의 풀밭 위를 나뭇가지를 들고 걸어오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나뭇가지다. 데이비드가 소중하게 들고 있는 구부러진 나뭇가지 하나에 영화의 핵심 주제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제이콥은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근근이 모은 돈과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을 합쳐 아칸소 외진 곳에 척박한 땅을 산다. 그렇게 농장주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다. 농장을 건설하려면 우선 물이 문제다. 우물을 파주겠다는 전문가가 두개의 나뭇가지를 들고 수맥을 찾아주지만 제이콥은 ‘그 따위’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방식에 코웃음을 친다.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그 따위 나뭇가지로 수맥을 찾는다는 것이 될 법한 일인가. 제이콥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물이 나올 만한 지점을 ‘자기 눈’으로 찾아 홀로 마른 땅을 파기 시작한다. 제이콥은 ‘눈에 보이지 않고’ ‘책에 나와 있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다. 제이콥의 집념 어린 땅파기 끝에 드디어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제이콥이 논리적으로 찾아낸 지점의 우물은 얼마 못 가 말라버리고, 농작물들도 타들어간다. 보다 못한 제이콥은 어쩔 수 없이 수돗물을 농경용수로 사용하는 극약처방을 한다. 결국 엄청난 수도세를 물지 못해 단수 조치당하고 농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우리는 통상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자신이 아는 것만 수긍한다. 그러나 제이콥의 우물처럼 세상은 자신의 ‘상식’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미나리’의 각본을 직접 쓰고 감독한 정이삭 감독의 ‘종교관’은 잘 모르겠고, 굳이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바람과 불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성경 말씀만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과 은혜도 중시하는 ‘은사주의(Pentecostal ism)’에 가까운 듯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은사주의’의 상징적인 인물은 제이콥의 농장 일을 도와주는 우직한 폴(Paul)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교회는 나가지 않는다. 그 대신 주일이면 혼자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메고 국도를 하염없이 걸으며 예수님과 성령을 체험하고 받아들인다.

 

뇌졸중으로 순자가 자리에 눕자 퇴마의식으로 악령을 쫓아주기도 한다. 폴이 정말 악령을 쫓아줬는지 순자는 차도를 보인다. 더불어 현대의학으로도 난감한 데이비드의 구멍 뚫린 심장은 ‘하늘의 은총’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게 저절로 메워진다.

 

은사주의의 상징물은 바람개비다. 미국 은사주의 교회에서는 오순절에 바람개비를 접는 작은 행사를 하곤 한다. 바람개비는 바람 없이는 돌지 못한다. 인간이 바람개비라면 바람은 ‘하늘의 뜻’이다. 농장을 일구겠다는 원대한 꿈과 단단한 의지를 품고 아칸소로 이주한 제이콥을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토네이도가 가둬버린다. 제이콥의 꿈과 의지, 노력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은사주의의 또 다른 메타포는 바람과 불씨다. 인간이 불씨라면 그 작은 불씨를 크게 키울 수도, 꺼버릴 수도 있는 것은 하늘의 뜻인 바람이다. 영화 속에서 할머니 순자는 농장의 쓰레기를 모아 드럼통에 넣고 태운다. 작은 불씨다. 

 

그러나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불이 가득한 드럼통이 쓰러진다. 그 거센 바람에 불씨들이 이리저리 옮겨붙어 제이콥이 천신만고 끝에 이룬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하늘의 뜻인 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감히 예측할 수도 없는 것이다.

 

 

MZ세대 혹은 2030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의 분노가 사회적 화두인 듯하다. 시험과 성적에 얽매여, 그리고 스펙을 쌓느라 잠 한번 편하게 자보지 못한 채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돌아오는 보상은 너무도 미미하고, 현실은 팍팍하고,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분노할 만하다. 그러니 공정과 정의를 외친다. 그러나 정작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면 그들 모두에게 원하는 만큼 보상이 돌아가고 밝은 미래가 열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서 우물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아무리 훌륭한 바람개비라도 바람이 불어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불을 피워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큰불이 될 수 없고, 기껏 피워놓은 불씨는 오히려 바람에 꺼져버리기 한다. 

 

그 바람이 불어올지, 언제 불어올지, 그 바람이 어떤 바람일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찌 보면 바람은 하늘의 뜻일 뿐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하고 나서 그저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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