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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미나리 (7)

미국에 건너가 맨땅에 헤딩하는 제이콥은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악착같이 모은 돈을 모두 털어넣고 은행 융자까지 얻어 아칸소 허허벌판에 땅을 마련한다. 그렇게 만들어낸 ‘농장주’의 꿈을 안고 그는 가족들을 이끌고 아칸소 촌구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농장주인을 향한 제이콥의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아칸소 벌판에 땅을 마련한 제이콥은 등골 빠지는 중노동에 시달린다. 제이콥 자신만 힘든 것도 아니다. 자신의 중노동은 그렇다 쳐도 사람 구경조차 어려운 아칸소 구석에 따라온 아들 데이비드와 딸 앤의 형편도 딱하다. 주변에 인가조차 없으니 함께 어울릴 또래가 없을 수밖에 없다. 학교가 끝나면 마지못해 시간을 때우는 학교 친구의 집에는 술주정뱅이 아빠가 상주한다. 주정뱅이답게 언행이 대단히 비교육적이다. 

 

무한경쟁시대의 막이 오른 1980년대 미국은 사교육 열풍이 불어 소위 ‘헬리콥터 맘’들이 극성스럽게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나르기 시작하던 때다. 학교 끝나면 학원은커녕 친구 집에서 친구 아빠 술주정을 받아주면서 시간을 때우는 데이비드의 학업과 진학이 암담하게 느껴진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따른다면 당장 좋은 ‘학군’으로 이사해야겠지만 제이콥은 그 모든 것을 외면하고 농장에만 엎어져 지낸다.

 

보기에 따라선 제이콥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이들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무책임하고 비정한 아빠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제이콥은 오히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희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는 자식들이 아버지와는 달리 ‘노예’의 삶이 아닌 ‘주인’의 삶을 살도록 해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눈 빠지게 병아리를 감별해 번 돈을 모두 털어 자식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더라도 그 소망이 이뤄지지 않는 세상이 됐다는 것도 눈치채고 있다. 제이콥이 한뼘씩 일궈나가는 농장의 크기는 50에이커(acre)다. 우리나라 평수로 환산하면 대략 여의도 면적의 1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큰 농장이다.[※참고: 1에이커는 약 4046㎡다.]

 

 

혼자 힘으로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농장으로 일구려면 제이콥의 일생을 모두 바쳐도 부족할 일이다. 그러나 그 농장을 물려받을 앤과 데이비드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농장주인으로 ‘신분상승’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대학 졸업장 따위는 없어도 무방하다. 어쩌면 보다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제이콥이 삽 한자루로 파고 있던 것은 우물이 아니라 자식들을 위한 신분상승의 통로였는지도 모르겠다.

 

신분상승의 길이 봉쇄된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오고 가는 자조 섞인 푸념이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신분상승의 루트는 딱 3가지밖에 없다. 첫째, 갑자기 친아버지로 밝혀진 노인이 남긴 거액의 유산. 둘째, 로또 당첨. 셋째, 대기업을 상대로 아무거나 소송을 걸어 거액의 보상금 뜯어내기.” 모두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이다. 그만큼 신분상승의 모든 통로가 닫혔다는 한탄으로 들린다.

 

신분상승의 길이 봉쇄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나타난 현상이 결혼과 출산율 감소 문제다. 젊은층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본가들의 노예가 될 게 뻔한 자식을 낳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100년 후쯤에는 ‘한민족’이라는 인종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리라는 종말론적인 으스스한 경고까지 나온다. 백가쟁명식 온갖 처방들이 제시되고 시행되지만 모두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백약이 무효다.

 

아마도 인구감소 문제를 가장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찾았던 역사적인 인물은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였던 듯하다. 구교와 신교의 갈등으로 30년간 유럽을 참혹한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30년 전쟁(1617~1648년)’이 끝난 후 패전국이었던 프로이센의 상황은 절박했다. 30년간의 전쟁통에 모두 죽어나가 농사지을 노동력도 공장에서 일할 노동력도 부족한 데다 나라를 지킬 병사의 수도 절대 부족했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없어질 것 같은 위기감이 몰려왔다. 머리를 싸매던 빌헬름 1세는 획기적이다 못해 거의 엽기적인 인구증가 정책을 수립하고 강력하게 실시한다. 외국인 이주자 우대정책을 펼친 것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간통죄와 강간죄를 철폐하고, 근친혼은 물론 근친상간까지 허용했다. 심지어 일부다처제를 의무화하기도 했다. 금욕생활을 엄금하고, 품행이 문란한 남녀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이 정도면 언 발에 오줌누기가 아니라 언 발을 화염방사기로 지져 버리는 대책이다. 한마디로 아기만 만든다면 모든 게 용서되고 애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은 죄악시된다. 믿기 어렵겠지만 ‘실화’다. 그 덕분이었는지 프로이센은 빌헬름 2세 시대에 유럽의 강국으로 다시 일어서고 독일 통일의 맹주가 된다.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빌헬름 1세의 엽기적인 출산장려 정책을 도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신분이동과 신분상승의 통로가 원천 봉쇄돼 ‘노예는 노예를 낳는’ 세상이 아닌 ‘노예도 주인을 낳는’ 세상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어느 것이 더 어려운 일인지는 모르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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