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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미션 (7)

영화 ‘미션’은 진정한 사랑에 관한 보고서다.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케임브리지대의 역사철학자 C. S. 루이스가 언급한 스토르게(storge), 필라(philla), 에로스(eros), 아가페(agape) 등 네가지 서로 다른 사랑을 검증하듯 말이다. 노예사냥꾼 멘도사의 사랑도, 가브리엘의 사랑도, 추기경의 사랑도 그렇게 그려진다.

 

 

영화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남미로 파견된 제수이트 교단의 한 신부가 과라니족에 의해 십자가에 묶여 이구아수 폭포 속으로 처박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시간에 스페인 용병 출신 노예사냥꾼 멘도사 대위는 숲속에서 과라니족들을 사냥해 마을로 끌고 가 팔아넘긴다. 그러나 무지막지한 노예사냥꾼에게도 사랑은 있다. 멘도사가 끔찍하게 사랑하는 약혼녀는 멘도사가 사냥을 나간 사이에 멘도사의 이복동생과 사랑에 빠진다. 

 

실의와 분노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멘도사는 이복동생을 죽여버린다. 순교와 살인 모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다. 가브리엘 신부 역시 ‘주님은 사랑이다(God is Love)’라는 요한복음의 말씀 한 자락을 붙들고 과라니족에게 처형당한 신부의 후임으로 자살특공대처럼 그곳 험지에 부임한다.

 

사랑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흔히들 여러 가지 색깔의 사랑을 뭉뚱그려서 love라고 칭한다. 아마도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케임브리지대의 역사철학자 C. S. 루이스(Lewis)는 사랑에는 4가지 서로 다른 사랑이 있다고 정리한다.

 

‘스토르게(storge)’는 혈연·가족 간의 사랑이다. 부모자식과 형제자매의 무조건적이고 끈끈한 사랑을 ‘스토르게적 사랑’의 전형으로 꼽는다. 모두 자신이 선택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고 이미 운명처럼 주어진 것들이다.

 

또 다른 사랑은 ‘필라(philla)’다. 필라는 우정과 같이 자신이 선택한 특정한 사람과 집단에게 느끼는 사랑이다. 사람은 동료와 소속집단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버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에로스(eros)’의 사랑도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이다. 아무 이성에게나 끌리고 빠져드는 ‘비너스(Venus)적 에로스’도 있고 단 하나의 이성만을 사랑하는 에로스의 사랑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가페(agape)’의 사랑이 있다. 말 그대로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사랑이다. 모든 다른 사람들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고, 모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랑이다.

 

 

어쨌거나 자신의 형제를 죽인 멘도사의 ‘에로스적 사랑’은 ‘스토르게적 사랑’을 뛰어넘은 듯하다. 형제를 살해한 후 깊은 회한에 빠진 멘도사는 가브리엘 신부를 따라 제수이트 교단에 투신해 과라니족과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필라적 사랑’을 느낀다. 이번에는 ‘에로스적 사랑’이 아닌 ‘필라적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분쟁지역이 돼버린 과라니 거주지역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교황청에서 파견된 알타미라노 추기경은 현지에 도착해서 우선 고린도 전서 13장의 소위 ‘사랑장’을 펼쳐 들고 묵독한다. ‘사랑의 실천’을 거듭 결의하는 성직자의 모습이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그들을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질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도 교만하지도 아니하느니라.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느니라.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알타미라노 추기경은 온유하고, 자랑하지도 교만하지도 않고, 무례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성내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도 않는다. 충분히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하는 성직자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지는 못한다. 자신의 ‘유익’도 포기하지 못한다. 결국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믿고 견디지는 못하고 과라니족에 대한 대학살에 눈을 감고 만다.

 

 

멘도사와 존 사제도 과라니족을 향한 ‘필라적 사랑’을 ‘아가페적 사랑’으로 승화하지 못한다. 멘도사와 존 사제는 교황청의 결정에 분노하고 ‘필라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총과 칼을 잡고 살인을 저지른다. 종종 애향심과 애국심은 세계평화의 적이기도 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군대에 맞서 다시 칼을 잡은 자신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달라는 멘도사에게 가브리엘 신부는 ‘네가 옳다면 나의 축복이 없어도 주님이 너를 축복할 것이며, 네가 틀렸다면 내가 축복해도 아무 소용없을 것’이라고 폭력을 축복하길 거부한다. 그러면서 폭력 앞에서조차 분노를 절제한다. 다만 “무력이 옳다면 사랑이 설 자리가 없다. 나는 그런 세상을 버틸 자신이 없다”는 말만 남긴다.

 

분노하는 대신 ‘버틸 자신이 없다’고 하는 가브리엘 신부의 사랑이 참으로 슬프다. 모두가 무엇인가를 사랑한다. 연인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이념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분노하고 거칠어지고 난폭해진다. ‘아가페적 사랑’에 도달하지 못한 사랑은 그렇게 파괴적이기도 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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