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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4)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문화충돌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듯하다. 1960년대 미국사회의 혼란기에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사회의 주류문화와 ‘히피’로 대표되는 미국사회의 비주류문화가 충돌한다. 그렇다면 히피의 반대주의(antism)는 1960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패권을 장악한 미국 사회는 자본주의 원칙이 우악스럽게 장악했다. 그 아래에서 과학기술 제일주의, 경쟁에 따른 성과주의와 업적주의, 금전만능주의, 문명을 향한 맹신에 가까운 찬양이 주류문화로 확고하게 자리잡는다. 이런 주류문화를 기반으로 사회는 극도로 보수화한다. 1960년대에 이르러 그에 따른 부작용과 반발이 폭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1960년대 미국사회 주류문화에 불만 있는 모든 사람이 ‘히피’라는 빅텐트 속으로 들어오다 보니 히피의 본질적 가치나 정체성이 무엇인지 사실상 모호하다. 주류에 반대하면 모두 환영받는다.

 

보수적 주류문화의 금욕주의에 반발하는 향락주의, 점진적 개혁보다는 혁명적 변화, 미국 주류사회를 건설한 선조들이 말살해버린 인디언 공동체 삶의 방식에 대한 동경, 기독교가 아닌 힌두교, 우파보다는 좌파, 이성의 가치보다는 감정이입, 과학적 사실보다는 신비주의, 국가와 사회보다는 개인과 자아, 객관성보다는 주관성 등등의 가치들이 모두 ‘좋아요’와 ‘엄지척’을 받고 빅텐트 속에서 어지럽게 동거한다.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문화이론가인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히피의 사상을 가난, 인디언적 삶의 방식, 신비주의, 전원田園주의, 공동체주의, 형제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삶, 깨달음과 각성, 개인주의로 요약한다. 존경할 만한 요점 정리 능력이다. 이는 영화 속에서 타란티노 감독이 보여주는 ‘히피 빌리지’의 모습이다. 주류문화에 치를 떠는 모든 이질적인 가치관이 모였지만, 그 잡다한 ‘식재료’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레시피’는 없다.

 

결국 ‘히피 빅텐트’는 허무주의와 초월주의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다. 존 레넌의 불후의 명곡 ‘이매진(Imagine)’은 히피들의 ‘로고송’ 격이다. 존 레넌은 ‘천국과 지옥도 없고, 국가도 없고, 종교도 없고, 목숨 바쳐 싸워야 할 것도 없고, 소유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좋은 얘기들이지만 허무와 초월이 주류문화를 대체할 사회이념이 될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색을 모두 뒤섞어 합쳐버리면 검은색밖에 나올 것이 없다. 모든 식재료를 뒤섞어버리면 ‘꿀꿀이죽’이다. 주류사회에 대한 실체적 부정과 대안 모색이 아닌 공허하고 자기파괴적인 탐닉만 남는다.

 

허무와 초월에 빠져 ‘히피 빌리지’에 모여든 남녀들은 마약을 빨고 밤새 섹스의 향락에 빠진다.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외부인에게 치켜드는 가운뎃손가락만 힘차다. 그들은 결국 아무 명분 없는 연쇄살인마가 되고 베벌리힐스 주택가에서 릭(디카프리오)과 클리프(브래드 피트)에게 허무하고 초월적인 죽임을 당한다.

 

히피운동은 안타깝게도 ‘주류문화 반대’에 머물렀을 뿐 ‘반대’를 뛰어넘어 주류문화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제국주의’가 야기하는 온갖 비극을 극복하고자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지만 제국주의를 극복할 수 없었듯이, 결국 히피운동은 미국 주류사회를 바꾸지는 못했다. 제국주의를 극복하려면 제국주의 없이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제국주의 폐단만 늘어놓는다고 제국주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주류문화를 향해 힘차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든다고 주류문화가 스스로 퇴장하고 아무에게나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아니다. 기존 제품에 아무리 문제점이 많아도 기존의 것보다 뛰어난 대체재가 제공되기 전까지는 기존의 제품을 쓸 수밖에 없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반문反文연합’이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오간다. 현 정부의 정책에 불만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빅 텐트’를 치자고도 한다. 누구든지 무슨 이유에서건 ‘문文’을 반대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힘을 합치자고 한다. 1960년대 미국 주류사회를 향한 히피들의 논리를 닮았다.

 

 

그런데 정작 히피들이 미국 주류문화에 대한 비난과 욕설로만 일관했을 뿐, 그것을 뛰어넘어 미국 자본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던 것처럼, ‘반문’이 모여 ‘문’을 대체하고 만들어 갈 것이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 주류문화의 반대로만 하면 미국은 보다 좋은 세상이 되었을까. ‘문’이 해왔던 모든 것을 거꾸로만 하면 우리나라는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일까.

 

‘반대주의(antism)’는 항상 불온하고 위험하다. 어떤 살인마가 장미꽃을 좋아했다면 우리는 정원의 장미꽃까지 모두 뽑아버려야 한다. 이승만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면, 김일성에게도 배울 것이 있고, 미국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일본과 중국에서도 배울 것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 모든 것을 ‘반공’ ‘반미’ ‘반일’ ‘반중’ 등 수많은 ‘antism’이란 이름으로 묻어버린다면 조금은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의 발전은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대화를 통해 발생하는 것이지 무조건적인 반대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헤겔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1960년대 미국 주류사회를 향해 무조건적인 반대를 외쳤던 히피들의 모습이 그야말로 ‘once upon a time’의 딴 세상 일 같지만은 않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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