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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독도 물질 (3) 마을 대소사도 의논하던 쉼터 '불턱'

 

해녀들도 엄격한 계급이 있다. 숨의 길이와 잠수 깊이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보통 해녀들은 잠수시간이 보통 1분 이내지만 상군 해녀는 2분 이상 숨을 참고 15m 깊이 이상까지도 내려간다. 이들 상군 중에서 덕망이 높고 기량이 특출한 해녀는 대상군이라 부른다(대상군은 명예직이라 할 수 있다). 중군은 8~10m, 하군은 5~7m 깊이 바다가 일터다.

 

60대 하군 해녀가 나이를 무기 삼아 40대 상군 해녀의 말을 무시하는 경우는 없다. 허락 없이 1㎝라도 먼저 바다에 들어가면 벌을 받는다. 혹여 금채기를 지키지 않고 바다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수확 해산물도 상군의 지시에 따라 나누어진다.

 

김옥순 해녀는 지금도 ‘할망 바당’에서 물질한다. 여기저기 아프다가도 물속에 들어가면 온갖 근심이 사라지고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이제는 다치고 아픈 데가 생겨 바다에 못 나오는 해녀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평대리에는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87세 고령 해녀도 있다.

 

제주 해녀는 해양 채집을 통해 경제 활동을 해온 제주 여성들로, 바다 밭의 제한된 공간에서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기술의 상·중·하에 관계없이 생산과 판매 분배를 공동으로 하는 공동체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다. 형식적으로는 능력 위주 계급이지만 이들 관계에는 평등과 약자를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이 스며 있다. 수확물을 나눌 땐 몸이 아파 물질을 나오지 못한 해녀 몫도 남겨둔다.

 

나이 든 해녀가 숨이 짧아지고 체력이 떨어져 하군이 되면 수심이 얕은 ‘할망 바당’으로 간다. 다른 해녀는 이곳에 들어가지 않는다. ‘할망(할머니)’이 손자에게 줄 용돈이라도 벌게 해주려는 속 깊은 배려다.

 

또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거나 다소 힘들게 작업하는 고령 해녀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상군 해녀들은 자신이 잡은 전복이나 소라를 물속에서 남모르게 망사리에 건네주거나, 혹은 특정한 공간을 지정해 작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게석’이란 이런 행위를 말하며 ‘할망 바당’이란 이런 공간을 의미한다.

 

지금도 제주도 전통오일장에는 ‘할망 바당’에서 유래한 ‘할망 장터’가 있다. 제주시 전통 오일시장 입구에 있는 ‘할망 장터’에서는 ‘우영 밭’에서 키운 채소나 과일, 들에서 캐온 산나물 들을 좌판에 놓고 판다. 일종의 제주판 ‘공유경제’라 할 수 있다.

 

‘할망 바당’과 함께 '애기 바당’도 있다. 본격적인 물질에 나가기 전, 어린 소녀들이 잠수를 배우는 가장 얕은 바다가 ‘애기 바당’이다. 그곳에서 어린 해안마을 소녀들이 물질을 배우고 익힌다. 아직은 바다가 서툰 아기 해녀나 오랜 세월을 입은 고단한 몸을 이끌고 바다에 나선 '할망' 해녀 망사리의 한 줌씩 잡은 해산물을 나눠주는 '게석' 문화는 잠수 중 수시로 안부를 확인하고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수눌음’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게 바로 제주 해녀의 공동체 문화라 할 수 있다.

 

 

‘불턱’은 해녀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제주 해녀만의 해방구이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다. 둥글게 돌담을 에워싼 형태로 가운데 불을 피워 바닷물로 젖은 몸을 덥혔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해녀들은 여기서 파도와 수온, 채취할 해산물, 잠수 영역 등을 논의해 정했다. 잠수 기술을 전수하는 장소이고, 또 회의를 진행해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공동작업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 1년에 2~3번 하는 바다 청소 ‘갯딱기’하는 날도 이곳에서 정했다. 학자들은 이를 해녀들의 ‘불턱 민주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또 해녀들은 마을 일부 어장을 ‘학교 바당’으로 정해 그곳에서 나오는 소득을 아이들 교육을 위해 사용하기도 했고 ‘이장 바당’을 만들어 그곳 바다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마을 일에 수고하는 이장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지금도 제주도 마을 곳곳과 학교에는 해녀송덕비가 있다(특히 온평리).

 

평대리 바닷가에서 만난 해녀 경력 61년 차 김옥순 해녀는 지난 해녀 생활을 이렇게 회고했다.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군대 갔다 돌아온 남편과 4녀 1남 낳고 고마운 ‘바당’ 물질 덕에 자식들 다 대학까지 공부시켰으며, 이제는 다 결혼하여(그중 딸 둘은 서울에서 살고 있고) 손주까지 대가족을 이루고 잘살고 있으니, 이제는 죽어 조상 전 가더라도 그리 못했다는 소린 안 듣겠나? 게다가 딸 넷 낳은 끝에 노심초사 얻은 아들이 제주시에 있는 방송국에 근무하고 있으니 어디 가서도 ‘그차락(그다지)’ 기는 안 죽고 살고 있다.”

 

요즘 제주 해녀의 직업과 소득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걱정하고 우려하는 소리가 있다. 하지만 해녀 문화와 해녀공동체로 관심을 돌린다면, 사정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오히려 정체성 위기의 시대, 듬직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 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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