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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한라산의 방주, 곶자왈 (1)

 

지난해 어린이날 연휴 사흘 동안 1m(정확히는 1023mm)가 넘는 ‘물 폭탄'이 한라산 삼각봉에 쏟아졌다. 하루 330mm가 넘는 폭우가 내렸다. 제주도 역대 5월 중 가장 많은 비다. 게다가 서귀포시 지역 강수량은 376.3mm이다. 이는 서귀포시에서는 1961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이 내린 비다. 종전 300mm 넘는 기록은 대부분 여름 장마나 태풍 내습 때였다.

 

이 정도 비가 내리면 다른 지방에서는 100% 물난리 난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슈퍼급 태풍이라면 모를까? 웬만큼 비가 많이 내려도 거의 물난리가 생기지 않는다. 내린 비가 대부분 건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거나 증발해 버리고 나머지는 지하로 스며든다.

 

한 선배가 있다. 그 무섭다는 남자 고등학교 1년 선배지만 왠지 만만해 보이는 형, 신장이 작고 몸이 왜소해 그렇기도 하지만 인상 자체가 순하고 착해 보여 더 그런 선배다. 그 형은 대학생 때부터 빗물이 지하로 스며드는 통로가 궁금했다. 결국 제주에 내린 많은 비가 지하로 스며드는 통로가 어디인지를 밝히는 연구에 인생을 걸었다.

 

“제주도가 아름다운 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島)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약 188만 년 전부터 1000년 전까지 제주를 제주답게 만들어 준 화산활동 때문이다.” 평소 그렇게 말씀하던 그 선배는 재작년 여름, 지질답사 현장에서 이번 생을 마감하고 전설이 되었다. 속담대로 라면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한 명도 안 온다. 그런데도 고인은 제주 도내 최초로 9개 시민사회, 교육, 환경단체 합동 환경시민장으로 모셔졌다.

 

지역사회의 공동체적 건강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생태적 건강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지역사회구성원으로서 다 같이 본받고 계승하자는 숙연한 분위기였다.

 

2000년 고(故) 송시태 박사는 <제주도 암괴상 아아용암류의 분포 및 암질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곶자왈 형성 과정을 과학적으로 세상에 처음 알렸다.

 

이 지질학 분석 논문에서 곶자왈로 이끈 연결고리는 지하수였다. 그는 용암 숲이라고도 불리는 곶자왈을 통해 스며든 물이 지하수가 되며, 곶자왈 곳곳이 남방계, 북방계 식물이 함께 공존하는 생태계 보고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나온 용암이 흘러내려 크고 작은 암괴(바위 덩어리)로 쪼개지면서 요철지형 만들어 곶자왈을 형성한다. 암괴 사이에 형성된 틈이 바로 ‘숨골’로 불리는 지하수 통로이다. 폭우가 쏟아져도 스펀지처럼 금방 흡수해버린다. 숨골로 들어간 빗물은 암반과 퇴적층 등을 거쳐 지하에 쌓이면서 지하수가 된다.

 

‘숨골’은 동굴지대 곳곳에 여러 요인으로 형성된 균열로 빗물이 여기를 통하여 지하로 들어가 동굴을 흐르고 지하수를 형성한다. 동굴지대에 숨골이 없다면 물이 지하로 빠지는 통로가 없어 홍수 피해가 나고 지하수도 형성되지 않는다. 바로 숨골이 곶자왈처럼 지하수 보전 1등급으로 지정된 이유다.

 

신(神)이 제주도민에게 준 보물

 

제주어로 '곶(곳)’은 숲이나 산 밑에 숲이 우거진 곳, 마을과 멀리 떨어진 잡목 따위가 우거진 들이나 산을 의미한다. ‘자왈(자월)’이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어수선하게 된 곳을 말한다. ‘곶’은 제주어로 고지, 골밧, 곶, 곶산, 술, 숨풀, 숨벌, 자왈 등으로도 불리며, 한자로는 ‘수(藪)’로 표기했다.

 

지리학적으로 곶자왈은 “가시덤불과 나무들이 혼재한 곶(洞藪, 磊林)과 토심 얕은 황무지인 자왈(磊野: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들판)이 결합 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암괴로 쪼개져 요철지형이 만들어지면서 나무, 덩굴식물 등이 뒤섞여 원시림의 숲을 이룬 곳으로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며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

 

2012년 제주에서 열렸던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관계자들이 곶자왈은 “신(神)이 제주도민에게 준 보물(God jewel)”이라며 극찬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짐녕곶(金寧藪, 김녕곶, 제주성 동쪽 55리에 위치, 둘레 50여 리), 고막곶(尒馬藪, 제주성 동쪽 79리에 위치, 둘레 20리), 개리모살곶(介里沙藪, 제주성 서쪽 75리에 위치), 궷드르곶(怪叱坪藪, 제주성 동남쪽 23리에 위치), 맞가리곶(末叱加里藪, 제주성 동쪽 31리에 위치), 한ᄃᆞ리곶(大橋藪, 정의현 동쪽 17리에 위치)과 한곶(大藪, 정의현 남쪽 4리에 위치) 등 곶자왈 관련 지명이 나온다.

 

『남사록』(김상헌, 1601년 9월 22일)에는,

 

“두 개의 큰 곶을 뚫고 가는데 하나는 4~5리를 가고 또 하나는 3~4리였다. 모두 수목이 하늘을 덮고 있다. 섬 안에 여러 곶이 매우 많은데 둘레가 50여 리 되는 것도 있다. 그 곶에는 상수리나무(相梅), 무환자나무(無灰木), 산유자나무(山柚子), 녹각(鹿角), 소나무, 참나무, 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노목 등 여러 가지 초목들이 울창하다.”

 

라고 하여 곶자왈 지역에 자라는 나무의 이름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그 나무들은 지금도 곶자왈에서 자라고 있다.

 

『탐라순력도』(1702년)「한라장촉」에도 곶자왈을 나타내는 지명과 지역이 있다. 조천 함덕 곶자왈과 구좌 성산 곶자왈이다. 저목수(楮木藪, 닥남곶, 제주시 회천동), 우수(竽藪, 우진곶, 조천읍 선흘2리), 고마수(亇馬藪, 고마곶 또는 고막곶, 구좌읍 종달리) 등이 나타나 있다.

 

『해동지도』(1750년경)「제주삼현도」에서도 곶자왈과 관련된 지명을 발견할 수 있다. 조천읍 선흘2리 우장수(竽長藪, 우진곶)를 비롯하여 구좌읍 저목수(닥남곶), 김녕수(짐녕곶), 묘수(猫藪, 궷드르곶, 구좌읍 한동리) 및 이마수(고막곶) 등이다.

 

곶자왈 분포 지대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한경·안덕 곶자왈 지대, 애월 곶자왈 지대,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 구좌·성산 곶자왈 지대 등 4곳으로 나뉜다.

 

이를 다시 용암의 흐름에 따라 한경·안덕 곶자왈은 월림·신평 곶자왈과 상창·화순 곶자왈로, 조천·함덕 곶자왈은 함덕·와산 곶자왈, 대흘 곶자왈, 선흘 곶자왈로, 구좌·성산 곶자왈은 종달·한동 곶자왈, 세화 곶자왈, 상도·하도 곶자왈, 수산 곶자왈로 구분하고 애월 곶자왈을 포함하여 모두 10개 지역으로 나누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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