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행차 [제주도 제공]](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626/art_17509278666129_52b996.jpg)
어릴 적 난 ‘도감’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줄 알았다. 작은이모 잔치 때도 ‘도감 하르방’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그만큼 도감의 위세가 등등했다.
『제주도의 도감 의례』를 쓴 제주여성가족연구원 문순덕 원장에 의하면 "도감(都監)은 원래 혼례와 상례 때 모든 의식을 총괄하는 감독관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돼지고기를 썰어 분배하는 사람의 의미로 축소됐다"고 했다. 돼지 한 마리든 두 마리든 하객에게 공평히 고기를 골고루 나누는 게 ‘도감’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군에 있을 때도 농반진반으로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도감은 삶은 돼지고기 등의 총량을 계산하고, 대접할 예상 손님을 계산하여 알려주면 거기에 맞추어 과부족이 없도록 책임지고 정확히 내쳐야 한다. 그래서 예전 우리 동네에서는 성격이 칼 같고 혼주와도 맞설 수 있는 소신 있는 중년 이상의 남자를 골라 맡겼다. ‘도감 어른’은 아무리 혼주라도, 자기 마음대로 고기 반을 가지고 갈 수 없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가문잔치’는 마련한 음식을 친지와 하객들에게 접대하는 날로 결혼 날보다도 더 축하객이 많고 바쁜 날이다. 부조도 이날 한다. 결혼식에 참가하지 못하더라도 이날만은 마을 주민들도 찾아와 축하와 함께 부조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반드시 참여했다. 하객들은 이를 ‘잔치 먹으래 간다'라 했다.
‘ᄆᆞᆷ국’을 끊일 때도 물이 많이 필요하다. ‘ᄆᆞᆷ’은 ‘모자반'이란 해조류를 뜻하는 제주어다. ‘도감 하르방’ 지시에 따라 거대한 가마솥에 돼지를 부위별로 삶아내고 순대를 삶으면 국물이 진국이 된다. 이 돼지고기 삶은 육수에 피, 내장, 메밀가루, 모자반을 넣고 밤새 끓이면 ᄆᆞᆷ국이 된다. 준비가 끝나면 그날 저녁 친인척과 마을 사람들을 모시고 접대했다.
그렇게 끓여낸 ᄆᆞᆷ국과 함께 ‘초불밥’과 ‘괴기반’을 차려 손님을 치른다. 가문잔치가 시작된다. 초불밥은 잔칫날 지은 첫 밥이라는 뜻이다. 괴기반에 ‘반’은 접시를 뜻하며 ‘괴기’는 고기를 말한다. 한 사람 ‘직시(몫)’의 고기를 담은 접시라는 의미가 된다.
괴기반에는 돼지고기 석 점과 ‘수애’(순대) 한 점, 마른 두부 한 점을 놓아줬다. 하객 한 사람 몫의 음식으로 밥, 국과 한두 가지 반찬과 함께 괴기반을 나눠줬다. 마을 사람 중 아프거나 연로해 참석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 편에 들려 보냈다. 이를 ‘반 태운다’라고 했다.
혼인 당일은 아침에 문전제(門前祭)와 조상제사를 지낸다. 문전제는 ‘문제’ 혹은 ‘문전고사(門前告祀)’라고도 했다. 고사상 위에 잔치 음식을 진설하고 돼지머리를 올린 다음, 상방(마루)에서 대문 쪽을 향해 지낸다. 가내의 주신인 문전신(門前神)에게 고하는 의례다. 절을 올리고 잡식(상에 진설된 음식을 술잔에 모두 조금씩 떼어 놓음)한 다음, ‘걸맹’(걸명, 잡식을 올레인 대문간 쪽에 뿌림) 한다. 문전제 지낸 뒤에는 방 안에 들어가 제사상 앞에서 새 식구 맞이를 고하는 제를 조상에게 드렸다.
혼인 당일에 신랑과 함께 신부를 데리러 가는 일행은 ‘우시’ 2인(집안에 따라 3~4인), 마을 하인(마을의 궂은일을 맡아 하는 동네 하인), '하님'(마을 하인의 처) 1인 등이다. 우시는 신랑을 데리고 가는 상객으로 성펜궨당 중에서 삼촌이나 당숙 같은 근친 한 명, 외삼촌이나 외사촌 형 같은 외펜궨당 한 명이다. 성펜궨당을 ‘수우시’라 하며 관할 하는 행사의 모든 책임을 진다. 남성과 함께 여성도 참여하며, 여성 우시는 젊은 숙모, 고모나 이모 또는 신랑의 누나 등이다. 우시로 여성과 외삼촌 또는 이모 같은 외펜궨당이 동행하여, 부계친과 외척 및 남성과 여성이 대등한 자격으로 참여했다.
신랑과 궨당들이 신붓집에 도착하여 ‘홍세함’을 전달하면 예장 검열을 했다. 신부 부친이 먼저 예장을 읽어보고 신부 측 웃어른들에게 보인다. 예장에 하자가 있으면 받을 수 없다고 정중하게 물린다. 그러면 신랑이 말 위에 앉은 채로 다시 써야 하는데, 신랑 대신 ‘수우시(선임우시)’가 지필묵을 꺼내 작성하기도 한다. 예장 서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 후 이를 접수한다.
예장이 접수되고 신붓집의 ‘문전고사’가 끝나야 신랑과 우시는 말에서 내릴 수 있다. 신랑이 신랑 방으로 들어가면 ‘ᄀᆞ진상’이라 하는 상이 준비되어 있다. ᄀᆞ진상은 잘 갖추어진 상이라는 뜻이다. 지역에 따라 ‘도임상’, ‘도림상’, ‘식반’, ‘식상’이라고도 한다. 혼인날 신랑이 신붓집에서, 신부가 신랑 집에서 받는, 격식을 갖추어 차린 큰 상이다.
신랑이 ᄀᆞ진상을 받으면 하님이 신랑 상에서 밥을 세 숟가락 떠서 밥상 밑에 놓는다. 이를 ‘코시’라고 한다. 잡귀의 범접을 막는 행위이다. 우시로 온 여성 친족들은 신붓집(신랑집도 같음)에서 차려놓은 음식을 싸고 돌아가서 사돈댁 잔치 음식이라며 보고했다. 그러면 이 음식을 일하는 동네 사람과 근친들이 나누어 먹으면서 음식에 대해 평하거나 그 집안의 기풍을 논하기도 했다.
신랑과 우시들이 식사를 마치면 ‘사돈 열맹’을 위해 마루로 나온다. 사돈 열맹은 신랑 측과 신부 측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행사로, 양측에서 두 번 한다. 이는 신랑 측 우시들과 신부 측 근친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고, 서로 사돈을 맺게 됨을 축하하는 행사다. 사돈 열맹은 먼저 신붓집에서 하는데, 마루 중앙에 주안상을 차린다. 신랑과 신랑 측의 우시, 신부의 부모·조부모·삼촌·고모·외삼촌·이모 등 다수의 남녀 친척으로 구성된 성펜궨당과 외펜궨당들이 소개된다.
신부 쪽도 신랑 측에서 온 우시와 숫자나 구성을 비슷하게 갖추어 함께 신랑 집으로 간다. 즉 신부의 부친을 포함한 성펜과 외펜에서 남녀 궨당 네다섯 명 정도 동행한다. 신랑 일행과 신부 측 우시들이 신부를 가마에 태우고 신랑 집에 가서, 신부는 신부방에서 ᄀᆞ진상을 받고, 신부 측 우시들은 신랑 측의 중방 등이 음식을 대접한다.

신부한테 ᄀᆞ진상을 가져가는 사람은 하님이나 다복한 손윗동서, ‘예펜 삼촌’(숙모)이다. 신부 상은 아무리 무거워도 일단 들면 신부 앞에 놓을 때까지 다른 곳에,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신부는 밥 세 숟가락만 먹고 상을 물린다. 남은 음식은 대반이 방문 앞에서 구경하는 아이들 손에 한 숟가락씩 떠 준다.
잔치를 치르고 난 후에는 사돈끼리만 신붓집과 신랑집을 서로 방문하여 당사돈끼리 인사를 나누는 ‘사돈잔치’를 한다. 잔치 다음 날 신랑·신부와 신랑 부친은 돼지고기, 술 등 음식을 준비하고 신붓집으로 가서 사돈잔치를 한다. 사돈잔치는 ‘두불 잔치’라고 하는데, 이는 신랑집과 신붓집에서 각각 이루어지므로 두 번의 잔치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다. 신랑 부친은 물론 신랑의 형제나 삼촌 등 근친이 참석하기도 한다. 사돈잔치를 한 후 신부 부친과 친척들은 돌아간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