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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독도 물질 (2) 제주 해녀, 바다물질로 밭을 사다

 

한반도에 출가한 해녀 분포를 보면, 동해안 지역이 가장 조밀하며 북서부 해안지대가 그다음 남부 해안지역, 북부 해안지역 순으로 분포되어 있다.

 

주로 해안지형 및 해저지형, 조류, 풍향 등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출가 해녀 분포 현황 역시 동해안 지역은 없고 태평양 연안에 편재(偏在)되어 있었다.

 

토지가 척박하여 토지 생산성이 낮고 농가 부업이 활발하지 않았던 제주에서는 해녀 물질이야말로 현금화 비율이 가장 높은 부업이었다. 게다가 생산물 전부가 판매되었기 때문에 현금화 비율이 높다. 감귤 경제가 보편화 되기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필요한 현금 대부분이 해녀 소득으로 충당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중국 칭다오에도 80여 명 제주 해녀가 물질 갔었다. 이들은 5월에 칭다오로 가서 8월 추석 전에 고향에 돌아왔는데, 당시 소학교 교사 봉급이 40원이던 시절 무려 평균 300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1970년 두 달간 독도 물질을 마치고 오면서 김옥순 해녀는 50만~60만 원 정도를 벌어 왔다. 그 돈으로 600평 밭을 샀는데, 지금도 그곳에서 농사짓고 있다. 1970년 국민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은 9만 원이다. 라면 5봉지가 100원이던 시절이다. 현재 구좌읍 평대리 마을 밭의 매매 가격은 ㎡당 9만 원 정도이다.

 

제주에서는 여아가 8세가 되면 바닷물에 들어가는 연습을 시작하여 10세 되면 어머니에게서 ‘테왁’을 받고 14세 되면 안경, 호미, 빗창을 얻어 본격적으로 물질한다. 16세 되면 해녀조합의 정식 회원이 되어, 이후 50세까지 계속 회원 자격을 유지한다. 16세부터 35~36세까지가 제주 해녀의 전성기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23세에 독도 물질을 다녀온 김옥순 해녀가 처음 바다에 든 건 17세 때다. 세화리에서 태어나서 물질 경험이 없는 그녀는 당초 다른 해녀들의 ‘아기 업게(업저지)’로 충무 어느 섬으로 갔다. 당시는 어린 자식들은 데리고 가는 해녀들이 있어서 그 아이들을 돌봐 줄 겸 따라갔었다. 가서 보니 생각보다 물이 깊지 않고 무엇보다 물질하여 번 소득이 짭짤했던 터라 그 동네 사람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그녀는 바다에 들었다고 했다.

 

제주 ‘ᄌᆞᆷ녀(해녀)’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또한 임신과 생리 기간을 가리지 않고, 사시사철 물에 들었다. 보름마다 되풀이되는 무수기(썰물 때와 밀물 때의 물 높이의 차)에 따라 조금 전후한 엿새나 이레쯤 물질을 잠시 쉰다. 대략 15일에서 20일까지 물질을 했다.

 

물속에 잠수해 있는 시간은 1분 5초에서 1분 50초가 평균이다. 최고 3분까지 가능하다. 20m 물속까지 내려갈 수는 있지만 대부분 수중 5.5m에서 작업한다. 이 잠수를 30회에서 70회 정도 반복하여 작업하고 난 후 뭍으로 올라온다. 그리곤 해안가에 있는 ‘불텈’에서 몸을 따뜻하게 한 다음 다시 작업하러 물속으로 들어갔다. 보통 하루 3회 또는 4회 정도 반복했다.

 

해녀의 연중 작업 일정은 해산물 채취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해삼은 1~4월, 전복은 5~8월, 천초는 1~3월, 미역은 2~5월(마을 규약에 따라 1~4월, 3월 중순~4월)로 연중 내내 작업했다. 3월에서 9월까지 작업 일수가 가장 많다.

 

제주 농촌에서는 농번기와 해산물 채취기가 겹칠 때가 많다. 그래서 제주 해녀들은 농사와 물질을 같이 해야만 했다. 대부분 제주 해녀들은 자기 밭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옥순 해녀가 독도 물질을 다녀와 번 돈으로 600평 밭을 샀던 경우처럼 대부분 해녀는 물질해 모은 돈으로 밭을 산다.

 

이래저래 제주 해녀 물질은 농사와 관련이 많다. 제주 해녀들은 해산물, 즉 해조류와 조개류 등의 채취뿐 아니라 비료로 활용할 수 있는 ‘둠북(모자반)’도 채취했다. 화학비료가 나오기 전 전통 제주농업에서 비료로 쓸 수 있는 재료가 많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둠북’같은 해초류 비료의 채취는 토지가 비옥하지 않았던 제주농업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제주 해녀 공동체성의 역사적 기원은 물질의 시초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제주 해녀공동체는 자연 발생으로 생겨난 공동체 특성을 관행 혹은 관습으로 제도화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근대 이전부터 확보해나갔다. 물질작업의 경계와 생산량에 대해 논의를 하는 의사결정부터 시기에 따라 채취를 금지하는 ‘금채’나 공동체의 의무로 부과되는 바다 어장의 건강성과 지속성 확보를 위한 ‘갯닦기’를 포함했다.

 

‘갯닦기(개딱이·개닦이)'란 밭에 김을 매듯이 어촌에서도 가을철 미역 포자가 해안가 갯바위에 쉽게 뿌리내려 어린 포자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갯바위에 붙은 각종 해조류나 이끼 등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봄철에 질 좋은 자연산 돌미역을 생산하게 된다. 마을 해녀들에게 마을 어장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금채’나 ‘갯닦기’와 같은 의무를 부과하면서 동시에 공동분배를 통해 참여를 높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 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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