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운폴’이 2004년 유럽에서 개봉했을 때 일부 관객의 거센 비난과 항의에 직면한다. 전체적으로 히틀러를 광기에 휩싸인 ‘악마’로 묘사하기는 했지만, 몇몇 장면에서 보여준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객들이 분노했다. 영화 속에서 히틀러는 자살하기 전날 에바 브라운과 순애보 같은 결혼식을 올린다. 여비서 드라우틀 융에에게 유언장 구술을 마치고, 부관들에게 자신의 시신처리에 관한 마지막 지시를 하고, 최측근들과 질식할 듯한 침묵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주방 아줌마’들을 찾아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일일이 손잡아 주고 감사인사를 전하고, 끝까지 자신을 ‘모셨던’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도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전한다. 이 장면들만 떼어놓고 보면 범인(凡人)이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대단히 품위 있고 인간적인 장면들이다. 히틀러의 손을 잡은 사람들 모두 눈시울을 적신다. 히틀러는 순도 100%의 악마로 ‘낙인’찍어 역사 속에 ‘봉인’해 놓아야 한다고 믿는 많은 관객이 이 장면들에 거부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세계 역사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악마적 권력자나 전쟁광이 명멸했지만 그들에게도 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히틀러는 분명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전 유럽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또 누군가를열광하게 만든 인물이다. 가치중립적으로 말하자면 ‘인물은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 ‘다운폴’이 생생하게 재현해주는 히틀러의 마지막 14일간의 영상기록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54세라는 나이보다 최소한 10년쯤 조로(早老)한 모습에, 파킨슨병에 걸려 한 손을 떨어대며 ‘노염’을 잘 타는 그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장례식도 없이 대충 파놓은 구덩이 속에 던져져 휘발유 불에 타는 둥 마는 둥 세상과 하직한다. 1927년 오스트리아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가 「인류의 별의 순간들(Sternstunde der Mensch heit)」이라는 책에서 ‘미래세계의 운명을 바꿀 만한 위대한 결정이나 사건이 이뤄지는 특별하고 짧은 순간’을 은유적으로 ‘별의 순간(슈테른슈툰데·Sternstunde)’이라고 칭해 많은 독어권 국가들 독자들에게 환영받았다. 히틀러도 그가 승승장구하던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당시의 정치평론가들로부터 별의 순간을 잡은 사내로 일컬어졌던 인물이다. 츠바이크의 「인류의 별의 순간」이라
히틀러가 마지막 14일간 지냈던 소위 ‘퓌러붕커’ 지하방공호는 최후의 저항이나 반격을 위한 요새라기보다는 히틀러의 무덤에 가깝다. 히틀러나 그의 참모, 장군들 모두 말은 안 하지만 자신들이 이미 무덤에 들어온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퓌러붕커’ 지하방공호에서 히틀러는 쉼 없이 대책없는 대책회의를 소집한다. 참모들과 장군들은 회의탁자에 펼쳐놓은 대형 유럽지도에서 막다른 골목과 같은 베를린이라는 작은 점에 시선을 고정한다. 베를린과 지하벙커만이라도 지켜낼 수 있는지가 절박한 관심사다. 그런데 정작 회의의 좌장 히틀러는 ‘베를린 사수’ 이슈에 집중하지 못한다. 히틀러의 시선은 독일 동부 국경 너머 동유럽과 광활한 소련 영토를 몽유병자처럼 헤맨다. 그 광활한 땅이 바로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킨 목표이자 독일인들을 열광시켰던 소위 ‘레벤스라움(Lebensraum)’이다. 레벤스라움이라는 개념은 ‘Leben+raum’이고 영어로 직역하면 ‘리빙룸(living room)’이고 우리말로 하면 ‘안방’쯤 되겠다. 말 그대로 동유럽과 사람이 살 만한 소련 서부지역 땅을 모두 빼앗아 독일의 안방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영국·프랑스에
영화 ‘다운폴’은 히틀러가 마지막 14일간 보낸 지하벙커에서 극한으로 치닫는 그의 ‘광기’를 담담하게 비춘다. 히틀러의 광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아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걸 알려주려는 것 같다. 지하벙커 속으로 히틀러와 동행한 나치 최고위 간부들과 장군들도 ‘그러려니’ 하고 체념한 듯한 모습들이다. 나치당 당수 시절부터 보여준 히틀러의 광기는 많은 사람의 분노와 반발을 불러일으켜 히틀러가 자살하기 전까지 무려 42회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하니 가히 ‘암살 위기 많이 넘긴 사람’ 기네스북에 남을 만한 인물이다. 오죽하면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2008년 ‘히틀러를 죽이는 42가지 방법(42 Ways to Kill Hitler)’이라는 제목의 역사재현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까. 결론은 히틀러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43번째 방법인 자살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독일인들이 유난히 암살에 서툰 민족인지 히틀러가 하느님이 보우하시는 특별한 인물이어서인지는 알 수 없다. 혹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검절약한다고 담뱃불로 담뱃불을 붙여주는 정도의 융통성도 없어서 사람이 셋 이상 모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두곤 60분 회의하면 59분 동안 마이크를 독점한다는 수군거림이 있었다. 헌법재판소에 탄핵 피청구인으로 서서도 80분간 마이크를 놓지 않는 모습을 모두가 보기도 했다. 영화 ‘다운폴’ 속 히틀러도 그에 못지않다. 지하벙커 속에서 절망적인 마지막 14일 동안 히틀러는 모든 발언을 독점하고 끝없이 ‘한탄’과 ‘샤우팅’을 반복한다. 히틀러는 유언장도 1부와 2부로 장황하게 작성해 놓고도 나치의 합참의장이었던 빌헬름 카이텔(Wilhelm Keitel) 장군에게 보내는 또 다른 유언장을 작성한다. 히틀러 본인 서명이 들어간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 문서다. 참으로 할 말이 많았던 인물이다. 그 유언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민족과 독일군은 이 길고도 힘든 싸움에서 모든 것을 마지막까지 바쳤다. 그 희생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나의 신뢰를 악용했다. 전쟁을 치르는 도처에서 불충과 배신이 투쟁의 힘을 훼손했다… 이 전쟁에서 독일 민족의 노력과 희생은 너무나도 커서 나는 그러한 노력과 희생이 허사가 됐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히틀러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연히 자책도 하지 않았다. 히틀러 자신
영화 ‘다운폴’은 역사 고증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하는데, 감독이 유독 다큐멘터리처럼 역사자료 사진과 똑같이 만든 장면이 있다. 히틀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하방공호에서 나와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를 접견하면서 일일이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다. 우리말로 하면 ‛히틀러의 아이들’쯤 되겠다. 영화 내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변비환자처럼 찌푸린 히틀러의 얼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나마 옅은 미소가 번진다. 특히 소련군과 교전 중에 부상당한 독일군 10여명을 손수레를 이용해 구조한 페터 크란츠(Peter Krantz)라는 13살 소년에게 2급 철십자훈장을 달아주고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소년의 볼을 꼬집어준다. 히틀러의 기(氣)를 제대로 받았는지 13살 소년 페터는 이후 대전차 로켓포로 소련군 탱크를 날려버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볼 한번 꼬집어 줄 만하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명을 사용하는데 이 소년만은 실존인물이었던 알프레드 체크(Alfred Zech)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촉법소년’ 나이라는 것을 배려한 모양이다. 사실 히틀러 유겐트 출신 중에는 얼마 전 선종(善終)한 프란치스코 교황 전임자였던 교황 베네딕토 16
전황이 회복불능 상태에 빠져 히틀러의 최후 아지트가 된 베를린의 지하벙커까지 따라 간 인물들은 오직 히틀러의 광신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이전에 히틀러가 생각하는 조국 독일과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조국이 다르고, 또 달라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유능한 장교, 장군들은 이미 모두 처형되거나 숙청된 이후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히틀러 교도’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지하벙커 속 히틀러와 나치 수뇌들의 회의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나치 독일 부수상(총리)이자 공군 사령관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은 작전회의에서 그 육중한 몸을 의자에 구겨 넣은 채 말 한마디 없다. 눈알만 굴린다. 히틀러의 ‘비서실장’인 마르틴 보어만(Martin Bormann) 대장도 대사 한마디 없이 오직 히틀러의 헛소리를 경청한다. 나치 독일 ‘행안부 장관’이자 친위대 최고 사령관인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는 히틀러에게 일단 베를린을 탈출하고 보자는 대책 없는 소리만 한다. 물론 갈 곳은 없다. 나치 독일의 ‘합참의장’인 빌헬름 카이텔(Wilhelm Keitel) 장군은 그나마 한마디한다. 마지막 남은 9사단 병력을 후퇴시켜 그 병력이나마 보존하자는 그나
1945년 4월 30일 자살하기까지 마지막 14일간을 베를린 시내 지하방공호인 퓌러붕커 속에 머물렀던 히틀러는 자신의 비참한 말로를 오로지 ‘남 탓’으로 돌리며 평소의 발작이 극한으로 치닫는다. 히틀러의 모습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건 슬픈 일이다. 히틀러는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전은 전세계를 말아먹는 유대인들의 음모 때문이었으며, 유대인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성전(聖戰)’이 패전으로 몰린 것은 ‘계몽’되지 못한 일부 무지몽매한 독일인과 휘하 장군들의 무능 탓으로 돌린다. 몇차례에 걸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으로 ‘사막의 여우’라 불리며 연합군을 떨게 했던 아프리카 전차부대 사령관 에르빈 롬멜(Erwin Rommel) 장군을 비롯한 ‘유능하지만 계몽되지 않은’ 장군들을 대부분 처형하거나 숙청해 버린 터라 ‘계몽은 됐지만 무능한’ 장군들만 남은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영화 속에서 소련군이 무풍지대를 달리듯 베를린 시내까지 진격한 것도 소련군과 내통한 ‘반국가적인’ 베를린 시민들의 탓으로 돌려 그 바쁜 와중에도 친위대를 동원해 그들부터 처형한다. 휴전협상파인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 장군에게 처형명령을 하달하고
지하방공호에 들어간 지 며칠 만에 히틀러는 마지막 ‘희망회로’마저 끊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끔찍한 소식을 접한다. 그의 파시즘 ‘깐부’였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1945년 4월 28일 애첩 클라라 페타치(Clrara Petacci)와 함께 이탈리아를 탈출하려다 밀라노에서 반정부 게릴라에 체포돼 총살당했다는 소식이다. 무솔리니의 최후는 정말 끔찍했다. 그의 시체는 마을 주유소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려 내걸렸다. 그곳에 주민들이 몰려와 시체에 침을 뱉고 몽둥이찜질을 해댔다. 소련군에게 체포되면 무솔리니가 당한 봉변이 고스란히 자신과 애인 에바 브라운의 몫이 될 것을 직감한 히틀러는 4월 29일 유언장을 작성하고 그다음 날 에바 브라운과 함께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괴벨스를 비롯한 부관들이 히틀러 부부의 사체를 담요에 말아 허겁지겁 방공호 밖으로 메고나와 구덩이를 파고 던져놓고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지른다. 잠깐 묵념이라도 하려는데 소련군의 포격에 천지가 진동하자 모두 서둘러 방공호로 튄다. 그렇게 히틀러는 에바 브라운과 구덩이에 팽개쳐진 채 온전히 타지도 못한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소식을 접한 일본의 ‘전범 수괴’ 도조 히데키(東英機)
영화 ‘다운폴’은 히틀러가 베를린 총리 관저 지하 82m 깊이에 구축한 ‘총통 방공호’에서 보낸 그의 마지막 14일간의 모습을 재현한다. 히틀러의 마지막 타자(打字) 여비서였던 트라우들 융에(Traudl Junge)의 증언을 기반으로 제작했다 하니 작가나 감독의 상상만은 아닌 듯하다. 트라우들 융에는 1942년부터 히틀러를 가장 지근거리에서 관찰한 사람이다. 벙커 속에서 자살한 날 히틀러가 구술하는 유언장을 타이핑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니 히틀러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었을 듯하다. 그 여비서가 증언한 히틀러의 모습은 영화가 보여준 그대로다. 장군과 참모들을 세워놓거나 앉혀놓고 손을 떨어가면서 끊임없이 일방적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지시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 용기를 내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의견이나 의문을 제기하면 그의 전매특허인 분노의 ‘샤우팅’을 터뜨린다. 샤우팅 한방으로 모든 참모들을 ‘입틀막’ 해버린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장군과 참모들 어느 누구도 밖에서 모여 자기들끼리 히틀러의 독선과 독단을 성토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두 히틀러의 ‘지적 우위’와 통찰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다. 난폭한 독재자이기보단 17~18세기 유럽의
히틀러가 자살하기까지 베를린 지하방공호에서 보낸 14일간의 영상기록과 같은 영화 다운폴(Downfall)을 따라가다 보면 어이없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다. 히틀러와 나치 최고 참모들이 보여주는 ‘상호작용’은 거의 진시황제와 환관들의 그것이다. 히틀러의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 별을 주렁주렁 단 장군들은 사시나무 떨 듯하고, 히틀러의 황당한 격노에도 모두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전전긍긍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국민들은 대개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기 마련이다. 혹시나 히틀러의 참모들도 몰리고 몰려서 지하방공호로까지 숨어든 절체절명의 상황인지라 히틀러를 중심으로 단결했나 싶지만, 그렇지 않다. 전쟁 전부터 이미 광기에 사로잡힌 지 오래인 히틀러를 절대 지지하고 뭉쳤기 때문인지 다 같이 지하방공호로까지 내몰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패전과 함께 ‘전범(戰犯)’인 그 수뇌부들만이 극한상황에 내몰렸다면 그들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 때문에 애먼 국민들까지 모두 극한상황으로 내몰렸으니 딱한 일이다. 물론 히틀러에 열광한 그다지 ‘애꿎지 않은 국민’들도 많기는 하다. 엄밀히 따지면 그들도 ‘뉘른베르크(Nürnberg) 국제군사재판(1945~1
전선과 이어진 부실한 통신망은 이미 붕괴했다. 간간이 사선을 뚫고 흙먼지 뒤집어쓰고 돌아온 장군들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절망적인 보고만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모두들 막연히 무언가 극적인 반전反轉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들 자신도 모르는 눈치다. 우주의 기운이 모여 미국, 영국, 소련에 한날한시에 회복불능의 대재앙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히틀러가 지하총통실에서 회의를 소집한다. 수뇌부들은 그들이 메시아(Messiah)라고 떠받들어온 히틀러가 ‘어떻게 좀 해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히틀러만 바라본다. 그들은 메시아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다. 1950년대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빌프리트 다임(Wilfried Daim)은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가 히틀러를 ‘진짜 메시아’로 설정한 새로운 종교로 기독교를 대체하려는 계획을 수립했다고 폭로한다. ‘뉴 메시아’ 히틀러는 지하총통실에 소집한 나치 수뇌부에 유럽 전선 지도를 펼쳐놓고 자신이 예비해 둔 ‘기적’을 전한다. 그들의 메시아는 이미 궤멸돼 사라진 지 오래인 독일의 정예 전차부대와 사단 병력을 동원해 연합군을 일거에 궤멸하는 ‘기적의 작전’에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