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출신의 사막 탐사가 알마시와 영국의 유부녀 캐서린은 황량한 리비아 사막 한가운데에서 ‘눈이 맞는다.’ 알마시는 헤로도투스의 「역사(Histories)」에 나오는 칸다울레스의 전설을 읊조리는 캐서린에 꽂히고, 캐서린은 아무런 수식어 없이 글쓰기를 고집하면서 사물의 본질에 충실하고 사막 같은 무공해의 알마시에 꽂힌다. 알마시가 시장 구경에 나선 캐서린의 뒤를 밟아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갖기 시작하고, 알마시와 캐서린 단둘이 사막에 고립돼 하룻밤을 지새우면서 서로에게 더욱 끌린다. 결국 유부녀 캐서린과 알마시는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고 만다. 여기까진 불륜 드라마의 정해진 수순을 밟는다. 그런데 알마시의 숙소에서 캐서린과 알마시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달달한 대화를 하던 중 무언가 꼬이기 시작한다. 알마시는 캐서린의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쇄골을 어루만지면서 그것을 ‘알마시의 협곡’이라고 명명한다. 자신이 아름다운 캐서린 쇄골의 최초의 발견자라고 한다. 미국 대륙에 인디언이란 본래 주인이 있었지만 콜럼버스나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들어가서 그곳에 자기들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은 장면이다. 캐서린의 쇄골에 굳이 주인이 있다면 법적인 남편 클리프턴(콜린 퍼스)일 텐
영화는 비행기 추락으로 전신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타버린 알마시(랄프 파인즈)의 회고를 따라간다. 폐허가 된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 간호사 해나(쥘리엣 비노슈)와 단둘이 남은 알마시는 자신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간호사에게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기막힌 사연’을 띄엄띄엄 털어놓는다. 죽음을 앞둔 알마시의 최후진술서다. 알마시의 회고는 리비아 사막에서 제프리와 캐서린 부부(콜린 퍼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와의 합류로 시작한다. 그날 밤 일행은 사막에서 간단한 술자리를 갖는다. 단합대회 성격인 듯하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새로운 팀을 만들면 ‘아이스 브레이킹’이 필요하다. 서로 간의 거리를 좁혀주고 경계선을 실선에서 점선으로 바꿔 그리는 데에 술과 노래만 한 것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망가진 모습을 보여줘야 단합이 된다. 우리도 술집에서 1차로 망가지고 노래방에 가서 2차로 망가진다. 알마시 일행의 술자리도 돌아가면서 ‘막춤’과 ‘막 노래’로 이어진다. 제프리 아내인 캐서린의 차례가 돌아오자 캐서린은 참으로 분위기 깨지게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에 기록된 이야기 한 토막을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나긋나긋하게 들려준다. 노래방에서 흥겹기론 첫손가락에
헝가리 출신 사막 탐사가인 라즐로 알마시(랄프 파인스)는 리비아 사막에서 영국 출신 사막 탐사가 제프리 클리프턴(콜린 퍼스)과 합류한다. 두 탐사가의 협업은 원래 문제 될 게 전혀 없는데, 제프리가 아내인 캐서린(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을 사막까지 데려오면서 심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반인’ 아내를 사막까지 데려온 남편도 어이없고, 따라온 아내도 딱하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회복불능의 ‘잘못된 만남’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서로가 찾던 짝을 그 사막에서 만난다. 캐서린은 알마시와의 첫 대면에서 그가 쓴 사막 탐사기를 읽어보았다면서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렇게 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고 인사한다. 사실 형용사와 부사와 같은 수식어 없이 글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캐서린은 사막을 향한 관심보다는 수식어 없이 글쓰기 작업을 해내는 알마시란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껴 사막까지 따라왔는지 모르겠다. 흔히 글쓰기를 요리에 비유하면 형용사는 설탕이고 부사는 소금에 해당한다고 한다. 명사와 동사는 재료에 해당한다. 형용사와 부사를 쓰지 않는 글은 요리로 치면 ‘날것’이다. 조난을 당하지 않은 다음에야 날것을 먹기는 힘들다. 혹시 양념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ㆍ1996)’는 6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서 9개 부문을 휩쓴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3000억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니 작품성과 흥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었던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한국에선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남겼다. 할리우드 영화문법에 익숙한 우리나라 관객들이 영국식 영화문법을 다소 낯설 게 느꼈을지 모른다. 같은 영어라도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가 조금 다르듯 미국 영화와 영국 영화는 같은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조금은 정적이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한국관객들은 정적인 영국풍보다는 할리우드의 ‘역동적’ 전개와 장면들에 더 끌리는 듯하다. 영화는 라즐로 알마시(Laszlo Almasy)라는 실존인물의 행적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에서도 라즐로 알마시라는 실명으로 등장한다. 연기파 배우 랠프 파인즈(Ralph Finnes) 특유의 우울하고 권태로우면서도 짜증스러운 연기가 썩 잘 어울린다. 헝가리에서 태어난 라즐로 알마시는 1900년대 전반기를 살았던
세계 최고수 킬러들이 이런저런 사연으로 탄환열차에 동승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발군의 킬러들은 ‘탠저린’과 ‘레몬’이라는 환상의 2인조 킬러다. 그들은 볼리비아에서는 ‘하얀 사신’의 야쿠자 조직을 박살내고, 홍콩에서는 중국의 삼합회를 초토화한다. 그들이 펼치는 사람 죽이는 환상적인 호흡은 거의 예술의 경지다. 영화 속에서 살벌한 영국 출신 킬러로 나오는 ‘탠저린’과 ‘레몬’의 코드네임은 조금 ‘깬다.’ 탄환열차에 모여든 다른 킬러들의 코드네임은 킬러답게 살벌하다. ‘하얀 사신(死神)’도 있고, ‘늑대’와 ‘말벌’도 있다.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 환상의 2인조 킬러들의 코드네임은 도저히 ‘킬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탠저린과 레몬이다. 이 살벌한 영국 출신 2인조 킬러들의 코드네임이 귀여운 과일들이라니 가당치 않다. 테스토스테론을 뿜어대며 쿵따리샤바라를 열창하는 남성듀오 ‘클론’이 ‘소녀시대’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는 꼴이다. 이들이 현장에서 자신들의 코드네임을 대면 상대들은 모두 당황하거나 비웃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렌지과에 속하는 자신들의 코드네임이 썩 만족스러운 듯하다. 백인 탠저린은 스타일리시한 정장 차림의 말쑥한 신사형이라면 흑
영화 속 ‘레몬’은 그 직업상 분명 빌런이어야 하는데 왠지 빌런스럽지 않은 독특한 해결사다. 영화 속에서 잠깐씩 보여주는 그의 킬러 경력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볼리비아, 홍콩 등에서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한다. 그런데 레몬의 내면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킬러’ 레몬이 지금까지 몇명이나 죽였을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직업’은 불문에 부치고 ‘인간 레몬’만을 떼놓고 보면 썩 괜찮은 인물이다. 문득 응원하고 싶어진다. 화면 속에 잠깐 스쳐가는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면 그다지 교육을 많이 받지는 않은 듯하다. 어쩌면 유치원이 최종학력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레몬의 바이블은 다양한 기차를 의인화한 「토마스와 친구들(Thomas & Friends)」이란 영국 어린이 교육용 그림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유치원 원아들 필수교재에 해당한다. 레몬 스스로 자신은 세상의 모든 것을 ‘토마스’에게서 배웠으며 ‘토마스’의 가르침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고 확신한다. 레몬은 야쿠자 보스인 아버지의 위력을 믿고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하얀 사신’의 아들을 보고 「토마스와 친구들」 스티커 북을 꺼내어 ‘퍼시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의 보스로 등장하는 ‘하얀 사신’이 적을 제거하는 방식은 조금은 독특하다. 항상 상대의 무기로 상대를 처단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병법 36계에 나오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남의 칼을 빌려서 죽인다는 뜻이다. 차도살인은 최고의 병법 중 하나다. 우선 비용이 덜 든다. 상대를 제거하지만 상대는 그가 누구의 칼에 죽었는지 헛갈려서 누구에게 복수해야 할지도 헛갈린다. 관전자들도 누가 범인인지 알쏭달쏭하다. 살인의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하얀 사신’은 마음에 안 드는 아들도 남의 손을 빌려 처단하고, 아내를 죽인 원수도 남의 손으로 죽인다. 하얀 사신은 자식을 죽인 ‘비정한 애비’란 비난에서 벗어나고, 교통사고로 죽었을 뿐인 아내의 죽음까지 피로 응징했다는 비난에서도 비켜선다. 하얀 사신은 자신을 겨눈 상대의 총이나 칼을 빼앗아 상대를 죽이는 것을 ‘종특’으로 한다. 자신을 겨눈 31번의 암살기도가 있었는데 31번 모두 자객의 무기를 빼앗아 자객을 죽였다는 야쿠자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그는 ‘차도살인’의 달인이다. ‘장로’와의 마지막 결투에서도 하얀 사신은 벽에 박힌 장로의 칼날에 장로의 목을 밀어 32번째 차도살인의 전설을
1000만불이 든 돈가방을 노리고 세계 최고의 킬러들이 몰려든 ‘탄환열차’는 전쟁터가 된다. 전쟁은 목적 달성을 위해 다른 수단과 방법을 모두 배제하고 오직 무력에 호소하는 ‘마지막 수단(last resort)’이자 궁극적인 해법이다. 말이 필요 없다. 탠저린과 레몬, 늑대와 말벌들이 닥치는 대로 쏘아버리고 베어버리고, 두들겨 패고 독침을 찔러버리기도 한다. 이 살벌한 전쟁터에 조금 특이하고 생뚱맞은 킬러가 등장한다. 더 이상 살상(殺傷)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무당벌레(브래드 피트)’다. 무당벌레는 살상은 하지 않고 ‘도덕적’이고 옳은 방법으로 돈가방만 찾아오겠다는 신념으로 총도 없이 전투장비라곤 폭죽과 수면제 따위만 준비하고 전쟁에 나선다. 그 결과가 궁금해진다. 무당벌레는 자기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킬러들에게 ‘대화와 협상’을 제안하고, ‘분노가 빠르면 빠를수록 이해는 느려진다’는 둥, ‘상대에게 손가락질하면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한다’는 둥 참 좋은 말만 골라 한다. 모두들 ‘전쟁’을 하자는데 무당벌레 혼자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자고 한다.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상대들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은 ‘무슨 ×소리냐?’ 뿐이다. 기세등등하게
1000만불이 든 돈가방을 노리고 ‘탄환열차’에 모여든 킬러들은 모두 용병(傭兵)들이다. 용병이란 자신의 전투가 아닌 남의 전투를 돈 받고 대신해 주는 존재들이다. 전쟁 당사자들의 옳고 그름이나 명분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전쟁의 승패에도 무관심하다. ‘고객’과의 계약에 따라 일정한 역할을 해주고 그에 따른 급여만 받으면 그만이다. 영화 속 용병킬러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메디치(Medici)가(家)의 유명한 책사 마키아벨리(Machiavelli)가 「군주론」에 정리한 용병들의 행태와 참으로 닮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아무리 다급해도 용병만은 절대 끌어들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로마 역사에 정통했던 마키아벨리였던 만큼 고대 로마 시대 용병의 역사에도 정통하다. 마키아벨리가 용병에 질색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용병들이란 뒷전에서 뭉그적거린다. 전세가 기울면 가장 먼저 튀어버린다. 급여를 포기하지 목숨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고객이 급박할수록 용병료는 올라가니 일부러 져주기도 한다. 시민군과 적군이 피 터지게 싸우다 모두 탈진한 뒤에야 나타나 모든 공을 독차지한다. 우리나라 범죄영화에서 으레 상황이 모두 정리된 뒤에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퍼레이드 펼치며 나타나는
‘탄환열차’에 실린 1000만불이 든 가방을 노리는 킬러들은 국적과 인종만 다양한 게 아니라 세대도 다양하다. 러시아 킬러 70대 ‘하얀 사신’과 일본 전직 야쿠자 간부 ‘장로’도 있다. 미국의 50대 ‘무당벌레’, 영국의 40대 듀오 ‘탠저린’과 ‘레몬’, 멕시코 30대 ‘늑대’와 20대 ‘말벌’, 그리고 국적 불문의 10대 소녀 ‘왕자’도 있다. 전후 세대부터 X, Y, MZ, α 세대까지 망라한다. 과연 어느 세대 대표선수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시니어 시스템이 확고한 일본 원작이어서일까. 우승컵은 일본의 70대 장로에게 돌아간다. 결승전도 러시아의 하얀 사신과 장로의 70대 매치업이다. 1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세대들은 모두 철도 없고 생각도 없고, 분수도 모르고 날뛰다가 끝장이 난다. 그나마 50대 무당벌레는 70대 어르신의 심기를 잘 살피고 장로에게 ‘광 팔고’ 살아남는다. 70대의 결승전이라고 하지만 70대라고 해도 같은 70대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노인(old)’과 ‘장로(elder)’의 매치업이다. 노인은 생물학적 나이고 장로는 사회적 경륜이다. 하얀 사신은 세월의 경륜이 있을진 몰라도 덕을 갖추진 못했다. 여전히 최고의 야쿠자 조직을
어느 직종이든 ‘베테랑’은 직업병을 얻기 마련이다. 발군의 해결사 ‘무당벌레’도 직업병에 시달린다. 매사에 불안하고 자신의 업무수행 중에 어이없이 죽어간 사람들에게 느끼는 죄책감도 상당하다. 일선에서 물러나 정신치료 상담을 받던 중 인력소개 에이전트 ‘마리아’가 의뢰하는 ‘가방 하나 가져오는’ 매우 안전하고 간단한 일을 수락한다. 무당벌레는 이번에야말로 결코 살인은 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신념으로 총칼은 모두 버려두고 폭죽ㆍ수면제 따위만 챙겨서 탄환열차를 탄다. 정신치료 상담사 ‘하비 박사’는 무당벌레에게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문제는 무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고 가르친다. 무당벌레는 하비 박사의 가르침대로 가방 주인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운 가르침은 사회에 나오면 잘 먹히지 않는다. 가방 주인 ‘레몬’과 ‘탠저린’에게 하비 박사의 가르침대로 대화를 시도한다. “지금 우리들 사이에 벽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벽에도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창문과 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눈을 껌뻑이던 레몬은 5초 이상 들어주지 않는다. ‘무슨 개소리냐’며 총을 꺼내 든다.
어느 직종이든 ‘베테랑’은 직업병을 얻기 마련이다. 발군의 해결사 ‘무당벌레’도 직업병에 시달린다. 매사에 불안하고 자신의 업무수행 중에 어이없이 죽어간 사람들에게 느끼는 죄책감도 상당하다. 일선에서 물러나 정신치료 상담을 받던 중 인력소개 에이전트 ‘마리아’가 의뢰하는 ‘가방 하나 가져오는’ 매우 안전하고 간단한 일을 수락한다. 무당벌레는 이번에야말로 결코 살인은 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신념으로 총칼은 모두 버려두고 폭죽ㆍ수면제 따위만 챙겨서 탄환열차를 탄다. 정신치료 상담사 ‘하비 박사’는 무당벌레에게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문제는 무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고 가르친다. 무당벌레는 하비 박사의 가르침대로 가방 주인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운 가르침은 사회에 나오면 잘 먹히지 않는다. 가방 주인 ‘레몬’과 ‘탠저린’에게 하비 박사의 가르침대로 대화를 시도한다. “지금 우리들 사이에 벽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벽에도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창문과 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눈을 껌뻑이던 레몬은 5초 이상 들어주지 않는다. ‘무슨 개소리냐’며 총을 꺼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