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금 사냥꾼 존 루스(커트 러셀 분)가 생포한 현상수배범은 현상금 1만 달러가 걸린 ‘미친 데이지(Crazy Daisy)’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악명 높은 ‘여자 무법자’다. 크레이지 데이지라는 라임이 훌륭하다. 결과론적이지만 이 ‘미친 데이지’는 존 루스가 아무리 현상금에 욕심이 나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될 현상수배범이다.
물불 안 가리는 ‘미친 악당’은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다. 더욱이 미친 데이지는 와이오밍주州를 무대로 도적질을 하고 다니는 ‘미친 5인조 갱단’ 도밍그레이(Domingray)파의 부두목이다. 미친 데이지 뒤에는 ‘미친 도밍그레이파’가 있으니 현상금 1만 달러에 목숨 걸지 않은 다음에야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가야 할 수배범이다.
예상대로 도밍그레이 갱단의 나머지 4명의 미친 무법자들이 미리 ‘미니의 잡화점’에 들이닥쳐 주인과 식솔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루스가 호송하는 미친 데이지를 구출하기 위해 기다린다.
도밍그레이파는 두목인 조디(채닝 테이텀 분)를 비롯한 5인조 갱단이다. 타란티노 감독이 갱단을 5인조로 설정한 것이 흥미롭다. ‘5’라는 숫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균형과 완성을 상징하는 숫자다. 아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손가락이 5개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동양에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따라 오방색(五方色)도 있고 오악(五嶽)도 있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모든 감각과 미각을 오감(五感)과 오미(五味)로 정리한다. 별 또한 모두 오각(五角)으로 상징된다. 미국의 국방성인 ‘펜타콘(Pentagonㆍ오각형)’ 건물은 이름 그대로 5각형에 5층에 5겹으로 건축됐다. 온통 5라는 숫자에 기반해 구성된 거대한 건물이다.
레슬리 그로브스(Leslie Groves)라는 미육군 병참단 대령이 1941년 펜타곤 건설의 총책임을 맡아 당시 세계 최대의 이 건물을 단 18개월 만, 그것도 전쟁 중에 완공시키는 ‘미국의 전설’을 만들어냈는데, 혹시 이 사람도 음양오행설에 심취했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완벽의 숫자 ‘5’로 구성돼 9·11 테러도 견뎌냈는지도 모르겠다.
지구를 지키는 것도 ‘독수리 5형제’지만, 악당 다섯이 모이면 어떠한 망국도 완성할 수 있는지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乙巳五賊)도 있고, 김지하 시인의 담시(譚詩) 오적(五賊, 재벌ㆍ국회의원ㆍ고위공무원ㆍ장성ㆍ장차관)도 있다.
1668년 찰스 2세의 영국에도 프랑스와 ‘도버 밀약(Secret Treaty of Dover)’을 맺어 나라를 말아먹은 영국판 5명의 을사오적이 있었는데 그 고관대작들의 이름이 클리퍼드(Clifford), 알링턴(Arlington), 버킹엄(Buckingham), 애슐리(Ashley), 로더데일(Lauderdale)이어서 그 오적들의 이름 첫 자들을 따서 만든 단어가 CABAL(떼도둑)이다.
도밍그레이 갱단도 오적이 뭉쳤으면 미친 데이지 구출작전쯤은 식은 죽 먹기일 듯하다. 그러나 이 5인조 갱단은 워런 소령(새무얼 잭슨 분) 하나 처치하지 못해 ‘미친 데이지 구출’에 실패하고 미니의 잡화점에서 떼죽음을 당한다. 이 5인조 갱단의 지도자는 조디인데, ‘데이지 구출 작전’에서 보여주는 조디의 모습이 변변치 못하고 좀스럽다.
조직원 3명이 루스와 워런 소령을 대적하게 하고 자신은 마루 밑에 몸을 숨기고 상황이 종료된 후에나 나타날 궁리를 한다. 지도자가 조직원 뒤로 몸을 사리는 작전이 성공할 리 없다. 조직원들은 어이없이 워런 소령에게 제압당하고, 조디가 마루 밑에서 뒤늦게 비겁한 총질을 해보지만 전세를 뒤집지 못하고 떼죽음당한다. 지도자가 부실하면 다섯이 모여도 오적이 되지 못하고 오합지졸이 될 뿐이다.
우리는 흔히 흉악한 인간을 ‘도척(盜跖) 같다’고 한다. 아마 도척이 도적의 사투리처럼 쓰이는 모양이지만, 춘추전국시대에 실존했던 역사 인물인 도척의 행적은 여느 도적과는 차원이 다르다.
부하를 1만여명 거느리고 귀족들까지 도륙을 하고 다녔다 하니 도적이라기보다는 마음만 먹으면 나라까지도 훔칠 만한 ‘큰 도적’이었다. 마치 원광법사의 화랑도 5계처럼 장자(莊子)에 기록된 도척이 남겼다는 ‘큰 도적의 5계(戒)’가 인상적이다. 이들도 모두 5를 좋아한다.
“큰 도적이 되기 위해서는 5가지를 갖춰야 한다. 1. 도적질하러 남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 집에 무엇이 있을지 알아차리는 성(聖, 뛰어남)이 있어야 하고, 2. 부하들보다 앞장서서 들어가는 용(勇)과, 3. 부하들보다 나중에 나오는 의(義)가 있어야 하며, 4. 도적질을 해도 뒤탈이 없는 것만 골라 훔치는 지(智, 슬기로움)가 있어야 하며, 5. 훔친 것은 부하들과 공정하게 나누는 인(仁)을 갖춰야 한다.” 도척의 가르침은 도적계의 논어와 맹자를 방불케 한다.
특히나 도척이 이르는 용(勇)과 의(義0의 계율은 미국 해병의 모토(motto)인 ‘(적진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온다(First In, Last OutㆍFILO)’와 정확히 일치하니 놀랍다. 할 무어(Hal Mooreㆍ1922~2017년)는 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등에 모두 참전해 용맹을 떨쳤던 미국 육군의 상징과도 같은 전설적인 장군이다.
그가 지휘관으로 장병들을 이끌고 전장(戰場)으로 향하기에 앞서 항상 장병들 앞에서 했다는 ‘약속’은 유명하다. “내가 가장 먼저 전장에 뛰어들 것이며, 내가 가장 나중에 전장을 빠져나올 것이다(I will be the first to set foot on the field, and I will be the last to step off.)” 무어 장군은 언제나 그 약속을 지켜서 무적의 지휘관이 된 인물이다. 모두 가히 ‘도척의 후예’들이라 할 만하다.
불법 비상계엄(내란) 재판정에서 나라를 훔치려다 실패한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명령을 따라 도적질에 나섰던 특전사령관을 향해 삿대질하고 목청을 높이며 빠져나갈 구멍 찾기에 골몰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민망하다.
‘FILO’가 아니라 ‘LIFO(Last In, First Outㆍ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는 가장 나중 들어가서, 정말 위험해지면 가장 먼저 빠져나온다)’의 저열한 리더십을 보는 듯하다. 문득 이분은 애초에 도척같이 나라를 훔칠 만큼 큰 도적이 될 만한 자질도 없었던 듯하니, 그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