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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바벨 (2)

일본인 사업가 코지는 휴가차 떠난 모로코에서 사냥을 즐긴 뒤 사냥총을 자신을 열심히 도와준 현지 가이드에게 선물로 주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 사냥총이 ‘나비효과’처럼 야기할 파문을 그 일본인과 현지 가이드는 짐작조차 할 수 있었을까. 

 

 

일본인 사업가 코지가 모로코 가이드에게 선물한 사냥총은 양치기의 손에 흘러가고 양치기 소년은 호기심에 방아쇠를 당긴다. 어처구니없게도 총알은 관광버스에 앉아있던 미국인의 어깨에 박힌다. 9·11테러를 겪은 미국 CIA는 발칵 뒤집힌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미국인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부부는 자신들의 여행 중 아이들을 돌보기로 한 멕시코 도우미에게 며칠만 더 집에 있어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멕시코 도우미는 그럴 수 없다. 그녀의 아들이 돌아오는 주말에 결혼하기 때문이다. 도우미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멕시코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지만,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고 만다.

 

사냥총을 모로코 가이드에게 선의로 선물한 일본의 사업가나, 호기심에 연습 삼아 방아쇠를 당겨 본 양치기 소년이나, 돌보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의 아들 결혼식에 갔던 도우미나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과를 예상했다면 당연히 하지 않았을 선택들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리차드(브래드 피트)와 수잔(케이트 블란쳇) 부부의 모로코 여행은 서먹해진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리차드가 아내를 위해 마련한 선물이었지만, 그 ‘선물’은 리차드의 의도와는 반대로 아내가 이역만리에서 사경을 헤매는 결과로 돌아온다. 

 

모로코 양치기 소년은 또 어떤가. 호기심을 못 이겨 방아쇠를 당기면서 버지니아 주에 소재한 미국 CIA 본부가 발칵 뒤집히고, CIA 요원들과 모로코 경찰이 자신이 있는 산골마을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면 관광버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정말 자신의 손주처럼 사랑하는 멕시코 가사 도우미 아멜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멕시코에 데리고 간 아이들은 아주머니의 마음과는 반대로 멕시코 국경에서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들의 생각이 짧았다고 쉽게 비난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그들의 상황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까지 숙고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도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까지 심사숙고할 만한 능력을 지녔다면 우리는 이미 유토피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우리가 의도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결과’ 속에서 살고 있다.

 

평화사상가이기도 했던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은 광산 인부들이 위험한 노역으로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TNT를 개발했다. 하지만 TNT는 노벨의 의도와는 반대로 전쟁터에서 인명살상용 무기로 둔갑하고 말았다. 이를 괴로워한 끝에 TNT로 벌어들인 모든 재산으로 ‘노벨상’을 만들었지만, 이미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빚은 참상은 주워담을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프랑스 루이 15세는 경쟁국인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국력을 동원해 미국의 독립전쟁을 도왔다. 하지만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지배하는 ‘신기한’ 미국을 경험한 프랑스 장교들은 프랑스 왕정을 뒤엎어버리는 프랑스 혁명의 선봉대가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누리고 있는 우리는 루이 15세가 만들어준 ‘의도하지 않은 결과’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1985년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을 구하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펼쳤지만,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소련은 곧바로 해체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소련을 살리기 위한 수술이 소련의 명줄을 끊어놓은 셈이다.

 

72년간에 걸친 소련의 거대한 ‘사회주의 실험’이 종말을 고하고, 우리는 지금 대안이 사라진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또한 사회주의를 살리려다 사회주의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린 고르바초프가 만들어낸 ‘의도하지 않은 결과’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 상향과 ‘52시간 근무제’ 정책을 둘러싸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52시간 근무제’의 ‘의도’는 근로자들을 과도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워라밸’의 가치도 증진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었을 거다. 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모든 책임을 물기는 어렵다. 누가 노벨과 루이 15세, 고르바초프에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물어 비난할 수 있겠는가. 다만 많은 사람이 그 부작용을 충분히 예견하고 반대했던 정책을 아집과 특정한 이익을 위해 밀어붙였다면 비난받아 마땅하겠다.

 

사냥총이 혹시라도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을 알면서도 그 총을 가이드에게, 그리고 양치기 소년에게 줬다면 일본인 사업가, 가이드, 양치기 소년의 아버지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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