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제이콥의 농장 분투기는 실로 눈물겹다. 낯선 이국땅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10년간 모은 돈을 쏟아붓고 대출까지 해서 척박한 땅을 장만한다. 가진 돈을 모두 부었으니 당장 네 식구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 지겨운 병아리 감별을 계속해야 한다. 이른바 ‘투잡’이다.
농장을 마련한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을 하고 헐레벌떡 돌아와 맨손으로 땅을 일군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농업용수 확보다. 가진 돈이 넉넉하다면 업자를 불러 우물을 팔 수 있겠지만 제이콥은 그럴 형편이 아니다. 포클레인도 아니고 달랑 삽 한자루 들고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솜털 뭉치같은 병아리만 만지던 제이콥이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팔을 쓸 수 없어 혼자 옷도 못 입는다. 사투에 가깝다. 그런 아빠를 딱한 눈으로 보는 데이비드에게 제이콥이 비장하게 말한다. “공짜로 할 수 있는데 왜 돈 주고 우물을 파?” 정말 제이콥은 공짜로 우물을 판 것일까.
만약 우물을 파는 데 투입한 노동력과 시간을 다른 곳에 투입했다면 얼마만큼의 이익을 취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 시간에 병아리 감별을 해서 벌 수 있는 액수가 우물 파는 인부에게 지불해야 할 액수보다 많다면 제이콥은 실로 ‘멍청한 짓’을 한 셈이다.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의 상식적인 개념이다.
어느 사무직 회사원이 스스로 식탁을 만들어 사용한다면 과연 그 식탁은 공짜로 얻은 것일까. 문외한이 뚝딱거려 만든 식탁이 숙달된 전문가가 만든 식탁의 질에 버금갈 리가 없다. 회사원이 스스로 만든 식탁을 공짜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기회비용은 물론 분업의 효율성까지 망각한 착각일 뿐이다. 제이콥의 팔이 고장나도록 판 우물은 얼마 못 가 말라버리고 만다.
제이콥은 기회비용을 모두 날리고 덤으로 팔까지 망가진다. ‘공짜보다 비싼 것이 없다’는 말이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다. 아마도 돈 받고 남의 우물을 파다가 팔을 못 쓸 정도가 됐으면 산업재해를 신청하고도 남을 일인데 제이콥은 그 고난을 감수한다. 우물 파기는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근로와 노동의 차이기도 하다.
근로나 노동이나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은 단지 임금을 얻기 위해 남의 일을 해주는 것인 반면, 근로는 꼭 품삯을 받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나의 업무라 생각하고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일이다. 제이콥에게 병아리 감별은 괴로운 중노동이지만 우물 파기는 몸이 상해도 즐겁기만 한 일이다. ‘미나리’의 주인공 제이콥은 노동자와 근로자의 2가지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병아리 감별 노동자이기도 하면서 우물 파는 근로자이기도 하다.
노동자라는 말이 일반화한 건 아마도 1848년 마르크스의 ‘공산당 창당 선언문(Communist Manifesto)’인 듯하다. 선언문 마지막에 마르크스는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친다. 독일어 원문 “Proletarier aller Lnder vereinigt Euch!”가 영어로 “Workers of the world, unite!”로 번역돼 널리 퍼졌다. 우리는 영어 worker를 다시 ‘노동자’로 번역해서 사용한다. 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을 노동자로 번역한 셈이다.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이 너무 계급투쟁적이어서 사용하기 조금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라틴 어원은 조금 엉뚱하게도 ‘자식 낳는 사람’이다. 로마의 징병제도는 입대하는 시민들이 무기와 말까지 모두 자비 부담으로 구입해서 입대한다. 그것이 시민의 의무다. 군 복무를 마쳐야 자랑스러운 로마 시민의 자격이 생긴다.
무기와 말을 살 돈이 없는 사람은 군대도 못 가고 로마 시민이 될 기회조차 봉쇄된다. 그들이 로마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식을 많이 낳아 말단 졸병으로 군대에 보내는 일이었다. 여기서 ‘재산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자식(proles) 낳는 사람(proletariat)’이 돼버렸다. 한마디로 가진 것이라곤 ‘번식력’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무척이나 모욕적인 멸칭이다.
본래 ‘노동자의 날’이라 불렸던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로 변경돼 사용되다 최근 들어 다시 ‘노동절’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근로자라는 호칭보다는 노동자라는 호칭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깊은 뜻을 모두 헤아리기는 어렵다. 다만, 근로는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고 노동은 돈 받고 남의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라면, 근로는 즐거울 수 있지만 노동이 즐겁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경영인이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다그치는 모양이다. 그들에게 주인이라면 행사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도 주지 않고 막연히 주인의식을 가지라니 딱한 일이기는 하다. 그저 주인만큼 뼈 빠지게 일하라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모두가 자신의 일터에서 정말 주인이라고 느낀다면 제이콥처럼 어깨가 고장나도록 땅을 파도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주인의식이 없으면 솜털 같은 병아리를 만지는 일도 중노동으로 느껴진다. 모두가 자신의 일터의 주인이거나 주인으로 느끼는 근로자가 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서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을 다시 현실을 인정하는 ‘노동절’로 바꾸자고 하는 걸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