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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왝 더 독(Wag the Dog) (2) 프레임 ‘생각의 지도’이자 ‘창문’
새 정권, 다시 시작된 프레임 전쟁 ... 가짜 뉴스 기반한 프레임 주의해야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 온 걸스카우트 대원 한명을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로 유인해 ‘성추행’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신줄을 잠깐 내려놓은 연예인이 그랬어도 세상이 시끄러울 사건을 대통령이 저질렀으니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힐 일이다. 

 

 

대통령이 말 그대로 대형 사고를 치자 모두들 ‘이제 정권은 끝장났다’고 망연자실하고 자포자기한다. 재선(再選)은 언감생심이고 탄핵과 파면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교도소로 직행할 판이다. 

그러나 영악한 백악관 여성 보좌관 윈프리드 에임스(Winfred Amesㆍ앤 헤이츠 분)가 전의를 상실한 백악관 참모들을 질타하고 나선다. ‘불가능이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Impossible is not a fact. It’s an opinion)’이라는 무하마드 알리의 불굴의 정신을 일깨운다. 

아디다스가 광고 카피로 적절하게 써먹어 유명해진 말이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이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It ain’t over til it’s over)는 불세출의 야구감독 요기 베라(Yogi Berra)의 ‘속단 금물’ 정신을 불어넣는다. 지난해 12월 3일 밤에 어처구니없이 선포해버린 비상계엄에 실패하고도 살아남을 길을 찾기에 분주했던 대통령과 집권당의 뻔뻔한 불굴의 정신을 닮았다.

‘불가능이란 사실이 아니고 단지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말은 용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대단히 긍정적인 메시지이지만, 이 다짐을 악당들이 마음속에 새기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에임스 보좌관은 ‘스핀 닥터(spin doctor)’ 브린(로버트 드 니로 분)을 초빙한다.

정치판의 스핀 닥터가 하는 일이란 현실에 ‘스핀(회전)’을 잔뜩 먹여 왜곡된 현실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다시 말해, 현실과 동떨어진 왜곡된 ‘프레임’을 짜서 상대와 ‘프레임 전쟁’을 벌이는 일이다. 

프레임이란 미국 사회심리학자 리차드 니스벳(Richard Nisbett)이 말하는 ‘생각의 지도’에 해당한다. 니스벳은 「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 How Asians and Westerner Think Differently and Whyㆍ2003년)」에서 동양과 서양 사람들이 동일한 문제를 서로 다른 ‘생각의 지도(문화적 프레임)’ 속에서 바라보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프레임이란 또한 ‘창문’과도 같다. 방 안에 갇힌 사람에게 세상은 네모난 작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이 전부다. 집밖에 호랑이 떼가 몰려와 있어도 창문으로 보이지만 않으면 집 밖은 안전한 곳이다.

브린은 불세출의 스핀 닥터답게 능수능란한 솜씨로 미국인들이 봐야 할 프레임을 짜준다. 그 프레임 속에는 느닷없는 알바니아와의 전쟁이 전면에 자리 잡는다. 대통령의 성추행은 프레임 밖으로 밀어내버린다.

우리는 대개 정치꾼들과 언론이 짜주는 프레임 속에 들어오는 것들만 보고,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현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보도되지 않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사건과 같은 것’이다.

우리도 매일 브린과 같은 스핀 닥터들이 벌이는 프레임 전쟁 속에 살고 있다. 어이없는 비상계엄 후에 ‘계엄=내란’의 프레임과 ‘계엄=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계엄만큼이나 황당한 프레임이 맞부딪혀 거의 내전을 치렀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는 ‘내란 청산’ 프레임에 이번에는 ‘내란 청산=정치 보복=독재’라는 기괴한 프레임으로 맞서는 또 다른 프레임 전쟁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브린이 만든 프레임 중앙에 자리 잡은 ‘알바니아 전쟁’이 허구라는 사실이다. ‘사실’에 근거한 프레임이라면 딱히 비난할 수도 없겠지만 ‘가짜 뉴스’를 기반으로 엉뚱한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이것 보라’고 하면 범죄행위가 된다. 우리네 스핀 닥터들이 열심히 들이댄 ‘계엄=자유민주주의 수호’ 프레임도 ‘부정선거’ ‘중국 간첩’ 등 무수한 가짜 뉴스들로 유지된다.

유교적 정치관에서 바람직한 지도자를 흔히 ‘자애로운 아버지(benevolent father)’라고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북한 ‘김씨’ 백두혈통들이 대를 이어 ‘어버이 수령’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모양이다. 자애로운 아버지가 보여주는 프레임이라면 자식들이 의심 없이 봐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정치모리배들과 권언유착된 ‘지라시’들이 보여주는 프레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성철 스님이 “달을 가리키는데 왜 달을 안 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느냐”고 질타했다지만 그건 성철 스님이 요즘 세상이 어떤지 몰라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누군가 달을 가리킨다고 달을 봐서는 안 된다. 우선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누구 손가락인지부터 분별하고 그 달을 볼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걸스카우트 소녀를 덮친 대통령이 알바니아를 보라고 하면 알바니아를 보지 말아야 한다.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부정선거와 중국간첩을 보라고 하더라도 있지도 않은 그 허상을 바라봐선 안 된다.
 

 

한번 프레임에 빠지면 그 프레임이 곧 고정관념이 돼서 그 프레임에 맞는 가짜 뉴스의 유혹도 뿌리치기 어려워지는 모양이다. 우리만큼이나 ‘가짜 뉴스’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에서 요즘 “See No Evil, Hear No Evil, Speak No Evil(사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듯하다.

아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이라는 일본 닛코동조궁(日光東照宮)의 ‘입틀막’ ‘귀틀막’ ‘눈틀막’ 하고 있는 3마리 원숭이들을 패러디 한 듯하다. 입틀막ㆍ귀틀막ㆍ눈틀막 원숭이들은 종종 언론탄압의 상징처럼 사용되기도 했지만, 원숭이들이 퍼트리는 가짜 뉴스에까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다룬 오디세이아에는 ‘사이렌(Siren)’이라는 마녀가 등장한다. 감미로운 노래로 선원들을 홀려 배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게 만드는 고약한 마녀다. 달콤한 가짜뉴스를 퍼뜨려 사회를 난파시키는 고약한 마녀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그 감미로운 소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 귀를 막지 않은 대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돛대에 결박해 그 위험구역을 벗어났다고 한다. 프레임 전쟁 속에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무사히 항해하려면 우리 모두 오디세우스 정도의 비범함을 갖고 있어야 하는 듯 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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