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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테넷 (4)

‘영웅’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항상 어마무시한 ‘악당’이 필요하다. 영웅과 악당의 크기는 정비례한다. 영웅과 악당은 그렇게 공존하고 어찌 보면 동업자 관계다. ‘테넷’에서도 이름 없는 영웅인 주인공의 존재는 사토르라는 최강의 악당이 있기에 더 빛나는지 모르겠다.

 

 

‘테넷’의 악당 사토르(Sator)는 수많은 ‘맨(man)자 돌림’ 히어로 영화들의 악당처럼 핵폭발로 지구와 인류를 끝장내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한 가학성이나 권력욕이 아니라 조금은 심오하다. 그래서 사토르를 단순히 또 하나의 황당한 악당으로 취급하기는 어렵다.

 

사토르는 인류를 몰살시켜야 하는 명분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엔트로피(entropy)’라는 머리 아픈 열역학 이론에서 찾는다. 열에너지로 전환된 모든 것은 본래 상태로 환원될 수 없다.

 

열역학은 그야말로 ‘시간’처럼 불가역적(irreversible)이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이 자체 열에너지 외에 또 다른 열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인간만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불을 피우고, 불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해서 먹으며, 밤에도 돌아다니기 위해 횃불을 든다. 

 

자기의 두 다리만으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어서인지 열에너지를 만들어 돌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공장을 돌리기 위해 또 열(전기)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인간들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인간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엔트로피」에서 적시한 대로 ‘절대, 그리고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지구상에 존재하는 남의 에너지를 빼앗아 변환해 사용할 뿐이다.

 

그렇게 열을 얻기 위해 나무를 모두 태우고, 석탄과 석유를 모두 태워 없애고 우라늄까지 태운다. 그러나 언급했듯 한번 타버리고 열에너지로 전환된 모든 것은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인간들이 열에너지를 얻기 위해 나무를 모두 태워버린 땅들은 사막이 되고, 물도 마르고 짐승들은 죽어간다.

 

 

사막이 돼버린 땅에서 불어오는 황사먼지도 고역이다. 매연을 나무나 석탄·석유로 되돌릴 수 없고, 비닐봉지나 페트병을 석탄이나 석유로 되돌릴 수 없다. 죽은 사람이 다시 일어나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도 거꾸로 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처럼 열역학의 엔트로피도 ‘불가역적’이다. 

 

그렇게 배출된 열에너지들의 찌꺼기로 오존층이 파괴되고 빙하가 녹고 북극곰들은 살 곳을 잃는다. 한번 물로 변환된 얼음을 얼음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완전하고 안전하게 태울 기술도 없으면서 참으로 무지막지하게 태운다. 우라늄을 태운 찌꺼기는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두들 난감해하면서도 여전히 용감하게 일단 태우고 본다.

 

인간들에게 ‘열(불·빛)’을 제공하기 위해 지구상의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라진다. 지구의 종말이다. 인류를 멸망시킬 ‘꿈’을 꾸는 사토르는 인류의 멸망과 함께 자신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 아마도 인류의 종말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에게 불을 전달한 프로메테우스에게 왜 신이 그토록 분노했는지 알 것도 같다. 아마도 신은 인간들에게 전달된 불이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불은 신 정도는 되는 완벽한 존재만이 온전히 다룰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사토르라는 악당을 통해 지구종말의 경고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와 지구 위에 사는 모든 다른 생명체를 위해서는 다른 것을 태워 ‘열에너지’를 얻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주는 것이 맞다. 사토르는 불을 훔쳐가서 세상을 망치고 있는 인간을 신을 대신해서 응징하려는 듯하다.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그리고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도한 많은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대체 에너지에 관심을 갖는다. 원자력 발전을 중단하고 풍력발전과 태양광 발전으로 대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원자력 발전’ 단계적 축소·중단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정쟁으로 치닫더니 법정으로까지 끌려다닌다. 모두 환경문제의 심각성은 인정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기술력으론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석탄이나 원자력 발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인 듯하다. 

 

인간의 지혜가 영화처럼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인버전’ 기술을 발명하고 열역학의 법칙도 거꾸로 돌릴 수 있게 되면 눈에 보이는 대로 마구 태워서 풍족하게 살아도 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안정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법 외에 없을 듯하다.

 

과연 인류가 지구상의 모든 것을 태워가면서 맛들인 달콤한 쾌적함과 소비의 중독에서 빠져나와 많은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더 오랜 기간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중독에 따르는 금단현상을 자신의 의지만으로 극복한 경우는 많지 않으니 말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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