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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가을의전설 (2)

러드로 대령(앤서니 홉킨스)은 ‘인디언 전쟁’에 참여해 아녀자들과 아이들, 노인들만 모여있는 인디언 마을을 불지르고 닥치는 대로 죽여야 하는 임무를 받는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지만 군인이 ‘국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일이다. ‘인디언 전쟁’ 아닌 ‘인디언 대학살’을 마무리 지은 러드로 대령은 군인의 상징인 칼을 패대기치고 국가와 군대를 버린다.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 그리고 학살의 죄책감에 무너진 러드로 대령이 찾아가 몸을 의탁한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몬태나주의 황량한 산기슭이다. ‘몬태나(Montana)’라는 이름 자체가 스페인어 ‘mo ntana(mountain)’에서 왔다. 문자 그대로 험준한 ‘산악(mountain)’ 지역이다. 그런 만큼 금광을 찾아나섰던 ‘골드러시’의 광풍이 휩쓸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몬태나주는 미국에서 4번째 큰 주(면적)다.

 

면적이 한반도 전체의 2배에 가깝지만, 1900년대 초 그 인구는 10만여명에 불과했던 어찌 보면 ‘대자연 공원’에 가까웠던 곳이다. 세상을 등지고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숨어살기에 딱 좋은 곳이다. 러드로 대령은 이곳에 정착해 목장을 일구며 살아간다. 자신이 학살한 인디언 부족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인지 ‘One Stab(한칼)’이란 인디언 부족장 출신쯤으로 보이는 인디언과 동지로 살아간다. ‘속세’에서 죄를 짓고 도망쳐온 현상수배범도 목장에 품어준다.

 

인종차별도 없고, 계급의 높낮이도 없고, 속세의 엉터리법에 전전긍긍할 일도 없다. 파이프 담배를 비껴 문 채 말떼를 몰고, 울타리도 고치고, 기분 좋게 타는 벽난로 앞에서 문학전집을 읽는다. 궁벽한 산간이지만 최신형 멋진 포드자동차도 굴리고, 목장일을 돌보는 ‘동료’의 인디언 아내가 록펠러가문이 부럽지 않을 식사 테이블을 차려준다. 집안 ‘식구’들 외에 꼴보기 싫은 ‘속세’의 인간들은 마주칠 일이 없다. 가히 무릉도원武陵桃源이고 궁극의 ‘공동체’다.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자연의 품에 안기고자 했던 인간들의 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1500년 전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나 1000년 전 어느 고려인의 ‘청산별곡靑山別曲’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연명은 입신양명에 눈이 멀고, 권력에 아부하고 탐욕에 타락하는 속세에 진저리를 치고 “내 어찌 한갓 오두미五斗米(관리 월급)에 허리를 굽힐쏘냐”며 나이 40에 모든 것을 버리고 ‘전원생활’에 돌입한다. ‘청산별곡’의 어느 고려인도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며 속세를 버린다.

 

그러나 도연명의 ‘귀거래’는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전원생활 몇달 만에 술값으로 가진 돈 모두 털어먹고, 경제적으로 무척 쪼들려서 친구들에게 생활비 협찬을 받아가며 우울한 전원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청산별곡’의 고려인도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까지는 호기로운데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울어라 새여 자고 일어나 울어라 새여, 너만큼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우노라’고 궁상을 떤다. 청산에 산다고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일견 인스타그램 사진처럼 환상적으로 보이는 러드로 대령의 ‘귀거래사’도 내막을 알고 보면 씁쓸하다. 사진 밖 풍경은 사진 속 풍경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대령의 아내는 몬태나의 혹독한 추위에 질려 동부의 도시로 튀어버리고 러드로 대령은 졸지에 아들 셋 키우는 홀아비가 돼버린다.

 

 

1차 세계대전의 광풍은 몬태나의 ‘청산’이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철딱서니 없는’ 아들들은 공명심에 들떠 에베레스트 등반이라도 가는 것처럼 전쟁터로 떠나버리고 목장의 말들도 공출당한다. 러드로 대령은 ‘청산’의 독거노인이 돼버린다. 막내아들이 속세에서 ‘묻혀온’ 약혼녀, 큰아들이 ‘속세’에서 묻혀온 인연들은 러드로 대령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청산’을 속세보다 더 엉망진창의 파국으로 몰아간다. 인스타그램은 인스타그램일 뿐이다.

 

오늘도 많은 도회인들이 ‘청산별곡’과 ‘귀거래사’를 읊으며 전원생활을 꿈꾼다. 그러나 도연명도 실패하고 러드로 대령도 실패한 ‘청산에 살어리랏다’의 꿈이 그리 쉽겠는가. 서울 근교 강변을 지나다 보면 모텔들과 뒤섞여 ‘전원주택’들이 껌딱지처럼 빼곡하다. 눈 닿는 곳은 모두 회색빛 아파트 건물 아니면 흉물스러운 비닐하우스뿐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깊은 청산을 찾아들어갈 엄두는 내기 어려운 도시인들이 부르는 어정쩡한 ‘청산별곡’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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