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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가을의전설 (3)

‘가을의 전설’에 등장하는 러드로 대령의 가문은 영국 콘월(Cornwall)계다. 영국계 이민자의 혈통인 셈이다. 한국의 김씨 중에도 여러 문중과 파가 있듯, 영국 앵글로색슨족에도 여러 파가 있다. 코니시(Cornish)로 불리는 영국 콘월 지방 출신의 앵글로색슨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가장 유서 깊은 앵글로색슨이라 자부한다. 콘월 출신 미국 이민자들 역시 스스로를 ‘코니시 아메리칸(Cornish American)’으로 부르며 남다른 콧대를 자랑한다.

 

 

‘코니시 아메리칸’은 다른 앵글로색슨보다 앞서 미국에 이주하고 광산개발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코니시 아메리칸’이었으니, 이들이 유별난 자긍심을 느낄 만도 하다. 그래서인지 러드로 대령을 연기하는 앤서니 홉킨스는 알아듣기 어렵고 오만하고 딱딱한 영국 ‘코니시’ 억양을 구사한다. 무척 인상적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성(姓)인 ‘러드로(Lud low)’는 콘월 사람들이 세운 영국의 유서 깊은 도시 이름이다. 영국 혈통의 종가를 자처하는 미국 국적자들이다. 이 때문인지 러드로 대령의 두 아들 알프레드와 새무얼은 영국에 거칠게 도전하며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행동에 흥분하고, 자신들의 국가인 미국이 참전도 안 한 전쟁에 뛰어들기 위해 캐나다군으로 입대하는 열정을 보인다. 이처럼 민족은 항상 국가보다 앞선다.

 

러드로 대령의 큰아들 이름은 ‘알프레드’이고 막내아들 이름은 ‘새무얼’이다. 평범하다. 그런데 ‘가을의 전설’ 서사의 중심인 둘째 아들(브래드 피트)에겐 평범한 영미계의 이름이 아닌 ‘트리스탄’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부여했다. 그 이름만으로 영화 ‘가을의 전설’의 모티브가 북유럽의 전설 ‘트리스탄과 이졸데’임을 알 수 있다. ‘트리스탄’의 뜻은 슬픔(trieste)에서 파생된 ‘슬픈 사람’이다. 영화가 비극적으로 흘러갈 것이 뻔하다.

 

 

바그너가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의 배경은 콘월 지방이다. 전설 속 트리스탄과 이졸데 모두 코니시인 셈이다. 그리고 이 둘의 비극적 사랑은 또 다른 코니시들의 후예인 트리스탄과 수잔나가 숨쉬는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재현된다. 전설 속의 트리스탄은 자신이 충성하고 수호해야 할 콘월 지방의 왕인 ‘마크(Marc)’의 약혼녀 이졸데와 ‘불륜’의 비극적 사랑에 빠지고, 영화 속 트리스탄 역시 자신이 ‘수호천사’ 역을 자임한 동생 새무얼의 약혼녀 수잔나와 괴로운 사랑에 빠지고 만다. 흥미로운 건 또 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극적인 불멸의 사랑을 오페라로 탄생시킨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는 그의 음악의 ‘왕팬’이자 경제적 후원자였던 스위스의 거부(巨富) 오토 베젠통크(Otto Wesentonck)의 아내 마틸데(Mathilde)와 해서는 안 될 사랑에 빠져 방황했던 인물이다. 자신의 ‘불륜의 사랑’에 번민하던 바그너는 자신의 이야기와 같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에 꽂혀 불후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미친 듯이 매달려 완성한다.

 

방황하던 바그너에게 마음의 평온을 되찾게 해준 것은 염세주의 철학의 대부쯤으로 불리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였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결혼은 권리를 반감(半減)시키고, 의무를 배가(倍加)시킨다’는 믿음으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모든 악惡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행복’이란 불가능하며, ‘사랑이란 없다’고 단언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이 세상에 인간의 이성이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없다. 행불행과 사랑이 어디 사람의 이성과 의지로 되는 문제이던가. 사람들이 ‘뜻’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전생前生이 있다면 아마도 전생에 승려였을 법한 쇼펜하우어의 해법은 ‘체념(諦念)’과 ‘해탈(解脫)’이다.

 

쇼펜하우어의 독설대로, 전설 속의 트리스탄이나 이졸데는 온갖 ‘악(惡)’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운명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안타깝게 죽어간다. 영화 속의 트리스탄과 수잔나도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운명과 사랑으로 불행에 빠졌고, 수잔나는 자살로 세상을 마친다.

 

코로나 재확산 사태와 태풍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느닷없는 교회 예배문제, 의료 파업까지 겹치면서 온 사회가 뒤숭숭하다. 모두들 ‘나의 이성, 나의 마음, 나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세상이 마땅치 않아 속 터지는 모양이다. 세상이 온통 욕설로 가득 찬 느낌이다. 마음 가라앉힐 일이다. 나 자신 하나 내 의지,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세상이 어찌 내 뜻대로 돌아가겠는가. 쇼펜하우어 말대로 세상은 나의 ‘의지’의 ‘표상’이 아닌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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