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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3)

“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늘 용기 있게 선(善)을 행할 것이며, 생명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며 약자를 보호하라.” ‘기사의 서약문’이다. 이벨린의 영주 고프리는 아들 발리앙을 체포하러 온 법 집행관들을 도륙하고 죽음이 임박하자 발리앙을 기사로 임명한다. ‘킹덤 오브 헤븐’에는 혼란 중에 두차례 ‘약식’ 기사 서임식(敍任式) 장면이 나온다.

 

 

예루살렘으로 십자군 원정길에 오른 이벨린의 영주 고프리는 사생아 발리앙을 대장간에서 조우해 동행한다. 발리앙은 이미 마을에서 사제를 살해한 몸이다. 이내 군사들이 쫓아와 체포하려 든다. 법 집행관들은 명색이 그래도 작위를 받은 고프리의 체면을 고려해 꽤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한 뒤 순순히 발리앙을 내어달라고 청한다.

 

발리앙도 자신의 살인죄를 인정한다. 그러나 고프리는 명예로운 기사답게 아들을 내어주기는커녕 부하들과 대뜸 칼을 뽑아 들고는 국가의 집행관들과 살육전을 벌인다. 집행관들은 몰살당하고 평생을 주군 고프리와 함께 전장을 누벼온 충성스러운 기사들마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도 전에 황당하고 허망하게 죽어간다. 고프리도 깊은 상처를 입고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된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 고프리는 아들 발리앙을 자신을 대신할 기사로 임명한다. 중병에 걸려 허겁지겁 어린 아들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는 회장님 모습이다. 그러나 발리앙에게 기사의 서약을 따라 하게 하고 칼을 전하는 고프리 남작은 진지하고 엄숙하다. “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늘 용기 있게 선善을 행할 것이며, 생명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며 약자를 보호하라.” 발리앙은 중세 이래 내려온 ‘기사의 서약’을 선서한다.

 

그러나 조금은 어이가 없다. ‘살인자 체포’라는 정당한 법 집행을 하러 온 국가 관리들을 자신의 기사들과 함께 도륙한 아버지가 아들을 기사로 임명한다. 고프리도 어디에선가 기사의 선서를 한 기사임이 분명할 텐데, 살인자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 관리들을 도륙하는 일엔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일말의 갈등이나 가책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저지른 짓이 기사의 서약 어느 한 부분에라도 부합됐는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기사 서임식은 살라딘 대군에 포위당한 채 처절한 수성전(守城戰)을 벌이는 예루살렘 성안에서 벌어진다. 정규군이라 할 수 있는 십자군 기사들은 이미 거의 전사하고 없다. 조금은 ‘꼴통’스러워 보이는 예루살렘의 주교가 수성전의 총지휘자인 발리앙을 쫓아다니며 징징댄다. “우리는 이미 기사도 없다. 기사도 없이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살라딘에게 항복해야 한다.”

 

발리앙은 즉석에서 아직 살아남아 칼을 들 수 있는 모든 자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한다. 그리고는 영문도 모른 채 무릎 꿇고 어리둥절한 모든 ‘잡인’을 즉석에서 기사로 집단 임명한다. 아버지 고프리 남작에게 배운 기사의 서약을 반복한다. “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늘 용기 있게 선을 행할 것이며, 생명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며 약자를 보호하라.”

 

이 변칙적인 기사 서임식 장면에 ‘꼴통’ 주교는 비분강개한다. 꼴통 주교가 분노할 만도 하다. 원래 기사란 게르만족 성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사가 되려면 유소년기부터 귀부인의 시중을 들며 절제와 예의를 배우고 몸에 익혀야 한다. 그런 다음 체계적으로 학문과 창검술을 배우고, 실제 전투에 참가해 전투경험을 쌓은 후에야 영주나 명망 있는 기사에 의해 임명된다.

 

실제로 영화 속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급조된 ‘즉석 기사’들은 전투력이 급상승해 절대 열세를 딛고 이슬람 최강의 살라딘 부대와 ‘비벼댄다’. 그러나 분명 ‘기사’의 모습은 아니다. 그저 전투 기계이고 도살자들일 뿐이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변함없이 여러 정당에서 기사 서임식과 같은 정치 신인들에 대한 ‘정치인 서임식’이 행해진다. 우리가 지금 성밖에 살라딘의 대군을 맞이한 것도 아닌데, 이곳저곳에서 출신도 경력도 자질도 가리지 않는 ‘즉석 서임식’이 벌어지고 있다. 즉석 정치인들이 ‘총선’이라는 전투에 나선다. 칼을 들어 적들을 죽일 수만 있다면 아무나 기사로 임명하듯,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정치인으로 임명한다.

 

즉석 정치인 모두 전투 게이지가 급상승하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 속 기사들에게서 기사의 본래 모습을 찾기 어려웠던 것처럼, ‘정치인’들에게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본래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황당한 기사 서임식을 접한 영화 속 꼴통 주교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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