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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SE7EN (1)

‘명장’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SE7EN(1995년)’은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범죄스릴러 영화의 전형이다. 그러나 ‘인간의 7가지 죄악’을 모티브로 삼아 다른 범죄스릴러물과는 차별화된 ‘무거움’을 전달한다. 단테의 「신곡」과 제프리 초서(Geoffer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가 다루는 인간 군상의 모습과 죄악이 사건 실마리를 푸는 열쇠로 등장한다.

 

 

영화는 온통 7이라는 숫자로 구성된다. 연쇄살인마 존 도(케빈 스페이시)는 7일 동안 단테의 「신곡」에서 경고한 7가지 죄악인 ‘탐식(Gluttony), 탐욕(Greed), 나태(Sloth), 욕정(Lust), 교만(Pride), 시기(Envy), 분노(Wrath)’를 단죄하는 살인을 감행한다. 이 엽기적인 연쇄살인 사건이 정년퇴직을 정확히 7일 앞둔 노형사 서머셋(모건 프리먼) 앞에 떨어진다.

 

영화의 배경을 ‘뉴욕시’라고 명시하지는 않지만, 그 분위기로 보면 ‘고담시’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은 뉴욕시임이 거의 분명하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끊임없이 빛과 그림자를 대비시키듯이 고담시는 화려함과 추악함이 공존한다.

 

고담시를 감싸고 있는 화려한 포장 속의 추악함을 30년 넘게 헤쳐온 서머셋 형사는 거의 탈진 상태로 정년퇴직만을 기다린다. 이 끔찍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농장을 가꾸는 조용한 말년을 꿈꾼다. 반면 혈기방장한 밀스(브래드 피트) 형사는 오히려 평화로운 시골 경찰의 따분함이 지겨워 고담시의 ‘활극’을 찾아 이곳으로 전근한다.

 

연쇄살인마 존 도는 식탐이 심한 뚱보를 묶어놓고 12시간 동안 스파게티를 강제 급식시킨 뒤 배를 걷어차 내장을 터뜨려 죽인 엽기적인 살인현장에 ‘Gluttony(탐식)’라는 처형의 ‘죄명’을 적어 남긴다. 죄명을 본 ‘박식한’ 서머셋 형사는 그것이 단순 살인이 아니라 단테의 「신곡」에서 경고한 7가지 죄악에 대한 정죄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서머셋 형사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다. 7일 동안 나머지 ‘탐욕, 나태, 욕정, 교만, 시기, 분노’의 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존 도의 처형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완성된다. 탐욕스러운 변호사, 아동 성폭행범, 금발의 창녀, 교만한 모델이 차례로 죽어나간다.

 

그리고 남은 2개의 죄악인 ‘시기’와 ‘분노’의 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존 도의 정죄에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기발한 반전이 기다린다. 존 도는 자신에게 격정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한 죄를 범한 밀스 형사를 정죄한다. 어쩌면 가장 잔인한 처벌이다. 밀스 형사 대신 그의 아내 트레이시(기네스 팰트로)의 목을 잘라 밀스 형사에게 보낸다. 마지막으로 시기의 죄악을 범해 죽어야 하는 자로는 바로 존 도 자신을 선택한다. 존 도는 사랑스러운 아내를 가진 밀스 형사를 시기했음을 고백하고, 밀스 형사에게 죽임 당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렇게 7일 동안 7가지 죄악에 대한 정죄가 마무리된다. 정년퇴임을 정확히 7일 앞두고 이 모든 끔찍한 현장의 목격자이자 증인이 된 서머셋 형사는 참으로 불운하다. 서머셋 형사는 연쇄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를 정독한다. 캔터베리 대성당 순례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순례길에 서로의 ‘이야기’를 심심파적 삼아 하나씩 풀어놓는 형식의 이야기책이다.

 

 

여기에는 중세 영국 사회의 최상층인 왕과 최하층인 거지를 제외한 모든 지위와 생업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가감 없는 모습들이 등장한다. 기사, 수녀원장, 수도사, 상인, 옥스퍼드 대학생, 의학박사, 농부, 사기꾼까지 망라한다. 왕과 거지라는 ‘양극단’을 제외한 랜덤 샘플링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한 ‘세상 이야기’인 셈이다. 이 모든 잡다하고도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화자(話者) 중의 하나인 테세우스 공이 세상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이 세상은 불행이 가득 찬 길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을 오가는 순례자들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서머셋 형사의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헤밍웨이는 ‘세상은 괜찮은 곳이고, 그것은 지키기 위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뒷부분에만 동의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어둠의 현장을 모두 목격한 서머셋 형사가 세상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세상은 ‘괜찮은 곳’이 아니라 ‘불행으로 가득 찬 길거리’이다. 그렇지만 ‘지키기 위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한, 그런 것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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