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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40)

특정한 상황에서 거시적으로,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은 떠야한다.”

 

보고도 못 본 체 눈감아 줄 수 있어야한다.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면 놓아줄 것은 놓아주어야 한다.

 

“물이 지극히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¹는 말이 이 뜻이다.

 

반초(班超)²는 서역에 오랫동안 있었다. 조정에 상소를 올려 자기가 살아서 옥문관 안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피력하였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반초를 불러들이고, 교위(校尉) 임상(任尙)³을 파견해 반초의 직위를 대체하였다.

 

 

임무를 교대할 때 임상이 반포에게 말했다.

 

“공이 서역에서 30여 년을 살았는데 오늘 제가 공의 직무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중임을 맡게 되니 고려하여야 할 문제가 많은데도 얕은 지식밖에 없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합니다.”

 

반초가 말했다.

 

“새외의 관리와 사병은 본래 효자도 유순한 손자도 아닙니다. 죄를 범해 둔전에서 변방을 지키려온 수자리입니다. 외족 부락도 변방을 넘어오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무하고 단결시키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공의 성정이 너무 엄격하고 급합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는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정사를 똑똑히 관찰하고 문제를 평화롭게 처리하려면 공께서 낙관적이면서 간단하게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타인의 조그마한 일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그저 큰 원칙만 제대로 파악하시면 됩니다.”

 

반초가 떠난 뒤 임상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반초가 무슨 묘책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평범하니 별거 없습디다. 일반적인 이치만 말하더이다.”

 

나중에 임상이 서역을 지킨 지 몇 년 되지 않고 반란이 일어났다. 반초가 경고하고 예측한 대로 되어버렸다.

 

□ 임상비(任尚碑), 한평이비(漢平夷碑)라고도 한다. 1957년에 위구르 하미(哈密) 동천산 북쪽 산기슭의 송수당(松樹塘) 북쪽 2000미터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비의 높이는 1.60미터, 넓이 0.65미터, 모두 5줄의 비문, 매 줄마다 10여 자가 있었다. 읽을 수 있는 글자는 “唯漢永元五年”, “任尚” 등 몇 자에 불과했다. 이 비는 임상(任尚)이 왕보(王輔)와 연합해 북흉노(北匈奴) 선우를 도건(涂鞬)에서 패퇴시킨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水至淸則無魚,人至察則無徒.”(『한서(漢書)·동방삭전(東方朔傳)』

 

2) 반초(班超, 32~102), 자는 중개(仲升), 부풍(扶風)군 평릉(平陵)현(현 섬서陝西 함양咸陽 동북) 사람이다. 동한(東漢)시기 유명한 장군, 외교가이다. 사학자 반표(班彪)의 막내아들로 그의 형 반고(班固), 누이 반소(班昭)도 유명한 사학자이다.

 

3) 임상(任尚, ?~118), 동한(東漢) 장군이다. 호강교위(護羌校尉) 등훈(鄧訓)의 호강부장사(護羌府長史)를 역임하였다. 영원(永元) 원년(89), 등훈을 따라 강족(羌族) 소당부락(燒當部落) 수령 미당(迷唐)을 패퇴시켰다. 영원 10년(102), 반초(班超)를 대신해 서역도호(西域都護)을 맡았다. 원초 5년(118), 임상은 등준(鄧遵)과 전공을 다퉈, 강인(羌人)을 패퇴시킨 숫자를 허위로 보고하고, 뇌물을 받은 죄로 경사(京師)에서 참수 당했다. 효시하고 재산도 몰수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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