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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23)

옛사람이 말했다. 자신이 가장 옳다고 하는 사람은 믿지 말고, 어질다 어질지 않다 시비하는 사람은 경계하라. 무슨 말인가? 우리가 주의하지 않을 때 어느 때 어디서든지 소인이 나타나 문제를 일으키면서 우리에게 엄중한 손해를 입힌다는 말이다.

 

전국시대에 중산(中山, BC414~BC296)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국군(國君)은 많은 사인(士人)을 받아들였다. 어느 날, 중산국의 국군이 도성에서 국내의 명사와 인재, 현사를 위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의 주된 요리는 양고기 죽이었다. 창졸지간에 준비하여서 그랬는지 양고기 죽이 충분하지 못하여 죽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생겼다. 당시에 국군도 몰랐고 여타 사람도 개의치 않았다. 단지 사마자기(司馬子期)라는 사람만 양고기 죽을 먹지 못하여 마음속에 원한을 품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오늘 여기에 온 사람은 모두 명사다. 나 사마자기도 아무 짝에 쓸모없는 사람도 아니고 범재도 아니잖은가. 모든 사람이 다 양고기 죽을 분배 받았는데 오직 나만 받지 못했다.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은 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오로지 나만 죽을 먹지 못한다니. 더욱이 어떤 사람은 한쪽에서 죽을 먹으며 나를 비웃고 있지 않는가. 당신들에게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고야 말리라.”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몸을 일으켜 자리를 뜨고는 그날 밤에 초(楚)나라로 건너가 의탁하였다. 당시 연회장이 혼란해 중산국의 국군도 주의하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강대한 초나라가 사마자기의 교변과 유세에 따라 군대를 일으켜 중산을 침략하였다. 중산국은 힘도 써보지 못하고 철저히 패배하였다. 중산국의 국군은 창황히 국외로 도피하였다. 양고기 죽이 부족해 사마자기라는 소인에게 나누어주지 못한 까닭에 패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원한은 깊고 얕은 것에 있지 않고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느냐에 달렸구나. 나는 양고기 죽 한 사발 때문에 나라를 잃었구나.”

 

 

중국의 고대 전설에, 법술(法術)이 높은 도사(道士)는 아무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절초가 있다고 한다. 버드나무 잎사귀 하나를 가지고 자신의 눈을 비비면 찰나지간에 손오공처럼 진짜와 가짜를 식별할 수 있는 눈,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변화무쌍한 요마, 귀신은 숨을 곳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사회는 그런 버드나무 잎사귀를 찾기 힘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기만당하기만 하지 않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속담에 말을 잘하는 것은 잘 듣는 것보다 못하고 잘 치장하는 것은 잘 보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지를 않던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잘 배우기만 하면 혜안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각양각색의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공격할 때와 방어할 때를 확실히 알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제환공(齊桓公)은 만년에 신하 수조(竪刁), 역아(易牙), 위개방(衛開方) 3명을 총애해 신임하였다. 환관 수조는 제환공이 가장 믿는 신하였다. 원래 환관이 아니고 일반 관리였는데 환공을 곁에서 모시고자 스스로 원하여 궁형을 받았다.

 

역아는 요리 전문가였다. 어느 날 제환공이 말했다. “나는 모든 음식을 먹어봤는데 사람 고기는 먹어보지를 못했구나.” 그날 저녁 만찬에 여태껏 먹어보지 못한 찐 고기가 나왔다. 유달리 맛이 있었다. 제환공이 대단히 기뻐하며 칭찬하자 역아가 말했다. “그것은 나의 3살 난 아들의 살입니다. 신이 듣기로 충신은 자신의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 아들을 국군에게 바친 것입니다.”

 

위개방은 위(衛)나라 귀족으로 15년이나 제환공을 모셨다. 그 사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떴으나 집으로 돌아가 상도 치르지 않았다.

 

이 세 명의 믿을 수 있는 신하가 보여준 충성심에 제환공은 대단히 감동하였다. 그러나 관중(管仲)은 분석해 말했다. “인간의 본성을 보면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몸에조차 냉정하게 상해를 가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더 악독하게 상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자식에게조차 모질게 대하는데 어느 누구에게 모질지 않게 대하겠습니까?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15년 동안이나 부모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부모조차 염두에 두지 않는데 어느 누구를 염두에 두겠습니까?” 제환공은 일생동안 관중의 간언은 잘 받아들였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2년 후, 기원전 643년에 제환공은 중병을 얻어 일어나지 못했다. 수조와 역아는 강소백이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충성해봐야 얻을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태자 강소(姜昭)를 폐위시키고 제환공의 다른 아들 강무휴(姜無虧)를 옹립하려 하였다. 계속해서 총애를 받을 수 있고 권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누구도 제환공의 침궁에 들지 못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런데 3일이 지나도 제환공은 죽지 않았다. 역아는 갑자기 화를 내며 좌우에서 시중들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내쫓아버리고 침궁 주위에 위장을 세워 안팎으로 나다니지 못하게 만들었다. 제환공은 병상에서 굶어 죽었다.

 

제환공의 비극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간사한 자들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지지 못하면 지불하는 대가가 가혹하기 그지없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식별하는 방법은 많다. 하나하나 소개하기는 그렇고, 한 마디로 말한다면 ‘열려있는 안목’으로 세상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이 아니면 다 나쁘다는 관점은 버려야한다. 적이 아니면 친구라는 표준도 버려야한다. 여러 가지가 뒤엉켜있는 복잡한 사회를 흑백논리만 가지고 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속이면서 억지로 회색인데도 백색이다 흑색이다 말해서도 안 된다.

 

공자가 말했다. “사람 마음이란 산천보다 위험하다. 하늘을 알기보다도 어렵다. 하늘은 춘하추동과 아침저녁 주기라도 있지만 사람은 표정을 두텁게 꾸미고 진정을 깊이 감추고 있다. 그 때문에 외모는 성실해 보여도 속마음은 교만한 자가 있다.”

 

사람들은 늘 말하지 않는가? “사람을 해하려는 마음도 가져서는 안 되고 ; 방비하는 마음도 없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해치면 법률이나 도덕에 제약이 있고 상대방의 보복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사람을 해하는 것만 하지 않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방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본성 중에서 흔히 ‘악(惡)’이라 부르는 어떤 것을 방비하여야 한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순수하고 선량한 사람이 있을까? 절대적으로 사악한 사람은 또 존재할까? 절대 다수는 좋고 나쁨이 혼재해 있다. 절대 ‘악’? 절대 ‘선’? 어쩌면 악이나 선이란 구분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관점으로 말하면 선에도 악이 있고 악에도 선이 있다. ‘악’이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달라진다. ‘악’이 언제 발동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여기서는 그저 ‘나쁨’을 악이라고 하자. 절대적 악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쁜 마음이나 행위’를 악이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절대 ‘악’을 논하는 게 아니다.)

 

사람은 언제 악한 마음이 나타날까? 욕망을 확장시키려 할 때나 욕망이 위해를 당할 때 나타난다. 달리 말하면 선한 사람도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 악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승진하려 하는데 해로운 책략을 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다른 경쟁자를 공격한다거나 ; 생존을 위하여, 이해관계 때문에 친구를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거나 ; 막다른 골목에 몰려 궁한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사기 치고 강도짓 하고…….

 

예를 들어보자.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일면식도 없는 낮선 이일 경우가 있듯이 사기를 친 자가 우리의 친한 친구일 때가 있다. 이럴 경우에는 낮선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는 것보다 더 무섭다. 만약 세상사람 모두를 좋은 사람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보이는 곳에서 날아오는 창은 피하기 쉽지만 몰래 쏘는 화살은 막아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 아니던가. 우리를 해하려고 하면서 먼저 그렇게 하겠노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물]

 

○ 제환공(齊桓公, ?~BC643), 성은 강(姜), 여(吕) 씨, 이름은 ‘소백(小白)’, 춘추오패(春秋五霸)의 수장으로 진문공(晉文公)과 함께 ‘제환진문(齊桓晉文)’이라 병칭되기도 한다. BC685 ~ BC643 재위한 춘추시대 제나라 제15대 국군(國君)이다. 강태공(姜太公) 여상(吕尚)의 제12대 손이다.

 

○ 『증광현문(增廣賢文)』 :

 

자신이 가장 옳다고 하는 사람 믿지 말고 어질다 어질지 않다 시비하는 사람을 경계하라. 산에는 곧은 나무가 있지만 세상에는 곧은 사람이 없다.(莫信直中直,須防仁不仁.山中有直樹,世上無直人.)

 

○ 사(士)는 상고시대에 형옥(刑獄)을 관장하던 관리다. 상(商), 서주(西周), 춘추시대에 귀족계층으로 대부분 경대부(卿大夫)의 가신(家臣)이었다. 춘추시대 말기 이후에 점차 통치계급 중 지식인의 통칭으로 변했다. 전국시대의 사(士)는 문장으로 이론을 내세우는 학사(學士)가 있었고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는 용사(勇士), 음양과 역산을 이해하고 있던 방사(方士), 지략과 계책을 제공하는 책사(策士) 등이 있었다. 예를 들어 형가(荆軻)는 연(燕)태자 단(丹)을 위하여 진왕(秦王)을 저격하였고 풍훤(馮諼)은 맹상군(孟嘗君)의 식객이었으며 소진(蘇秦)은 연횡(連橫)을 주창하고 실행하였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은 고대의 4민(民)으로 학사, 농민, 공인, 상인이었다. 다시 말해 ‘사(士)’는 선진시대에 가장 낮은 귀족계층이었다. 춘추시대에 사(士)는 대부분 경대부(卿大夫)의 가신이었다. 봉록으로 삶을 유지하거나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하였다. 전국시대 이후 첨차 지식인을 부르는 통칭이 되어 생산노동을 하지 않는 독서인이 되었다.

 

 

○ 『장자(莊子)·잡편(雜篇)·열어구(列御寇)』 :

 

공자가 말했다. “무릇 사람의 마음이란 산천보다도 위험하고 하늘을 알기보다 어렵다. 하늘은 춘하추동과 아침저녁이라는 주기가 있지만 사람은 표정을 두텁게 꾸미고 진정을 깊이 감추고 있다. 그 때문에 외모는 성실해 보여도 속마음이 교만한 자가 있으며, 속에 뛰어난 덕을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는 자가 있고, 겉으로는 성급한 것 같지만 사리에 통달한 자가 있으며, 견실한 것 같으나 실은 산만한 자가 있고, 느릿느릿 여유 있어 보이나 실은 거칠고 조급한 자가 있다. 그러므로 정의를 목마른 듯 급하게 추구하는 자는 도리어 정의를 불에 덴 것처럼 버린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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