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경복시킬 수 있는 지모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사람이 한 번 보면 대단히 수준이 높고 솜씨가 뛰어나야한다. 고대 변사(辯士)의 유세처럼 끊임없이 흘러넘쳐야 한다 ; 둘째, 표면적으로는 무미건조하고 평담하지만 지극히 현묘한 이치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타인에게 쉽게 간파당하지 않아야한다. 제갈량(諸葛亮)이 놓은 석두진(石頭陣)(★)처럼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게 만들어야 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안개에 가려진 산과 강이 드러내듯이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야한다. ‘현산로수(顯山露水)’(★★)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드러내 사람을 확연대오하게 만들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어야 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BC475~BC221)에 범려(范蠡, BC536~BC448)는 월(越)나라 왕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후 월나라를 떠나 제(齊)나라에서 치이자피(鴟夷子皮)(★★★)라 이름으로 바꾸고 제나라 대신 전성자(田成子) 문하로 들어간다. 나중에 전성자가 제나라를 떠나 연(燕)나라로 도망갈 때 범려는 부신(符信)을 지고 전성자를 따라갔다. 망성(望城)에 도착하자 범려가 말했다. “주인께서는 물 마른 연못[涸澤]의 뱀(★★★★)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으셨는지요? 물이 말라버린 연못에 살던 뱀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은 뱀이 큰 뱀에게 말했습니다. ‘큰 뱀이 앞서고 작은 뱀이 뒤따르면 사람들은 우리를 도망치는 뱀이라 보고
우리를 죽일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태우고 가는 것만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신과 같이 여겨 죽음을 면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와 같습니다. 당신은 풍채가 있고 저는 초라합니다. 저는 당신의 종이니 사람들은 대부분 당신이 촌뜨기 졸부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저의 종처럼 행세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만승지국의 대신으로 볼 것입니다.”
전성자가 듣고는 이치에 맞는다 생각하고는 부신을 짊어지고 범려 뒤를 따랐다. 귀빈을 영접하는 여관에 다다르자 아니나 다를까 여관 주인은 그들을 대단히 존중해 술과 고기를 내놓고 접대하였다.
이것이 일상적인 사고를 뒤엎어 행동하는 방식이다. 암암리에 자신의 신분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보이게 만들었다. 일반인의 관성에 젖은 사유방식을 꿰뚫어본 지혜다. 그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다.
송(宋)나라 때의 일이다. 진회(秦檜, 1090~1155)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 각지에서 올라오는 공물을 자기 집에 먼저 가지고 오게 한 후에야 고종(高宗)에게 바쳤다. 어느 날, 진회의 부인 왕(王) 씨가 입궁해 고종의 모친 현인(顯仁)태후를 알현하자 태후가 요 근래 궁에서는 큰 물고기를 볼 수 없다고 하니 왕 씨가 말했다. “우리 집에는 큰 물고기가 많습니다. 제가 100마리를 진상해 드리지요.”
왕 씨가 집으로 돌아가 진회에게 말하자 진회는 해서는 안 될 만을 했다고 질책하고는 고민하였다. 이튿날 진회는 사람을 보내 시장에서 청어 100마리를 사오게 해서는 황궁에 진상하였다. 현인태후는 비웃으며 말했다. “왕 씨가 촌티를 벗지 못했구려. 과연 예상하였던 바를 벗어나지 못하는 구려.”
정후(程厚)가 태자 중사(中舍)로 있을 때 하루는 진회의 관저로 초청을 받았다. 서재로 안내 받아 쓸쓸하게 혼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탁자 위에 문장이 쓰인 종이가 놓여있었다. 서명은 ‘학생 진사 진훈(秦塤) 올림’이라 되어있었다.
정후는 혼자 앉아 묵묵히 펼쳐보니 글재주가 넘쳐나는 게 아닌가. 너무 뛰어나 여러 번 읽게 되면서 그중 몇 문장은 외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가 문장을 읽고 있을 때 시종이 끊임없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왔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진회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후는 알 듯 모를 듯 이상하다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조정에서 자신이 과거 주임 시험관에 임명돼서야 진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정후는 진회의 저택에서 본 문장의 제목으로 출제하였다. 결과는? 진훈의 문장이 출중해 급제하였다.
진회는 최고의 ‘한간(漢奸)’이라 욕먹을 정도로 한심한 작태를 연출한 인물이기는 하다. 권력을 휘두르고 사사로이 이익을 취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어떤 문제를 처리하는 수법을 보면 일반인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지모를 갖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미천한 사람에게 최고의 지혜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바로 알아야 할지니. 이와 같은 이야기는 또 전해온다.
송(宋)나라 때 왕수(王隨, 약975~1039), 자는 자정(子正), 시호는 장혜(章惠), 진사 시험을 볼 때 집안이 무척 가난하였다. 익성(翼城)에 머무를 때 밥값을 빚져 현부에 잡혀갔다. 당시
석무균(石務均)의 아버지가 현의 관리로 있었는데 왕수를 대신해 밥값을 갚아주었고 집에 며칠 묵게 하였다. 석무균의 어머니도 그를 특별히 예우하였다. 하루는 석무균이 술에 취하여 왕수에게 춤을 추라고 하였다. 춤사위가 박자와 맞지 않자 왕수를 구타하였다. 그러자 왕수는 화를 참지 못해 석무균의 집을 떠났다.
이듬해에 왕수가 과거에 급제해 진사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 화북의 전운사(轉運使)가 되었다. 석무균은 왕수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려움에 떨면서 숨기에 바빴다. 나중에 석무균이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히게 되었다. 석무균의 아버지는 화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석 씨 집안사람들이 왕수에게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하며 도움을 청했다. 그때 왕수는 이미 어사중승이 되어있었다. 직접 사건을 처음부터 심리하라고 사람을 파견하지 않았다. 어떻게 했을까? 사람을 시켜 익성 현에 은자 몇 량을 보내 현령에게 석무균의 아버지를 편안하게 장례 치를 수 있도록 도우라고 청했다. 결과는 다 아실 터이다. 석무균은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왕수의 행동은 교묘하게 부조금을 보내 자기와 당사자의 관계를 암시해 주고서 일을 해결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보여준 것이다. 무언중에 본의를 전달하였다. 교묘하다 않을 수 있겠는가.
교묘한 지혜가 나중에 애석하게 변해버렸다. 후세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본떠 뇌물을 받아먹고 법을 어기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됐으니 어찌 애석하다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처세하는 지혜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일 뿐!
★ 제갈량의 ‘석두진(石頭陣)’은 돌로 만든 ‘팔진도(八陣圖)’이다. 『삼국연의』를 보면 육손(陸遜)이 추격하다가 제갈량이 돌을 가지고 설치해놓은 팔진도에 갇혀 고생하고 있을 때 제갈량의 장인 황승언이 나타나 육손을 구해주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소설이다. 그렇다고 ‘팔진도’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팔진도’는 『손빈병법(孫臏兵法)』에 「팔진」이 있듯이 이미 오래전에 사용된 진법이다. 원류는 제갈량 이전부터 있었다. 제갈량이 응용해 발전시켰을 가능성이 많다. 배송지(裴松之) 주에 나오는 『위략(魏略)』에 따르면 사마의(司馬懿)가 제갈량의 팔진도를 시찰한 후 “이야말로 천하의 기재다”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한진춘추(漢晉春秋)』는 제갈량이 팔진도로 맹획(孟獲)을 붙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송시대 왕응린(王應麟)의 『옥해(玉海)』에도 팔진도로 군사를 조련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3개 지역이 제갈량의 팔진도 유적이라 주장하고 있다. 섬서성 면(勉)현 동남쪽, 사천성 봉절(奉節)현 남쪽인 백제성(白帝城) 아래쪽 강변, 사천성 금당현(金堂)현 미모진(彌牟)진 일대가 그것이다. 더 상세한 내용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지 상식 백가지』 「제갈량의 팔진도에 육손이 갇혔는가?」를 읽어보시라.
★★ ‘현산로수(顯山露水)’는 산수를 드러내 보인다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이름을 날리는 것, 재능을 드러내는 것을 비유한다. 그런데 어디 그 뿐이겠는가? 겸허한 처세지도를 아시는가? 장점과 재능을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는 사람 ; 없는 듯 보이나 있는 안개에 쌓인 산수처럼 그렇게 ; 그러다가 안개가 걷히면 확연하게 산과 물이 나타나지 않던가. 없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존재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고의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자신을 드러내 명리를 구하지 않는 사람, 현재는 많지 않다. 안개에 가린 산수처럼 고고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풍격이 있다. 그와 반대되는 개념이 ‘현산로수’다.
★★★ ‘치이자피(鸱夷子皮)’는 춘추말기 초나라 상인 범려가 상업에 종사할 때 쓰던 이름이다. ‘鸱夷子皮’는 고대에 소가죽으로 만든 술그릇을 가리킨다. ‘술 부대 가죽[酒囊皮子]’이란 뜻이다.
★★★★ ‘학택지사(涸澤之蛇)’란 물 마른 연못의 뱀이란 말로 사전에는 남을 교묘히 이용해 함께 이익을 얻는 일을 가리킨다. 꼭 이렇게만 봐야할까? 내가 높아지려면 내 주변 사람부터 높여야 한다. 내가 높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주변 사람을 무시한다면 결코 나 역시 남에게 존경받을 수 없다. 『한비자(韓非子)』에 물이 말라버린 연못 속 뱀의 이야기가 나온다. 학택지사(涸澤之蛇)라는 고사다. 학(涸)은 물이 말라버렸다는 뜻으로 학택(涸澤)은 물이 바짝 말라버린 연못이란 뜻이다. 어느 여름날 가뭄에 연못의 물이 말라버렸다. 연못 속에 사는 뱀은 다른 연못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작은 뱀이 나서서 큰 뱀에게 말했다. “당신이 앞장서고 내가 뒤따라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통 뱀인 줄 알고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를 당신의 등에 태우고 가십시오. 사람들은 조그만 나를 당신처럼 큰 뱀이 떠받드는 것을 보고 나를 아주 신성한 뱀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서 아무런 해도 안 끼치고 오히려 떠받들 것입니다.” 큰 뱀은 제안을 받아들여 당당히 사람이 많은 길로 이동하였다. 사람들은 큰 뱀이 작은 뱀을 떠받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며 뱀을 건들지 않았고 뱀은 목적지까지 아무 장애도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 『육조단경(六袓壇經)•행유품(行由品)』 : “위없는 보리를 배우고자 하는데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낮고 낮은 사람이라도 높고 높은 지혜가 있을 수 있고 높고 높은 사람이라도 생각과 지혜가 없을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을 가볍게 여기면 곧 한량없고 가없는 죄가 될 것입니다.”(欲學無上菩提,不得輕於初學.下下人有上上智,上上人有沒意智.若輕人卽有無量無邊罪.)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