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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13)

음악이나 가곡이 조화를 이루는가, 미묘한가를 판별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 서법이나 조각이 아름답고 뛰어난가를 감별할 수 있는 사람도 있으며 ; 말하는 것 그대로 문장이 되거나 달변인 사람이 있기도 하고 ; 소설이나 시를 마음속으로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으며 ; 사격이나 운전, 서법, 술수 모두에 정통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보잘 것 없는 재주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한 사회의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끄는 능력이 있으니 위에서 말한 분야에 공력을 기울이면 출류발췌하리라. 눈빛은 이루(離婁)와 같이 예리하고 청력은 사광(師曠)과 같이 예민하며 화살을 쏘면 후예(后羿)처럼 정확하고 서법은 왕희지(王羲之)(★)처럼 뛰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한 분야에 재능이 있다고밖에. 큰일을 도모하고 성사시키는 데에는 크게 쓰일 데가 없지 않은가.

 

공자도 일찍이 생계에 짓눌려 여러 가지 일을 했어야했다. 그렇기에 다재다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도 얘기했잖은가, 그런 경력 때문에 너무나 많은 힘을 낭비해 정치적 발전에는 장애가 됐다고.

 

 

[후예사일조상(后羿射日雕像)]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할까? 가능하다면 곳곳을 돌아다니며 날품을 팔지 말아야한다. 자신이 투신해야할 목표와 상관없는 일에 정력을 쏟아 붓지 말아야한다. 진정한 전문가라면 굳이 다재다능할 필요는 없다. 본인이 전공에 집중하여야 한다. 본인이 추구하는 학문에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전문가와 구별될 수 있고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

 

① “연주가 틀리면 주랑이 돌아본다.”(曲有誤,周郞顧.)

 

“주유는 어렸을 때 음악에 정통하였다. 비록 술을 많이 마신 후일지라도 연주한 음악에 틀림이 있으면 주유는 반드시 그것을 알아내었고 그것을 알면 반드시 돌아보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가요에서 이렇게 말했다. ‘곡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주랑(주유)이 돌아본다.’”(瑜少精意於音樂,雖三爵之後,其有闕誤,瑜必知之,知之必顧.故時人謠曰:曲有誤,周郎顧.)(『三國志·吳志·周瑜傳』)

 

② 『시경(詩經)·제풍(齊風)·폐구(敝笱)』

 

(一)
敝笱在梁(패구재량) 헤진 통발 어살에 쳤더니,
其魚魴鰥(기어방환) 잡힌 고기 방어와 환어.
齊子歸止(제자귀지) 제나라 공녀 친정에 들르는데
其從如雲(기종여운) 그 따르는 사람이 구름 같구나.

 

(二)
敝笱在梁(폐구재량) 헤진 통발 어살에 쳤더니
其魚魴鱮(기어방서) 잡힌 고기 방어와 연어.
齊子歸止(제자귀지) 제나라 공녀 친정 가는데
其從如雨(기종여우) 따르는 사람 빗줄기와 같네.

 

(三)
敝笱在梁(폐구재량) 헤진 통발 어살에 쳤더니
其魚唯唯(기어유유) 잡힌 고기 유유히 들락거리네.
齊子歸止(제자귀지) 제나라 공녀 친정 가는데
其從如水(기종여수) 따르는 사람 흐르는 강물 같구나.

 

○ 폐(敝)는 헤짐이요 구(笱)는 그물이다. 방(魴)과 환(鰥)은 큰 고기다. 귀(歸)는 친정 제(齊)나라로 돌아감이다. 여운(如雲)은 강 씨를 따르는 종자들이 구름처럼 많은 모습을 말한다.

 

○ 헤진 통발로는 방어나 환어와 같은 대어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이치를 말하여 난행(亂行)을 일삼는 제(齊)나라 공녀 문강(文姜)을 노(魯)장공(莊公)이 능히 통제하지 못한 것을 비(比)했다.

 

○ 서(鱮)는 방어와 비슷한데 혹은 연어(鰱魚)라 이르기도 한다. 여우(如雨)는 여운(如雲)과 같은 뜻으로 많음이다.

 

○ 유유(唯唯)는 다니면서 출입하는 모양이다. 여수(如水)는 또한 많음이다.

 

○ 제양공 4년 기원전 694년, 노(魯)환공(桓公)이 그의 부인과 함께 제나라를 방문하였다. 제양공은 이미 옛날에 노부인과 사통한 적이 있었다. 양공의 배다른 여동생인 노부인은 희공이 살아 있을 때 노환공에게 출가했었다. 노부인이 제나라에 들리자 양공은 옛날처럼 노부인과 다시 정을 통했다. 노환공이 알고 그 부인의 행위에 대해 분노했다. 노부인은 그 사실을 양공에게 알렸다. 제양공이 노환공을 술자리에 초청하여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한 다음, 장사 팽생(彭生)을 시켜 환공을 안아 수레에 태우는 척 하면서 허리를 껴안아 늑골(肋骨)을 부러뜨려 죽게 만들었다. 노나라 국인들이 자기들 군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제나라에 추궁하자 제양공은 팽생을 죽여 노나라에 사죄하는 것으로 하였다.(『사기·제태공세가』)

 

○ 노환공 18년 기원전 694년 봄, 환공이 나라 밖으로 출행을 나가 부인과 동행하여 제나라를 방문하려고 하였다. 대부 신수(申繻)가 이를 중지할 것을 간했으나 환공은 듣지 않고 제나라를 방문하였다. 제양공(齊襄公)과 부인(夫人)이 사통한 것을 환공이 알고 노하여 질책하였다. 부인은 자기가 환공으로부터 질책 받은 것을 제양공에게 고했다. 그해 여름 사월 병자(丙子)일에 제양공이 잔치를 열고 노환공을 초대하였다. 노환공이 술에 취하자 제양공이 공자(公子) 팽생(彭生)에게 명하여 부축하게 했다. 다시 팽생(彭生)에게 명하여 환공의 늑골을 부러뜨려 수레 안에서 죽이게 하였다. 노나라 국인들이 제후(諸侯)에게 국서를 보내와 자기들의 뜻을 전했다. “우리들의 군주가 제후 전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감히 나라 안에서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귀국에 가서 양국의 친목을 도모하고 수호를 맺기 위한 예를 행하려고 하셨습니다. 예는 행하였으나 그 몸은 돌아오시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원컨대 팽생을 벌주어 제후들 사이에 퍼져있는 추문(醜聞)을 없애주기 바랍니다.” 제후(齊侯)가 팽생을 잡아서 죽였다. 태자 동(同)을 노후로 세웠다. 이가 장공(庄公)이다. 장공의 모부인(母夫人)은 제나라에 계속 머물러 감히 노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기·노주공세가』)

 

③ 고슬취생 : 사연설석,고슬취생(肆筵設席,鼓瑟吹笙)으로 “돗자리를 한 겹 두 겹 깔고서, 비파를 뜯고 생황 저를 분다”의 뜻이다. 『시경(詩經)·대아(大雅)·행위(行韋)』에 “肆筵設席”이라 하였고 『시경(詩經)·소아(小雅)·녹명(鹿鳴)』에 “나에게 반가운 손님이 있어 비파를 타고 생황을 분다(我有嘉賓,鼓瑟吹笙)”고 하였다.(『천자문(千字文)』)

 

 

④ 초한쟁패 : 진(秦)이 항복하자 항우(項羽)와 유방이 대립하였다. 항우는 초(楚) 회왕(懷王)을 의제(義帝)로 받들고 자신은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하였다. 곧이어 항우는 의제를 살해하고 18명을 왕으로 봉했다. 유방을 한왕(漢王)에 봉하여 외진 한중(漢中)으로 보냈다. 여러 왕들은 항우에 대한 불만이 쌓였고 한왕 유방과의 사이도 악화되었다. 최후에 항우와 유방 두 세력은 BC206년에 초한전(楚漢戰)이 일어났다. 처음에 유방의 세력이 미약하였으나 그가 함양에 들어갔을 때 진의 가혹한 법 대신에 ‘약법(約法) 3장’을 발표해 관중(關中)의 인심을 얻었고 장량(張良), 소하(蕭何), 한신(韓信)과 같은 인재를 중용하였다. 반면에 항우는 자신의 힘을 믿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서 민심을 잃었다. 항우는 BC203년부터 점차 불리해지기 시작해 한왕에게 화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홍구(鴻溝)〔북쪽은 정주, 동쪽은 개봉, 남쪽은 회음(淮陰)〕를 경계로 삼아 서쪽은 한에게 동쪽은 초에게 주기로 협약을 맺었으나 제(齊)와 양(梁)에 자리 잡고 관망하던 한신과 팽월(彭越)이 초를 공격하였다. BC202년에 유방은 다른 제후 군과 해하(垓下, 안휘 고진현)에서 만나 항우를 포위하였다. 항우는 한왕의 진에서 초의 노래가 사방팔방에서 들려오자〔사면초가(四面楚歌)〕 800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탈출하다 오강(烏江)에서 자살하였다.

 

⑤ 이루(離婁), 황제(黃帝) 때 사람으로 이주(離朱)라고도 한다. 100보 밖에서도 털끝을 분간하는 시력을 가졌다 한다. 춘추시대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루의 밝음과 공수자의 교묘한 기술로도 원을 그리는 기구와 자를 쓰지 않으면 능히 네모와 원을 그리지 못한다.”(離婁之明,公輸子之巧,不以規矩,不能成方圓.)『맹자(孟子)·이루상(離婁上)』

 

⑥ 사광(師曠), 춘추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야(子野)다. 진평공(晉平公) 때 악사(樂師)를 지냈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는데 음률(音律)을 잘 판별했고 소리로 길흉(吉凶)까지 점쳤다고 전한다. 제(齊)나라가 진나라를 침공하자 새소리를 듣고 제나라 군대가 이미 후퇴한 것을 알아내었다. 『금경(禽經)』을 지었다고 전한다.

 

⑦ 후예(后羿), 유궁후예(有窮后羿)라고도 한다. 하(夏)나라 때 사람으로 유궁씨의 수령이었다.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하후(夏后) 태강(太康)이 백성을 잘 돌보지 않고 사냥에만 골몰하자 쫓아내 임금이 되었다. 한착(寒浞)을 신임했는데 그 무리에게 살해당했다.

 

★ 왕희지(王羲之, 303~361, 혹은 321~379), 자는 일소(逸少), 동진(東晉)시기 서화가로 ‘서성(書聖)’이라 불린다. 낭야(琅琊) 임기(臨沂, 현 산동성 임기) 사람으로 남쪽으로 이주한 후에는 회계(會稽) 산음(山陰, 현 절강 소흥紹興)에 거주하다가 만년에 섬현(剡縣) 금정(金庭)에 은거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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