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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5)

특정 상황 아래 신용이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도구에 불과할 수도 있다. 자신의 매력을 뚜렷하게 나타내 보이게 하거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동한(東漢, 25~220)말년에 태사자(太史慈)(★)가 군(郡)에서 관리를 역임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시비를 쉬이 가릴 수 없는 사건이 군(君)과 주(州)에서 발생하였다. 각기 나누어 시비를 가려주기를 상주하였다. 도성인 낙양(洛陽)에 먼저 도착하는 상주서가 우세를 차지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주(州)에서 상주한 상소는 이미 보낸 상태라 군의 관리는 뒤처질까 염려돼 태사자를 선발한 후 주에서 보낸 상소를 가진 사람을 뒤쫓게 하였다. 태사자는 밤낮으로 길을 재촉해 낙양에 도착하자마자 전문적으로 신민이 보낸 상소를 받는 공거(公車) 아문에 상소를 제출하였다.

 

때마침 주에서 파견한 관원이 도착해 문을 지키는 관원을 찾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소를 제출하려 하였다. 태사자가 물었다. “상소를 전하려는 모양이지요?” 주에서 온 관원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태사자가 물었다. “당신의 상소는 어디에 있소? 표제의 낙관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요?” 주에서 온 관원이 말했다. “망가뜨리지 않겠노라고 답해주셔야 합니다.” 태사자가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하자 그 관원은 상소를 가지고 와서 태사자에게 넘겨주었다. 태사자는 상소를 받아들자마자 찢어버렸다.

 

주에서 온 관리는 큰소리를 치며 태사자를 잡고서는 놔주지 않았다. 태사자가 말했다. “당신이 내게 상소를 주지만 않았다면 나 또한 그것을 찢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오. 화가 될지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우리 둘이 함께 감당하여야 할 몫이 아니겠소. 나 혼자서 처벌을 받을 수는 없지 않겠소. 우리 이렇게 합시다. 우리 둘이 조용히 여기를 벗어납시다. 당신이 돌아가서 상소를 이미 제출했다고 보고한다하여도 알 사람이 없지 않겠소.”

 

태사자와 주에서 온 관원은 함께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갔다. 군에서 보낸 상소가 비준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주에서는 자신들의 상소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여기고는 따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외교 영역에서는 신용과 언약을 검증하기가 가장 어렵다. 백지에 검은 글자로 쓴 외교공문과 우호관계를 맺은 외교사령은 가장 믿을만하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배후에는 외교 시기와 국가 이익의 표현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영국 정치가 파머스턴 자작 헨리 존 템플(Henry John Temple, 1784~1865)이 한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이 영원하여야 하고 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라는 말을 모르는 외교관은 없다.

 

신용을 지킬 필요가 없는 상황은 긴급 상황에서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반드시 신의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물론 승낙한 것을 지키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기 마련이다.

 

명(明, 1368~1644)나라 도로(陶魯, 1434~1498)는 자가 자강(自强)이다. 20세 때에 부친 도성(陶成)이 전쟁에서 희생되자 광동 신회(新會)현의 현승(縣丞)으로 임용되었다. 하루는 어사(御史) 한옹(韓雍)(★★)이 명을 내려 장병을 위로하라하였다. 소 100마리가 필요했는데 3일 내에 조달하여야했다. 태산 같은 명령이라 여러 동료들은 감히 승낙하지 못했다. 도로가 동료들을 뛰어넘어 그 임무를 맡겠다고 승낙하였다. 삼사(三司)와 동료들은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한다고 질책했으나 도로는 장담하였다. “나는 절대 당신들을 이 일에 연루되게 만들지 않겠소.” 그러고서 성문에다 포고문을 붙였다. “소 한 마리를 바치는 자에게 은자 50량을 사례하겠다.” 마침 어떤 사람이 소 한 마리를 바치자 도로는 곧바로 그에게 은자 50량을 하사하였다.

 

이튿날에 여러 사람이 앞 다투어 소를 끌고 왔다. 도로는 그중에서 알찬 소 100마리를 선택해 적정한 가격을 매긴 후 주인에게 돈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렇게 소를 받는 것은 한옹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오. 내게는 여러분에게 많은 돈을 줄 권한이 없소.” 도로는 기간 내에 소 100마리를 한옹에게 전달하였다. 한옹은 그를 높이 평가해 자신의 후방 근무자로 임용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믿음으로 삶을 살았다. 믿음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분야는 애정 영역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해 애정에 많은 비극이 생겨난 까닭은 바로 언약의 문제에서 발생하였다! 여기서 잠시 미생포주(尾生抱柱) 이야기를 돌아보자.

 

 

미생(尾生)은 한 여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다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내려 약속한 여인이 오기도 전에 물이 불어났다. 미생은 자리를 뜨지도 않고 기둥을 붙들고 여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결과는? 교각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이를 미생지신(尾生之信), 포주지신(抱株之信)이라고도 한다.

 

『사기(史記)·소진열전(蘇秦列傳)』, 『장자(莊子)·도척(盜跖)』에 나오는 말이다. 이외 『전국책(戰國策)·연책(燕策)』, 『회남자(淮南子)·설림훈(說林訓)』에도 보인다. 소진만 미생의 행동을 신의로 보고 다른 곳에서는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례로 삼고 있다.

 

지금 우리야 미생이 왜 그리도 어리석었냐고 비웃겠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참의미가 들어있다. 실제 미생지신은 언약을 지키는 예증이 아니라 사랑(애정)의 산 증거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약속이 아니었다면 미생이 교각을 붙잡고 익사까지 했겠는가? 만약 다른 사람과 한 약속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 그렇게 어리석을 정도로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생이 한 행동은 사랑을 위하여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켰을 따름이다.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신용이나 신뢰하고는 다른 의미다.

 

우리가 말하는 신용, 신뢰는 도구다. 그것으로 일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 신용이나 신뢰를 고귀한 품성이라는 단편으로만 본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 태자자(太史慈, 166~206), 자는 자의(子義),동래(東萊) 황현(黃縣, 현 산동성 용구동(龍口東) 황성집(黄城集)) 사람으로 동한 말기 명장이다. 관직은 건창도위(建昌都尉)까지 올랐다. 궁마에 능했다고 전한다. 일찍이 공융(孔融)을 구하려고 포위를 뚫고 유비(劉備)에게 구원을 청하러 간 적이 있다. 원래는 유요(劉繇)의 부하였으나 나중에 손책(孫策)에게 투항하였다. 손권(孫權)이 권력을 잡은 후 태사자가 유반(劉磐)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남방의 요지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 한옹(韓雍, 1422~1478), 자는 영희(永熙), 남직예(南直隸) 소주(蘇州)부 장주長洲(현 강소 소주) 사람으로 명 왕조 중기의 명신이요 시인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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