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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27)

중국 고대 역사에서 환관(宦官)이 권력을 독점한 사례는 많고도 많다. 왕조마다 그에 따른 교훈을 얻을 수 있을 정도다.

 

한(漢)나라 원제(元帝, BC74~BC33)는 환관 석현(石顯)을 총애하였다. 석현은 중서령이 돼 조정의 크고 작은 일을 자신이 재결하였다. 석현은 사람됨이 올바르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헐뜯는 말을 황제가 듣게 될까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황제에게 끝없는 충성심을 표시하였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신임을 얻으려 노력하였다.

 

어느 날, 석현은 궁궐에 파견돼 일을 보게 되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태도를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일을 처리하는 데에 너무 늦어 미앙궁(未央宮) 궁문이 닫히면 들어올 수 없을까 염려되니 황상께서 문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걸쇠를 채우지 말도록 하조해달라고 청했다.

 

황제는 곧바로 각 궁문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같은 내용의 조서를 내렸다. 석현은 고의로 시간을 지연시키며 각 궁문에 문지기들을 머무르게 만든 후 한밤중에서야 돌아왔다. 문지기들은 밤늦도록 기다렸다가 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석현이 황제에게 거짓 구실을 대어 자기 마음대로 궁문을 여닫는다고 상소를 올린 사람이 생겨났다.

 

황제가 본 후 상소문을 석현에게 보여주면서 웃었다. 그러자 석현은 눈물 흘리며 너무나 억울하다는 모습을 하고서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계십니다. 폐하께서는 저를 무척 믿으시어 늘 신에게 일을 처리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신을 질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신을 음해할 것입니다. 지금 보여주신 상소문은 그저 하나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이후에는 계속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바람이나 그림자를 잡듯이 진실한 근거가 없는 말들은 오로지 영명하신 성상께서만 통찰하고 계십니다. 미천한 신은 출신이 구차하고 변변치 못하여 모두가 만족하게 업무를 총괄할 수 없습니다. 어찌 천하의 원망을 참고 견딜 수 있겠나이까? 바라옵건대 현재의 관직을 사직하고자 합니다. 후궁을 청소하는 한직으로 보내주시옵소서. 그것으로나마 신이 폐하께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사옵니다. 그러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그저 폐하께서 신을 믿어주시기만 하면 되옵니다.”

 

 

원제는 석현이 하는 이야기가 진심어린 말이라 믿었다.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를 더욱 믿고 사직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자신을 위하여 더더욱 열심히 일하라고 위로하고 장려하였다. 어찌 기만인 줄 알았겠는가. 원제는 석현에게 이전보다도 더 많은 선물을 하사하니 석현은 영광스럽게 되었다.

 

현실 생활 중 가련한 척하며 재주를 부려 동정을 얻거나 목적을 달성하는 현상은 흔히 있는 일이다. 어린아이가 아무 도움도 없어 괴로운 것처럼 보이면서 어른에게 자신의 요구를 얻어낸다든지 ; 거지가 남루하게 차려 입고 사람들의 동정심을 사 구걸한다든지 ; 사업을 하는 사장조차도 직원을 해고할 때 회사가 어려워 어쩔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하면서 상대방의 불만을 잠재운다는 것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인물]

 

○ 석현(石顯) :

 

자는 군방(君房), 제남(濟南, 현 제남 장구章丘현 서쪽) 사람이다. 서한(西漢) 원제(元帝) 유석(劉奭) 때 간신이다. 한 원제가 병을 얻었을 때 기회를 잡고 전권을 행사하였다. 성제(成帝) 유(劉鷔)가 즉위한 후 세력을 잃고 탄핵 받아 귀향 도중에 죽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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