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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46)

공자는 말했다.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커다란 계책이 위태로워진다.”(『논어·위령공(衛靈公)』)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전반적인 국면을 총괄적으로 보아야 한다. 작은 일에 뒤얽혀 벗어나지 못하면 안 된다.

 

일을 처리할 때 지엽적인 문제를 일률적으로 강조하면서 전반적인 형세를 간파하지 못하면 핵심을 붙잡지 못하게 된다. 중점을 잃고 단서가 뒤섞여 버린다. 어디에서 시작할지 알지 못한다. 사람을 쓰거나 일할 때 주류를 중하게 여겨야 한다. 작은 일 때문에 사업 발전에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

 

순금이 어디 있던가? 완벽한 사람이 있던가? 우리가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재능이다. 과실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타인의 과실에 눈을 돌리는가? 지엽적인 문제를 도외시하면 자질구레한 일이나 잊어버려도 될 일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사람의 장점을 먼저 보아야 한다.

 

『권인백잠(勸忍百箴)』은 말한다 :

 

대세를 보는 사람은 자질구레한 지엽에 연연하지 않는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사소한 일을 따지지 않는다. 큰 옥규를 관상하는 사람은 자그마한 하자를 세밀히 살피지 않는다. 거대한 재목을 얻으려는 사람은 좀먹은 것에 앙앙불락하지 않는다. 조그마한 하자 때문에 옥규를 버리면 완벽한 아름다운 옥은 영원히 얻을 수 없다. 좀이 조금 먹었다고 목재를 버리면 천하에 훌륭한 목재가 있을 수 없다.

 

늘 사람의 좋은 점을 기억하자. 옛 잘못을 염두에 두지 말자.

 

 

하마터면 자신을 쏴서 죽일 뻔한 사람을 감히 임용할 자신 있는가? 일찍이 자신의 정적을 보호하고 따랐던 사람을 감히 쓸 자신이 있는가?

 

춘추오패(五霸) 중 한 명인 제(齊) 환공(桓公, ?~BC643)은 대담하게 그런 사람을 썼다. 자신과 ‘옛 원한’이 있는 사람을 과감하게 기용하였다. 나중에 자신을 보좌하며 나라를 위하여 힘 쓴 ‘관중(管仲, 약BC723~BC645)’이 바로 그이다. 춘추전국 시기에 맨 처음 패권을 잡은 사람이 제 환공이다. 제 환공이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까닭은 참모 관중을 믿었던 데에 있다.

 

환공의 어릴 적 이름은 소백(小白)이다. 제나라 공자(公子)였다. 관중은 원래 소백의 형인 공자 규(糾)의 사부였다. 제나라 국군 희공(僖公)이 죽은 후 여러 공자들이 왕위를 가지고 서로 다투었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인물이 공자 소백과 규였다. 쟁탈의 결과는? 소백이 제나라로 돌아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가 제 환공이다. 왕위 쟁탈에서 공자 규를 도왔던 노(魯)나라는 제나라와 교전 중에 대패하자 화친을 구했다. 환공은 노나라에 규를 죽이고 관중을 넘기라고 요구하였다.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가 관중을 동정하였다. 이송되면 죽임을 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권했다.

 

“관중이시어. 어찌 적에게 끌려갈 정도로 그리 얼굴이 두껍소. 자살하는 것보다 못하오이다.”

 

관중은 그저 웃어넘기면서 말했다.

 

“나를 죽이려 했다면 주군과 함께 죽였을 것이오. 지금 나를 보내라 한 것을 보면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오.”

 

그렇게 관중은 제나라로 압송되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환공은 곧바로 관중을 재상에 앉혔다. 그것은 관중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파격이었다.

 

제나라는 산동(山東)반도 일대를 다스리고 있었다. 당시 전체 중원으로 볼 때 동쪽의 작은 나라에 불과하였다. 작은 나라가 어떻게 천하 패주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관중이 밤낮으로 고민한 문제였다.

 

관중은 먼저 ‘법제’를 정돈하기로 결심하였다. 중앙집권, 부국강병 정책을 모색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이익을 쫓고 해로움을 피하는 것이니, 법의 기준으로 삼고 상벌을 분명하게 하는 정치를 한다면, 엄격한 군주 통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백성을 풍족하게 하면 백성의 마음을 이끌어낼 수 있으니 명군이 행할 대도가 아닌가. 더불어 사해에 국가 명성을 드높이는 일에도 온힘을 다했다. 관중의 이런 생각은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상일 뿐 아니라 천하를 재패하는 사상이기도 했다.

 

 

제나라와 노나라는 이웃나라로 국경선이 이어져 있었다.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제 환공 5년에 제나라는 노나라를 패퇴시켰다. 노나라는 어쩔 수 없이 토지를 할양하고 화친을 구했다. 노나라 왕과 장군 조말(曹沫)이 함께 평화 회담하러 제나라로 갔다. 회담 중 조말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단검을 제 환공 가슴에 가져다대면서 반드시 죽인다는 눈빛으로 환공에게 말했다.

 

“내 노나라는 작은 나라요. 지금 대왕의 침략으로 국토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소. 무슨 일이 있더라도 토지를 반환받아야겠소.”

 

“알았소.”

 

제 환공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토지를 반환한다는 맹약을 하시오!”

 

단검으로 환공을 겨누고 있으니 누구도 감히 손 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토지를 반납한다는 맹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환공은 목숨을 보전하려고 토지를 반환한다 말했기에 꼭 반환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 노나라 왕이 떠나자 곧바로 여러 신하에게 말했다.

 

“맹약은 별도로 서명된 것이다. 절대로 점령지를 반환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맺은 맹약이 있으니 나중에 별도로 서명한 것은 무효다.”

 

이때 관중이 조용히 환공에게 권했다.

 

“신도 주군의 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면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게 됩니다. 이미 정해진 법칙을 쉽게 깨버리면 제후들에게 신의를 잃게 되어, 장차 천하를 얻는 데 가장 중요한 방패를 잃게 됩니다. 절대 그런 자그마한 토지에 미련을 가지지 않으시길 간청합니다.”

 

환공은 곧바로 냉정을 되찾았다. 관중의 건의를 받아들여 군대를 되돌렸다. 그 일은 빠르게 여러 주변 제후들에게 알려지면서 제나라 왕의 과단성을 칭송하기 시작하였다. 환공의 용감함에 경외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신임을 얻으면서 제나라의 명성은 높아졌다.

 

제나라 북방의 연(燕)나라는 이민족 ― 산융(山戎)의 공격을 받자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 환공이 출병하여 산융을 토벌하였다. 연나라 왕은 감사를 표하려 몸소 나서서 환공을 제나라 경내까지 환송하였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예법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월경해 송별하는 것은 공자(公子)에 국한돼 있었다. 환공은 자신과 연왕 사이에 큰 격차가 있음을 보고 연왕이 송별하기 위하여 들어왔었던 제나라 지역을 모두 연나라에 선사하였다.

 

환공에 연왕에게 자신의 영토를 증정하니, 작은 은혜가 오히려 큰 이익이 되어 돌아왔다. 제후국들이 환공의 행위를 듣고 모두 제나라에 의탁하게 되니, 제 환공의 패업은 이미 달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 10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 평생에 대한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 한 번 거두는 것이 곡식이고 ; 한 번 심어 열 번 거두는 것이 나무이며 ; 한 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이 말은 관중이 후세에 남긴 저작 『관자(管子)』 중 「권수(權修)」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환공은 43년을 재위하였다. 환공은 관중이 죽은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 기간에 관중은 줄곧 중대한 책임을 짊어졌다.

 

“너는 어떤 책임도 질 필요도 없이, 나를 통해 너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목숨 걱정 없이 그렇게 너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그렇다 해도 천하를 위하여 조그마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관중이 임종할 때 가장 친한 친구 포숙아(鮑叔牙, BC723~BC644)에게 한 말이다.

 

“나는 네가 한 모든 일에 감사한다. 너는, 내가 목숨 걱정 없이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포숙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포숙아는 관중이 자그마한 재물을 탐낸 것을 가지고 무시하지 않았다. 관중이 능력 있는 인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 환공도 치국을 위하여 도와줄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일찍이 자신을 죽이려고 활을 쏘았던 작은 원한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랬다. 그렇게 해서 관중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제나라도 이치대로 나라를 다스려 강국이 될 수 있었다.

 

만약에 그저 한 개인의 작은 문제점만을 고려한다면? 이 세상에 어찌 완벽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으랴. 사람을 쓰는 데에는 능력을 봐야한다. 자그마한 과실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에 쓸 만한 인재, 진정으로 능력이 있는 인물은 존재할 수 없을 터이다.

 

○ 『권인백잠(勸忍百箴)』 :

 

원(元)나라 사상가 허명규(許名奎)의 편저로 ‘인(忍)’자를 가지고 나아감과 물러감, 유극강(柔克剛)의 큰 지혜를 기록하고 있다. ‘인(忍)’은 기개, 도량이기도 하고 지혜이기도 하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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