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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54) 이웃나라 제주도를 침략한 왜구 ③

화북포의 을묘왜변

 

 

명종 10년(1555) 정월에 무관(武官) 김수문(金秀文, ? ~ 1568)이 제주목사가 되었다. 같은 해 5월 13일 왜구들은 배 60여 척으로 전라도에 침범해 들어와 해남의 달량성(達梁城)을 항복시키고, 장흥, 강진 등 8진이 무너지자, 그 성을 구하려고 달려온 해남, 무장, 어란포의 군사들마져 왜구들이 모두 물리쳤다.

 

왜구들은 승승장구하며 영암까지 유린을 했으나 때마침 전주부윤(全州府尹) 이윤경(李潤慶)이 구원병(救援兵)을 이끌고 달려오는 바람에 급기야 왜구가 물러갔지만 왜구들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약탈자들이 빈손으로 돌아갈 리 만무했다. 전라도에서 패퇴한 왜구들은 본거지로 돌아가지 않고 이번에는 제주도로 방향을 바꾸었다. 6월 20일에 왜선 40여 척이 보길도로부터 곧바로 와서 제주 앞바다 1리 거리에 정박하여 위협을 가하는가 하면, 6월 27일에는 무려 천여 명이나 되는 대병력을 제주에 상륙시켜 진(陣)을 치고 3일 동안 제주성을 포위했다. 이에 제주목사 김수문은 용감한 군사 70인을 골라 30보 거리까지 다가가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왜구들은 화살을 맞으면서도 결코 물러가지를 않자, 김수문은 왜구의 기세를 꺾기 위해 다시 담력이 센 4명의 마병(馬兵)을 보내어 왜구의 본진(本陣)을 격파하니 왜구들은 황급히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그 와중에도 붉은 깃털이 달린 투구를 쓴 왜장(倭將) 한 명이 화살을 잘 쏘는 것을 믿고 물러가지 않자 제주 정병(正兵) 김몽근이 정확하게 화살을 당겨 즉시 왜장을 사살하자 제주성 병사들은 그 여세를 몰아 패퇴하는 왜구들의 목을 베었다.

 

다시 김수문은 군관 강려(姜侶)로 하여금 급히 승선(乘船)을 명하여 바다로 쫓겨 가는 왜선을 대포로 쏘아 부숴버리게 하니, 배에 탔던 왜구들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고, 그 수급 54급(級)을 베었다.

 

 

한편, 조선 정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목사와 군사들에게 전공(戰功)에 따라 직급을 승진시키고 상을 나누어 주었다. 김석익(金錫翼)의『탐라기년(耽羅紀年)』에는, 을묘왜변의 상황을 ‘명종 10년 을묘년 6월, 왜적 60여 척은 전라도 장흥, 강진 등을 연이어 함락하고 8진(鎭)을 곤란케 하고는 화북포로 침략하여 제주성을 3일 동안 포위하자 김수문이 이를 대파하여 왜구들을 참획하였다’고 쓰고 있다.

 

『탐라지(耽羅志)』를 편찬한 제주 목사 이원진(1594~1665)도, 을묘왜변(1555)의 교훈을 생각하면서 “그때는 조총이 없었으며 칼이 날카롭지 않아도 방어하기가 쉬웠다. 지금(재임시)은 (왜구들이) 먼 곳에 있으면 곧 조총으로 교묘히 발사하고 가까울 때는 날카로운 칼을 사용하여 용기 있게 공격해오니 화포가 아니면 조총을 소지한 왜구를 제압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는 화포 운용과 함께 대안으로 “포구는 전선(戰船)을 정박하는 곳인데 배가 많지 않아 돌담을 쌓아 견고하고 지켰다.”라고 쓰고 있다. 

 

 

•선조 14년(1581)년 제주 목사 김태정(金泰庭, 1541~?)이 왜선 2척을 성산포 우도에서 나포하였고, 또 대정현 차귀도 근처에서 파손한 서양인 마리이(馬里伊)와 복건성 중국인을 서울을 통해 명나라로 돌려보냈다.

 

결론을 대신하여

역사에는, 특히 일본에 관해서는, 한국인들은 피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이웃이라고 하지만 이웃집이 나라를 훔쳐가는 도적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임진년의 한반도 유린, 경술년의 나라를 빼앗긴 국치(國恥)와 그후 계속되는 식민지 통치의 울분이 고스란히 우리의 감정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왜(倭)라는 글자만 들어도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던 피식민지 한국인의 설음을 무엇으로 보상 받을 수 있을까?

 

왜구는 바로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용어로써, 기록에는 없지만 이보다 더 많은 제주민들의 피해 사례가 있을 것이다. 역사의 현실은 기록보다 더 가혹하다. 왜구에 대한 피해가 “침범했다” “약탈했다” “물리쳤다”는 간단한 한 문장으로만 기록된 역사서와 달리 신화에는 여성 피해의 노골적인 장면이 들어있다.

 

역사 기록이 다하지 못한 사실을 신화의 힘을 빌어 전하고 있다. 결론을 대신하여 토산 알당 본풀이의 생생한 500년 전 당시로 돌아가본다. “ᄂᆞᆷ의 나라 팔대선이 떠오라가는구나. 우 벗인 놈, 알 벗인놈 다 불려오라간다........ᄂᆞᆷ의 나라 외놈들이 애기씰 ᄎᆞ례걱관 해여부난 애기씨는 새파랗게 죽어간다.(남의 나라 팔대선(큰배)이 다가온다. 위옷 벗은 놈, 아랫도리 벗은 놈 달려온다. 왜놈들이 아가씨를 차례대로 강간하니 아가씨는 새파랗게 죽어간다) ”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참고문헌>

김경옥, 『朝鮮 後期 圖書硏究』, 혜안, 2004.

김보한, 『중세의 왜구와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022.

김석균, 『해금』, 예미, 2022.

金錫翼, 『耽羅紀年』, 洪琦杓 外譯註, 濟州文化院, 2015.

김유정, 『제주 해양문화 읽기』, 가람과 뫼, 2017.

東京大學史料編纂所編,『描かれた倭寇』,吉川弘文館 2014.

이영, 나행주 공저, 『일본 고중세사』, knon, 2025.

윤성익, 『명대왜구의 연구』, 경인문화사. 2007.

이원조, 『탐라지초본』, 교육발물관, 2008.

李元鎭, 『耽羅志』, 김찬흡외, 푸른역사, 2002.

濟州道, 『濟州道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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