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고기 문화
물고기는 번식이 빠르고 그 수량이 많은 것이 특징이어서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가 있었다. 고대에는 식량으로서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바다를 선호했지만, 정착 생활에서는 적합하지가 않았다. 어로(漁撈) 구역은 수렵(狩獵) 구역보다 넓은데다 농경생활을 하지 않으면 정착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차차 농업이 중심이 되면서 사람들은 정착을 하게 되고 어로를 부수적으로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단백질 공급의 필수적인 이유때문이기도 하다.
‘선비는 생선을 구워먹고, 돼지로 제사를 지내고, 서민은 채소를 먹고 생선으로 제사를 지낸다’ 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선비 이상의 계급적 품계에는 소, 양, 돼지를 제사에 썼고 생선은 쓰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제사에 엄격한 신분질서를 적용했던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제주에서는 가난한 집안에서 ‘지숙(祭需)’으로 ‘심방어렝이’나 ‘우럭‘ , ‘갈치’를 소금 쳐 말려서 제사에 쓰곤 했다. 원래 갈치는 비늘이 없어서 지숙으로 사용하지 않는데 가남이 없는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생선 대신 갈치로 제사를 하기도 했다. 법식도 경제적 조건이 좋아야 갖추는 것이다. '안 한 것보다 낮다'는 실용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방어렝이’는 대정지역에서 부르는 색깔이 오방색이 섞여서 화려한 물고기 이름인데 ‘어렝 놀래기’의 일종이다. 이 심방어렝이는 일반 어렝이보다 살이 깊고, 색깔이 청색과 황색이 섞여 화려하며 작은 손바닥만 한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집집마다 제삿날을 생각해서 스스로 고기를 낚아다 배를 갈라 돌담 위에서 말리던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고망낚시’를 이용하면 우럭이나 잡어를 많이 낚는데 주로 ‘여섯 물에서 아홉 물 사이’ 간조를 이용한다. 고망낚시란 돌 틈의 컴컴한 구멍에 새우나 멜, 겟지렁이인 물게스리와 갈게스리를 낚시에 끼워 구멍속으로 밀어 넣어 토종 고기를 잡는 원시적인 낚시법이다. 이 고망 낚시는 지금도 지역 주민들이 선호하는 낚시방법으로 워낙 토착어종의 맛이 좋기도 하거니와 제주바당의 향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추억으러 여기고 있다.
고기반찬 때문에 밥 많이 먹는 것을 경계했던 ‘바릇 궤긴 밥 도둑놈(바닷고기는 밥 도둑놈)’이라는 속담에서 궤기반찬의 위력을 잘 알 수가 있다.
물고기의 도상학

위 작품은 제주출신 작고작가 강태석의 물허벅을 지고, 바릇궤기를 들고가는 비바리를 표현한 작품으로, 옛 제주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물허벅은 식수를 이동하는 수단으로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단물(용출수)이 나오는 장소에서 길어오는 도구이다. 물고기를 들고 오는 비바리의 행세로 보아 그것이 밀물이 시작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마을 사람 누군가가 고망낚시를 낚아 오다가 친척 누이를 만난 것이다.
30대 젊은 나이에 작고한 제주 화가 강태석의 '제주이야기'라는 작품은 제주의 풋풋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복스러운 비바리가 물허벅을 지고 손에는 바릇궤기를 들고 돌담의 초가집으로 향하는 풍경은 익히 보았던 우리네 옛 제주 여성들의 모습이다. 제주 마을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만큼 더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물고기를 나타내는 어(魚)는 중국에서는 넉넉할 여(餘)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여유를 나타낸다고 한다. 몽골의 국기에는 두 마리의 흑과 백의 물고기가 서로 엇갈리게 그려져 있고 동그랗게 눈이 강조되었다. 물고기는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안위를 경계하는 신성함이 있다는 의미의 도상이다.
유교에서 물고기는 떼로 몰려다니며 한 마리가 전체를 통솔하는 의미로 해석하여 질서와 수호신적인 의미를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물고기는 여러 문화권에서 다산성을 상징하고 있고, 생명을 주는 물의 속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물고기는 깊은 물에 산다는 의미에서 깊은 물은 곧 무의식의 심연으로 해석되며, 영감과 창조성을 뜻하기도 한다.

세 마리의 물고기가 서로 조화롭게 엉켜있는 형상은 기독교 신앙의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무속에서는 물고기 중 북어를 재액 예방의 제물로 바치고 있고, 불교에서 목어(木魚)는 물고기가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수행의 의미를 나타내며, 목어를 두드리는 것은 수행자의 자세를 흩트리지 말고 수행에 꿋꿋이 정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제주 민화에는 토착어종이 그려져 있는데 육지의 민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잉어를 그린 것이 아닌 날치나 옥돔을 그린 것으로 보아 지역의 풍토성을 반영하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