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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17) '원초적 기억에서 찾는 글로컬리즘 길 위에서'

 

고민철 개인전 ‘제주적 추상’전

 

서울 인사동에 있는 제주갤러리에서 중견 화가 고민철의 ‘제주적 추상전’이 성화리에 열렸다. 제주의 풍토를 주제로 추상미술의 새로운 미학을 개척하고 있는 와중에 마련된 이번 전시는 그간 고민철이 천착해 왔던 제주 문화의 진솔한 향기를 느끼게 하여, 많은 서울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고민철은 원래 인상주의 화풍을 선호했던 화가로, 주로 제주의 자연과 풍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다가 어느날 추상회화로 방향을 바꿔 독창적인 제주 추상의 길을 열어나가고 있다. 이번 서울전은 제주미학의 새로운 시선을 개척하고 있는 화가의 신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고민철은 제주대 미술학과 서양화 석사를 취득해 ‘추상표현주의 표현에 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창작방법으로 제주의 풍토적 자연을 추상화로 시도하여 돌, 바람, 해저, 이어도 등 생태, 기후, 신화적인 시선으로 제주인의 삶에 주목하면서 작가 자신의 문화적 DNA를 속임없이 표출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고민철의 ‘제주적 추상’이라는 새로운 회화의 작품을 소개한다.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로서의 추상

 

어떤 그림이라도 화면에 눈을 점점 가까이 댈수록 형체는 모호하게 나타난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겹치거나 반복되는 선들과 색채의 음영(陰影), 내가 한 눈에 보았던 사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만드는 평면의 어지러운 흔적들뿐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렇게 확실하게 보이던 사실적인 형상이 하나의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당황하게 된다. 어떤 3차원의 입체적인 대상에 대해 믿었던 확신이 무너져 그것이 2차원의 평면이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20세기는 평면의 언어들에 주목했다. 과거 르네상스와 더불어 원근법의 등장한 이후 건축술이 발달하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건물에 더욱 주목하게 되고, 급기야 현실 세계의 실재를 화면으로 가져오기 위해 그 현실과 똑같이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무려 500년 동안 그 신화는 깨지지 않고 세상을 지배했는데 이것이 환영주의(illusionism)라고 하는 조형적 방식이었다.

 

갑골문에서 그림(畵)은 한 손으로 붓을 잡고 무늬의 선을 그리는 모습이다. 어떤 행위에는 아름답게 꾸미거나 자신이 즐거운 놀이로서 행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예술은 시대마다 개념이 변하면서 그것의 인식과 형식, 제도마저 달라진다.

 

그렇지만 그림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창작행위 중 하나이며, 사물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사물의 대상이나 그것을 직관한 심상(心象)을 ‘나타내는 행위로써 무엇인가 떠올리는 것, 의미를 부여하거나 구상(構想)하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인 것이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미술사에서 회화는 구상화(具象畵)와 추상화(抽象畵)가 있다. 구상화의 전통에서는 그리스어 테크네라는 단어는 수공업적 기술(예술)과 장인(匠人, 기술자)을 강조했지만,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를 달리 해석하고 있다. 오히러 테크네는 앎의 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앎이란 ’보았음‘을, 넓은 의미에서 ’봄‘을 뜻하며, 이러한 ’봄‘은 현존하는 것으로써 인지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창작은 현존속으로 나타내게 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의미에서 테크네는 오히러 화가가 지각하고 있는 인상(印象)과 기억의 관념(觀念)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게 하는 추상에 더 가깝다.

 

오늘날은 그 장르를 넘어선 새로운 조형 기술들인 설치, 영상 미디어가 등장했다. 그렇지만 가장 오래된 형식과 기법에 기반을 둔 화가들은 여전히 많다. 전자매체의 시대가 왔음에도 회화가 자신의 감성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추상화의 시간을 잠시 돌아보면,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발견된 동굴벽화의 그림들이 들소와 짐승 무리, 손바닥 그림이었다는 사실에서 보는 것처럼 어떤 사물의 재현이 그림의 시작이 되었고, 이후 상징 기호의 시대(신석기 시대)를 거쳐 다시 3차원의 세계를 구현하다가 20세기 초에 다시 2차원의 추상주의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현실 세계의 모든 형태들은 입체이지만, 거기에는 무수한 평면의 패턴들이 얽혀 있다. 그러니까 구상 속에 추상이 있고, 추상 속에 구상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형태는 보는 시점, 보는 방향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우리의 세계는 빛의 작용이 매우 중요하다. 빛이란 전자기파의 주파수인데 그 빛으로 인해 사물들의 형태와 색채를 분별하게 된다. 만일 빛 파동이 더 빨리 진동하면 그 빛은 더 파랗게 되고, 조금 더 느리게 진동하면 그 빛은 더 붉게 나타난다. 색은 빛의 파동에 의해서 달라지면서 우리 세계의 사물들이 여러 가지 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추상 화가는 누구일까? 우리는 통념적으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진실은 스웨덴 출신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1862~1944)라는 여성화가가 1906년 추상화 연작을 그린 것이 처음이었다.

 

현재까지 바실리 칸딘스키가 자연적 요소에 음악성을 살려서 1910년(1913년)에 그린 수채화 <무제(untitled)>가 세계 최초의 추상화로 알려졌었다. 오로지 색채를 가지고 면(面)의 경계를 만들고, 다양한 크기의 선의 리듬으로만 이루어진 <무제>는 원근법적인 재현과 사실적인 장식의 전통을 일거에 배제한 작품이었다. 러시아의 화가 말레비치(Malevich, Kazimir Severinovich, 1878~1935)에 의해서 시작된 기하학적 추상주의(geometric abstractionism) 또한 1913년에야 등장했다.

 

여성화가 클린트는 칸딘스키보다 2살이나 위였고, 두 사람 모두 1944년 같은 해에 사망했는데 칸딘스키와 말레비치에 앞서 그녀는 이미 1906~1907년 두 해에 걸쳐 기하하적 추상주의 작품을 제작했으나 세간에 주목받지 못한 채 서양미술사에 뒤늦게 알려졌던 것이다. 과거 여성이 처한 사회적 위상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선구자, 또는 역사적 시원(始原)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초의 시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도 하거니와, 역사의 시간에서 보면, 맨 처음 자각한 자, 실행한 자의 위치가 새롭게 조명되기 때문이다.

 

20세기 미술에서 추상의 등장은 형식주의(formalism) 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의 미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가 형식주의 미술의 대표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림의 2차원적인 평면성을 옹호했다. 입체적 사실주의에서 평면성으로의 전환은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이나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에게서 쉽게 발견되고 조르죠 브라크(Georges Braque, 1982~1963)와 파블로 피카소의 큐비즘을 거쳐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 ~ 1970),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 클리포드 스틸(Clifford Still, 1904~1980) 등의 색면회화(Color Field)에 이르러 평면성이 극에 달한다. 재현 중심의 서사화(敍事畵)의 자리에 순수한 미술의 형식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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