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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28) 2020년대 이후 타계한 제주 작가들③

강영호(1943~2021)는 사실주의 화가로 한국의 옛 기물이나 제주의 풍광을 즐겨 그렸다.

 

제주시 도남 출신으로 1963년 오현고를 졸업하고, 1967년 홍익대 서양화과와 조선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개인전 17회, 2010년 17회 개인전 이후 지병이 악화되어 작품 활동을 중단하였다. 국내외 다수의 개인전과 한·러 교류전, 아시아미술대전, 10개국 예술교류전, 서양화 중견작가 초대전 등에 참가하였다.

 

제주대 강사, 한국미술협회제주도지부장, 한국예총제주도지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문우회, 상형전, 이상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그후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2015년 연갤러리 특별기획전 '강영호 화백 초대전'을 마지막으로 투병하다가 2021년 8월 타계하였다.

 

'탐라이야기'(1993년)는 강영호 화가가 줄곧 관심을 가져온 제주의 옛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탐라의 옛 사람들이 남기고 간 유물에서 진정한 제주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한 작품이다.

 

애기대백이 허벅, 각지불, 불상, 석류가 서로 뿜어내는 조형적 아름다움이 과거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탐라이야기는 화면 전체가 과거의 회상처럼 보이려고 면을 겹치고 있으며, 점묘적인 마티에르가 사물 서로가 공간에서 연결되는 장치가 되고 있다. 색상 또한 마치 아스라한 각지불 조명처럼 어른거리는 느낌을 준다. 옛제주인의 과거 여행을 소박하게 보여주고 있다.

 

강영호의 '상(象)'(1988년)은 불상의 상체와 머리부분을 그린 작품이다. 반가사유상을 통해 법열을 느끼도록 한 작품이다. 이미지는 보여지는 불교의 세계관을 상징한다. 전체적인 색조의 분위기는 전기가 없는 불당의 느낌을 주는데 이 또한 오래된 시간의 경험이 배어나는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란 불상으로서 오른쪽 다리를 왼쪽 허벅다리 위에 얹고, 오른손을 받쳐 뺨에 대고 생각에 잠겨 있는 부처의 형상이다. 부처가 성불(成佛)하기 전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부처의 사유란 업보를 받은 인간이 결국 번뇌를 이기고 해탈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데 청동불이 주는 느낌이 오랜 고뇌가 시간에 드리워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창열(1929~2021)은 물방울 화가로 널리 알려졌다. 1929년 평안도 출신으로 어릴 때는 할아버지에게 서예를 배웠고, 광성고보 시절에는 외삼촌에게 뎃생을 배웠다고 한다.

 

가족의 회고록에 의하면 김창열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 지 2년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였고,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서 경찰관이 된 아버지와 친척들의 권유로 자신도 경찰관이 되었다. 휴전 후 다시 서울대학교에 등록하려고 했지만 월북한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 다닌 것이 문제가 돼 등록할 수 없게 되자 경찰관 생활을 하면서 혼자서 그림을 그렸다.

 

1957년 현대미협 동인회를 결성하여 앵포르멜 운동을 한국에서 전개했다. 이후 박서보의 주선으로 제2회 파리비엔날레 한국이 초청되면서 참여작가 4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1971년 다시 파리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였고, 1972년 물방울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했는데 2004년 프랑스 국립 쥐드폼미술관 초대전에서는 물방울 예술 30년을 결산하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2016년 여름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저지리에 개관되었고, 2021년 91세를 일기로 영면하자, 화장한 뒤 미술관 뒤 숲에서 수목장을 지냈다고 한다.

 

김창열의 '무제'(1958년)는 한국 현대미술운동 초기의 작품으로 1950년대 후반의 한국미술의 시대정신과 경향성이 모두 드러나는 작품이다. 김창열은 1957년 조선일보사에 의해 시작된 현대작가초대전에 1958년 2회전부터 참가했으며, 김창열의 당시 작품 경향을 알 수 있다.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추상미술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서구미술이 한국적인 수용은 당시 우리에게 현대성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식민지를 겪은 채 바로 분단전쟁을 치른 직후의 상황에서 무엇이 새로운 것이 돼야하는지 되묻게 되었다.

 

작품 '무제'는 마치 즉흥적으로 순식간에 그려진 탑과 같은 모습인데 이상하게도 하단부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형태이다. 종전 직후의 상황들이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해야했고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더미 같은 마음의 초조함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김창열의 '판자집'(1959년)은 서울의 판자촌 모습을 조형적 겹치기 작업으로 인식한 반추상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의 속성이 그렇듯이 자연 안에 구상과 추상의 조형성이 동시에 들어있어 어떤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정신사적인 세계관에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작품의 경향이 결정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경향성은 변하기도 하면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에 놓이게 된다.

 

'판자집'은 처절한 사회 현실이 보이지 않은 채 미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기하학의 모습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사상이 미학을 결정하는 게 맞다.

 

서양화가 강길원(1939~2021)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조선대 문리대 미술과를 졸업했다. 국전에서 여섯 번 특선하면서 1960년대에 국전 최연소 초대작가가 되었다.

 

1965년 홍익대 회화과 석사를 이수하여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재직하다가 1977년 제주대 미술교육과 교수를 거쳐 공주대 교수로 정년퇴임하였다. 제주대 교수시절 강길원은 친절하고 자상한 교수법으로 유명했다.

 

제주의 풍경을 그리면서 육지 화가들이 제주의 풍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곧바로 따라서 그리는 화가가 나올 정도였다. 2004년 옥조근정훈장을 수여했으며, 다작의 작가이면서도 부부 금슬이 좋기로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전남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에 세상을 타계했다.

 

강길원의 '용두암'(1987년)은 대표적인 자연물 관광지이다. 용의 상징은 바다를 지키는 영물이고,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이기도 하다. 바위가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용두암인 것이다.

 

동양인들은 용을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대상으로 인식했지만 서양인들은 반대로 퇴치해야 할 사탄의 일종으로 여겼다. 기독교 세계관을 받은 것이다.

 

용두암은 화산 때문에 생긴 바위로 흐르는 용암이 바다를 만나면서 솟아올라 생성된 것이다. 일종의 투물러스의 형상석인 것이다. 용이 오른 쪽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승천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비춘 모습과 같아서 환상적인 느낌마져 들게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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