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비, 바다
물은 생명체에 있어 필수적인 물질이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은 이 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신진대사(新陳代謝) 작용을 한다. 중국의 사상가 관자(管子)는 만물의 근원으로써 물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지가 인간의 몸이라면, 모든 생명체가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면서 감각이나 감정이 일어나는 곳이다. 물이란 대지의 혈기로써 사람에게 피가 흐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물은 모든 것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만물은 그 생명의 기운이 다하지 않음이 없으며, 본성으로 되돌아가는데, 물이 내부에 적당히 고르게 하기 때문이다(地者, 萬物之本原 諸生之根苑也 美惡 賢不肖 愚俊之所生也 水者 地之血氣 如筋脈之通流者也 故曰 水 具材也……萬物莫不盡其幾 反其常者 水之內度適也)"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근원을 물이라고 말하는데, 그 때문에 그는 땅이 물 위에 있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아마도 모든 것의 자양분이 축축하다는 것과 열 자체가 물에서 생긴다는 것, 그리고 이것에 의해 모든 것이 생존한다는 것(모든 것이 그것에서 생겨나므로 그것이 모든 것의 근원이다)을 보고서 이런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라고 했다.
니체는 이런 탈레스에 대한 근본명제의 확실한 전거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을 들어 대단한 가치가 있는 자연과학적 가설이라고 말한다(니체, 2020). 버트란트 러셀 또한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탈레스의 진술은 과학적 가설로 간주해야 하며 결코 어리석은 주장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만물에 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형태론적으로 보면 우리 몸의 구조는 자연 사물들의 패턴에도 나타남으로써 전체 자연을 대우주로 보고, 자연의 한 사물인 인간은 소우주로 인식한다. 동양의학에서는 사람을 소우주로 보아 인체의 구성 원리를 대우주에 대응하는 구조로 설명한다.
『회남자』에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받고, 빌이 네모진 것은 땅을 본받았다"는 말이 있다. 하늘에는 사계·오행·아홉 영역(여덟방위와 중앙) 360일의 날짜가 있으며, 사람에도 또한 사지(四肢)·오장(五臟)·아홉 개의 구멍·360개의 관절이 있다. 하늘에는 풍우(風雨)·한서(寒暑)가 있으며, 사람에게도 취여(取與)·희로(喜怒)가 있다. 서양의 데모크리토스 또한 인간 개개인을 소우주(microcosmos)라고 생각한 것처럼 서양 고대 철학에서 인간의 몸은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여겼다. 대우주라는 ‘마크로코스모스(macrocosms)’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우리 몸은 미크로코스모스(microcosms), 즉 소우주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몸의 원소 구성을 보면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몸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주요 원소 대부분이 포함돼 있다. 몸·지각(地殼)·바닷물을 구성하는 원소의 조성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특히 바닷물에는 생명체에 반드시 필요한 탄소, 질소, 인은 그리 많이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수소, 산소, 칼슘, 황, 소듐, 칼륨, 염소, 마그네슘 등이 우리 몸과 동일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로써 생명이 바닷속에서 탄생하여 진화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이 11종의 원소는 우리 몸의 약 99.8%를 구성하고 있는 필수 다량원소가 되며, 나머지 0.2%를 구성하는 미량원소(trace element)와 초미량원소(ultramicro element)들 또한 생명 유지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미량원소로는 철, 불소 규소, 아연, 루비듐, 스트론 튬, 납, 망간, 구리 등 9종이며, 초미량원소는 알루미늄, 카드뮴, 주석, 바륨, 수은, 셀레늄, 요오드, 몰리브덴, 니켈, 붕소, 크롬, 비소, 코발트, 바나듐 등이다. 이 가운데 생명 유지와 생체의 발육, 정상적인 생리기능에 빼놓을 수 없는 원소가 철, 아연, 망간, 구리, 요오드, 셀레늄, 크롬, 몰리브덴, 코발트 등이 있고, 또 필수원소들 중에 수은, 납, 셀레듐 등과 같이 독성이 있는 원소도 들어 있다(Shinpan Utsukushii Genso, 2017).
살아있는 것들은 물로 연결돼 있다. 물의 특성은 흐르는 것이다. 물이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안 것은 1700년대야 가능했다. 1774년 영국인 조지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가 산소라는 새로운 기체를 발견했다.
그즈음 프랑스 파리에서는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 1743~1794)가 어떤 원소를 연소시키면 물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고는 이 원소의 이름을 수소라고 명명했다. 이어서 처음으로 물을 분자 형태의 모습으로 제시한 사람은 ‘원자론의 창시자’ 존 돌턴(John Dalton,1766~1844)으로, 잉글랜드 출신인 물리학자 겸 화학자, 기상학자였다. 또, 그의 연구를 기반으로 스웨덴의 화학자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Jone Jakob Berzelius, 1779~1848)는 물 분자에 들어 있는 수소와 산소의 비율이 2:1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뒤, 물을 H20 또는 H0H로 규정했다.
물은 잘 분리되거나 재결합하는 성질 때문에 보편 용매로 쓰인다. 물은 인간 같이 살아있는 유기체의 몸속을 통과해, 산소와 영양분 같은 화학 물질은 운반하여 필요한 곳에 전달해준다. 곧 물의 순환이 잘 되면 건강한 생육이 일어난다. 몸 속의 물은 지구의 물과 같은 유사한 순환이 일어나기에 ‘몸 속 바다’라고도 한다. 진화의 과정에서 생물군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 수백만 년의 시간이 흘러서,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몸은 67%가 물이다. 우리의 단단한 치아는 물의 비율이 12%를 웃돌고, 인체의 뼈들은 약 22%가 물이며, 뇌 조직은 73%가 물이고, 몸 속의 피는 80%~92%가 H20로 이루어져 있다(Veronica Strang, 2020).
물은 비가 되어 내리기도 한다. 폴 에스트럽(Poul Astrup)의 추산에 따르면, 연간 바다에서 증발해 하늘로 올라가는 물은 430,000㎦, 대륙에서는 70,000㎦이다. 그러나 산이 구름과 빗물을 붙들고 있으므로 육지에 떨어지는 빗물은 약 110,000㎦이고, 매년 순수하게 얻는 물의 양은 40,000㎦라고 한다. 그러나 비는 지구 곳곳에 골고루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뭄과 홍수 지역에 따라 내리면서 양이 다르고, 기후에 따라 강수량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물이 신앙이 되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영향을 크게 끼치기때문이다(Veronica Strang, 2020).
용은 물, 비, 바다와 관련이 있어 비를 불러 가뭄을 해갈시키고 풍랑을 잠재우기도 하고 민중들의 생업을 도운다. 상상의 동물 용이 바다의 자연현상으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면서 하늘로 오르는 용오름을 보고 사람들은 용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구름이 크게 일어 뭉쳐지는 모습이 마치 용틀임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용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념을 만들어 내어, 용은 곧, 용왕이라는 해신이 돼 잠녀와 어재기를 지키는 신의 직능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용의 상징과 도상(圖像)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라 4대 왕인 탈해(脫解) 이사금(尼師今)이 용의 아들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에는 서해 용왕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아버지에게 먼 훗날 아들이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거나, 또 작제건(作帝建)이 아버지를 찾으러가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서해용왕의 부탁으로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로 변신한 늙은 여우의 농간으로부터 구해주니 급기야 용왕의 딸과 혼인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 때 유녀(遊女)들의 애정노래라고 알려졌던 <쌍화점(雙花店)>을 ‘남의 땅에 와서 호떡 장사를 하는 원나라 휘휘아비의 행패와 허울만 고려 임금인 충렬왕의 호색상(好色像)을 풍자한 노래’라고 해석하기도 했다(金智勇, 金美蘭, 2012).
<쌍화점(雙花店)> 제 3절 ”드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가고 나니/우물용(龍)이 내 손목을 쥐더라./이 말씀이 이 우물 밖으로 나며 들며(하거든)/조그만 드레박아 네가 소문 낸 말이라고 하리라./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위위!…/그 잔 곳에 함께 덧걸친 일이 없다.“ 라는 노래는 처녀가 우물에 물을 길러갔다가 용에게 손목을 잡혔는데 그 용이 당시의 임금을 풍자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의 건국을 칭송한 『용비어천가』는 ”해동(海東)의 여섯 용(六龍)이 날으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옛 성인들과 부절을 합친 듯 꼭 맞으시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 좋고 열매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므로, 내[川]가 되어 바다에 가나니“로 시작하는데 조선 왕조 개국의 정당성을 이념화시킨 송가(頌歌)이다. 여기에서 육룡(六龍)은 왕실의 역사적인 정통성과 상징을 나타낸다.
용은 임금과 관련돼 있다. 이를 테면 임금이 앉는 의자를 용상(龍床), 임금의 조회복을 용포(龍袍:衮龍袍)라 하고,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顏)이라고 하며, 왕의 전복(戰服)의 가슴과 등에 장식하는 용보(龍補), 임금의 전쟁 출정시나 행차시에 쓰는 깃발을 교룡기(蛟龍旗)라고 한다. 용에 대한 그림으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사신도 가운데 동쪽의 수호신으로 그려진다. 용은 조선시대 무덤에서는 오른쪽의 백호와 함께 죄청룡으로 사신(四神)이 된다. 조선시대 무덤을 용묘(龍墓)라 하여 봉분 뒤에 길게 꼬리가 되는 부분을 용미(龍尾)라고 부른다. 바로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풍수지리 원리에도 용의 역할이 잘 투영되어 있다.
기치(旗幟)를 형(形)이라 하고, 징(金)과 북(鼓)를 명(名)이라 한다. 이들은 군대에서 명령과 소통에 쓰이는 도구들로써 깃발은 주로 각 지휘 체계를 운용할 때 명령과 하달에 사용한다. 여기에서는 용과 관련된 깃발에 국한시켰다.
<교룡기(蛟龍旗)>는 국왕을 상징하는 깃발로 앞서 왕이 행차시, 또는 군대 출정시에 왕과 함께 한다는 상징이 있다고 했다. 구름사이로 올라가는 용과 내려가는 용 두 마리가 서로 어우러진 그림을 그린 깃발로 불꽃을 상징하는 적색 깃술이 3방향으로 둘러져 있다. 깃발 중 가장 커서 말을 탄 네 명의 병사가 함께 들어야 한다. 좌, 우, 중군기와 조응한다.
<황룡기(黃龍旗)>, 일명 대장기이다. 황색 바탕의 깃발로 중앙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우주 전체를 다스리는 황룡이 그려졌다. 왕이 직접 군대를 사열할 때에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영(陣營)의 중앙에 두고 중군(中軍)을 지휘할 때는 대장기로 사용했다. 한 마리 황룡이 힘차게 하늘의 구름 사이로 오르는 용이 그려지고 깃발 바깥에는 불꽃을 상징하는 깃술이 장식돼 바람에 날릴 때마다 위용을 보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니까 좌군(左軍)은 청색바탕, 우군(右軍)은 백색바탕, 중앙은 황색바탕으로 교룡기의 명령에 응할 때 쓴다.
불교의 도상에도 용왕이 나온다. 신중탱화에 용왕은 팔부신중(八部神衆)의 일환으로 동진보살을 호위한다. 신중탱화에 나타나는 존상의 숫자는 1위, 3위, 39위에서 많게는 104위까지도 그린다. 1위만 모신 경우 동진보살만을 그리고, 3위를 모신 경우에는 동진보살과 함께 오계대신과 복덕대신을 그리기도 하고, 도량신과 가람신, 또는 산신과 용왕을 그리기도 한다.
신중탱화에 용왕의 위로 산신이 그려지는 것은 산의 왕과 바다의 왕이 서로 산하(山河)의 균형과 조화를 위한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남 순천시 송광면 선암사(仙巖寺)의 <청련암(靑蓮庵) 신중탱화>에 동진보살 좌측에 물고기 얼굴을 닮은 수염이 괴상하게 그려진 용왕이 있다. 그 뒤에는 산신의 손에 영지초를 들고 있는데 마치 산의 신과 바다의 신을 염두에 두고 배치하고 있다.
용왕은 특유의 여러 갈래 우스쾅스러운 수염이 특징적인데 팔부신중이란 불교의 호법신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용신팔부(龍神八部), 팔부중(八部衆), 천룡팔부(天龍八部), 팔부천룡, 팔부신장 등으로도 불린다. 구성원으로는 천(天人), 용(四海龍王:동, 서, 남, 북의 네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 야차(夜叉), 건달바(半人半鳥),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半人半馬. 여성형은 半人半鳥), 마후라가(摩睺羅伽) 등이다.
<무속화>에는 용왕, 용태부인, 용궁부인 등이 자주 그려지는데 모두가 용왕 가족들로 바다 한 가운데 용을 타고 있는 모습들이다. 또 절간이나, 향교에도 앞뒤로 기둥에 용두(龍頭)를 만들어 화재를 예방하기도 한다.
제주의 요왕 신앙
잠녀(潛女)는 잠수(潛水)하는 여자이다. 잠수하는 것은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데, 제주 여성들은 이것을 “물에 ᄌᆞ물다”라고 말한다. “물에 ᄌᆞ무는 것”은 사람이 “물에 들어가서 몸이 잠기는 것으로 “ᄌᆞ망먹다”라는 의미는 밥(신체) 을“물이나 국에 말아서 먹다”라는 말과 통한다. 물에 ᄌᆞ무는 일은 무척 위험하고 공포스럽다. 그래서 잠녀들은 용왕을 위하고 그를 믿고 따른다. 캄캄한 열 길 물속을 드나드는 여성으로서는 반드시 “믿는 구석이 있어야만 물질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잠녀들이나 어재기들은 누구나 요왕(龍王)을 모시는 것이다.
또, 잠녀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전복 따서 진상하던 포작인(鮑作人)이 있었다. 그들을 ‘보재기’라고 하여 전복을 따던 남자를 말하고, 고기 잡는 어부는 어작인(漁作人)으로 제주식 표현으로는 지금도 대정지역에서는 ‘어재기’라고 부른다. 보재기와 어재기는 제주 바다에서 일하는 직능을 말하는 해민의 표현이다.
잠녀와 어재기 들은 생존 조건이 바다에 달려있기 때문에 해마다 영등굿이나 잠수굿, 그리고 요왕맞이를 한다. 영등굿은 멀리 서천서역국에서 오는 외래 신으로 제주에 풍요와 다산(多産)을 주러오는 신이다. 이 신은 ‘영등’, 혹은 ‘영등할망’이라고 하여 이 신이 오시는 달에 여인들과 뱃사람들은 영등맞이, 또는 영등손맞이를 한다. 일종의 화려한 환영식을 한 후 영등할망이 보름 동안 제주에 머무는 내내 잘 위하고 기분 좋게 송별식을 치러 드리는 것이다.
제주칠머리당 영등굿에서는 영등신과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뿐만 아니라 소속 본향당 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 그리고 동해요왕해신부인(東海龍王海神夫人)에게 제사를 지낸다.
칠머리당 본향당 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은 마을 전체의 토지, 행사, 생업과 호적, 물고를 살피고 보호하며, 동해요왕해신부인은 잠녀와 어부의 생업과 외국에 나간 주민들을 보호해 준다고 믿기 때문에 이들 신을 위해 해마다 영등 손맞이를 하는 것이다(좌혜경, 『제주해녀』 2015).
사실 이와 같이 영등할망을 맞아들이고 환송하는 이유는 외눈배기 괴물에게 잡혔던 제주 어부들을 영등할망이 목숨을 걸고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 감사의 표현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받으면 주고, 주면 드려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사의 한 모습인 것이다.
또 현재까지 남아 있는 구좌읍 김녕리 잠수굿은 제일이 음력 3월 8일이며 굿의 집전은 김녕리 큰 심방 서순실 심방이 한다. 굿의 비용은 김녕리 잠녀들이 공동으로 비용을 마련하고 굿 3일 전부터 해산물을 마련해 두어 굿 당일 오는 단골이나 어촌계 손님들을 대접한다. 굿의 내용은 바다의 풍요와 안전을 위해 농경신 자청비와 여러 신들을 ‘거느리왕상’하고(거명하고), 특히 바당밭의 풍요를 위해서 ‘요왕세경본풀이’를 한다.
마무리 제차에서 요왕차사본풀이를 하여 바다에서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액막이를 하여 마지막에 배방선을 띄워 보낸다. 사실상 굿은 생산력을 위한 신앙적 차원에서 용왕신과 바다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다는 자연이면서 인간이 경영하는 밭으로 인식되어 미역밭, 우럭밭, 구제기(구젱기) 밭으로 부르는 것에서 보는 것처럼 제주인 들의 경제적 관념에 굿의 요소가 깊숙이 젖어들었다.
또한 구좌읍 하도리 요왕맞이, 동복리 잠수굿, 화북 해신당제 등 잠녀와 어재기가 있는 곳이면 제주도 곳곳에서 용왕을 위한 굿들이 행해진다. 신앙은 공포를 극복하고 결실을 기원함으로써 일상적으로 삶이 풍요로워지려고 하는 우리들 희망의 원리인 셈이다.
요왕제는 뱃사람들이나 잠녀들이 지내는 제사로 반드시 바닷가에 가서 지내야하며, 풍어와 풍요를 기원하고, 배 파선이나 물질할 때 인명 사고가 나지 않고 해산물을 많이 딸 수 있도록 바라는 것이다.
용왕제의 제물은 바닷고기는 빼고, 메밥, 과실, 떡, 술을 차린다. 희생으로 닭 대신 계란을 쓰기도 한다. 메밥은 사신(사해용왕)의 몫으로 네 그릇을 준비한다. 심방은 용왕께 빌 때 다음처럼 덕담을 한다.
“동서남북 사신(四神)을 부르고, 중앙 요왕 수리태ᄌᆞ국요왕, 황제홍헌씨요왕, 거북ᄉᆞ제 모두를 살려줍써....바당에서 죽은 수중고혼 영신들은 멀찌건이 사시민(서 있으면) 하영 대위허쿠다.....” 하면서 요왕본을 푼다. 그리고 요왕제를 지낸 다음에는 반드시 산신제를 지내야만 덕이 돌아온다고 믿는다(진성기, 1997).
용과 관련돼 생각나는 제주 지명으로는 용연(龍淵), 용두암(龍頭巖), 용담동(龍潭洞), 용(龍)머리, 용수리(龍水里), 용당리(龍塘里), 용흥동(龍興洞), 용머들, 용강동(龍崗洞), 용진골(龍進洞) 등이 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삶이 곧 용왕을 의지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생존의 지평이 바다노동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管子』,
『兵將說』,
『陣法』
버트란트 러셀, 『세계철학사』
仙巖寺聖寶博物館, 『仙巖寺 佛畫』, 2005.
좌혜경, 『제주해녀』, 대원사, 2015.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