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의 상징적인 담론들 ‘폭낭’은 제주어로 팽나무를 말한다. 제주에서 폭낭은 깊은 의미가 있다. 폭낭은 오래된 마을일수록 수령(樹齡)과 형태가 을씨년스러울만큼 기괴하지만 그 나무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바닷가 마을일수록 그 형태가 상상을 초월하며 풍향수(風向樹)로써 한라산을 향해 빗자루처럼 누워있다. 폭낭의 역할 중 한 가지는 폭낭이 있는 곳이 마을의 중심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평소에는 더위를 쫓는 쉼터의 역할도 하고, 마을 소식도 서로 전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긴급할 때 마을 공회(公會)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또한 폭낭은 대표적인 神木(신목)이 되기도 한다. 본향당 안에 오방색 물색(컬러)을 걸고 신체(神體)가 되는 것이다. 해안 마을은 신체가 석상이나 잡목이 되지만 중산간 마을에선 폭낭이 주요 신체가 되고 있다. 김산이 폭낭을 마을의 중요 사건을 지켜본 목격자, 시간의 증인이라고 하는 것은 그 나무가 인간보다 훨씬 오래도록 역사 앞에 의연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풍경’이라는 담론은 풍경 속에 은닉(隱匿)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멀리서 자연 그대로 보이는 풍경도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으로 생채기를 입고 있다.
김산은 최남단 항구도시 모슬포 출신의 젊은 작가로 2023년 제49회 제주특별자치도미술대전 대상 작가이다. 2024년 3월 20일부터 4월 8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내 제주갤러리에서 유화작품 22점으로 김산 초대개인전 ‘염원’을 선보이고 있다. 화가 김산은 제주대학교에 미술학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2010년 대학 2학년 때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9회의 개인전과 70여 회의 초대전·단체전에 참가했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인 ‘젊은 모색 2021’에 선정된 바 있는 유망작가이며, 2024년 3월 이중섭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함께 열고 있다. 이번 서울 제주갤러리 초대전 ‘염원’은 작가가 죽음의 문턱에서 느꼈던 삶의 소중함에 대한 염원(念願)을 통해, 생명의 근원은 자연이며, 자연과 사람이 서로 교감해야만 상생공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자각에는 고향에서 느꼈던 ‘본향(本鄕)’에 대한 깊은 애정의 결과이며, 본향은 제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써 거기에서 나오는 ‘본향의식’이야말로 자신의 정체성의 본질이라는 것을 작품마다 진득하게 담고 있다.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영상 시대에 거꾸로 가는 고민철의 행보 지금은 로컬리티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서울과 지방이라는 2분법적 구도의 경향론(京鄕論)은 중심부와 주변부로 차별하면서 문화의 지배구조를 이뤘지만, 오늘날은 그 구조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다원주의(多元主義)의 영향도 한 몫을 하고 있고, 지역으로 향하는 이주 인구의 확대, 시장경제의 세계화 전략이 지역의 특성들을 균일하게 일반화하면서 차이가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문화적 대안으로서 로컬리티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어디에나 있다. 지역 간 색깔이 점점 줄어들면서 제주 로컬리즘이라는 정체성은 과거 농업사회와 해양·목축사회에 기반을 두었던 풍토적인 삶에서 드러났었지만, 점점 그 정체성마저 해당 삶의 방편들이 산업사회로 대체됨으로써 사실상 점점 축소되거나 소멸되고 있다. 지금의 현실은 하이브리드 시대다. 이 혼성(混成)의 시대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한데 마치 구산업(석유)이 신산업(전기)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병존하는 과도기처럼, 혹은 이주하는 종족과 원주민이 새로 섞이면서 하나의 퓨전 문화가 되는 변화의 운동단계가 되고 있다. 갈수록 인류가 지구인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생
고민철 개인전 ‘제주적 추상’전 서울 인사동에 있는 제주갤러리에서 중견 화가 고민철의 ‘제주적 추상전’이 성화리에 열렸다. 제주의 풍토를 주제로 추상미술의 새로운 미학을 개척하고 있는 와중에 마련된 이번 전시는 그간 고민철이 천착해 왔던 제주 문화의 진솔한 향기를 느끼게 하여, 많은 서울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고민철은 원래 인상주의 화풍을 선호했던 화가로, 주로 제주의 자연과 풍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다가 어느날 추상회화로 방향을 바꿔 독창적인 제주 추상의 길을 열어나가고 있다. 이번 서울전은 제주미학의 새로운 시선을 개척하고 있는 화가의 신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고민철은 제주대 미술학과 서양화 석사를 취득해 ‘추상표현주의 표현에 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창작방법으로 제주의 풍토적 자연을 추상화로 시도하여 돌, 바람, 해저, 이어도 등 생태, 기후, 신화적인 시선으로 제주인의 삶에 주목하면서 작가 자신의 문화적 DNA를 속임없이 표출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고민철의 ‘제주적 추상’이라는 새로운 회화의 작품을 소개한다.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로서의 추상 어떤 그림이라도 화면에 눈을 점점 가까이 댈수록 형체는 모호하게 나타난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물, 비, 바다 물은 생명체에 있어 필수적인 물질이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은 이 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신진대사(新陳代謝) 작용을 한다. 중국의 사상가 관자(管子)는 만물의 근원으로써 물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지가 인간의 몸이라면, 모든 생명체가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면서 감각이나 감정이 일어나는 곳이다. 물이란 대지의 혈기로써 사람에게 피가 흐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물은 모든 것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만물은 그 생명의 기운이 다하지 않음이 없으며, 본성으로 되돌아가는데, 물이 내부에 적당히 고르게 하기 때문이다(地者, 萬物之本原 諸生之根苑也 美惡 賢不肖 愚俊之所生也 水者 地之血氣 如筋脈之通流者也 故曰 水 具材也……萬物莫不盡其幾 反其常者 水之內度適也)"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근원을 물이라고 말하는데, 그 때문에 그는 땅이 물 위에 있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아마도 모든 것의 자양분이 축축하다는 것과 열 자체가 물에서 생긴다는 것, 그리고 이것에 의해 모든 것이 생존한다는 것(모든 것이 그것에서 생겨나므로 그것이 모든 것의 근원이다)을 보고서 이런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라고 했다. 니체는 이런 탈레스에 대한 근본
제주도는 해양문화지대가 주류인 섬으로 너른 바다라는 의미인 해양(海洋) 한 가운데 있어서 남으로는 오키나와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맞으며, 서로는 중국과 인도에서 불어오는 서북풍의 바람을 타고, 북으로는 한반도 도서와 내륙을 바라보며, 동으로는 일본 규슈의 햇살을 받는다. 제주민요에 "강남을 가건 해남을 보라"'는 말에서 보듯, 일찍부터 제주인들은 떠내려 온 자신이 살아 돌아갈 고향은 바로 해 뜨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길에 있었다. 강남은 중국 양쯔강 남쪽(江南) 지역이며, 해남은 하이난다오(海南島)를 말한다. 쿠로시오 해류가 강남과 해남을 지나 타이완을 넘어 제주에 이르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자의 염원이 된 것이다. 해양문화는 바다의 삶에 대한 우리들의 역사적 모습을 말한다. 섬 사방이 바다이므로 사람들의 의식주가 이 바다로부터 나고 삶과 죽음이 물로 막힌 곳에서 이루어지니 사랑과 미움도 이 섬에서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삶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인생은 언제나 생각만큼 순탄하지도 못한다. 역사가 헤로도토스(Ἡρόδοτος:Herodotus, B. C 484년경~425년경)의 말처럼 안타깝게도 "인간사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같은 사람들이 늘
변시지는 1975년 제주도로 귀향한다. 생전에 선생의 말로는 제주 공항을 내리는 순간 세상은 온통 아열대의 태양 아래 노랗게 보였다고 했다. 영감일까. 착시일까. 아니면 무의식에 떠다니는 잔상효과일까. 이 무렵 변시지는 마침 1973년 제주대 사범대학에 미술교육과가 신설돼 부족한 서양화 강사로 발령받으면서 본격적인 고향 제주의 풍광과 마주할 수 있었다. 또 그가 제주미술협회 고문으로 추대되면서 지역 미술계를 이끌 기반도 만들어졌다. 사실 선생의 회고대로 몇 년만 기억에 남겨진 고향을 체험하듯 가볍게 생각해서 마치 출장오듯이 가뿐하게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역시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법이다. 그의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변시지의 생각은 일생을 제주에서 마감할 운명적인 시작이었다. 고향 제주는 울씨년스러운 날씨가 다반사다. 찬 바닷바람, 습한 기운, 모든 것이 움직이는 동적인 세상이다. 그럴 때면 갈이 흔들려야 정상적인 자세가 유지된다. 검은 색의 현무암, 덩어리진 응회암이 해안을 가로 막는다. 온통 돌투성이에 바람은 사계절 어디에서든 그치질 않았고, 파도소리는 밤새 시끄러웠다, 까마귀는 들판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조랑말은 해안가 풀밭이면 어디든 오른다. 파
바람의 길 나는 보았네 바람의 뒤편에 서서 우주의 한 점이 마침내 여럿이 돼 흩어지는 것을, 결국 그것은 근원, 모두 네 개의 아톰 우주의 실체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네. 보여주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것 어떤 이들은 그것을 숨기려고 하여 발버둥쳐도 그럴 수가 없었네. 하지만 화가는 엠페도클레스가 되어 물, 불, 에테르, 흙을 캔버스의 대지에 가득채웠네. 우리 사랑과 불화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물질이여 지금은 백 여개 원소의 이름으로, 마침내 황톳빛 세상을 완성했네. 온 누리에 바람이 불어 이제 비로소 인간을 지배했던 어둠의 세력들의 합의된 그 권력은 불안에 떨며 불씨 꺼지듯 서서히 블랙홀로 사라지고 있네 그 하늘에서 저녁이면 영롱하게 반짝이는 눈들이 나오자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도 마침내 마음의 길잡이가 되었네. 언제부터인가 모두에게 기쁨이 흘러나오네 중세의 하늘을 감쌌던 공포가 고작 인간이 만든 음모였다니 태초의 말씀을 믿는 자들이 아무리 영험한 기도를 올린들 하늘은 알 리가 없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뭉쳐진 존재의 비밀, 세계의 실체가 이 한 점에서 시작되었네. 살아있을 때 사람들은 부분만을 응시했지만 죽어서는 세상 모두를 바라보는 수 많은 눈이 되
1. 죽은 자는 빨리 잊혀진다. 자기가 실존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현실 세계와 현재 교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래 살고자 하기 때문에 “남(他者)은 먼저 죽어도 내가 먼저 죽는다”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다. 사실상 죽음은 당위(當爲)이지만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관심을 쓰기 조차 싫어한다. 일종의 회피다. 요즈음 죽음의 모습은 어떤가. 모든 망자에게 죄송스럽게도 장례는 놀라우리만치 상품 사회가 작동하는대로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다루듯 시간 타임에 따라 빨리 빨리 죽음이 처리된다. 이걸로 봐서는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만은 결코 안 죽으리라 생각하여 타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한 사람의 죽음은 큰 일 중에 제일 큰 일이다. 그러나 죽음이 이상하게도 큰 일이면서 큰 일이지 않게 넘어가는 것을 보면 시대적인 간편 코스가 따라주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돈에 미친 세상이지만, 시간이 돈이 되면서 시간을 되도록 적게 잡아야만 서로(의뢰자와 의뢰 받은 자)가 이익인 사회가 되다보니 미래에 자신이 죽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남의 일처럼 가볍게 여기게 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가
◇ 르네상스, 만물의 중심은 인간 우리 인류세의 한 점인 르네상스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사람들은 무언가 혁신적인 일로 보이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우리 마음에는 늘 어떤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란 이탈리아어 리내시멘토(Rinasimento)라는 어원을 가진 말로 프랑스 역사가인 미슐레가 프랑스어 Renaissance라는 말로 확립시켰다.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생이라는 관념이 이탈리아에서 확실한 토대를 가지게 된 것은 지옷토(Giotto, 1266~1337) 시대의 일이었고 지옷토는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의 진정한 부활을 유도해낸 인물로 칭송됐다. 다시 말해 중세의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지역보다 낙후되었기 때문에 지옷토의 새로운 업적들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혁신으로 보였고, 예술에 있어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모든 것이 부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4세기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예술과 과학과 학문이 고전시대에 번창했었으나, 이 모든 것들이 거의 다 북쪽의 야만인들에 의해서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이 영광스러운 과거를 다시 부
◇ 현재사로서의 역사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가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할 수가 있다.” E.H.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는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대화라고 했다. 이런 인식 속에는 모든 역사는 현재사라는 베네데토 크로체의 역사의 개념이 숨어 있다. 콜링우드는 역사를 과학으로 생각했다. “과학이 무지(無知)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것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역사는 과학이 된다.” 그래서 역사는 ‘행해진 것(res gestae)’, 즉 과거에 행해진 인간의 행동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를 과학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수많은 상상력 더미로 덮이지만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늘 사실(事實)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해석(interpretation)의 문제가 따른다. 우리는 흔히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소설 쓴다’라고 한다. 소설이 상상적 허구(imaginary fiction)라는 점에서 꾸며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현실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행위와 사건의 결과라는 점에서 증거로 말하는 사실이 있고, 그 사
◇ 세상을 이루는 형태의 생(生) “삶은 형태이며, 형태는 삶의 방식이다. 자연 속에서 형태들을 이어주는 다양한 관계가 순전히 우발적인 사건에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스러운 삶이라 일컫는 것도 형태들 간의 불가피한 관계로 보인다. 따라서 형태가 없다면 자연히 삶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형태를 자연의 모든 삶의 근원으로 보는 이러한 앙리 포시용(Henri Pocillon)의 사유는 발자크(Honoré de, Balzac,1799~1850)의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형태이다. 그리하여 삶 자체도 하나의 형태이다"라는. 그렇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만물은 형태로 규정된다. 돌(石), 나무(木), 사람(人), 물, 눈(雪), 산소(酸素)마저도 형태를 이룬다. 눈에 보이는 형태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형태로 이루어내는 예술을 말함에 있어서 포시용은 어떤 미술작품이라도 형태적인 측면에서 파악되고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세계는 다양한 형태들의 전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개별 형태들은 서로가 물질·공간·정신·시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도 하고, 인간 스스로의 사유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