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향교 전통혼인례 [제주향교 홈페이지]](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939/art_1758764002898_edcc64.jpg?iqs=0.1557218626269693)
의례에는 삶과 죽음이라는 갈림길에서 개인 중심으로 펼쳐지는 통과의례와 사회적 통합의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키는 사회적 의례인 세시 의례가 있다. 이 통과의례와 세시 의례 모두가 사회적 통합을 위한 하나의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로서 임무를 수행한다.
의례를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해보면 무수한 제도 속에는 의례가 변형됐거나 의례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는 의례적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예를 들면 제사, 기념식, 졸업식, 마라톤 대회, 스포츠 대회, 기획된 축제, 열병식 등이 있다.
전통사회의 윤리나 가치들이 자본주의적으로 변형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의례의 기능은 소멸하지 않는다.
오늘날 성인식과 다를 바 없는 과거의 관례(冠禮)나 계례(髻禮) 형식은 주민등록증으로 대체되었지만, 여전히 통과 의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성인식과 같이 주민등록증을 받는 순간 미성년자가 아니라는 것, 그 즉시 사회적인 효력(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고 미성년자 금지구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은 통과의례가 제도화된 것일 뿐이다.
예전에는 개인의 생일 즉 왕이나, 대비, 왕세자의 생일(탄신)들은 국가의 대사(大事)로 생각하여,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과거를 치르거나 죄인을 사면해 주기도 하고, 공로자를 포상하는 등 국가 차원의 기념행사를 치렀다.
이러한 예는 오늘날에도(대통령 생일은 국가 의례에서 생략) 다른 형태로(광복절, 현충일) 여전히 존재한다. 반대로 오늘날은 민주주의라는 진보적 이념 때문에 개인의 가치가 존중되고 있는데 특히 개인의 생일은 작은 의례들의 현재 스타일로 변형된 의례이다.
통과의례의 한 형식인 생일축하식은 과거처럼 크게 의례에 규정을 받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 유형이 규정돼 있다. 친구들을 만나 생맥주를 마시고, 케이크를 자르며, 영화를 보러 가는 식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어떤 형태로든지 기념해야 될 것과 기념하는 방식의 차이는 있어도 의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기념성’이라는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또 전통시대의 학교인 향교의 기능은 의례의 기능을 설명하는데 매우 적절하다. 향교는 유교의 학문을 전파하는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로서 그곳에서 행해지는 의례는 유교의 사상을 실천하고 증명하고 세습하게 만드는 현장인 셈이다.
그러기 때문에 의례공간에 모셔진 훌륭한 조상들과 그것을 기리는 후손들은 제례를 통해 정신적으로 교감하며, 이 법통은 지역 공동체 사회의 입지를 구현할 수 있는 토대를 생산하는 혈연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나아가 향교가 이념화화고 전파시키는 지배체제의 관념은 가문과 혈통의 이데올로기를 통합하는 가묘와 묘지라는 의례공간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향교가 구축하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한 향교의 의례공간은 ‘정치적 장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