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자 이성의 동물이기도 하다.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사물 자신에게 생기가 있다는 말이다. 생의 에너지가 삶이다. 살아있음은 감각 지각을 느끼게 하는 기분과 느낌, 판단과 결정인 것이다.
도판화(陶板畵)는 흔하지 않은 작업방식이지만 그림 타일(tile)도 이의 방식에서 나왔다. 도판은 내구성이 강해서 건축 내·외장재로도 사용한다. 고대로부터 재료의 내구성 때문에 테라코타라는 이름으로 성행하기도 했다.
사람의 개성과 재료적 특성은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이 되었다. 여전히 표현은 창의적인 곳에 활용되는 인간의 지성적인 행동이다. 자기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만의 중요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시간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는 지금의 우리 문명의 결과이다.
김현자의 정서는 대상을 관찰함으로써 느끼는 감정, 즉 사물을 본 인상이다. 인상은 대상을 보면서 생각하고 느낀 감각 지각의 결과이며, 도판 그림이라는 형식은 회화적이어서 붓으로 선과 면, 형태를 그리고 유약이 색채가 된다. 도자예술이 형태를 다루는 것과 달리 김현자는 도자를 회화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미술교사 시절 도자벽화의 제작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김현자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있다. 아침, 낮, 저녁, 밤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일상을 상징하고 있는데, 아침은 자연 사물이나 인간이나 시작을 알리는 시간으로 소소한 것들 모두가 분주하고, 햇살이 강한 낮에는 작가의 사유로는 정원도, 산도, 바다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변화무쌍하게 다양한 감정의 색으로 다가온다. 자연을 안온하게 느끼면 색이 따뜻해지고, 형태가 부드러워진다. 또 자연이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면, 그것을 대하는 감정도 세게 나타난다. 선묘나 느낌, 모두가 감정의 상태에 따라 강하게 표현된다.
이미 우리의 일상은 각 개인이 다른 삶의 모습이라고 했다. 삶은 이야기이며, 희노애락 인생의 노래가 된다.

김현자의 도판 그림은 그녀가 등단한 소설가이기도 한 까닭에 잔잔한 일상의 삶으로 구성되었다. 볼 때마다 달리 보이는 오붓한 풍경들. 강아지, 꽃, 숲, 바다의 모습도 새롭고, 꿈을 꾸거나 의자에 대한 의미도 나무가 서 있는 존재에 대해서도 다르게 느낀다. 그녀의 문학적 감수성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으로 완성된 존재였다. 경험은 감정도 지각도 모두 다르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래서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도 다르게 느끼도록 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다르게 볼 수 있으며, 다르게 표현되는 이 지점에서 자신의 미학이 드러난다.
결국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공간 속에서 어떤 삶의 경험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가 판명된다. 여전히 삶이라는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어떤 공간 환경 속에서 사건들이 일어나고, 다시 잊혀지거나 소멸될 것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되듯 어떤 것은 기억에 남고, 어떤 것은 사라지거나 무의식에 잠길 것이다.
삶에는 미와 추가 함께 있어서 때로는 황홀하기도 하고, 때로는 혐오스럽기도 할 것이다. 또 우아하거나 편안하게 느낄 것이고, 때로는 조잡하거나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감정은 이처럼 여러 번 옷을 바꾸고, 지각은 여러 번 다른 느낌으로 인지될 것이다. 이런 변화가 인간 자체의 본성이리라.
김현자의 은유는 자신의 인생 노래이다. <숨겨진 시간> 긴 <겨울 지나고> 찾아온 <짧고 예쁜 봄>에 <설레는 마음>으로 <길에서 길을 찾다>. 삶에 <모든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처음은 다 어렵다> 그래도 우리 곁에는 <섬의 친구들>이 있고, 다시 <섬은 이어지고>, <별을 기다리는 바다>를 만난다. 드디어 <은하를 기다리는 산>에서 그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의자를 찾으셨나요?>. 김현자의 도자 회화는 세계를 자기에게 투영한 섬의 일상의 시간 안에서 향유하고 있다.

여기 일상의 시간은 김현자 혼자만의 경험이지만 나와 다른 남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우리 세계는 모두의 경험들이 서로 교환되고 충돌하는 자리이다. 그것이 평화라는 이름으로 타협하고 있는 장소여서 거기에 우리 인간의 마음에 무엇이, 어느 만큼 아로새겨질지는 여전히 모른다.
김현자의 일상은 경험된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이지만, 역으로 우리들의 살아온 날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늘, 그녀는 꿈꾸던 섬에서 묻는다. “과연 숨겨진 정원 어디에 당신을 기다리는 의자가 있나요?” 섬의 시간은 도판 속에서 말없이 흐르는데.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