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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14) 영원 회귀의 한 점 우주를 그리는 화가

변시지는 1975년 제주도로 귀향한다. 생전에 선생의 말로는 제주 공항을 내리는 순간 세상은 온통 아열대의 태양 아래 노랗게 보였다고 했다. 영감일까. 착시일까. 아니면 무의식에 떠다니는 잔상효과일까.

 

이 무렵 변시지는 마침 1973년 제주대 사범대학에 미술교육과가 신설돼 부족한 서양화 강사로 발령받으면서 본격적인 고향 제주의 풍광과 마주할 수 있었다. 또 그가 제주미술협회 고문으로 추대되면서 지역 미술계를 이끌 기반도 만들어졌다.

 

사실 선생의 회고대로 몇 년만 기억에 남겨진 고향을 체험하듯 가볍게 생각해서 마치 출장오듯이 가뿐하게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역시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법이다. 그의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변시지의 생각은 일생을 제주에서 마감할 운명적인 시작이었다.

 

고향 제주는 울씨년스러운 날씨가 다반사다. 찬 바닷바람, 습한 기운, 모든 것이 움직이는 동적인 세상이다. 그럴 때면 갈이 흔들려야 정상적인 자세가 유지된다. 검은 색의 현무암, 덩어리진 응회암이 해안을 가로 막는다. 온통 돌투성이에 바람은 사계절 어디에서든 그치질 않았고, 파도소리는 밤새 시끄러웠다, 까마귀는 들판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조랑말은 해안가 풀밭이면 어디든 오른다. 파도가 잔잔한 날이면 멀리서 들리는 숨비소리, 온갖 숲의 새소리 때문에 자신의 고향이 변방의 섬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라산과 바다, 녹색과 파란색이 황토색으로 보일 즈음, 비원의 풍경색들이 화면에서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주조색은 언제나 최후까지 잔상을 남긴다. 녹색이 사라지고 마지막에 청색이 아쉬운 듯 점점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갔다. 황토색으로의 침잠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세상 어떤 것이든 단박에 변하지 않으며, 징후가 있은 후 서서히 그 환경에 동화되면서 적응하며 잠겨가는 것이다.

 

만물이 그렇듯 시간이 가면 그 주조색마져 다른 색으로 바뀌게 된다. 그냥 바뀌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결국 사람 자신이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이다. 감각은 기후에 감응하고, 감정은 삶에 따라 조정된다. 삶에서 느끼는 감각지각은 다시 새로운 감각 작용을 일깨우면서 대상을 다르게 보게 한다.

 

제주에서 찾은 것이 바로 고졸미다. 아무나 그릴 수 있다고 믿는 서투름이 그 결론이었다. 거치름 속에는 단조롭고 투박한 것이 제주미의 생명력이었다. 어쩌면 오랫동안 잊었던 무의식의 심연에는 일상에서 살아 숨쉬는, 누리면서도 알아채진 못한 진정한 야성의 미가 녹아 있었다.

 

야생의 땅, 모든 것이 거친만큼 낯설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꿈틀거리는 원초적 기억이 반복해서 아우성치고 있다. 몸을 후려치던 비바람의 기억이 깨어나고, 초가와 눌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힐 때, 섬의 형태는 커다란 동작으로 바람을 향해서 엎드려 있었다.

 

 

고향에서 완성된 황토빛 제주화

 

변시지풍 제주화는 1977년을 전후로 하여 새로운 형태와 선의 구성, 색채의 절제가 나타나지만, 이런 현상은 작풍(作風)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화려한 컬러에서 단색화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묻어나는 것과 새로 나타나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묻어나는 것은 서울시대 컬러의 색조에 대한 잔상효과라고 할 수 있고, 새로 나타나는 것은 풍토에 영향을 받은 필력의 기운이 떠오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변시지는 생생한 야생의 길 서투름의 미학을 제주의 진정한 미로 생각한 것이다. 아름다운 심미적 자연보다는 어릴 때 무서운 바람의 소리로부터 각인된 거친 환경으로 회귀하여 남들과는 반대로 황량한 미학을 선택했던 것이고, 그것이 오늘날 제주화를 탄생시켜 한국미의 독보적인 중심에 서게 한 것이다.

 

변시지 제주풍의 기원, 곧 제주화의 시작은 선학(先學)들이 말한 바대로 1976년부터 1979년를 까지를 통틀어 함께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상징적인 황토색, 그리고 제주풍의 기원은 어떤 스타일만은 생각하게 되면, 1980년대에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1978년, 1979년 두 개의 도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점점 색이 덧씌워지고, 형태는 계속 조절되면서, 단순하고 졸렬하기를 반복한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황토색으로 이동하면서 점점 중층적으로 숙성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모든 작품이 황토색만 나오는 시기를 강조하는 것은 시원이 될 수 없다. 이미 변시지 황토색의 완성은 1970년대 후반에 독립적인 작품들이 등장하며너 정립됐기 때문에 그 이후의 황토색 작품들은 명도와 채도의 차이를 확인 할 수 있는 감정의 차이에 대한 변화인 것이다.

 

 

10주기 특별전의 의미, 영원회귀의 화가를 그리워하며

 

금번 28점으로 선보이는 변시지 특별전은 단촐한 전시지만 관련 기관과 개인 소장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또한 요즘 한창 유행의 바람을 타고 있는 미디어 아트로 새롭게 보는 변시지의 작품을 감상하는 맛도 신선하다. 한 화가의 일생을 들여다 보는 것은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작품 섭외, 소장가 확보, 예산, 기획 등 시간과 돈, 노동력 등 안정적인 행정력이 받쳐져야 한다. 그러나 10년의 지난 시간에서 회고해보니 변시지에 대한 기운이 점점 쇠퇴해가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시대가 변화고 환경이 변하면, 생각도 미의식도 변화는 것을 빨리 알아야만 한다. 미래에 화가가 있을 자리와 설 자리를 정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점점 회화는 영상화 될 것이 분명하다. 세상이 영상 네트웍으로 통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세계인이 그것을 원하니까 새로운 시각의 시대가 준비해야 한다.

 

이제야말로 안정적인 진지(陣地)가 있어 시민과 안정적으로 만나야 하는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지금 제주출신 화가들의 미술관 요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것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는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도 끊임없는 작품 발굴과 작가 연구, 작품 연구, 작가 홍보에 대한 기획, 장기 계획 추진이 선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단편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 같다. 물론 이는 작품이 공공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약점일 것이다.

 

이제 변시지 10주기도 해가 저물었다. 내년, 또 내년은 어떤 모습으로 시민들 앞에 설 것인가. 미술관 설립 문제는 때를 잘 만나야 한다. 국가 공공 재정도 좋아야 하고, 소장가들, 유족들의 통큰 결정도 필요하다. 시민들의 예술적 안목이 중요하여 전시장을 자주 찾거나 미술 서적들을 통해서 정보를 알아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미술관이 탄생하고 문화가 수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작은 샘물이 오래 흐르게 되면 물길이 나서 큰 비가 오면 그곳에 강이 된다. 결국 세상만사는 관심이 있어야 하고, 그것에 따르는 공공의 여론들이 모여서 큰일을 치를 수가 있는 것이다. 변시지 화백이 영면한 지 10년, 망자의 시간은 산 자들의 시간보다 더 빨리가고, 또 까닦하면 쉽게 잊혀진다. 로마의 영광도 지금은 폐허의 잔해만 바람에 나부낄 뿐이다. 무서운 것이 시간이다.

 

 

<특별전 큐레이터와의 대화>

 

이번 변시지 특별전을 기획한 서귀포시기당미술관 큐레이터 고현아 씨를 만났다. 고현아 씨는 서귀포 출신으로 성신여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고, 큐레이터 경력이 10년 넘은 배테랑 큐레이터 고현아 씨와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김유정(미술평론가): 서귀포시기당미술관 변시지 상설 전시관은 어떤 사회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고현아(큐레이터): 변시지 화백은 제주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1987년 기당미술관이 지어진 이래로 계속 변시지 상설전시관이 운영됨으로써 변시지가 제주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고, 계속적으로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됐지만, 전시관이 있음으로해서 잊혀지지 않고 선생님을 계속 기억할 수 있게되었다는 것이죠. 변시지 선생님은 서귀포와 제주 풍광을 자기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린 작품들을 보여줌으로써 기당미술관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유정: 육지 관광객과 제주 관람객의 관람하는 차이가 있다면?

 

고현아 큐레이터: 육지 관광객들이 변시지 선생님의 작품을 “특이하다”고 생각해요. 와~ 제주 바다를, 제주의 땅을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었네. 우선 색깔이랑 질감, 붓 터치 방식이 독특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제주는 다른 지역과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해요. 그래서 제주 스타일의 그림? 이게 제주 스타일의 풍경화인가? 이런 느낌인가라고 각인되는 큰 효과가 있고,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 똑같이 그리는 사실적인 그림들이 구별하기 힘들지만 그것들과 다르게 변시지 작품은 그들의 그림과는 다르기 때문에 아주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다른 지역에 온 것 같은 느낌, 비로소 제주도에 온 것을 알게 된다고 해요.

그리고 제주사람들은 서귀포의 범섬, 한라산같이 어떤 장소에 대해서 하나하나 사실적인 풍경을 명백하게 그리지는 않았지만, “제주의 그림, 자연을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하고 매우 다르게 보는 것 같긴해요. 다른 그림들 하고는 차별적인 그림들을 그렸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이게 동양화인가. 서양화인가 헷갈려하시는 관람객들도 있어요. 서양화인데 동양적인 느낌을 많이 받아서 많은 분들이 부담없이 관람할 수 있다는 거예요.

 

김유정: 이번 변시지 10주기 전시에 대해서 말한다면?

 

고현아: 이번 기획전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총 29점인데, 지금 대여한 작품은 28점, 기당미술관 소장품 1점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제주도립미술관 5점, 제주특별자치도 문예진흥원 1점,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 1점, (재)아트시지 13점, 개인소장 8점이예요.

그리고 특별히 제작한 변시지 미디어 아트전을 마련하여 관람객에 선보이고 있고, 또 예전에 KBS에서 방송되었던 변시지화백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도 KBS제주방송총국의 협조를 받아 현장에서 방영되고 있습니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도 변시지 미디어 아트전을 마련하여 변시지 10주기를 함께 기리고 있습니다.

 

김유정: 최근 변시지 상설 전시장을 새로 리모델링해서 편리하게 이어져서 좋은데 거기에는 어 떤 작품들이 있나요?

 

고현아: 상설 전시되고 있는 적품은 500호 대작을 포함 20점인데 이 작품들과 연계해서 전시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49점이 이번 기획전이 되는 셈이죠. 상설전시가 되고 있는 작품들은 선생님의 대표적인 유화 작품들이지만, 동양화 작품, 그리고 또 판화작품도 전시되고 있어서 이번에는 조금 색다르게 만날 수 있어요.

 

김유정: 이번 변시지화백 10주기 특별이 나름대로 어떤 의의나 특징을 갖는다면?

 

고현아: 선생님의 그림 속에는 늘 선생님이 있는데 이 사람이 선생님인지 선생님이 아닌지는 작품을 보시는 분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 그림 속에는 선생님이 살아 있고 여전히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그림과 함께 변시지라는 유명한 서귀포의 대가는 항구히 우리와 함께 기당미술관과 같이 갈 것이다라는 느낌으로 지금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 사후 10년이 지난 시점에도 선생님 작품들이 계속적으로 선보이고 있지만 많은 작가들이 사후에는 빨리 잊혀지기도 하잖아요. 우리들의 기억 속에, 우리 뇌리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혹시라도 변시지화백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그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갔을 때, 아니면 그 숱자가 점점 작아질 때 이 기당미술관에서는 선생님의 작품이나 전시를 통해서 선생님이 잊혀질 즈음 오래 기억하자는 의미가 커요. 물론 영원한 것은 없지만요.

 

김유정: 돌아가신 대가로서 변시지 화백이 앞으로 지향해야할 전시방향이 있다면?

 

고현아: 선생님이 작품들을 자주 볼 수 있는 전용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많은 시민들이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세대가 바끠면서 세상도 달라졌어요. 그러면 당연히 형식도 바뀌게 되죠. 이제는 점점 미디어 전시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더 젊은 세대들은 미디어를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전시들을 통해서 젊은 사람들도 작가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아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당연히 거기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세대를 만나야 하죠. 사실상 안정적인 공간이 있으면 원래 원화도 보고 미디어 부분 정말 좋겠지만, 현실은 점점 더 스마트 미술관을 선호하게 되는 시대가 될 겁니다. 그렇지만 상시로 볼 수 있는 공간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그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인 경우에는 작가 미술관을 그냥 계속 찾겠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할 것을 대비한다면, 만약 작가 미술관이 없는 작가들인 경우 앞으로 스마트 미술관에서 찾는 시대가 될 것을 예상해야 돼요. 변시지 선생님만 아니라 누구라도 원작도 중요하지만 당장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도록 미디어 서비스, 미디어 아트의 송출 네트웍이 필요합니다.

 

김유정: 감사합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변시지, 『화가 변시지, 자료집 2편』

변시지, 『우성 변시지』, 정화인쇄주식회사, 1986.

변시지, 『예술과 풍토』, 열화당, 1988.

서종택, 『폭풍의 화가 변시지』, 열화당, 2000.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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