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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21)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1)

“바로 걷는 자는 잘 넘어지지 않는다. 비열한 자를 칭찬하는 것은 선한 자를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이다.

 

우리가 평소에 운동을 하는 것은 무언가에 대비하고자 함이며, 생명은 움직임에 의해서 존속된다. 살아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굳어버린다. 생명활동은 부단하게 움직여 열에너지를 만들며 굳지 않게 살아가려는 것이다. 만사가 그렇듯 하나 이상의 대상과 접촉하면서 부딪치민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주 만물과 자연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며 공동체 사회도 생명체 개인들이 살아가려고 모여든 인간종의 무리일 뿐 자연적 존재이면서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부딪치며 나아가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2024년 지금 우리 사회는 매우 정치가 탁해서 당장 눈앞의 내일이 불안할 지경이다. 민의와 반대로 가는 지도자가 연일 국민과 다투고 있는 하수의 리더쉽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버티다가 포기한 시민들은 최후의 결단처럼 마치 적자생존에 내몰린 생물마냥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가고 있다. 민주주의 앞에서 해서는 안 될 행위 ‘각자도생'(各自圖生,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한다), 참 기가 막힌 일이다.

 

풍경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지금,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는 풍경 앞에서 조난당한 꼴이다. 기대했던 아름다운 풍경은 보이지 않고, 메마른 내천과 밭, 황량해진 숲에는 비비대는 벌레도 재잘되는 새소리도 그친 지 오래고, 도시의 거리는 한숨 소리와 분노, 통탄만 가득하다. 21세기 한국의 사회적 풍경에는 시커먼 먹구름만 잔뜩 끼어있다. 우리는 폭풍우를 몰고 오는 풍경 앞에 서 있다.

 

 

◇ 풍경의 3가지 의미

 

풍경(風景), 혹은 경관(景觀)은 한 마디로 말하면 ‘자연의 모습’이다. 영어 ‘랜드스케이프(landscape)’라고 한다. 1590년대에 네덜란드어 ‘란츠합(landschap)’ 또는 ‘란츠킵(landskip)’에서 차용되다가 1605년에야 영어에 ‘landscape’라는 철자가 도래했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에서 풍경이라는 말은 세 가지 의미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으로서 ‘풍경화’, 토지로서 풍경(경관), 그것의 인간적 확장으로서의 ‘문화풍경(경관)’이 그것이다.

 

1) 그림으로서의 풍경

 

16세기 풍경이라는 단어는 네덜란드에서 '세련된 판에 그림을 덧붙인다'라는 의미로써 회화에 특화된 전문 용어에 불과했다. 그러나 풍경화(landscape painting, landscape art)라는 회화 장르의 용어가 나오기 전에, 풍경을 그린 그림의 태동은 B.C 15세기 미노스 문명에서 풍경의 요소들을 찾을 수 있으며, 또 B.C 30~20년경 리비아의 저택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의 정원 풍경은 오늘날의 현대회화처럼 경쾌하고 발랄한 색채로 가득하다.

 

그리고 완벽한 풍경화의 모습은 A.D 1세기 로마 알바니 별장 벽화에 아름다운 전원(田園)의 풍경으로 나타난다. 서양에서 풍경을 그린 그림들은 세계 곳곳에 있으나 독립적인 회화 장르로서 풍경화는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등장했다.

 

2) 풍경은 경작지

 

풍경이라는 말의 의미는 크리스토퍼 말로(1564~1593)가 ‘계곡과 언덕과 들판’을 분명하게 독자적인 땅의 모습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또 1630년대 존 밀턴(1608~1674)의 시에,

 

주변의 풍경((landskip)을 살피는 사이에,

황갈색 잔디밭, 회색 휴경지,

새 떼가 모이를 쪼며 돌아다니는 곳.

 

이라고 하여 눈앞에 펼쳐진 풍경(경관)을 노래하고 있다.

 

이때 풍경(landscape)은 땅(土地), 또는 경작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landscape는 ‘land’와 ‘–scape’라는 접미사를 모아 만든 말이다. 이때 land는 용도가 있고 경계선이 그어진 소유권 있는 토지를 가리키는 말이고, –scape는 어떤 단위가 모여서 ‘한 덩어리를 이루는 상황’을 말하는 자격을 뜻하는 접미사이다.

 

그러므로 원래 풍경의 의미가 회화에서 토지로 바뀌면서, 그것도 ‘농촌의 경작지’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내용적으로 보면 사실상 경치보다는 환경이라는 말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리학에서는 풍경(경관)을 어떤 물리적, 문화적 특징이 한 곳에 모여 있는 한 덩어리의 토지, 또는 지역이라고 여기므로 이것으로 볼 때 환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황기원, '토지에서 경관으로', 1999년).

 

 

3) 문화풍경(경관)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이라는 말은 20세기 초 인류학자 크레뵈스의 영향을 받은 지리학자 칼 사우어가 주창한 말이다. 사우어는 경관의 형태학을 말하면서, 자연경관(natural landscape)과 문화경관의 상관관계를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연환경이란 시간이 변화함에 따라 특정 문화를 지닌 인간이 매개체가 되어 인간에 의해 변화되며, 결국 인간에 의해 변화된 자연경관은 문화경관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자연 경관은 인간에 의해 전혀 고쳐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경관으로, 토양, 기후, 지하자원, 해안, 하계망(河系網), 식생 등이다.

 

이러한 자연경관은 특정 문화를 지닌 집단이 그 지역을 어떻게 경영하는가에 따라 가시적으로 나타나며, 경관은 처음의 자연경관과는 다르게 표현되는데, 바로 이렇게 인간에 의해 달라진 경관을 문화경관이라고 한다. 문화경관은 토지이용, 가옥, 인구분포, 도로망 등 인간이 만들고 인간에 의해 이용되며 경영되는 모든 요소들의 총체적 집합이며 그 지역을 점거하고 있는 인간 집단의 사고,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자연경관이 변하는 요소란 다름 아닌 인간의 행위에 달린 것이다. 그것이 원시적 자연이 아닌 인간의 출입이 시작되는 순간 문화경관으로 변해버린다. 제주도 대개의 풍경이 문화경관임을 알 수가 있다.

 

영국의 역사가 사이먼 샤마(Simon Michael Schama, 1945~)는 “풍경은 자연이기 이전에 문화이며, 숲과 물과 바위에 투사된 심상(心象)의 산물이다”라고 하여 자연을 문화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풍경에 인간 개인의 마음이 투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프리드리히 니체가 “미에는 관능이 깊숙하게 숨겨져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인간은 사물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있어, 대상이 아름다우면 여러 가지 욕망이 생긴다. 이제 풍경은 자연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인간과 관계된 문화풍경(경관, cultural landscape)에 다양한 집단들의 경쟁이 일어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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