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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그 진실을 찾아서(23) ... 50주년 행사 제주-일본에서 성황

 4‧3 진실찾기 운동은 4‧3 발발 50주년인 1998년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다. 각계 진영이 50주년을 앞두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온데다 50년 만의 평화적 정권교체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해여서 진상규명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미 서울에서 4‧3범국민위가 출범해 활발한 활동에 들어간 데 이어 제주, 일본 등지에서도 50주년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어 각종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참여하는 국제학술행사가 제주에서 열린 것도, 여당인 국민회의 안에 ‘4‧3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역사적인 공청회를 개최한 것도 바로 이 때였다.

제주에서도 4‧3 50주년 추진위 발족

 

1998년 2월 3일 제주시 가톨릭회관에서 ‘제주4‧3 50주년 학술문화사업 추진위원회(50주년 추진위)’ 창립대회가 각계인사 1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4‧3 발발 50주년을 맞아 4‧3 역사의 올바른 복원과 진정한 민족의 역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아래 결성된 50주년 추진위는 상임대표에 강창일, 김영훈, 김평담, 문무병, 임문철 등 5명, 공동대표에 강요배, 고충석, 김병택, 김윤수, 변시지 등 50명을 선임했다.

 

또 조직위원장에 양동윤, 사업단장에 김창후, 사무처장에 김상철, 조직국장에 오영훈이 각각 위촉됐다.

 

이에 앞서 범도민적인 위령제 주관을 목적으로 1997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사업 범도민추진위원회(위원장 조승옥)’가 발족됐다. 하지만 이 단체는 제주도가 꾸린 관변성 조직인데 반해, 50주년 추진위는 순수 민간단체라는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의욕적인 사업을 구상하다 보니 경비 조달이 과제였다. 그래서 50주년 추진위는 사업비 모금을 위한 ‘만-만 운동’을 벌였다. 도민 1만 명이 각각 1만원씩 기부하여 돌멩이 하나씩 쌓자는 운동이었다. 그리고 2000원짜리 전화카드를 만들어 1만원에 팔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7000만 원의 기금이 모아졌다.

 

50주년 추진위는 4‧3 50주년이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4‧3예술제도 범도민 문화축전으로 준비했다. 행사는 크게 학술, 문화예술, 해원, 영상, 도민참여 이벤트 등 5개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색다른 사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라체육관에서 12시간 해원 상생굿

 

첫째는 해원 상생굿을 대대적으로 열었다. 4월 1일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상생굿판은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장장 12시간동안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벌어졌다.

 

50년 만에 체육관이란 공개적인 장소에서 열린 4‧3 영령 위무 굿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기능보유자인 김윤수 심방이 주관했다. 유족들은 밤샘 진행된 상생굿에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영혼들의 해원을 기원했다.

 

민중가수 정태춘‧박은옥 부부와 장사익,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인 배우 김명곤 등도 참석해 영령의 한을 풀어주는 노래를 열창해 분위기를 돋우었다.

 

둘째는 4‧3 때 폐촌된 마을을 학술적으로 조명한 보고서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를 발간했다. 토벌대들이 불태워 버린 뒤 아직까지 복원되지 않은 마을을 각 읍면 단위별로 골라 그 지역민의 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4‧3유적지 기행문을 펴낸 것이다.

 

이 책자에는 4‧3 때 자취가 없어진 영남동, 동광리 무등이왓, 노형동 함박이굴, 화북 곤을동, 와흘리, 원동, 다랑쉬마을 등이 소개되었다. 이 작업을 제주대 조성윤‧유철인 교수가 총괄했고, 강덕환‧강태권‧김경훈‧이영권 등이 참여했다.

 

신산공원에는 해원 방사탑 쌓아

 

셋째는 제주시 신산공원에 ‘4‧3 해원 방사탑’을 쌓았다. 화가 박경훈이 주도한 이 방사탑 제작은 8톤 트럭 3대분의 제주산 현무암을 높이 7m, 밑둘레 15m 규모로 쌓았다.

1998년 4월 18일 세워진 빗돌에는 “우리는 4‧3 50주년을 맞아 부정을 막고 원혼을 위무하며, 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4‧3 해원 방사탑을 세운다”고 적혀 있다. 이곳에서 매년 4월 1일 ‘4‧3 해원 방사탑제’가 열리고 있다.

 

이밖에도 소설가 현기영과 현길언 등 4‧3 작가들을 불러 그동안의 ‘4‧3 글쓰기’ 작업에서 느낀 체험담을 나누는 문학의 밤 행사, 제주 지역 미술인들의 4‧3 미술제, 4‧3 체험자들을 대상으로 촬영된 다큐멘터리 상영 등이 있었다.

 

또 1992년 제주민중항쟁사 그림 전시로 화제를 모았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4‧3 역사화전’도 다시 열렸다.

 

이에 앞서 4월 1일 신구범 지사는 기자회견을 갖고 ‘4‧3 50주년에 즈음한 제주도의 입장’을 발표했다. 신 지사는 이날 4‧3문제 해결을 위한 4대 원칙을 제시했다. 그것은 △진상규명의 원칙 △명예회복의 원칙 △공동체적 보상의 원칙 △평화추구의 원칙이었다.

 

4월 3일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사업 범도민추진위원회’ 주관으로 봉행된 제50주년 4‧3위령제에는 정부 대표가 처음 참석해서 화제를 모았다. 정부 대표는 국무총리실 부이사관급(구본영)이었다.

 

요즘 4‧3위령제에 국무총리가 참석해도 대통령이 오지 않았다고 불만과 섭섭함을 토로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금석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한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은 그해 12월 ‘98민족예술상’ 개인부문에 화가 강요배를, 단체부문에 제50주년 4‧3학술문화 추진위원회를 선정해 시상했다.

 

강요배 화백은 4‧3역사화전을 갖는 등 제주의 자연과 4‧3의 역사적 의미를 형성화한 점, 50주년 추진위는 비극의 역사에 대해 학술사업, 문화사업 등을 통해 대중적 관심과 호응을 유도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시급함을 촉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쿄‧오사카에서도 다양한 행사

 

한편 제주4‧3 50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위령하고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각종 행사가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도 열렸다.

 

1988년 도쿄에서 결성된 ‘제주도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 회원이 중심이 되어 1997년 ‘제주도4‧3사건 50주년기념사업 실행위원회’(공동대표 김석범, 이철, 현광수, 김민주, 김병도, 김일, 안수영, 한태숙, 이수오, 양석일, 문경수)가 조직됐다.

 

또 오사카에서도 ‘제주도4‧3사건 50주년기념사업 오사카실행위원회’(실행위원 강실, 김병종, 홍가우, 김성원, 장정봉, 오광현, 문경수, 부총사, 정아영, 양석일, 김민주, 고이삼, 김중명)가 꾸려졌다. 이 두 단체가 일본에서 4‧3 5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도쿄의 첫 행사는 1998년 3월 14일 도쿄 팡세홀에서 500명의 청중이 운집한 가운데 브루스 커밍스 교수 초청강연회와 제민일보 4‧3취재반의 『4‧3은 말한다』제4권 일본어판(일본어 제명 『濟州島四‧三事件』) 출판기념회로 꾸려졌다.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유명한 커밍스 교수(시카고대‧역사학)는 한국현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특별 초대받아 참석할 정도로 김 대통령과의 인연도 깊었다.

 

커밍스 교수의 강연 주제는 ‘제주도4‧3사건과 미군정’이었다. 그는 강연에서 “4‧3 때 서북청년단의 테러와 토벌대의 학살극은 이승만 정권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잔혹행위를 묵인하고 지지한 미국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4‧3 학살에 대한 미국 책임론’이 미국 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거론된 것이다.

 

커밍스 “미국은 4‧3 학살 법률적 책임 있다”

 

이 행사에 참석했던 4‧3취재반 김종민 기자는 커밍스 교수와 특별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기사는 『제민일보』 1998년 3월 19일자에 크게 보도됐다.

 

커밍스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4‧3연구 석사논문을 쓴 존 메릴 박사가 미군정의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대규모 학살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벌어졌기 때문에 미국의 직접적인 책임을 부인했다는 말을 김 기자로부터 전해 듣고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한국정부가 수립됐지만 한‧미간 비밀협약에 따라 미군은 1949년 6월까지 한국의 군대와 경찰을 지휘‧통제했고, 따라서 49년 6월 말까지 제주섬에서 발생한 모든 학살극과 잔혹행위에 대해 미국은 윤리적 책임뿐만 아니라 실제적이고 법률적 책임이 있다.”

 

미국 학자의 입을 통해 “미국은 제주섬에서 발생한 학살극에 대해서 윤리적 책임뿐만 아니라 법률적 책임이 있다”는 답변이 나온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도 하였다.

 

“미군은 토벌대를 훈련시키고 죄수를 심문했다. 그리고 게릴라 수색에 미군 정찰기를 동원했다. 미군은 학살극을 억제하기는커녕 칭찬하고 지지함으로써 ‘소극적 관여’를 한 것이다.

 

 

미군은 자신들이 직접 잔혹행위에 나서는 것은 기피했지만 사태를 진압하는데 있어서 한국인끼리의 잔혹행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그런 점에선 인종주의적인 측면도 있다.”

 

도쿄에서는 4월 4일에 청중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4‧3희생자 추모행사가 별도로 열렸다. 조동현이 주도한 이날 행사는 ‘이야기하라 한라’라는 제목 아래 일본 고참 여배우 싱야 에이코(新屋英子)의 ‘어떤 할머니의 신세타령’ 공연과 김성길(서울대 교수, 바리톤), 전월선(재일동포, 소프라노)의 추모 노래가 있었다.

오사카에서 눈물바다 이룬 4‧3진혼굿

 

한편, 오사카에서는 3월 15일 재일한국기독교회관에서 ‘제주도 4‧3을 말한다’라는 주제의 강연회가 열렸다. 문경수 교수(立命館대‧한국정치사) 사회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이종원 교수(立敎대‧국제정치학)의 4‧3의 정치적 의미에 대한 강연과 강실(관서제주도민협회 부회장)의 4‧3 체험담이 발표됐다.

 

오사카에서는 또 3월 21일 주요무형문화재 김윤수 심방이 주재한 4‧3 영혼진혼굿이 재일 제주인이 가장 많이 사는 이쿠노(生野) 구민센터에서 열렸다. 50년 만에 일본에서 처음 열린 4‧3 진혼굿에 대거 참석한 유족들은 온통 눈물바다를 이뤘다.

 

이때 재일동포 음악가 김성구‧조박‧김군희 등이 출연한 추모 콘서트와 4‧3 사진 전시회도 열렸다.

 

주최 측이 이 50주년 기념 일본 행사에 나와 김종민 기자를 초청했기 때문에 나도 일본에 갈 계획이었다. 나는 도쿄에서 열린 『4‧3은 말한다』 일본어판 출판기념회에서 4‧3취재반을 대표해서 인사말을, 오사카 행사에서는 4‧3 진상규명에 관한 강연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문사는 나의 출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4‧3 활동에 대해 탐탁지 않게 반응하던 새 경영주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었다.

 

밖에서는 날이 갈수록 4‧3 외연이 넓어지고 있는데 반해, 신문사 안에서는 4‧3기획물 연재 자체도 중단될 위기 속에 그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결국 1999년 8월 『4‧3은 말한다』 연재 중단과 나의 해직이 동시에 이뤄졌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양조훈은? = 4‧3 광풍이 휩쓸던 1948년 12월 제주읍에서 태어났다. 1972년부터 27년 동안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1988년 제주신문 4‧3취재반장을 맡아 「4‧3의 증언」을 연재하며 운명적으로 4‧3과 조우했다. 이후 제민일보 4‧3취재반장과 편집국장 등을 거치며 4‧3의 진실을 밝히는「4‧3은 말한다」(456회)를 10년 넘게 연재했다. 1999년 신문사에서 해직당한 이후에는 4‧3특별법쟁취연대회의 공동대표를 맡아 4‧3특별법 제정 운동에 앞장섰다. 2000년 이후 4‧3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 수석전문위원으로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작성의 실무책임을 맡아 공권력의 잘못을 밝혀냈고, 이 진상조사보고서를 근거하여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사과를 이끌어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뉴욕타임스』(2001)는 저자를 “4‧3 학살을 조사 연구해온 저널리스트”로 소개하고, “그의 소망은 나라 전체가 이 역사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4‧3평화재단 초대 상임이사, 제주특별자치도 환경부지사도 지냈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4‧3평화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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