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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85)

위진남북조(221∼589) 때에 왕자 소자량1)과 범진2)이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소자량은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불교도였다. 그는 인생의 삼세인과(三世因果)로 운명이 정해졌다고 여겼다. 범진에게 물었다.

 

“당신이 인과를 믿지 않는데, 그러면 어째서 어떤 사람은 일생을 부귀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재능을 품었으면서도 평생 펼치지 못하며 평생 초라하게 살아 아무 이름도 남기지 못하게 되는 것인가?”

 

범진이 답했다.

 

“다른 인생은 사실 같은 가지의 한 꼭지에 달린 꽃송이 같은 것이오. 바람이 불어오면 어떤 꽃은 화병에 놓여 사람이 보면서 즐기는 대상이 되고 어떤 꽃은 운이 나빠 똥통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전자는 왕자님이시고 후자는 바로 저입니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꽃을 가지고 비교하고 있다. 사람은 환경을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결과는 좋고 나쁨의 차이가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생활하면서 진지한 인식이 부족하여 불원간 닥쳐올 처지에 경솔한 태도를 취하여 그 속에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잘못을 깨달아 위험한 곳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곳에는 살지 않으면서 화를 초래할 수 있는 환경에서 멀어지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과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평범하고 용속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재능이 출중한 사람에게는 중임을 맡기고 큰 기대를 건다. 능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이 큰 임무를 맡게 된다. 일을 잘 처리하면 그저 그렇게 됐구나 여기게 되지만 조심하지 않아 잘못되면 큰 화를 입게 된다.

 

그렇기에 자신은 타인이 완성할 수 없는 일을 완성하였더라도 자만하거나 과시하지 말아야 한다. 최대한 자기 역할을 희석시켜 타인에게 공격받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명(明, 1368~1644) 태조 주원장(朱元璋, 1368~1398 재위)은 일찍이 중산왕 서달3)을 조견해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주원장은 서달을 떠보려고 끊임없이 술을 권했다.

 

서달은 사양할 수 없었다. 밤이 깊도록, 곯아떨어질 때까지 연달아 마셨다. 주원장은 내시에게 그를 옛 궁궐에 데려가 잠재우도록 했다. 옛 궁궐은 명 왕조가 건립되기 전, 주원장이 오왕(吳王)을 칭할 때 거주하였던 곳이었다. 한밤중에 서달이 술이 깼다. 주위 사람에게 자신이 어디에서 잠자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시가 말했다.

 

“이곳은 옛 궁궐입니다.”

 

서달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급히 궁전 층계 아래로 내려가 북쪽을 향하여 이배하고 세 번 절한 후에야 출궁하였다.

 

주원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서달이 한 행동에 기쁨을 표했다.

 

서달은 자신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는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는 이치를 알고 있었다. 벗어나려 하지만 여러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면에 많은 사람은 주동적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면서도 잘못을 고집해 깨닫지 못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심연으로 걸어간다.

 

송(宋, 960~1279) 영종(寧宗, 1194~1224 재위) 때의 승상 한탁주4)가 해남위(海南尉)를 역임할 때에 어떤 유생이 문객으로 있었다. 문객은 재능이 있었으나 오래지 않아 떠났다.

 

나중에 승상이 되어 국가 대권을 장악한 한탁주는 그 문객을 대단히 그리워하였다. 어느 날, 그 유생이 갑자기 나타났다. 한탁주는 무척 기뻐하며 그를 집에 머물게 했다.

 

어느 날, 밤이 깊어 인기척 없을 때 한탁주는 유생을 청하여 술 마시면서 그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나는 재능과 학문이 얕으면서도 국가 대권을 장악하였소. 어떤 가르침을 내려 줄 수 있으시오?”

 

유생이 탄식하며 말했다.

 

“승상께서는 지금 나뭇가지에 놓여있는 새알과 같습니다.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한탁주는 그 말이 놀랍고도 이상하다 생각했다. 무슨 까닭이냐고 물었다. 유생이 답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게 어디 있습니까? 궁에서 황후를 세울 때에 공께서 동의하지 않았으니 황후는 승상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궁에서 태자를 세울 때도 공께서 동의하지 않았으니 태자도 마음속으로 원망하고 있습니다. 공께서 정권을 장악한 후 주희(朱熹), 팽구년(彭龜年), 조여우(趙汝愚)와 같은 명사를 조정에서 쫓아낸 게 어디 한 둘 입니까. 사대부도 그래서 공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지금 금(金)나라와 전쟁하면서 군인의 희생이 크고도 큽니다. 삼군도 공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변경의 백성은 시도 때도 없이 붙잡혀 가거나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사해 백성 모두 공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면이 적인데 공께서 어떻게 재앙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한탁주가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유생은 재삼재사 거절했지만 한탁주는 끝까지 캐물었다.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공께서는 받아들이지 않으실 겁니다. 지금 황상이 중병이 들어 국가 정사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요·순·우(堯·舜·禹)가 선양하였던 가법을 꺼내어 황상께 태자에게 물려주도록 간청하십시오. 그러면 태자는 원망하지 않고 공에게 감사하게 될 겁니다. 그때 황후는 물러나 황태후가 됩니다. 공을 원망한다 하여도 힘이 없게 됩니다. 이후 공께서 새로운 황제를 보좌하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쫓겨났던 여러 현사에 대해서는, 이미 죽은 자에게는 더 무휼해주시고 아직 살아있는 자는 불러들여 진급시키십시오. 더불어 사자를 파견하여 어질고 덕이 있는 사람을 초빙한 후 정권을 맡기십시오. 대외적으로도 원망을 없애어 변경을 평안케 하십시오. 군인을 후하게 위로하시고 희생한 사병을 무휼하십시오. 이름도 모르는 여러 가지 세금을 없애고 각종 갈등을 해결하여 전국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켜서 원기를 회복하도록 하십시오. 그런 기초 뒤에 공께서 이름 있는 현사를 선택하여 승상 자리를 양보하십시오. 공께서는 고향으로 돌아가 청산녹수 사이에서 거니십시오. 그러면 공은 위기를 벗어나 안돈하게 됩니다. 재앙이 복으로 바뀔 것입니다.”

 

한탁주는 그의 말을 듣고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했으나 주저하면서 결단하지 못했다. 그저 유생이 자기 곁에 머물면서 조언해주기를 바랐다. 유생은 끝내 이별을 고하고 떠났다. 유생이 떠나고 오래지 않아 한탁주는 유생의 말대로 사방 적들에게 둘러싸여 머리가 잘려 나갔다.

 

현명하고 통달한 사람이 본인에게 위험을 알리며 충고한다는 것은? 얻기 힘든 일이요 기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그 속의 교훈과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애석할 따름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소자량(蕭子良, 460~494), 자는 운영(雲英), 남난릉(南蘭陵, 현 강소 무진武進) 사람으로 제(齊) 무제 소색(蕭賾)의 둘째아들이다. 『경릉왕집(竟陵王集)』이 전한다.

 

2) 범진(范縝, 약450~515), 자는 자진(子眞), 남향(南鄕) 무음(舞陰) 사람이다. 남북조(南北朝) 시기의 유명한 사상가, 도가의 대표 인물, 무신론자이다.

 

3) 서달(徐達, 1332~1385), 자는 천덕(天德), 호주(濠州) 종리(鍾離, 현 안휘 봉양鳳陽) 사람으로 명(明) 왕조 개국 장수다.

 

4) 한탁주(韓侂胄, 1152~1207), 자는 절부(節夫), 상주(相州) 안양(安陽, 현 하남 안양) 사람으로 남송시기 권력을 휘두른 재상이다. 위군왕(魏郡王) 한기(韓琦)의 증손이다. 영종(寧宗) 옹립에 공을 세우고 외척으로 정계에 등장하였다. 우승상 조여우(趙汝愚)와 대립, 그를 참언(讒言)하여 지방으로 유배 보내고 그가 추천한 주희(朱熹)와 그 학파를 위학(僞學)으로 몰아 추방하였다. ‘경원(慶元)의 당금(黨禁)’이다. 이후 14년간 정권을 농단하였다. 1206년 권세를 확장하려 금(金)나라 토벌군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자 문책 당했다. 사미원(史彌遠)에게 살해당하여 수급은 금나라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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