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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89)

뛰어난 의사는 발병 초기에 병자를 완치시킬 수 있다. 일을 고려할 때에 되도록 일찍 착수하여야 한다.

 

싹이 틀 때에 없애버리지 못하면 형세가 변함에 따라 손쓸 틈도 없이 급변할 수 있고 심지어는 큰 재앙이 되어 되돌아올 수도 있다. 나뭇가지와 다름없다. 어린 가지는 손으로 쉽게 없앨 수 있지만 크고 나서는 도끼를 쓰지 않으면 없앨 수 없다.

 

송(宋)나라 때에 도적 장해1)가 고우(高郵)성을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고우성의 수장 조중약(晁仲約)은 그 도적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여 효유(曉諭)군에서 부유한 토호에게 소와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 도적떼를 대접하도록 했다.

 

그 사실이 전해지자 재상 부필(富弼)은 조중약을 붙잡아다가 법에 따라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제의하였다.

 

범중엄(范仲淹)은 인정에 호소하며 말했다.

 

“군현의 병력과 무기를 가지고 도적떼를 물리치고 성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조중약이 도적떼를 만나 막아서지도 않고 오히려 뇌물을 주었으니 법에 따라 주살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지금 고유에는 병사가 없을 뿐 아니라 무기도 없습니다. 백성조차 마음속으로 모두 나서서 재물을 모아 주는 것이 강탈당하고 목숨 잃는 것보다 좋지 않으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성은 조중약의 결정에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조중약을 죽이는 것은 법률을 제정한 근본 뜻에 부합됩니다.”

 

부필은 대단히 화를 내며 범중엄에게 말했다.

 

“법에 따라 처리하려 했는데 공이 막아서서 방해하고 있으니, 이후에 무엇을 가지고 법과 기율을 정비한다는 말이오?”

 

범중암이 조용조용 말했다.

 

“송 왕조가 개국한 이래로 쉬이 신하를 죽인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불성문의 규칙입이다. 어찌하여 이 규칙을 쉬이 깨시려 하십니까? 만약 이후에 황제께서 내키는 대로 죽인다면 우리 모두 머리를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부필은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두 사람이 도성을 나서서 변방을 순시한 후 부필이 하북에서 경도로 돌아왔을 때 경성의 대문에 도착했으나 들어서지 못하게 됐다. 부필은 조정에서 ‘토사구팽’ 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룻밤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그리고 끝내 감탄하며 말했다.

 

“범중엄은 성인(聖人)이구나!”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원대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지극히 미세한 것까지 빈틈없이 살펴야 한다. 그래야 성공과 실패의 관건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일이 터지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 구제하고 보완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일을 할 때 구멍을 찾아내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전에 어려움을 없앨 수 있고 실패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장해(張海, ?~1043), 북송(北宋) 농민봉기의 영수다. 1032년 장막산(郭邈山)이 상산(商山, 현 섬서 상현商縣)에서 봉기하자 장해는 경서로(京西路 : 현 섬서, 하남, 호북성 교차지)에서 봉기해 영수로 추천되었다. 1043년에 봉기군 기세가 최고조에 달하여 경도 개봉(開封)을 압박하였다. 송 왕조는 금병(禁兵)을 보내 진압하였다. 봉기군은 남하하여 현 하북 양번(襄樊)시, 수주(随州)시, 균현(均縣), 방현(房縣), 안륙(安陸)현, 종상(鍾祥) 등의 주에서 창고를 열어 빈민을 구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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